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78
78
새벽빛이 내리쬐는 부둣가.
수십 구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참혹하기 이를 때가 없다.
선글라스를 쓰고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검은 수트의 사내가 시체들을 면밀히 살폈다. 마지막에는 하얀 수트 여인의 시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이 실장,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이걸로 노잣돈이나 하십시오.”
그는 안주머니에서 수표 세 장을 꺼내어 그녀의 잘린 목구멍에 꽂아 넣고는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변에 있는 다른 사내들에게 말했다.
“다 태워 버려.”
“예, 마 실장님.”
마 실장은 시체들을 끌어모아 태우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주보라는 5레벨로 측정된다. 그에게 이 실장과 브로커들 모두 당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외부에서 돕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천안도시 벽 안쪽, 21층 빌딩의 마지막 층. 마 실장은 그곳의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똑똑.
“마지욱입니다.”
그의 말에 문 너머에서 못으로 철판을 긁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어두컴컴한 사무실 안, 네 개의 촛불만이 책상 위를 밝히고 있다. 촛불이 살기를 읽어 낸다 하여 사무실을 이리 만든 것이다. 구 회장이 얼마나 의심이 많은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 이 실장도 당했다고?”
구 회장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다. 마 실장이 데리고 간 부하들 중에 회장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네.”
“내 돈은?”
“사라졌습니다.”
“감히…….”
뒤돌아 있던 구 회장은 의자를 마 실장 쪽으로 돌렸다. 그의 다리는 허벅지부터 잘려 나가 있었고, 아래턱은 반쯤 함몰되어 철판을 덧대고 있었다. 처음 게이트가 출현했을 때 몬스터에게 당한 상처다.
그는 마 실장과 눈을 맞추고는 씹어 먹듯이 대답했다.
“그년 찾아와. 내 돈도. 이런 장난질을 한 놈의 목도.”
“알겠습니다.”
마 실장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 * *
여울의 집, 네 명의 남녀가 서로 둘러앉아 있다.
“이 아줌마는 그때…….”
“어머, 아줌마라니,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한테.”
은서는 잠시 멈칫하고 주보라를 힐끔 보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언니는,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
은서는 도움을 바라는 눈빛으로 여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네 아빠가 네 다리 치료하려고 이 언니를 납치해 온 거란다.”
보라는 여울에게 시선을 돌려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죠?”
여울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뭐, 좋아요. 상태를 보니 매우 경미한 축에 속하니까……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말하십시오.”
“그때 처리하셨던 놈들 덕분에 제가 좀 유명해졌거든요. 그래서 당분간 여기 머물렀으면 해요.”
여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그래요. 시원시원하시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보라는 앉은 자세로 은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여울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쉬운 것을……. 처음에는 그녀를 몰라서, 후에는 그녀를 못 만나서 몸 고생 마음고생을 시켰던 때가 떠오른다.
여울은 주머니에서 미리 구해 뒀던 마취용 주사기를 꺼내었다. 그 모습에 보라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휴…… 모든 사람들이 여울 씨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근데 괜찮습니다. 대상이 통증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제가 가져와도 거의 안 아파요. 그래서 선뜻 바로 치료하기로 한 거죠.”
“네, 알겠습니다.”
여울은 주사기를 넣고는 뒤로 물러나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모습이 매우 경건해 보였다. 딸의 치료가 달려 있으니 자연스레 그녀 앞에서 공손해지는 것이다.
주보라는 은서의 발목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은서? 은서라고 했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 네…….”
은서의 대답과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은서의 발목을 감싸자 포근한 따뜻함이 느껴지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항상 이물감이 있던 발목 안쪽 깊은 곳에서는 목캔디를 먹은 것처럼 청량한 무언가가 빠져나가 주보라에게 옮겨졌다.
보라는 손을 떼고 발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보기보다 많이 아팠겠구나? 이제 걸어 봐.”
단 몇 분 만에 일 년이 넘게 자신을 괴롭히던 그 이물감이 사라졌다. 일어나 똑바로 섰는데도 찌릿한 통증이 오지 않는다.
“지, 지, 진짜로…….”
