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81
81
길드장의 집무실을 나서니 수십 명의 대원들이 복도에 나와 있었다. 분명 오기 전에는 한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드장 집무실은 대원들 합숙소와 같은 층에 위치하고 있다. 땀 냄새가 훅 풍겨 오고 상의를 탈의한 대원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방금 1층에서 훈련을 마치고 온 듯하다.
“크흠, 흠.”
“올 A랭크라니…….”
“진짜일까? 겉보기에는 약해 보이는데…….”
“헌터가 겉보기로 판단이 되냐.”
그들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를 서성거리는 이유가 들려온다. 그때, 조각 같은 근육을 그대로 드러낸 채 목에 수건만 하나 걸친 사내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대원들! 신입 처음 보나? 훈련 한 번 더 뛸까?!”
“아닙니다!”
“아, 아닙니다!”
그의 말에 그 많던 대원들이 방금 불을 켠 방의 바퀴벌레들처럼 사사삭 각자의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훈련교관으로 보이는 자는 이곳을 힐끔 보았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귀엽네.”
주보라는 조용해진 복도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신한길드 건물을 나온 여울은 그들과 헤어지자마자 바로 이세진에게 연락했다.
“이세진입니다.”
일을 하고 있어 발신자 확인도 하지 않고 받은 듯하다.
“나다.”
“여, 여울 형님! 연락도 잘 안 되더니, 딱 한 달만입니다. 걱정했습니다.”
“걱정?”
“네, 농담입니다. 형님 같은 사람을 누가 걱정합니까, 내일은 해가 뜰까 걱정하는 게 더 건설적이지.”
“일 중이냐?”
“예,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 좀 받았죠, 세라길드라고 중형 길드인데…… 형님 이제 사냥 시작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 일 끝나면 사냥 뛰자.”
“아우 드디어! 기다리십시오. 저 계약 파기하고 오겠습…….”
치직, 치지직……
전화기 너머로 몬스터로 추정되는 괴성이 들리더니 이내 강제 종료되었다.
몬스터의 습격? 이세진은 약삭빠르고 안전을 중요시하는 놈이니 길드 단위의 사냥 시 선두에서 채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급한 일이 생겨서 자신이 직접 종료를 눌렀거나 누군가에 의해 떨어트려서 휴대전화가 박살 났거나, 혹은 게이트의 중간 지점 이상으로 들어가서 끊겼을 것이다.
게이트는 신기하게도 중간 지점 전까지는 통화가 가능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거짓말처럼 전자 기기가 완전히 끊겨 버린다.
여울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멈췄던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은서와 외식을 하는 날이다.
저 멀리, 고층 빌딩 전광판에 특보가 뜨는 것이 보였다.
-금일 9시 45분 경에 열린 C등급 게이트, 2시간 전 세라길드 투입. C랭크 헌터 100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중형 길드로……
여울의 걸음이 다시 멈춰 섰다. 그의 발끝이 반대로 돌아갔다.
“응, 은서야. 아빠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서, 응, 그래 보라 언니랑 같이 먹어.”
여울은 전화를 끊고는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퍼엉!
“꺄앗!”
“어헉?!”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그가 디딘 보도 블럭이 뒤집혔다. 주변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여울의 신형은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 * *
C등급 게이트 안, 세진의 눈앞에는 길이가 3미터가 넘고 너비는 50센티는 될 법한 대검을 휘두르는 거대한 오크가 보였다. 오크의 평균 신장이 2미터인데 놈은 그 종족을 의심할 정도로 거대했다. 족히 3미터는 넘어 보였다.
오늘 열렸는데 왜 게이트 키퍼로 보이는 놈이 나오는 거지? 세진은 눈가를 좁히며 놈의 정보를 확인했다.
-종족: 오크
-이름: 갈락
-레벨: ??
-특이 사항: ??
“물음…… 표?”
단 한 번도 몬스터에게서 물음표가 뜬 적은 없었다. 심지어 수원도시의 벽 한곳을 반쯤 무너트리며 시민들을 공포로 물들였던 6레벨 네임드 오우거에게도 물음표는 보이지 않았었다. 특이한 몬스터인가?
“쿠르하!!”
