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70
70
11. 전진하라
이진태는 그곳 담당자에게 손수 텐트를 받아 지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알다시피 수원이 인구가 포화 상태입니다. 그래도 몬스터들이 판을 치는 밖으로 내칠 수는 없어서 받아들이는데, 주민증만 등록시키고 길거리로 바로 보내죠. 이렇게 헌터님과 지인분들처럼 특별한 경우는 빼고요.”
바깥에서 물밀듯이 밀려 들어올 텐데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받아 주는 격이니 이 정도의 대우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지연은 크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좋은데요.”
진태는 돌연 지연의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고는 말을 이었다.
“어쩜 이렇게 마음씨까지…… 헌터님은 B랭크이시니까 금세 대형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겁니다. 아마 계약만 해도 주거지를 옮기실 수 있을 거예요.”
지연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그 손을 뺐다.
“아, 예…… 알겠습니다.”
진태는 여울 일행을 한번 둘러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하하, 담당자한테도 잘 말해 놓을 테니까 편히 쉬시고……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네, 들어가세요.”
“들어가요~.”
지나 엄마는 그의 뒤뚱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공무원인거 같은데 싹싹하고 아주 친절하네.”
“엄마, 저거 다 언니가 헌터라서 그런 거야.”
“그래도 착해, 사람이.”
나눠 준 텐트는 총 다섯 개였다. 나중에 합류한 다섯에게 두 개를 주고, 신혼부부와 지나 모녀에게 하나씩 주고 나니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 지연을 지나 모녀에게 보내야 하나 생각 중에 여인들이 다가왔다.
“이렇게 사람이 진짜 사는 곳까지 안전하게 동행해 주시고, 잠자리까지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여인들과 소년이 여울과 지연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여울은 그들의 인사를 본 체 만 체하며 뒤돌아섰고 지연은 그들을 토닥여 돌려보냈다. 이제 각자 살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모습에 신혼부부 천수와 연수도 여울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곳에서 탈출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우리도 여기서 헤어질게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네.”
“후움…… 잘 가요, 아저씨, 아주머니.”
어차피 이 체육관에서 자주 마주칠 텐데 작별 인사를 거창하게 한다. 여울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을 보냈다.
그들마저 보내고 지나 모녀에게 지연을 맡기려는데 은서가 그녀의 팔뚝을 잡아당긴다.
“언니는 저랑 같이 갈 거죠?”
“으, 응?”
지연이 당황하며 고개를 살짝 돌려 여울을 보았다. 거부가 아니라 선택권을 넘기는 눈빛, 거기에 은서의 반짝이는 눈빛이 더해진다.
그래, 자신이 밖에서 자면 된다.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동굴에서도 버텨 왔는데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울은 지연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은서에게 말했다.
“그래, 언니도 은서랑 같이 있을 거야.”
* * *
다음 날, 지연은 길드 사람들과의 미팅에 정신이 없었고, 그사이 여울은 은서를 데리고 바로 병원을 찾아갔다.
둘의 행색에 진찰을 하는 의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이거 봐요. 힘줄이 다 말려 들어가고 뼛조각도 돌아다녀요. 혈관을 안 찌른 게 신기할 정도예요.”
그의 손짓을 따라 엑스레이를 심각하게 바라보던 여울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수술이 가능합니까?”
의사는 여울의 옷을 위아래로 한 번 더 훑어보고는 고개를 미세하게 저었다.
“하…… 힘들 겁니다. 발목을 일부 잘랐다가 뼛조각 다 긁어내고 인공 힘줄을 이으려면…… 못해도 4천은 들어요.”
의사가 여울의 얼굴에 네 손가락을 뻗었다. 네깟 놈이 이런 돈이 있냐는 얼굴이다. 의사가 줄어들고 부상자는 많아지며 수술비가 한참 올라갔다고 한다. 수술할 사람은 넘치니 돈으로 우선순위를 측정하는 것이다.
여울은 발목을 자른다는 말에 고민했다. 과연 이게 맞는 선택일까? 딸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건 아닐까? 주보라만 찾는다면 해결이 되겠지만, 한 층도 아니고 이 넓은 땅에서 어떻게 찾느냐가 문제다. 평생 동안 못 만날 수도 있다.
여울은 은서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서 마석을 꺼내어 보여 줬다.
