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80
80
한성그룹의 기존 임원진들은 80퍼센트 이상이 사라지고 주가는 폭락했다.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불러서 세웠지만 복구의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이제 외부 활동이 가능해진 주보라는 지연의 추천으로 둥둥과 함께 신한길드에 들어갔다. 한성그룹이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위험 요소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쉽게 넘보지 못할 거대길드에 소속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계속 옆에 있으면 이제부터는 빚이죠. 전 카드 빚도 싫어서 신용카드도 안 만든 사람이거든요.”
옆에 머물러도 된다는 여울의 말에 대한 보라의 대답이다. 여울은 그녀에게, 누르면 비상 연락과 함께 위치 정보가 전송되는 팔찌를 건넸다.
이제는 한성그룹에서 얻은 마석을 쓸 수 있다. 여울은 예전에 봐 뒀던 집을 구매했다. 47억짜리 고급 빌라의 펜트하우스다. 재앙 이후에 리모델링을 한 건물이기에 지하에 벙커가 존재하는데 각 층별로 그곳으로 이어지는 비상 통로가 존재했다.
전체 면적은 57평, 방은 네 개, 천장 높이는 5미터로 한쪽 공간은 복층으로 되어 있고, 전면에 있는 테라스는 잔디와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으며 한쪽에는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다.
멀쩡해진 다리로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은서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저 아빠가 헌터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 온 줄만 아는 은서다.
“은서야, 좋아?”
“응, 좋지! 아빠! 집들이하자.”
“집…… 들이?”
단 한 번도 남을 집에 초대한 적이 없는 여울이다. 은서는 눈을 말똥말똥 뜨며 집에 부를 사람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후.
딩동.
“언니!”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온 사람은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온 한지연이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하얀색 비대칭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유리로 된 물통 하나만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식탁을 보고는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요. 은서야, 언…… 나 좀 도와줄래?”
지연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은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게 막 요리가 진행되던 중, 약속 시간이 30분 남았을 때 벨이 또다시 울렸다.
“이야! 집 좋네~!”
걸걸한 목소리는 요즘 잘나가는 원팀의 서한이다. 주보라의 치료 없이도 완쾌된 그는 벽 밖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친 지 얼마 안 돼서 적절한 치료를 한 덕이다.
“내 인생에 여울 님의 집들이 초대를 받을 줄이야.”
“좋다. 여긴 얼마예요?”
“대장, 우리도 이런 집 사 줘요.”
원팀은 서한을 선두로 현관문에서부터 시끌시끌했다. 그들도 각기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하나는 휴지였고 다른 하나는 포장 음식들이었다. 여울의 성향을 잘 아는 원팀은 먹을 음식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챙겨 온 것이다.
안쪽 주방에서 이미 요리를 하고 있는 지연을 발견한 서한이 말을 이었다.
“아이코, 이거 지연이가 제수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네. 괜히 사 왔네, 이거.”
“아, 그게 아니라 여울 오빠가 음식을 안 할 것 같…….”
“엇, 진짜네…… 뭐지, 뭐지?”
건수는 눈을 흐릿하게 뜨며 지연과 여울을 번갈아 보았다. 입은 놀리고 있지만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낮아진 건수였다.
“와, 여기 테라스도 죽이네~.”
서한은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연이어 감탄을 내질렀다. 담덕은 그의 뒤를 바짝 따라다니며 조용히 입을 쩍쩍 벌려 댔다.
지연만 있어서 어색하던 공기가 원팀이 오면서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딩동.
약속 시간에 맞춰 주보라와 둥둥이 도착했다. 그들은 바로 옆 건물에 살고 있다. 떠받들고 모시는 A랭크 헌터 두 명이 굴러 들어왔으니 신한길드는 계약금에, 지목하는 집까지 구해 준 것이다.
원래 여울이 있는 빌라에 방을 얻으려고 했으나 매물이 없어 바로 옆 건물을 구한 것이다. 대체로 이 동네가 대몬스터용 리모델링이 잘되어 있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둥둥과 같은 층에 사는 보라는 그를 친누나처럼 살뜰히 챙겼다.
주보라는 어깨가 트인 분홍 티셔츠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로 굴곡을 드러냈다. 둥둥도 신경을 썼는지, 하얀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앞머리를 뒤로 넘겼는데 그냥 조폭 같았다.
“아, 안녕하세요.”
“안년아세요.”
“엇, 안녕하세요.”
“아, 그, 그분인가? 치료특성 그분.”
“둥둥도 안녕?”
“아, 이런 미인이 또…….”