은서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에게 치료를 받아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둥둥이 바로 옆에 있었어도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발목으로는 한참을 뛰놀아도 될 듯했다.
“진짜, 진짜 괜찮아졌어!!”
은서는 마치 7살짜리 아이처럼 두 발로 방방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은떠, 은떠가 건는다! 튜카해, 은떠!”
처음 봤을 때부터 같이 지내 오는 동안 걷는 모습보다도 자신에게 업혔을 때가 대부분이었던 터라, 둥둥도 감회가 새로웠는지 코를 찡긋한다.
여울은 평소 건조했던 눈빛과는 다른 눈으로 은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주보라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딸 바보가 여기 있었네.”
주보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비틀거렸다. 여울은 다급히 일어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러자 뛰놀며 좋아하던 은서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아, 언니가…… 아픈 거예요?”
기쁨의 눈물이 말라 갈 즈음, 은서의 눈에 다시 물기가 차오른다. 보라는 한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아, 아냐 몇 시간…… 아니, 하루만 지나면 괜찮아져.”
은서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라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방은 두 개에 사람은 네 명, 어서 맞은편 집도 구매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여울이었다.
여울은 주보라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어느 재계의 거물이 그녀를 사서 아픈 몸을 낫게 하고, 그 후에는 그녀의 능력을 이용하여 정재계를 휘두르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로 인해 잔병이 치료되면 확실히 몇 세까지 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최소 150세는 거뜬할 듯하다. 그리되면 거물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생을 사려고 몰려들 것이다.
가방에 들어 있던 마석은 대략 200억대, 그 돈을 금세 내놓고 급히 거래를 하려던 행동이 이해가 된다. 그녀는 그것보다 수백, 수천 배의 가치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었다고 하지만, 결국 은서의 다리를 선뜻 고쳐 준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차고 넘쳐 날 것이다. 평생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사례는 해야 한다.
200억을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곳, 그런 곳이라면 주보라를 찾기 위한 수사망도 광범위하고 치밀할 것이다. 5레벨인 그녀를 제압한 자들이다. 그녀와 가까이 있는 은서도 위험해질 수 있다.
위험 요소를 먼저 찾아가 제거한다.
* * *
여울은 맞은편의 집을 구매하여 둥둥을 그곳에 보냈다. 16억 정도는 자신이 두 달만 사냥해도 벌 수 있는 돈. 그만한 기간도 지났고 이 정도의 소비로는 그들의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다.
주보라에게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조사해 보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 중에 몸이 불편한 회장이 있는 곳은 두 곳. 대구의 운대그룹과 천안의 한성그룹이다. 먼저 이 두 곳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여울은 천안으로 시이를 보내고는 직접 대구를 찾아왔다. 도시 내의 동향을 지켜보며 수상한 행동을 하는 그룹을 찾으려는 것이다. 울릉도가 천안보다는 대구와 가까우니 운대그룹이 더 의심스러운 이유도 있었다.
후우우웅!
높은 지대에 서 있으니 바람이 거세다. 여울이 지금 올라서 있는 곳은 대구에서 가장 높은 48층 아파트 옥상의 난간 위다.
레벨이 오르면서 신체의 전반적인 능력도 오르다 보니 약 7킬로미터 전방의 간판 글씨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고, 은신을 하면 약 11킬로미터 전방에서 움직이는 벌레도 알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이렇게 내려다보니 바뀐 세상이 제대로 실감이 난다.
첫 발부터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 총을 들고 다니는 군인과 경찰들, 1층 혹은 2층까지 두꺼운 철판을 두른 건물들, 그 끝에 둥글게 둘러져 있는 거대한 벽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 그중 가장 악한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치안 문제다.
수많은 경찰들이 순찰을 도는데도 살인과 갈취가 멈추지 않는다. 경찰과 군인마저도 서슴없이 죽이고 갈취한다. 그들 중 절반이 근접 무기를 들고 있는 헌터들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게 되니 그 우월감에 취하여 쉽게 돈을 벌고 싶거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지금도 이 11킬로미터 범위 내에 보이는 범죄만 3건이 넘는다. 이것들을 모두 관여할 수는 없다.
