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66
66
9. 귀환
온 세상이 검은 장막으로 뒤덮였다. 눈앞이 검은 것인지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은서의 손이라도 잡고 있었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예상이 되지 않는다. 감각이 그 미지의 공간을 벗어났다고 느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물비린내였다.
시야가 회복되며 거무튀튀한 구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서 비가 죽창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래, 케라브에서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코끝에 머문다. 그것을 인식한 순간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워지며 거대한 도끼가 내리찍힌다.
콰앙!
여울은 몸을 굴러 공격을 피하고는 상체를 들어 올렸다. 주변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 일반 회사원 복장의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도끼를 휘두른 놈은…… 오크다.
“쿠락!!”
놈이 양손을 펼치고 가슴을 크게 열며 포효를 내지른다. 흔히 보는 강자의 여유이자 교만이다. 이곳에 왜 오크가?
후웅!
오크가 다시 도끼를 휘두른다. 여울은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공격을 흘려보내며 한 손을 뻗어 오크의 목을 쥐어 잡았다. 그러고는 바로 바닥에 대가리를 내려찍었다.
콰아앙!
그 육중한 덩치가 그대로 넘어가 바닥에 꽂혔다. 놈은 아직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이곳에서 처음 마주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원래 자신에게 벌레만도 못한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여울은 뒤통수가 깨져 진녹색 피와 뇌수를 흘리고 있는 놈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오크는 자신의 목을 압박하는 어마어마한 힘에 옴짝달싹 못하고 눈만 껌뻑였다. 놈이 알아듣고 대답할 리가 없다. 여울은 바로 주먹으로 놈의 얼굴을 찍었다.
퍼석!
놈의 대가리가 완전히 터졌다. 여울은 진녹색 피가 묻은 손을 한 번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어마어마한 장대비가 내리는 오후다. 이곳은 대략 15층 높이의 옥상 위, 여울은 난간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는…….”
치직…… 칙…….
부서진 간판에 전선이 스파크를 내고 있다.
“대체 어디야…….”
무너진 빌딩, 불에 타 버린 차, 거리에 널린 사람들의 시체, 음산한 적막함과 죽음의 기운만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은…… 한국이다.
* * *
4개월 전, 서울 한복판에 5미터 너비의 싱크홀이 발견되었다. 그곳에서는 난생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그 일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
싱크홀, 이제는 게이트라고 부르는 그것은 그날로부터 무작위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통 유동 인구가 많은 도로 바닥이나 건물 바깥 면에서 열리고 한 번 열리면 3~7일간 지속적으로 몬스터들을 쏟아 내다가 마지막으로 게이트키퍼가 나오면서 닫힌다.
입구 너비는 게이트키퍼의 크기로 강함에 비례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게이트를 미리 닫으려면 직접 안으로 들어가 게이트키퍼를 처치해야 한다.
최초 게이트가 열리던 날, 극소수의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얻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그들의 신체 능력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들은 총알 수십, 수백 방을 맞아야 쓰러지는 몬스터들을 단숨에 베어 버리는 괴력을 발휘하여, 종말을 막기 위해 태어난 영웅으로 칭송과 질투를 받았다.
몬스터를 잡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각성자들은 일부러라도 게이트를 찾아다녔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몬스터를 쫓는 각성자들, 그들을 사람들은 헌터라고 지칭했다.
헌터는 대한민국의 집계로만 0.1퍼센트의 사람들이 각성하여 대략 5만 명이 등록되어 있다. 다른 나라는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훨씬 낮았다.
많은 국가들이 초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몬스터들에게 잠식당했다. 대한민국도 큰 도시들은 대부분 잠식당했고 몇 개의 살아남은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군인과 경찰은 지방자치단체로 변화되었고 기술은 퇴화되었다.
* * *
여울은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움직였다. 옥상 문을 열어젖히니 피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계단에는 붉은 피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어 그 처참한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내려 옷을 보니 빗물이 거의 묻어 있지 않았다. 푸른눈에게 받은 겉옷은 자세히 보면 0.3밀리미터 정도 되는, 아주 조그마한 크기의 비늘 같은 것이 촘촘히 엮여 있는데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통풍은 되면서 비는 들어오지 않는 방식이다.
유일하게 하의만 젖어 있다. 후에 같은 재질의 하의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이.’
“…….”
아무런 응답이 없다. 여울은 눈을 감고 시이를 다시 불렀다. 검은 장막이 쳐진다. 시이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보이는 배경이다.
