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77
77
여울은 임우민과 여인의 부하들이 휘두르는 검림을 마치 허상인 것처럼 지나쳐 갔다. 실제로 그들의 검은 그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찰나에 주보라의 지척까지 다가온 여울은 그녀의 목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잡아챘다. 하얀 수트의 여인은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눈을 하며 쇠사슬을 놓쳤다.
주보라와 여울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이다. 결정? 결정인가? 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생각했다. 그도 아픈 사람인가? 뭐든 상관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할 힘이 있다면……
“도, 도와주세요! 이 사람들이 절 강제로…….”
“그러지.”
파앙!
그 말과 동시에 목을 옥죄던 쇠사슬이 끊겼다. 그가 두 손으로 잡아당긴 것이다. 저것이 저렇게 쉽게 끊기는 재질이던가?
그는 쇠사슬을 바로 뒤에 있던 하얀 수트의 여인에게 휘둘렀다. 피할 생각도, 움직임도 되지 않은 여인은 그것에 머리가 가로로 잘려 나갔다.
그것을 기점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달려 나간다. 그러고는 쇠사슬을 사신의 낫처럼 휘두르며 사람들을 곤죽으로 만든다.
그의 모습은 왠지 즐거워 보였다. 마치 그동안 꾹꾹 눌러 왔던 봉인을 해체시킨 느낌이었다.
“다, 다 튀어!!”
기겁을 한 우민이 소리치며 도망쳤다. 여인의 부하는 물론, 4레벨이 넘는 우민의 부하들도 그의 쇠사슬에 속절없이 잘려 나간다. 저 뭉툭한 것이 저렇게 날카롭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는 금세 장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는 도망친 우민을 쫓았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잘린 우민의 머리를 가져와 확인시키듯이 주보라를 향해 살짝 들어 보이고는 바닷속에 던졌다.
퍼석!
그는 주보라에게 다가와 손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뜯었다. 말 그대로 마치 종잇장처럼 손으로 뜯어 버렸다.
주보라는 묵묵히 한쪽 무릎을 꿇고 자신의 발을 옥죄고 있는 쇠사슬을 잡는 여울을 보며 생각했다.
그와는 말 한 번 섞지 않았었고, 짧은 시간 봤던 그의 모습은 불의를 참지 않고 돕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저 건조한 눈빛에서 확신한다. 그런 그가 왜?
“저기…… 저를 왜 구해 준 거예요?”
여울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아, 따람 마니 두거따.”
“저…… 남자는?”
*
임우민이 가지고 있던 검은 가방 안에는 수백 억대의 마석이 들어 있었다. 어차피 검은 거래에 쓰이는 돈이라 주인이 없다. 여울은 그것을 자신이 챙겼다.
둥둥은 주보라를 알아보지 못했다. 케라브에서도 의식을 잃은 후에나 나타났고, 그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임우민 일당에게 납치당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여울은 그들을 수원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들에게 그곳에서 얻은 마석 몇 개를 손에 쥐여 주고 보호소에 맡긴 여울은 주보라와 둥둥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은서는 둥둥을 찾으러 나가기 전에 당분간 지연에게 맡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라는 말없이 방을 치우는 여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를 데리고 온 이유가…… 뭐죠?”
그는 아무리 봐도 상처를 치료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다. 상처가 깊을수록, 취약한 곳일수록 점점 더 붉게 표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무런 색도 표시되지 않았다.
여울은 대충 치운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쉬십시오.”
“은떠, 은떠는 어디 이슴니까?”
둥둥이 집 안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때, 여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띠리리리!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다. 타 길드에서 자신의 번호를 알 리가 없다.
자신의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다섯 명밖에 없다. 은서, 지연, 서한, 공무원 이진태, 채굴꾼 이세진.
아마도 그들 중 누군가에게서 알아내어 연락을 한 것일 터였다.
여울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은 젊은 남성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은서 아버님. 은서 담임입니다. 다름 아니라 은서가…….
“네, 네, 알겠습니다.”
