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76
76
코끝이 찡해지는 바다 냄새가 가득한 부두.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화물선에 몇 명의 사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검이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곧이어 날렵한 쾌속선이 부두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하얀 수트를 입은 여인을 선두로, 검은 수트를 입은 여러 명의 사내들이 내려 화물선으로 이동한다.
화물선에 먼저 타 있던 사내들 중에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한 자가 여인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쪽으로.”
그는 그녀를 배 갑판 아래쪽 선실로 인도했다. 그 선실 벽 한쪽에는 굵은 쇠사슬로 사지가 묶인 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입니다.”
“보여 주세요.”
“잠시만.”
사내가 뒤따라온 자신의 부하에게 손짓하자 그가 검을 건네주었다. 사내는 묶여 있는 여인의 팔을 걷고는 서슴없이 검을 휘둘렀다.
“꺄악!!”
그 휘두름에 여인의 팔뚝이 반쯤 잘려 나가며 선실에 피가 튀었다.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깊은 검상이었다. 여인은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며 고통을 참았다.
“보십시오.”
사내는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고 상처 부위를 가리켰다. 하얀 수트의 여인은 자신의 옷에 묻은 붉은 피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시선을 돌렸다.
“호오…….”
여인은 금세 표정이 바뀌었다. 묶인 여인의 환부가 눈앞에서 스멀스멀 붙는 것이었다.
“그런데, 타인에게는 이 여자가 자발적으로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그건 사시는 분 쪽 담당이죠, 회유를 하든 협박을 하든.”
하얀 수트의 여인은 미세하게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
“잘 봤습니다. 회장님께 말씀드려 보지요.”
“저희가 인내심이 좀 적습니다.”
여인은 멈칫하더니 자신의 부하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한 사내가 작은 가방을 하나 가져와 붉은 띠 사내에게 건넸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것을 열어 보았다. 안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마석들이 들어 있었다.
“하급 300그램입니다. 계약금이라고 하죠.”
“대한민국 재계를 휘어잡는 회장님이 통이 작으시네……. 뭐 아무튼, 빠른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여인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배에 타기 전에 잠시 멈추고는 뒤돌아섰다.
“저 여자, 이름이 뭐라고요?”
붉은 띠의 사내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보라입니다. 주보라.”
* * *
지금 사태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여유로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해안 도로를 따라 세 명의 아이들과 덩치가 큰 사내가 걸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손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서슬 퍼란 칼이 들려 있었다.
“둥둥 배 무서따.”
둥둥의 말에 가장 작은 소녀가 그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이 참, 배를 타야 한다니까.”
“근데 정말 들었어? 아무것도 안 들리던데.”
“내가 진짜 들었다니까! 육지에는 몬스터한테서 안전한 곳이 있대.”
소년은 그 소녀의 머리를 흩트리며 말했다.
“그래, 육지는 사람들도 많고 둥문 아저씨처럼 힘 센 사람도 많을 테니까, 가 보자.”
“배…… 무서운데…….”
둥둥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때, 옆의 민가에서 오크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꺄읍!”
“흡.”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둥둥의 뒤로 숨었다. 그는 도끼도 들지 않고, 달려드는 오크들을 맨손으로 잡아채 아스팔트 바닥에 거꾸로 박아 대가리를 으깼다.
푹!
두 마리가 이제 미동도 하지 않는데 둥둥은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소년이 그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그가 도끼를 꺼내 들며 소년을 뒤로 물렸다. 그의 눈빛은 전에 없이 날카로웠다.
“쉬이…… 머가 온다.”
그가 이렇게 긴장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의 뒤쪽에 몸을 수그렸다.
드드드드.
저 멀리서부터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둥둥은 앞으로 겨눈 도끼를 진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옮겼다. 곧이어 민가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파앗!
둥둥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새도 없이 두 손으로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턱!
도끼가 거대한 바위에 박힌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둥둥은 자신의 도끼날을 한 손으로 잡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으, 은떠 아빠?”
여울은 그의 도끼를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둥둥, 집에 가자.”
* * *
“야이, 돼지야!”
“멍청아!”
알콜 중독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둥둥은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 그들이 부르는 말은 할머니에게도 지겹도록 많이 듣던 말이다. 둥둥은 자신이 멍청한 돼지인 줄 알았고, 그렇게 인정하며 살았다.
아무리 놀려도 둥둥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이제 둥둥의 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둥둥은 그것이 아프고 싫었다. 할머니한테도 매일 매를 맞아 학교가 유일한 탈출구였는데, 그들마저 매를 때리니 정말 괴로웠다.
둥둥은 결국 친구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또래에 비해 유독 힘이 강한 둥둥은 세 명의 친구들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그 후,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아이들이 둥둥을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그들과 함께하면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면 맛있는 것을 사 주었다.
그들은 항상 가슴이 찌릿한 일들을 시켰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술에 취한 아저씨 한 명을 죽였다.
15년간 감빵에 살다 나왔을 때에는 할머니도, 친구들도, 아무도 자신의 곁에 없었다. 혼자가 된 둥둥은 너무나도 외로웠다.
그때,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을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내 부하로 삼아 줄게. 날 따라와.”