지이잉.
진동이 울린다. 휴대전화를 꺼내어 보니 채굴꾼 이세진의 전화다. 여울은 그 빌딩에서 뛰어내리며 전화를 받았다. 모든 일에 관여할 수는 없지만, 일이 크게 방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관여할 심산이었다. 자신에게도 언젠가 피해를 끼칠 자들이니 말이다.
“왜.”
“아, 형님. 왜 이렇게 연락이 없으십니까. 요즘 사냥 안 나가십니까? 혹시, 설마, 젊고 예쁜 다른 채굴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부담스럽지 않게 붙임성이 좋은 이세진은 언젠가부터 형님이라고 불렀고 여울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바쁘다.”
“이거 봐, 이거 봐. 맞네, 맞아. 이쁩니까? 형수님 생기는 겁니까?”
“나중에 사냥 갈 때 연락하지. 끊는다.”
“앗, 형님, 정말입…….”
여울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눈앞에는 경찰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하고 있는 세 명의 헌터들이 보였다. 거리는 2킬로미터, 여울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때.
콰직!
그들 중 한 명의 머리 위로 누군가가 내려섰다. 검은 가면을 쓰고 있는 그는 흠잡을 데 없는 근육질에, 왼손에는 미스릴로 보이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건틀렛을 차고 있었다.
그의 주먹에 내려찍힌 사내는 머리가 그대로 터져 버렸고, 나머지 두 사내가 주춤하다가 검을 휘둘렀다. 그가 맨손으로 검면을 쳐 내자 검신이 부서졌다. 그의 주먹이 그 파편들을 뚫고 한 사내의 얼굴에 꽂힌다.
퍼석!
주먹이 꽂힌 얼굴은 풍선이 터지듯이 바로 터져 나갔다. 그는 마지막 남은 사내의 검신을 맨손으로 잡더니 종잇장처럼 구부리고는 목을 잡아 비틀었다. 그 넘치는 괴력에 사내의 목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갔다.
훅! 턱!
그는 인기척에 바로 뒤돌아서며 검신의 파편을 던졌다. 그것은 여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잡혔다. 뒤늦게 여울을 발견한 그의 눈빛은 상당히 커졌다.
익숙한 체형, 익숙한 눈동자, 익숙한 한기.
여울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김진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는 얼어붙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죽어 마땅한 자들이다.”
“그렇군.”
진후는 본래 악한 행동을 해도 제거가 아니라 제지를 하고 돌려세우려는 성향이 강한 자였다. 그를 가슴 깊이 따르는 강민철 또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무엇이 그의 성향을 바꾸게 했는지 모르겠다.
원래 자신이 처리하려고 왔던 여울은 별다른 뜻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후는 움찔하더니 이내 벽면을 박차며 건물 위로 사라졌다.
진후는 낮에는 길드원들과 함께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모두가 잠든 밤에는 악한 자들을 찾아다니며 처리하고 있었다.
-대구도시, 현실판 다크나이트 등장?
-냉철한 주먹에 시체가 된 흉악범들, 시민들 ‘환호’
-대구도시, 지난달 대비 범죄율 13퍼센트 감소
-법보다 주먹, 다크나이트는 과연 ‘선’이라고 볼 수 있는가?
무자비한 범죄자들 처리에 많은 시민들은 환호하며 그를 응원하고, 일부는 그의 정의에 대해 논한다. 여울은 그 기사들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케라브에서 탈출한 지 여섯 달이 지났다. 지구에 게이트가 생긴 지는 일 년이 된 것이다. 혼란이 수그러들고 새로운 세계의 법칙이 다시 만들어질 때다.
이제는…… 법보다, 돈보다 주먹이 가까운 시대일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할 일도 그와 같다. 아직 법과 정부, 매스컴이 존재하여 살인을 하고 잡히지 않으면 수배자가 된다.
은서를 수배자의 딸로 만들 수 없으니 위험 인자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암살한다. 이제 주 업무로 돌아간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체 능력과 은신이 존재하니 자신의 암살은 더욱 치밀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