여울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통화를 끊었다. 주보라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며 희한한 감정을 느꼈다.이런 자가 학부모로서 전화를 받는 모습 자체가 신기해 보였던 것이다.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나서며 말했다.
“계십시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네? 네…….”
주보라는 그의 말에 강제성을 느꼈다. 자신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차피 그 어떤 단체가 자신을 찾을 것을 예상한 그녀는 여울의 옆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 * *
중학교의 쉬는 시간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교실이 쭉 늘어서 있는 복도, 한 남학생이 교실 안에서 튀어나오더니 갑자기 절뚝절뚝 걸어간다. 그 모양새가 퍽 과장스럽다.
“크흡, 흐하하하.”
“아, 진짜 저새끼, 웃겨 죽겠어.”
“야, 야, 그만해. 얘 울겠다.”
그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를 하고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은서의 학교생활은 이런 일의 연속이었다. 사람에게 느끼는 두려움을 이겨 내려고 노력 중이지만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도, 걸어오는 말을 받기도 힘들다.
짓궂은 남학생들은 절뚝거리는 은서를 따라 하며 은근히 놀려 댄다. 은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의 모습과 트롤의 모습을 겹쳐 보며 머리통을 깨치는 상상을 한다.
스슥, 스슥. 타악.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중, 등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은서는 두 어깨를 한껏 들어 올렸다. 손을 등으로 뻗어 매만져 보니 포스트잇이 한 장이 잡힌다. [나는 ㄷㄹㅂㅅ입니다.] 라는 초성이 적힌 쪽지다.
은서는 뒤돌아서 자신의 짝꿍과 함께 킥킥대고 있는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에는 샤프가 하나 들려 있었다. 은서는 그 샤프를 가리키며 친절한 어투로 물었다.
“그걸로 적은 거야?”
“응? 그래, 왜, 뭐?”
남학생은 샤프를 눈앞에 들이대며 턱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은서는 그의 샤프를 낚아채고는 다른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책상에 붙였다. 그러고는 서슴없이 샤프를 그의 손등 위에 찍었다.
푸슉!
“끄아아아악!!”
샤프는 그의 손등을 꿰뚫고 책상에 단단히 박혔다. 그 돌발적인 행동에 교실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리하여 그 남학생의 부모님과 은서의 아빠, 여울이 학교에 불려 오게 된 것이다.
여울이 다른 선생의 인도를 받아 학교 상담실에 들어서자, 남학생의 아버지와 담임선생, 그리고 맞은편에는 은서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여울을 보자 그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가락질했다.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남의 귀한 아들을…….”
여울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바로 은서에게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는 두 손을 맞잡았다.
“은서야, 괜찮아?”
“으, 응…… 미안해, 아빠.”
사내는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시 소리쳤다.
“허, 하, 참 내 진짜, 오면 사과가 먼저…….”
그때, 여울이 뒤돌아서 담임선생을 보았다. 그 맹수와 같은 눈빛에 담임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죽지는 않았습니까?”
“네? 네, 죽지는…… 아니, 혈관은 교묘하게 다 피해서 괜찮다고는 합니다만…….”
여울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사내에게 건넸다. 엄지손가락 두 개만 한 유리병이었다. 그 안에는 진녹색 피가 담겨 있었다.
그는 얼떨결에 받아 들고는 인상을 쓰며 그것을 살폈다.
“이, 이게 뭡니까?”
“네임드 오우거의 피입니다. 절단이 아니라면 오늘 안에 완치될 것입니다.”
그는 멈칫했다가 그것을 주머니에 챙겼다. 오우거의 피, 그것도 네임드 오우거라면 이 정도 용량은 천만 원 가까이 된다.
“이, 이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한 거요, 사과!”
그의 말에 여울은 다시 뒤돌아서 은서와 눈을 맞추고 물었다.
“왜 그런 거야? 그 애가 또 다리로 놀렸어?”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사내는 계속되는 무시에 여울의 어깨를 잡았다. 은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여울의 몸에서 살기가 미세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것을 느낀 사내는 슬그머니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은서야,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다리를 잘라 버려. 뒤처리는 아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지?”
은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아빠.”