서한의 원팀과 주보라는 말로만 듣고 직접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다. 시크하고 시원스러운 성격인 주보라는 의외로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렸다.
“어서 와, 보라야. 둥둥 아저씨도.”
지연이 요리를 멈추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현관에 얼굴을 내밀며 인사했다.
“언니, 언제 왔대?”
보라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마주 인사했다.
여울은 보라가 집에서 머물 때 지연이 찾아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전에도 알고 지냈다던 그녀들은 전문 칼잡이들끼리 초반에 기세를 탐색할 때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케라브에서 봤던 꾀죄죄한 모습이 아닌, 말끔한 얼굴에 몸매가 드러나는 V라인 티셔츠를 입은 주보라를 아래위로 살펴보던 지연은 살짝 미소 지으며 선공을 날렸다.
“이렇게 보니까 어려 보이네요. 스무 살…… 초반?”
“아니에요. 생긴대로죠, 뭐. 27살이에요.”
여울은 둘의 대화를 통하여 그녀들의 나이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지연은 29세, 주보라는 27세로, 그때 자연스럽게 호적 정리가 들어가 서로 언니동생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주보라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원팀이 부담스러운지 그녀는 바로 가방만 내려놓고 주방으로 가서 지연을 도왔다.
원팀이 가져온 족발, 보쌈, 떡볶이에 지연이 만든 닭볶음탕과 파전으로 식탁이 가득 찼다. 그에 담덕이 사 온 맥주가 곁들여져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그 거지 같은 케라브에서는 이 맛을 이제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난 네 얼굴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건수의 말에 담덕이 한 손으로 맥주 캔을 우그러트렸다.
“얼굴 찌그러지고 싶냐.”
“한번 해봐? 힘만 무식하게 센 놈이. 네 도끼가 내 옷깃 스치면 만 원 주마.”
담덕이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건수는 바로 일어나 뒤로 빠졌다.
심각해 보이는 모습에도 다른 원팀은 신경도 쓰지 않고 각자 말을 내뱉었다.
“진후네 대한길드는 진짜 잘나가더만. 곧 상장하게 생겼던데…….”
“아래쪽으로 사냥 갔다가 리안길드 사람들 만났는데 천안에 길드 만들었다고…….”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길드와 헌터에 관한 이야기였다. 건수는 금세 담덕에게 목덜미를 잡혀 원래 자리로 앉혀졌다.
“따로 길드를 만들 게 아니라면 팀이 같이 우리 길드 오셔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세요. 등록만 해 놓아도 활동 비용이 나오고 여러 가지 지원도 좋거든요. 보라랑 둥둥아저씨도 이번에 막 가입했어요.”
지연의 말에 보라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뭐, 길드장 마인드가 괜찮아 보여서.”
대형 길드는 길드 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 기업에 속해 있다고 해도 독자적으로는 무력 집단이니만큼 피가 튀는 전쟁도 간간이 일어난다. 그래서 지연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은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서한과 지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건수가 말했다.
“대장, 우리도 길드나 들어갈까?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엉? 글쎄…… 너희 생각은 어때?”
서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대장 마음대로 해.”
“난 찬성.”
“저도 대장 의견 따를게요.”
의외로 빠른 대답에 서한은 맥주 캔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그래! 그럼 까짓 거 들어가자! 여울! 너도 들어와!”
분위기에 휩쓸려 은서도 소리친다.
“아빠도 들어갔으면 좋겠다!”
여울은 그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며 고민했다. 은서는 그저 이 사람들과 자신이 소속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몰이사냥을 하는 자신에게 수언 외에는 팀이 불필요하고 메리트가 크지도 않다. 가장 힘들어 하는 인간관계를 감수하면서도 들어갈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그의 눈빛을 읽은 서한이 말을 이었다.
“아니면, 같이 한번 따라와 보든가.”
가서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다. 여울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은서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 * *
다음 날.
수원 신한길드 본부, 길드장 지천욱은 자신의 테이블에 눈을 고정시킨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는 턱이 빠질 것 같은 모양 그대로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섯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꼰 여성, 다리를 떨고 있는 사내, 팔짱을 끼고 그 우락부락한 근육을 돋보이게 하는 사내……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길드의 길드장에게 직속으로 가입 신청을 하러 왔음에도 긴장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저 여유로움. 그는 고개를 돌려 이들을 추천한 지연에게 시선을 주었다.
원래 여배우 뺨 때리는 미모였지만 지금은 아주 후광이 번쩍인다.
지옥이라고 소문이 난 케라브의 귀환자들, 그중에서도 A랭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전국에 등록된 귀환자는 약 6천 명, 그중 A랭크는 200명으로 귀환자 중에서도 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인원이다.