시이는 보통 보름에서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안주머니로 들어가서 잔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 시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면 행성 이동이라는 것이 되면서 연결이 끊긴 건가? 하루 후에 다시 시도를 해 봐야겠다.
여울은 품에서 메티의 불꽃을 꺼내었다. 메티 역시 불꽃을 발하지 않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 바닥에 떨어져도 그대로 굴러간다. 마치 죽은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갔나? 지니고 있는 힘은 그대로인데?
의문을 오래 품을 시간이 없다. 어디로 떨어졌을지 모를 은서를 찾아야 한다. 5레벨의 힘을 지니고 있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으니 안심할 수 없다. 여울은 빠르게 건물에서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곳은 한국이다. 부서진 건물들과 간판에 한글이 쓰여 있고, 시체들의 모양새가 한국인이 많으며 익숙해 보이는 거리도 보인다. 이정표에는 방제동 지하철역이라고 적혀 있다.
방제동…… 그들이 은서를 납치했던 곳이다. 자신이 이곳에 있으니 은서도 이 부근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여울은 먼저 처음 케라브로 이동되었던 그 지하실로 가 보았다.
타닥.
사람도, 차도 없으니 큰길로 나와 전속력으로 달렸다. 죽은 도시의 배경이 빠르게 지나쳐간다.
쿵! 쿵! 쿵! 쿵!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곳으로 가 보니 번쩍이는 갑옷을 갖춰 입은 오크 수십 마리가 열을 맞춰 행군을 하고 있는 옆모습이 보인다. 그 선두에는 맹수의 대가리 뼈를 투구처럼 쓰고, 커다란 도끼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검은 미역을 들고 있다.
흔들거리는 그것을 제대로 보니 미역이 아니었다. 어떤 젊은 여인의 머리였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머리통은 바닥을 긁고 있고, 절단면 부분이 지저분한 것으로 보아 산 채로 뜯은 것이 분명했다.
여울은 허리춤에서 베아를 뽑아 들고 놈에게 달려 나갔다. 중무장한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고개를 돌려 그에게 창끝을 겨눈다.
지잉!
‘음?’
베아가 장전이 되지 않는다. 지금 보니 베헤모스의 기운이 존재하기는 하나 거의 텅텅 비어 있다.
그렇다면 플랜 B다. 여울은 오른손을 허공에 뻗었다. 그러자 검 모양이 순식간에 형성되었다.
“크룩하!!”
선두에 있는 오크가 여울을 바라보며 포효를 내질렀다. 이곳 오크들의 습관인 듯싶다. 놈의 어금니는 다른 놈들보다 특히 커다랗고 눈은 붉다.
여울은 놈에게 바로 디카르를 던졌다. 놈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엑스자로 교차시켰다. 놈의 팔뚝에도 번쩍이는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다.
콰앙!!
그곳에 디카르가 부딪치며 놈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디카르는 그것을 뚫지 못하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막아? 오크가?’
아무리 대충 던졌다고 해도 오크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몇 단계 위인 블랙티거여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자신의 힘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케라브에서 가진 초인적인 힘은 그대로다.
콰직!
여울은 오크 병사의 창날을 도움닫기 삼아 밟고 뛰어올라 놈에게 튀어 나갔다. 놈의 몸이 건물에 부딪쳐 멈춰 섰다. 놈은 두 팔을 들어 올린 상태 그대로다. 여울은 그곳에 주먹을 그대로 꽂았다.
퍼억!
놈의 상체가 건물에 박히며 벽에 금이 간다. 여울은 조금 더 힘을 주어 같은 곳을 때렸다.
퍽! 퍼억! 퍼석!
세 번째가 돼서야 여울의 주먹질이 멈춰 섰다. 놈의 팔 보호대는 부서졌고 팔뚝은 기형적으로 꺾였으며 대가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터져 나가 있었다.
여울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다가 발끝을 돌렸다. 충격파 없이는 잔챙이들을 처리하기가 수고스러워, 바로 지하실로 이동했다.
콰직!
건물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지만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에 비하면 상당히 온전한 편이다. 여울은 잘 열리지 않는 지하실 철문을 부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풍겨 온다. 안을 보니 부패된 해골 하나가 널브러져 있다. 한쪽 손에 단검을 들고 있고 목이 꺾여 있는 것을 보니 전에 케라브로 오는 중에 죽였던 납치범인 듯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오래된 먼지는 수북이 쌓여 있다.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은 없다. 우선 이 건물부터 뒤져 본다.
