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74
74
노인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피부마저 거무튀튀하여 생기가 없어 보이는 노인은 눈동자만이 파랗게 이글거리고 있다. 저 한기가 흐르는 기운과 침착한 어투, 그는 푸른눈이 분명하다.
“왜 날 찾아왔지?”
노인은 고장 난 장난감처럼 어색하게 미소를 몇 번 지어 보이다가 입을 열었다.
“바로 알아봐 주시는군요, 여울 님. 시공간이 달라 이런 몸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육체가 없으면 보지도 듣지도 못해서 영혼이 나가는 이의 몸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도 곧 썩겠지만…….”
차원을 넘어서 죽어 가는 자의 육체에 들어갈 수 있는 자, 그는 역시 범상치 않은 존재다.
케라브의 마지막 보스는 주인노의 가죽을 쓴 마족이었다. 그 전에 그것이 푸른눈의 동족이라고 들었다. 여울은 몸을 수축시키며 그에게 물었다.
“너의 동족들이…… 마족인가? 마족은 뭐지?”
“케라브의 딸이 마지막에 그런 수를 써서 궁금한 점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억겁의 세월에 걸쳐 우리 행성 사람들은 동족의 존재를 ‘용’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가 다르고 신에 가장 가까운 ‘힘’을 가진 자들이라고 불렸지요.”
푸른눈은 걸음을 옮기며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주변 배경이 전에 꿈에서 보았을 때처럼, 사방이 안개에 막히고 바닥이 검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의 몸도 예전의 푸른눈으로 바뀌었다.
그는 대리석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서 말을 이었다.
“만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태어났지만 그 본연의 능력 때문에 악한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자들은 변질되어 마족, 또는 악마라고 불리게 되지요.”
“너는 마족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지? 밤의 왕을 만든다느니 그런 유희나 하고 있지 않았나?”
여울의 말에 그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렸다가 내리고는 잠시 틈을 주었다가 대답을 이었다.
“나와 함께 이 게임에 참여한 모든 동족들은 밤을 다스리는 용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울 님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들?”
“전 세계 케라브에서 나온 왕의 후보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왕좌를 노릴 것입니다.”
다크니스 특성을 지닌 자들을 말한다. 그들 대부분 평균 이상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무리를 지어 온다면 타격이 클 것이다.
“이곳에 오면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처음에 계약했을 때의 내용이다. 푸른눈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용들이 공존보다는 공멸을 택하였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탓이지요.”
그는 적당한 시간 후에 고개를 들고는 말을 이었다.
“여울 님, 그들의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대부분 용의 관여가 강합니다. 현신하면 본연의 힘까지는 쓰지 못하지만 케라브에서 마지막에 보았던 자와 비슷한 상태의 강함을 보일 것입니다. 여울 님의 얼굴을 모르니 숨어 지내면 오랫동안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막을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것,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정보라도 최대한 알아 둬야 한다.
“그들은 몇 레벨이 되어야 상대가 가능하지?”
“10레벨이 되면 이세계로 현신한 용의 힘은 능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다크니스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검은 흔적을 찾아옵니다.”
“너는…… 이것을 알리기 위해 온 건가?”
푸른눈은 고개를 기계적으로 끄덕이고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죽음의 의미가 다릅니다. 여울 님은 나의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나에게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 배경이 다시 현대로 바뀌며 차단되었던 잡음들도 들려왔다. 그가 노인의 몸으로 숨을 헐떡이며 말을 내뱉었다.
“여울 님, 이건 저와 동족들의 유희가 아닙니다. 목숨을 건 게임입니다.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부디, 생명을 잘 보존하십시오.”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강대한 기운이 사라지며 노인이 그 자리에 바로 쓰러졌다.
여울은 그에게 다가가 맥을 짚고 눈을 살폈다. 온기도 남아 있지 않다. 이미 며칠 전에 죽은 자인 듯했다.
푸른눈을 믿어도 될까?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크니스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아슬아슬하고 한기 어린 기운은 언제나 불안감을 가지게 한다.
“으음…….”
어깨가 불에 댄 듯이 따끔거려 겉옷을 벗고 다크니스 스텐을 일부 없앴다. 그곳에는 77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날짜의 언급이 없었는데? 그때, 얼마 지나지 않아 숫자가 776으로 바뀌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 * *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서는 0726 실종자들이 귀환하면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귀환자들은 기존 헌터들과는 급이 다른 강함을 보이며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그들만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중, 한국에서 단연 돋보이는 길드는 대한길드였다. 진후의 인터뷰를 보고 찾아온 길드원은 대략 100명으로, 모두 A랭크 판정을 받아 국내의 모든 헌터들에게 첫 번째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보다 더 충격을 준 것은 진후가 현재 기기로 능력 측정이 불가능한 헌터에게 내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S랭크 헌터증을 발급받은 것이다.
얼마 후 수원시에서는 일전의 몬스터 습격 때의 일을 치하하며, 대한길드에게 직접 포상을 내리며 적극적인 지지를 표했다.
민철과 유라, 일권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도시에 발이 닿지 않았거나 헌터 생활을 떠나려는 것일 테다. 지연은 다른 길드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부터 신념이 맞지 않으니 선택권이 많은 이곳에서는 굳이 자신을 따를 필요는 없던 것이다. 잘한 선택이다.
친위대는 거의 모든 인원이 돌아와 그들을 팀으로 나누었다. 10명당 1팀을 만들어 4개 팀은 수원시에 순찰을 돌며 안에서 생기는 게이트를 처리하도록 시키고, 7개 팀은 밖에서 사냥을 하며 길드의 힘을 더욱 키웠다.