자신도 A랭크였다가 귀환자들로 인해 B랭크로 강등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복덩이가 A랭크 귀환자를 뭉텅이로 데리고 온 것이다. 길드장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지, 지연 씨 인맥이…… 어마어마하구나.”
“아닙니다, 길드장님.”
지천욱은 지연이 처음 왔을 때 B랭크라고 해서 반겼지만 그리 기대감이 크지는 않았다. 귀한 랭크지만 길드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랭크인 만큼 인원이 한 명 추가되었다 정도의 느낌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일 처리가 확실하여 신뢰가 쌓이고 조금씩 눈에 잘 보이기 시작했다. 왠지 몇 명 없는 A랭크보다 더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눈여겨보던 중에 갑자기 A랭크 두 명을 데리고 와 자신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다섯 명이나 데리고 온 것이다. 이쯤 되니 그녀가 길드를 집어삼키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마저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가 B랭크 헌터증을 가져온 것도 의심이 된다. 지금까지 처리했던 일들 중에는 B랭크 여성이 해내기 힘든 일들도 분명 존재했었다.
하지만 건설적이지 않은 의심을 오랫동안 안고 있을 어리석은 지천욱이 아니다. 그는 금세 얼굴을 굳히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래요. 우리 길드에 가입 신청을 한 이유가 어떻게 됩니까?”
그의 물음에 서한이 준비한 듯이 바로 대답했다.
“지연이 추천해서.”
“돈도 준다고 하고.”
“들어갈 데도 딱히 없어서…….”
서한이 물꼬를 트고 주르륵 현실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지천욱은 박수를 치며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아하핫, 좋아요, 좋아. 아주 가식 없고 좋네요. 이런 면접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저는 사실 여러분처럼 강한 헌터분들이 우리 길드에 온다고 하면 큰절을 해서라도 붙잡고 싶을 정도로 무조건 환영합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여울에게서 멈춰 섰다. 신청은 하지 않고 둘러보기만 할 사람이 있다더니 그인 듯했다.
“저는 저희 길드에 가입하기 전에 저의 신념을 들려줍니다. 제가 이 길드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이유지요. 만약 저와 뜻이 다르다면 아무리 여러분이라고 해도 같은 식구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서한은 팔짱을 끼고는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들어 보지요. 그 신념.”
지천욱은 그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좋습니다. 마석, 권력, 이익, 모두 좋습니다. 많은 길드들이 그것을 위해서 운영되고 저희 길드 또한 기본적인 운영 목적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가져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전체 인원을 쭉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각성자가 생겼는지, 왜 이 지구에 게이트가 열렸는지, 이 싸움은 언제 끝이 날 것인지…… 저는 이세계의 존재가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한 놈들이 몰려올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다녀와서 알고 있겠지만 케라브라는 곳은 이보다 더 강한 놈들이 훨씬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신한길드는 이익만을 위한 단체가 아닌,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서로 힘을 합치고 미리 대비하기 위하여 같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길드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지천욱은 돌연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을 이었다.
“당장의 이익과 권력에 만족하고 위세를 떠는 것이 아닌, 선택받은 자들로서 약자 보호를 우선으로 하고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앞날을 대비하는 길드원이 되실 생각이 있다면!”
그는 테이블에 카드를 펼치듯이 다섯 장의 서류를 최라락 펼치며 말했다.
“이 서류에 당장 지장을 찍으시길 바랍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한과 담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이, 좋아! 이 길드장!”
“대가리가 제대로 박혔어.”
길드장에게 하는 표현이라기에는 조금 거칠지만 그만의 표현법인 듯했다. 둘을 기점으로 건수와 문솔, 무영도 연이어 서류에 지장을 찍었다.
지천욱은 서한과 악수를 하며 계약을 마무리했다.
“원팀이라고 하셨죠? 시원시원한 팀원들입니다. 가입, 환영합니다.”
“길드장님도 시원했습니다. 하핫.”
서한은 악수를 하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팀원의 생존과 강함만을 최우선으로 두는 서한, 그의 신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선한 열정이 있는 거대 단체의 장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는 이 길드장이 마음에 들었다.
여울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인상 깊은 연설이었다. 자신도 언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게이트가 열릴지 마음 한편으로는 항상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신한그룹은 재계 서열 5위로, 한성이 무너지면서 4위로 올라섰다. 타 대형 길드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자금력이 충분한 곳이다. 게다가 머리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신한길드, 원팀의 길드 생활을 한번 눈여겨볼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