이 건물은 7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계단에는 오크와 트롤의 시체가 몇 마리 보이고 6층부터는 철창살문으로 막혀 있다. 그곳에는 각종 가전제품들이 쌓여 있다.
사람의 흔적,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아래층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여울은 철문을 잡고 살짝 흔들었다.
으득! 두둑!
문은 단단히 잠겨 있다. 용접 부분이 통째로 흔들거린다. 사물을 향한 힘 조절에 조금 신경을 써야겠다.
이것을 부서트려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생각은 없기에 손을 살짝 놓았다. 그때, 저 멀리서부터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타닥, 탁탁.
한 명의 발소리가 아니다. 철문 너머는 냉장고와 장롱으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귀를 기울이니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지열이 형인가?”
“오빠 오려면 한참 남았어. 그리고 문을 먼저 땄겠지…….”
“그, 그럼 어떡해, 몬스터면……? 헌터는 지열이 형밖에 없잖아…….”
“조용히 하고 확인을…….”
그때, 여울이 철문을 두드렸다.
똑똑.
“꺄읍!”
조용히 하라더니 더 크게 놀라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기, 사람 있습니까?”
여울의 말에 문 너머로 그들이 다시 속삭였다.
“뭐, 뭐야? 사람이야? 저 사람도 헌터인가? 열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잠깐. 지열이 오빠가 없을 때는 아무도 열어 주면 안 돼. 나쁜 사람들일 수도 있어. 일단 없는 척을 하고…….”
“저기, 문 안 열어 줘도 되니까 몇 가지만 물읍시다.”
“뭐야, 우리 목소리가 들리나?”
“헌터 맞는 거 같아! 청력 특성자?”
이제 슬슬 그들의 만담이 짜증 나기 시작한다. 여울은 손을 뻗어 철문을 잡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뭡니까, 아저씬?”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그는 날카롭게 뻗어 있는 검도용 진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 * *
여울은 베아를 황지열이라는 청년에게 건네주고 나서야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15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집 안에 있는 액자를 보니 원래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인 것 같다.
입구에서 만담을 펼치던 남녀는 고등학생들이었다. 나이가 가장 팔팔하다 보니 이곳의 거의 모든 일들을 처리했다.
이들 중에서는 지열이라는 청년만이 헌터라고 한다. 인간 이상의 힘을 내는 자, 케라브에서 모두에게 주어졌던 그 힘을 말하는 듯하다. 오크를 일대일로 이길 수 있는 자는 지열뿐이었고 그가 혼자 돌아다니면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식량을 구해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말고는 최근에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렇군…….”
여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열이 말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헌터이시면 우리랑 함께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여울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가야 할 곳이 있다.”
“혹시 다른 동으로 가시려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저희가 괜히 수원 도시로 안 가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방제역 부근에는 맨손으로 두개골을 부수고 도끼질 한 방으로 차를 두 동강 내는 오크 네임드 두보레와 그의 부하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두, 두보레 무서워…….”
“전에도 헌터 아저씨들이 잡으러 갔다가 다 죽었다고 했어…….”
오크 네임드,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여울은 문득 낮에 대가리를 부순 오크가 떠올랐다.
“상관없다.”
“아저씨…… 강합니까?”
“아저씨, 우리 수원 도시에 데려다줄 수 있어요?”
“제발…….”
여울은 베아를 받아 들고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아니, 나는 수원으로 가지 않는다.”
세 쌍의 간절한 눈빛이 그의 뒤통수를 따라간다. 여울은 멈춰 서서 반쯤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대신, 가는 길에 보이는 오크는 모두 없애 주지.”
그는 발끝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열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말이 되는 말을 해야지…….’
타닥, 타닥.
문을 잠그기 위해 바로 뒤따라나간 지열은 문이 그대로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라졌다. 위를 보니 옥상 문이 열려 있었다. 그곳으로 바로 올라서니 이제 막 난간 위에 올라선 그의 모습이 보인다.
“아앗?!”
그가 서슴없이 난간 위에서 뛰어내렸다. 지열은 빠르게 달려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사뿐히 바닥으로 착지하여 무서운 속도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뭐, 뭐지……?”
* * *
치직…… 치직…….
주파수가 안정적이지 않아 잡음이 강한 라디오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진다.
[금일 오후 4시 31분, 수원 수색 3팀이 서초구 일대를 공포로 물들였던 오크 네임드 두보레의 사체가 발견하였습니다. 상흔으로 보아 둔기를 쓰는 헌터에게 당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