진후는 가장 마지막에 인원이 모자란 팀을 데리고 벽 밖에서 사냥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래쪽으로 많이 내려간 때였다.
가려는 길이 버려진 차들로 막혀 있었다. 양쪽은 건물이고 차들은 이중 삼중으로 높이 쌓여 있는 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길을 막은 것이 분명했다.
뒤돌아서니 저 멀리서부터 총을 든 사내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군복이었으나 풍기는 분위기나 행동은 도적의 것이었다.
선두에 권총을 든 사내가 이죽거렸다.
“이야, 오랜만에 헌터분들이 납시었네. 자, 일단 마석 좀 털어놔 보실까?”
그들의 수는 스물이 넘었다. 진후 일행은 네 명밖에 되지 않으니 총을 믿고 도적질을 하는 것이다. 진후의 얼굴을 모르는 것을 보면 밖에서 사는 놈들이라 정보 업데이트가 느린 듯하다.
“당신들, 지금 누구…….”
타앙!
“컥!”
젊은 대원 한 명이 진후 대신 나서자 그가 서슴없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대원은 어깨에 총을 맞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행동이나 말투, 눈빛을 보건대 망설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본 놈이다. 그를 보자 전에 길드원의 절반을 죽음으로 내몬 라타 일당이 떠올랐다.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서슴없이 죄 없는 사람을 해치는 놈들.
진후는 바로 방패를 들이밀며 그들에게 달려 나갔다.
“어엇!”
“야! 쏴!”
탕 탕 타당 탕!
수십 발의 총알이 방패에 튕겨 나간다. 옆에서 쏘는 것들은 피부에 박히거나 뚫고 들어왔다. 진후는 그것들을 무시하며 밀고 나가 방패를 휘둘렀다.
퍼벅! 퍽!
그의 방패 휘두름은 8미터 덩치의 오우거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니 일반인에게는 덤프트럭에 치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퍼석!
저 멀리 날아가는 놈들은 모두 어디가 하나씩 깨져 있다. 가장 처음 닿는 부위는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아예 부서져 버리는 것이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어도 8~9미터 높이에서 낙하하며 머리통이 깨진다. 몇 분 되지 않아 진후의 앞에는 권총을 든 사내만이 남아 있었다.
권총을 든 그의 손은 중풍이라도 걸린 듯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진후는 그의 총을 한 손으로 잡아 으깨 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가자, 네놈이 머무는 곳으로.”
사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기, 길드장님, 괜찮으십…….”
진후는 바로 뒤돌아서 오우거의 피를 들고 달려오는 길드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상자를 데리고 바로 도시로 복귀해라, 당장.”
“네, 넵! 길드장님!”
진후의 살벌한 기운에 길드원은 반박할 생각도 못 하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진후는 그 사내를 끌고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갔다. 그곳은 ㄷ자 형에, 5층 높이로 되어 있는 주차장이었다. 그 가운데에 서니 위에서 30명이 넘는 사내들이 총을 들고 나타났다.
몇 명은 검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헌터들도 섞여 있는 듯했다. 진후를 이곳으로 인도한 사내는 잽싸게 어딘가로 도망치며 소리쳤다.
“뒤져라, 이 괴물 새끼야! 다들 이놈 쏴 죽…….”
퍼억!
그때 진후의 데가베르가 놈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그는 놈의 머리에 박힌 검을 뽑으며 등을 밟고 뛰어올랐다. 등 뒤로 수십, 수백 발의 총알들이 빗발쳤다.
탕탕 타당 탕!
진후의 움직임은 그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음에도 마치 표범과도 같았다. 그는 한 번의 도약에 한 층씩 올라서며 그 패거리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10분이 넘지 않는 시간, 진후는 꼭대기 층에 서서 자신에게 들어오는 붉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레벨업과는 별개로 자신의 능력을 실시간으로 올려 주는 이 기운은 일반인에게도 얻을 수 있는 듯하다.
“크으…… 흐으…….”
미세하게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아직 처리되지 않은 놈이 있으면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4층은 마치 복도식 아파트처럼 열 개가 넘는 방이 나열되어 있었다. 소리를 따라 문을 열어 보았다.
끼익.
“후…….”
진후는 문을 연 순간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곳에는 사지가 쇠사슬로 묶인 채 가죽이 반쯤 벗겨져 있는 사내가 있었다. 아직 가슴이 헐떡이는 것을 보면 살아 있는 것이 확실했다.
반사적으로 눈을 뜬 사내는 진후를 보고는 본능적으로 그들과 같은 패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 죽…… 주…….”
그는 입을 뗄 힘도 없는지 한 글자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진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심장에 데가베르를 박아 넣었다.
“끄으으으…….”
사내는 그제야 편안하다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다른 방에는 한쪽 발만 묶인 벌거벗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언데드에 가까울 정도로 바싹 말라 있고 심지어 오물과 뒤섞여 있어서, 마치 인간이 아니라 버려진 가축 같았다.
이미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는 것이 천천히 죽어 가고 있던 것 같다.
대체 왜? 왜 이러는 건가? 인간은 자신의 힘을 넘어서는 외압이 아니면 이렇게 한없이 악해지는 것인가?
분노가 전신을 뒤덮는다. 죽여야 할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세상이 너무 타락했다. 이런 자들은 케라브에서도 있었고 이곳에서는 넘쳐 난다.
이들을 정화시킬 누군가가 필요하다. 힘으로 냉철한 심판을 할 수 있는 자, 자신은 그럴 힘이 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집행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