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69
69
여울은 아래층 사람들에게 명을 내리다가 은서와 눈을 마주치고는 멈칫하며 시선을 피했다. 은서가 다칠 수도 있다는 마음에 급히 처리하다 보니 살인하는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다. 은서의 눈빛은 담담했지만 여울의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여울은 2층에 있는 다른 방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모두 다 같이 사냥을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지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까 따라갈 때 가장 먼저 동의했던 때를 떠올렸다.
‘역시, 일부러…….’
삐걱, 삐걱.
“흐읍, 흑.”
여인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어 보니 바지만 내린 사내가 한 여인의 위에서 허리를 방정맞게 흔들어 대고 있었다. 여인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초점이 없는 눈을 하고 있다.
얼마나 급했으면 총소리가 들려도 나와 보지도 않았는가? 아니면 총소리가 자주 들리는 탓에 개의치 않는 건가?
턱!
여울이 그의 뒷목을 잡고 그대로 일으켰다. 그가 컥컥거리며 손등을 때린다. 여울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놈의 머리를 벽에 박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놈의 얼굴이 평평해졌다.
“꺄아악!”
여울은 뒤늦게 비명을 지르는 여인을 힐끔 봤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2층 가장 끝 방은 열자마자 지독한 악취가 코끝을 자극했다. 둘러보니 꽤 부패가 진행된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총구멍이 난 자도 있고 몬스터에게 당했는지 찢긴 자들도 있었다.
“오빠! 여기요!”
1층을 뒤지던 지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검에 피가 묻어 있다. 패거리가 몇 명 더 있었던 듯하다.
내려가 보니 세 명의 사내들이 쓰러져 있고 안쪽에는 여인 넷에 소년 하나가 잔뜩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유인되어 납치된 사람들이다.
여울은 건조한 눈빛으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발끝을 돌렸다. 아직 식량 창고는 못 찾은 상태다.
“저들은 어떻게 하려고요?”
지연이 다급히 따라와 말했다.
“내가 뭘 해 줘야 하는 건가?”
“저대로 두면 빌라 사람들처럼 죽어 가기를 기다릴 뿐이에요. 우리가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같이 데려가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은서를 발견했다. 어차피 일반인이 끼어 있는 일행이다. 수원까지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여울은 발걸음을 돌려 그들이 있는 방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식량 챙깁시다. 수원으로 갑니다.”
“네?”
“에……?”
“네! 네!!”
몇 명의 여인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그때 소년이 지금 상황을 깨닫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며 일어섰다.
지연이 처리한 세 명을 마지막으로 악당 패거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잡혀 있던 사람들이 식량 창고를 알려 줘 찾아가 보니 조그마한 가죽 자루에 파랗게 빛나는 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그들이 몬스터의 몸에서 채취하던 돌, 캐라브의 몬스터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 뒤에서 소년이 말했다.
“그거! 마석이에요, 마석. 이 사람들이 그걸 모아서 도시에 갖다 팔면 큰돈이 된다고 그랬어요.”
“그렇군…….”
예상은 했었지만 이들은 무법을 즐기기 위해 도시에 일부러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석은 약 500그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울은 그것을 칼론의 주머니에 챙기고는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속도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만 챙기십시오.”
여울은 사람들이 식량을 챙기는 동안에 지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다가오면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관찰을 받아 보고 싶다.”
“아…… 네, 좋아요. 손 주세요.”
여울은 지연과 손을 맞잡았다. 저 멀리 은서의 시선이 따갑지만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지연에게 보이는 것이 더 편하다.
“음…… 음?”
지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여울에게 말했다.
“우선…… 은신이…… 생겼네요?”
어떻게 생겼는지 매우 궁금한 얼굴이다. 여울은 그녀의 호기심을 무시하고 물었다.
“다른 건 없나?”
“레벨…… 말고는 변한 건 없어요.”
“알았다.”
여울은 그녀와 멀어지며 추측했다. 다크네스 드레인이 되지 않은 이유는 셋 중 하나다. 놈이 겹친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마족만 가능하거나, 아니면 레벨이 낮은 상대의 특성은 뺏어 오지 못하거나. 아마 마지막 이유가 가장 신빙성이 있을 듯했다.
안 그러면 이 스킬을 얻은 사람이 저레벨들을 학살하고 다닐 테니까.
“주인 아저씨, 이제 준비 다 됐어요.”
천수가 다가와 말했다. 여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보았다. 각자 배낭을 메고 서로 부축하고 있는 여인들이 대다수다.
소년이 있지만 열 살을 갓 넘긴 아이이니 성인 남성은 자신과 천수뿐이다. 천수는 총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전보다 자신감이 높아진 얼굴이다.
“출발합시다.”
어떻게 하다가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을 줄줄이 달게 됐는지 모르겠다.
출발한 지 사흘째, 마트에서 나올 때 습격을 받았던 트롤 열 마리 이상의 습격은 받지 않았다.
덕분에 여울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고 지연 혼자서 모든 몬스터들을 처리하였다. 지연의 활약만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우러러보며 경외의 눈빛을 보내었다.
“이, 이게 뭐야……?”
“무…… 서워.”