“이게 얼마쯤 됩니까?”
그것을 보자 의사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는 눈빛을 고치고는 반쯤 일어선 상태로 물었다.
“헌터이십니까?”
“이걸로 수술 가능합니까?”
대답을 회피하자 의사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손가락으로 마석을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음…… 이걸로는 턱도 없어요. 헌터시면 1층에 헌터증 보여 주시면 랭크에 따라 대출도 가능할 겁니다.”
그의 말에 여울은 고개를 돌려 은서의 눈을 바라보았다. 전에 헌터에 관해 물었을 때 은서가 대답을 회피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헌터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불가피하다. 앞으로 이 바뀐 세상에서 은서를 부족함 없이 먹이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은서야, 아빠가 미안해.”
“아냐…… 아빠 마음 알아.”
여울은 은서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는 의사에게 말했다.
“수술해 주십시오.”
* * *
그날 밤, 이진태는 여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 알았다. 그때 그 미녀 헌터분하고 같이 오셨던…… 맞죠? 근데 여긴 왜…….”
여울은 품에서 마석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 줬다.
“이게 얼마입니까.”
그가 눈이 화등잔만 해져 마석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오우, 요즘 이렇게 들고 다니다가 퍽치기당해요. 조심하세요. 이건…… 한 1500?”
의사의 말대로 턱없이 부족한 것이 맞다. 여울은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입을 열었다.
“헌터증은 어디서 얻습니까.”
“네?”
진태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잠시 후, 진태는 호들갑스러운 걸음으로 여울을 에스코트하고 있다.
“이거, 부부가 둘 다 헌터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정말 행운아십니다. 그런 미녀 아내분에다가…… 헌터에다가…….”
“부부 아닙니다.”
“아, 이런 제가 또 말실수를, 이거 죄송합니다. 여깁니다.”
그의 안내를 따라 긴 복도를 지나가니 주민등록하는 곳보다 서너 배는 더 넓어 보이는 공간이 나왔다.
한 명의 관리자만이 앉아 있고 세 명의 젊은 사내가 맞은편 벤치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하얀색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것이 세 개가 나열되어 있다. 박스 중앙에는 숫자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 여기서 테스트 신청하시고 통과하시면 헌터증이 발부될 겁니다.”
진태는 신청하는 곳에 의자까지 당겨 여울을 앉히고는 말을 이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집에 일이 있어서 끝까지 보고 가지는 못하겠네요. 아무튼 파이팅 하시고, 나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네.”
진태가 나가자 맞은편에 앉은 관리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서 오세요. 여기 주의 사항 읽어 보시고 여기에 성함을 쓰시고 사인해 주십시오.”
그가 내민 테스트 동의서를 읽어 보니 관찰로 상대의 특성과 레벨을 확인하는 것은 헌터들의 반대가 심하여 폐지되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신체 능력을 측정하여 F부터 S까지 랭크를 나눈다고 한다.
랭크에 따라서 세금도 달라지고 소속된 곳에서의 월급도 달라진다고 한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은서나 자신이나 적당히 살 돈만 벌면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지연은 B랭크 판정을 받고 여러 길드의 스카우트 제의에 정신이 없었다. 여울은 C랭크 정도 받기로 다짐을 하고는 테스트 동의서에 사인을 남겼다.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옆에 무지개 색으로 염색을 한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근육 좀 있다고 여기 관리자 빽 좀 써서 F랭크 판정이라도 받아 보려고 왔죠?”
무슨 말인가 싶어 여울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듣고만 있었다.
“그거 진짜 쓸데없는 생각이에요. 나 같은 헌터는 일반인과는 급이 달라요, 급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일반인은 F랭크 판정 못 받아요. 빽으로 가능한 게 있고 아닌게 있다니까? 망신당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 그게 정신 건강에 좋아요.”
“임주용 씨.”
“네에!”
“1번 방 앞에서 준비하세요.”
“네!”
무지개 색 청년이 한 손을 쭈욱 펴 올리며 대답했다.
청년 다음은 여울의 차례다. 그가 자신 있는 걸음으로 컨테이너 가장 앞방으로 들어갔다.
삐빅.
첫 방은 21점.
삐빅.
두 번째 방은 13점.
삑.