둥둥에게 그는 진정한 친구였다. 그는 더욱 가슴이 찌릿한 일을 시켰지만 할머니와 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풍족한 생활을 하게 해 주었다. 가끔 할머니처럼 자신을 때릴 때가 있었지만 혼자가 되기 싫어 참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둥둥이 납치한 아이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는 따뜻한 무언가가 전해져 왔다.
둥둥은 35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은서를 돕는 것은 가슴 벅차고 기분이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자신이 필요 없다.
그런데, 그녀의 아빠가 찾아왔다.
“은서가 찾는다. 가자.”
“으, 은떠가?!”
둥둥은 도끼도 내팽개치고 그렇게 무서워하던 여울의 몸을 냅다 끌어안았다. 여울은 조용히 그의 몸을 밀쳐 내고는 뒤에 쪼그려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울은 2주 만에 시이의 연락을 받았다. 둥둥이 머물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섬마을, 울릉도였다.
그는 이곳에서 세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모양새를 보면 지켜 주고 있던 듯하다. 그의 과거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다. 그동안 은서를 지켜 주며 마음에 변화라도 왔나 보다.
“둥둥, 주보라는 어디 있지?”
“두보라? 그게 누구임니까?”
그때, 소년이 일어서며 말했다.
“아저씨가 그 은떠 아빠예요?”
둥둥이 은서에 관한 이야기도 했나 보다. 여울은 소년을 힐끔 봤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네가 여기 왔을 때 옆에 젊은 여인 없었나?”
은서와 지연은 접촉하고 있어서 같은 곳에 떨어졌다. 서한과 담덕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둘도 이동되기 전 마지막 장면에서는 접촉하고 있었으니 분명 같이 떨어졌을 것이다.
“더, 덜은 여인……? 눈 떠쓸 때는 아무도…….”
그때, 소년이 중얼거렸다.
“혹시…… 그 누나 말하는 건가?”
소년의 말에 여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 * *
“끄으…….”
아무도 없는 선실 안에는 주보라의 신음만이 얕게 울렸다. 그녀는 살은 붙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안쪽의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마력을 품고 있는 몬스터를 잡아야 회복력도 올라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임우민 일당의 무자비한 실험에 홀리네스의 힘이 매우 약해진 상태다.
하얀 수트의 여인은 자신을 ‘구매’하는 일당의 중간 책임자인 듯하다. 누가 되었든 이들보다는 나을 것이니 그냥 빨리 팔려 나갔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선실 밖에서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대장, 근데 저 여자 대한길드하고도 연이 있던데…… 잘못돼서 그들과 척을 지면 어떡합니까?”
“여기는 케라브가 아니야, 한국이야. 나라가 뒤집어졌다고 해도 돈의 가치는 여전하고 우리는 저년만 팔아먹으면 몬스터 따위는 안 잡아도 평생 외국에서 눈을 내리깔며 놀고먹을 수 있어. 대한길드 따위…… 엿까라 그래.”
“그, 그렇겠죠?”
“그래,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소현이나 내 방으로 보내.”
“아, 넵. 바로 보내겠습니다.”
소현은 이 동네에서 납치한 여인들 중 한 명이다. 임우민은 5레벨 민첩 특성의 사내로, 귀환자들을 데리고 이 작은 섬, 울릉도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후, 임우민의 화물선으로 하얀 수트를 입은 여인이 다시 찾아왔다. 그의 갑판 위에 올라선 그녀는 부하를 시켜 우민에게 가방을 건네었다. 우민은 가방을 열어 보고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거, 대충 봐도 약속한 금액이랑은 다른데?”
여인은 바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선수금 절반. 나머지 반은 회장님 병이 나은 후에 전달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계약을 틀어 버리시면 어떡하나? 저 여자 설득이 언제 될지 어떻게 알고?”
임우민은 여인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으르렁거렸다. 여인은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자가 회복력만 보고 거래를 해 주면 감사해야지. 당신네들이 이 금액에 저 여자를 다른 곳에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
우민은 그녀의 눈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뒤돌아섰다.
“한 달. 한 달 이후에는 저년을 설득했든 안 했든 잔금 치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의논해 보겠습니다.”
우민은 한 손을 들어 부하들에게 휘적거렸다. 그러자 그들이 주보라를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을 풀었다.
하얀 수트의 여인은 부하들을 시켜 주보라를 인계받았다. 여인이 타고 온 쾌속선으로 이동하는 중, 그녀는 주보라의 목을 두른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에게 온 걸 환영한다. 너는 앞으로 지하실에 사지가 묶인 채 정재계의 늙은이들 병을 평생 치료하면서 살 거야.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을 느끼게 해 줄 거다.”
여인의 말에 주보라는 움찔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늙은 부자들의 영생을 책임지게 하려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지옥 같은 삶이다. 지금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주보라가 멈춰 서니 양발과 손, 목을 묶은 쇠사슬이 치렁치렁 움직였다. 여인은 그녀의 쇠사슬을 더욱 강하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허튼 생각 마라. 사지를 자르고 옮기기 전에.”
그때, 여인의 부하가 한곳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자는 뭐지?”
저 멀리에서 한 남자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임우민도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야, 저놈 처리…… 응?”
그의 반응이 이상하다. 주보라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여인의 부하와 우민의 부하들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다.
주보라는 그를 알고 있다. 마지막 보스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은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