겁에 질린 지나 모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울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한 동과 동 사이에 높이 쌓여져 있는 콘크리트, 그 옆으로 높은 건물들 위주로 이어진 벽이 눈앞에 넓게 펼쳐졌다.
벽은 높이가 20미터를 넘고 두께는 쉽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최소 10미터는 넘어 보였다. 도시가 완전히 현대판 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위압적인 모습을 보며 천수가 중얼거렸다.
“수원, 진짜 수원이다.”
* * *
성벽 위에는 고정 카메라와 이동식 카메라가 약 30미터 단위로 달려 있다. 출입구를 찾기까지는 수백 미터를 돌아가야 했다.
출입구는 철강판으로 개조된 한 아파트의 현관문이었다. 그곳으로 들어서니 양쪽에 총을 든 군인들 이십여 명이 쭉 나열해 있고, 마지막에는 사복을 입은 사내 둘이 검을 들고 있었다. 둘은 헌터로 보였다.
그들 중 사나운 눈빛의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주민증 보여 주십시오.”
“주, 주민증? 주민등록증 말하는 건가?”
지나 엄마가 품을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사내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재앙 이후에 수원 도시는 처음 오시는 겁니까?”
“네.”
지연이 한 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그 행동에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주민등록부터 합니다. 무기는 여기 놓고, 저 사람을 따라가십시오.”
총을 든 군인 한 명이 여울 일행을 인도했다.
그를 따라 복도로 가니 개조된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는 후줄근한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앞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다섯 명의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 앉아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곳에도 역시 한쪽 벽에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 총을 든 군인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대기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 여울 일행의 차례가 되었다. 그들이 선 줄의 관리자는 푸짐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조근조근한 어투로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울 구의동입니다.”
“최근 한 달 이내에 구토나 열, 특이한 병력 증상이 있습니까?”
“아니요.”
“수원시는…….”
그는 여울의 단호한 대답에 힐끔 눈길을 줬다가 거두고는 다시 보았다. 그의 시선은 뒤에 지연의 허리춤에 가 있었다.
“혹시…… 헌터십니까?”
여인이 그 무시무시한 몬스터와 근접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흔하지 않다. 그의 말에 지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헌터입니다.”
그녀의 대답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테이블 밖으로 나왔다.
“오오! 그러셨군요. 진작 말씀하셨으면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낭비시키지 않았을 텐데……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는 지연을 손수 안내했다. 그녀는 뒤따라 두 걸음 가다가 멈추고는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눈치채고는 다시 물었다.
“아, 이분들과는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가족입니까?”
지연은 여울의 눈치를 보다가 은서에게 눈동자를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네, 가족이에요.”
“아, 그러시구나, 가족분들도 이쪽으로 오세요.”
그의 말에 열두 명이나 되는 인원이 대거 이동했다. 그 모습에 푸짐한 사내는 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대, 대가족이시구나…… 하하.”
사내를 따라 이동하는 그들을 보며 다른 사람들이 속닥거렸다.
“뭐야…….”
“못 들었어? 헌터라잖아.”
“와, 저 여자가? 운도 좋아.”
“아, 열 받아, 다 가졌는데 헌터까지……. 진짜 불공평하네.”
여울 일행은 사내를 따라 개인 사무실 같은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그의 개인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여울 일행을 반겼다.
“미스 김, 이분들 기본 검사 좀 해 줘. 나는 헌터등록소 다녀올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죠, 아, 혹시 헌터분이 또…….”
지연을 에스코트하던 그의 시선이 여울의 검집에 머물렀다. 그때 은서가 바로 말을 받았다.
“아니요. 없어요.”
“그렇죠? 그럼 편히 쉬고 계십시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긍하고는 지연을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여울 일행은 그곳에서 피검사와 소변검사, 지문 등록 등등 여러 가지 검사와 등록을 마치고는 지연을 기다렸다. 지연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열 쌍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갔다.
“헌터증 만들고 왔어요. 곧 나온다고 하네요.”
뒤따라온 사내가 지연에게 굽실거리며 말을 이었다.
“B랭크 헌터님을 몰라 뵙고…… 정말 영광입니다. 나중에 이 이진태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예, 예…….”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살짝 당황한 지연을 보고는 진태는 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여울 일행을 보며 말했다.
“가족분들도 많이 기다리셨죠?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여울 일행을 데리고 드디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사람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아…….”
“진짜…… 진짜 사람이 사는 곳이야.”
부서진 채 가만히만 있던 자동차들이 움직인다. 빌딩 옥상에는 커다란 전광판에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지나간다. 4개월 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그 세상이다. 다시는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세상이다.
사람들은 주저앉은 채로 눈물을 쏟아 냈다. 진태는 봉고차의 문을 열어 주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가만히 기다렸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은 듯했다.
“자, 수원이랑 인사 다 하셨으면 천천히 안쪽부터 타십시오. 머물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에,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인들은 진태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봉고차에 올라탔다.
숙소로 이동하는 길, 바깥을 살펴보니 케라브에 오기 전의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곳이다. 도처에 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이 깔려 있지만 사람이 사는 냄새가 훅 올라온다. 은서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차로 이동한 지 30분이 지나 거대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어느 학교의 체육관으로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수백 개의 텐트가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