여울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트리고는 뒤돌아서서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사과는 합의금으로 대신하죠. 얼마면 됩니까.”
“그, 그게 무슨…….”
여울은 오늘 일을 학교에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천만 원이라는 합의금을 냈다.
때맞춰 학교가 끝나고 여울은 은서와 함께 학교를 나섰다. 그리고 집 앞에 왔을 때, 은서는 1층 로비에서 서성이고 있는 둥둥을 발견했다.
“둥두우웅!!”
은서의 목소리에 둥둥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는 절뚝거리며 달려오는 은서를 발견하고는 두 손을 활짝 펼치며 마주 달렸다.
“은떠어!!”
그 모습을 보며 여울은 그의 팔을 부러트려야 하나 수십 번 고민했다.
‘저 새끼가…….’
포옥.
둘은 결국 여울의 걱정대로 꼬옥 안았다. 둥둥은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지 금세 은서를 떼어 놓고는 말했다.
“은떠, 은떠가 둥둥 보고 시펀나?”
“둥두웅…… 당연하지. 이제 괜찮아? 괜찮아진 거야?”
은서는 그렇게 둥둥의 두꺼운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한참이나 안부를 물었다.
둥둥과 함께 나와 있던 주보라는 은서의 발목에 표시되어 있는 붉은 기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구나, 이 아이 때문에 나를…….’
* * *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 서한은 조용히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결국 담덕도 오지 않아 병원비는 지연에게 빌려야 할 듯하다.
“시원~ 하네.”
아니, 시원섭섭하다. 아니, 섭섭하다. 아무리 딸린 식구가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지엠에 글까지 올렸는데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 그동안 케라브에서 살아왔던 나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별로였나?”
서한은 코를 한번 찡긋거리고는 목발을 짚으며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래, 이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 그동안 TV로 지겹게 봐 왔지 않은가? 자신의 실력 정도면 먹고 사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젠장.”
자신도 모르게 진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케라브라는 절대생존 게임 속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지는, 아주 비정상적인 마음마저 든다.
서한은 머리를 세차게 털고는 1층 원무과로 걸음을 옮겼다.
“퇴원하러 왔습니다. 병원비는…….”
“아, 병원비는 정산되었습니다.”
“예?”
“정산되었습니다.”
“누가요?”
서한의 말에 원무과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 그게, 정산할 때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아서…….”
“아, 네. 아무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한은 고개를 거칠게 한 번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
‘누가? 지연? 설마 여울?’
풀리지 않는 의문에 전화기를 들며 병원 밖으로 나가는 중에 갑자기 거대한 SUV차량 한 대가 눈앞에서 급정거를 하였다.
끼이이익!
서한은 화들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쳐다봤다. 차량은 선팅을 얼마나 강하게 했는지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이, 지금 환자 칠 뻔한 거 알아? 어이, 문 좀 열어 보슈!”
서한은 목발을 추켜세우며 소리쳤다. 그러자 창문 전체가 스르르 열렸다. 그 안에는 매우 낯익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서프라이즈~!”
“안녕, 대장?”
“어이, 대장, 못 본 새에 성격 많이 버렸네.”
“큭큭, 저 얼굴 봐라, 아마 우리 욕 엄청 하고 있었을 거여.”
차 안에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원팀의 팀원들이 타고 있었다. 서한은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이…… 자식들이, 왜 이렇게 늦었어!!”
조수석에 탄 담덕은 창문틀에 그 굵은 팔을 기댄 채 대답했다.
“보고 싶었지? 미안, 대장. 이놈들이 가족들 좀 찾아다녔대.”
운전대를 잡은 이건수가 말을 이었다.
“말해 뭐해, 대장! 빨리 타, 사냥 가야지?”
뒷좌석에 있던 무영이 차에서 내려 서한을 에스코트했다. 그는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차에 타며 말했다.
“그래, 원팀! 사냥 가자!!”
“가자~!!”
“출발!”
그렇게, 6레벨 2명, 5레벨 3명, 평균 랭크 A+라고 할 수 있는 원팀을 태운 차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차 뒷좌석에서 문솔과 무영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서한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차 좀 좁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