세 번째 방은 9점이 그의 성적이다. 꽤 낮아 보이는데 그의 표정은 의기양양하다. 관리자가 모니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22세 임주용 씨, E랭크입니다. 축하합니다.”
“휘유, 별말씀을.”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와 다시 대기 의자에 앉았다. 여울은 다음 차례가 되어 그 하얀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발을 올려놓는 발 모양 스티커가 있고 정면에는 수십여 개의 카메라가 있다. 천장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반응속도 테스트입니다. 스티커 위에 발을 올리고, 뻗어 오는 레이저를 30초간 피하면 됩니다. 5초 후 시작됩니다. 5, 4, 3…….]카운트가 끝나고 붉은 레이저가 하나하나씩 반짝였다. 그에 맞춰 상체만 기울이면 되는 테스트다. 빛의 속도를 어떻게 조절했는지 소총 총알의 반 정도의 속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느린 것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고민이 될 정도다.
여울은 본능적으로 10초간 모든 빛을 피하다가 그 후부터 조금씩 맞았다. 곧 30초가 지나가 테스트가 끝났다. 안에서는 점수를 알 수 없었다.
다음 방은 바닥부터 해서 천장, 옆면까지 육 면에 동그랗고 작은 강화 유리 수십 개가 붙어 있었다.
카운트가 끝나자마자 천장에 있는 유리 하나가 반짝였다. 그것을 터치하니 꺼지고 다른 곳에서 빛이 나는 방식이다. 이건 좀 재미있다 싶었지만 이번 역시 10초간만 터치하고 그 후로는 가만히 있었다.
세 번째는 방 중앙에 펀치 머신 같은 것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강한 힘도 버텨 내기 위해서인지 뒤쪽의 스프링과 보조 장치가 복잡하고 견고하다. 근력 테스트다.
어떤 강도로 쳐야 하나 고민 중에 아까 무지개 색 머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러다가 헌터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신청하기까지 한 달이 걸린다.
여울은 손등으로 그것을 짧게 끊어 쳤다.
콰직!
그것의 스프링이 쫙 줄어들어 끝부분에 박혔다. 그 모습에 움찔했지만 4레벨도 되지 않는 힘을 준 것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테스트를 마친 여울이 밖으로 나가니 관리자가 자리에 일어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기석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무지개 색 청년과 다른 대기자들 셋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다.
여울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며 점수를 확인해 보았다.
-37, 36, 95.
‘저게 왜 저렇게 많이 나왔지?’
그때, 관리자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35세 여울 씨, A랭크…….”
“아, 네.”
여울은 그의 손에 들린 헌터증을 받아 들고는 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내일이면 체육관으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자들과 계약을 맺으면 된다.
A랭크,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조금 당황했지만 상관없다. 랭크 평가는 상대적인 것. A랭크는 상위 1퍼센트 이상만 받는 결과로, 적어도 같은 랭크가 500명 이상은 있다는 것이다.
그때,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경보가 울렸다.
삐이! 삐이! 삐이!
“꺄아아악!”
“모,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모두 진정하시고! 차례차례 대피하십…….”
경보 소리가 울리자마자 사람들의 반응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던 듯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게이트라고 불리는 것은 없었다.
무질서하게 대피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역으로 달려오는 군인과 경찰들이 보인다. 그 사이로 간간이 검을 든 자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벽 위다.
여울은 그들을 따라서 벽 위로 올라섰다.
“음…….”
“세, 세상에…….”
“이런 미친!”
벽 너머에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몰려오고 있었다. 오크와 트롤, 중간중간에 오우거도 몇 마리 보인다.
벽 끝에 총을 들고 선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이만한 수가 몰려오는 것은 처음 겪어 보는 듯하다.
“꺄악!! 저, 저기!!”
그때, 한 여인이 뾰족한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한 사내가 벽 너머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새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방패가, 오른손에는 견고하고 날카로운 검이 들려 있었다.
콰아앙!
그가 터프하게 바닥에 착지하고는 방패를 하늘 높이 추켜올리며 외쳤다.
“대한길드여- 전진하라!”
그의 외로운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는 그렇게 수많은 몬스터들을 향해 홀로 달려 나갔다.
그때, 그 뒤로 귀청을 찢을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대한길드여!! 전진하라!!”
“전진하라!!”
“와아아아!!”
그 소리와 함께 벽 위에서 수십 명이 맨몸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