놈의 휘두름에 C랭크 헌터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전투조장이라는 자는 이미 놈의 대검에 허리가 두 동강 나 버렸다. 남은 전투 대원은 30명 남짓.
세진은 계약이고 뭐고 바로 뒤돌아섰다.
“이런 씨…… 뭐야 이거.”
뒤에는 갑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오크와 트롤들이 보였다. 갈림길에서 숨어 있던 놈들인 듯하다. 아주 가끔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은 함정을 파는 놈들도 있다고 했다.
분명 C등급 게이트로 측정된 곳이다. 예상 부상 인원 0.5명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 싸한 느낌을 믿었어야 했다. 3레벨 길드원들이 일대일로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멈췄어야 했다.
“쿠허어어!!”
거대 오크 갈락이 대검을 휘두르자 한 번에 서너 명이 찢겨 나간다. 길드원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공포와 혼란에 빠져들었다. 비명이 난무하고 붉은 피가 동굴을 가득 채운다.
‘전멸…….’
세진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지옥에 간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양쪽에서 좁혀 오는 몬스터들, 방금 전까지 농담을 주고받던 사람들의 찢기는 사지……. 이런 게 바로 전멸이었다. 전멸 전의 분위기였다.
툭.
세진은 조금이라도 생존 확률이 높아질까 하여 들었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3퍼센트 확률로 일어나는 게이트 전멸에 자신이 포함될 줄은 몰랐다.
얼굴을 부수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대검을 보며 두 무릎을 꿇었다.
‘생존 확률 제로, 포기다.’
후우웅.
금속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목 끝에 닿는다. 그때.
콰아아앙!!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바람의 파동이 몸을 덮쳤다. 그리고 그 지독한 침묵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진! 정신 차려!”
세진은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지척에 다가왔던 거대 오크 갈락이 한 손으로는 대검의 옆면을 받치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있다. 뒷모습이 보이는 검은 옷의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헌터 중에 가장 강한 자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에 숨통이 바짝 조여져 있던 그는 온몸에 힘이 풀리며 눈물이 왈칵 흘러나왔다.
“여, 여울 형님…….”
“빠져!”
그는 고개를 반만 돌린 채 세진에게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다급하다. 그가 나타났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그에게 당한 몬스터들이 바닥에 쓰러져 죽어 가고 있다.
모양새를 보니 여울이 두 검을 양쪽으로 펼치고 거의 일자로 날아온 듯하다. 일검필살인 그인데 숨통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몬스터들을 보면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짐작이 간다.
“네, 넵!”
세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저 바닥까지 떨어진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는 뒤로 빠져나갔다. 끝까지 살아남은 대원들은 세 명, 그들도 뭔가에 홀린 듯이 여울의 말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울은 붉은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는 오크 갈락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기운을 일부러 숨기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기운만으로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
놈은 두려움을 심어 주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기운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 피부에 닿는 그의 기운으로 보아, 결코 여울의 아래가 아니었다.
뿌득.
여울은 두 검을 강하게 쥐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긴장감이다. 놈이 그 거대한 검을 한 손으로 뻗어 자신을 가리켰다. 동시에 여울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쩌정!
갈락의 대검과 여울의 두 검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러고는 여울의 신형이 더욱 빠르게 뒤로 날아간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틀어 중심을 잡고 천장을 박차며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놈의 괴력은 자신을 훨씬 웃돈다. 이곳은 게이트 내에서도 반 이상 깊은 곳, 다크니스를 사용해도 될 것이다. 아니, 사용해야만 한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화르륵.
수개월 만에 디카르와 베아의 검신에 검은화염이 감싸인다. 여울의 힘줄이 불뚝 솟아오른다.
몸이 아래로 꽂히며 검을 곧게 뻗은 모양새는 매가 먹이를 낚아채기 전에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모습을 연상케 했다.
갈락은 여울을 향해 사선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공중에서는 방향을 틀 수 없으니 이번에 반드시 몸을 반으로 쪼개겠다는 기세가 담긴 휘두름이다.
여울은 본인의 검과 놈의 대검이 교차되는 순간, 검 손잡이를 아래로 살짝 내렸다. 놈의 대검 각도가 기울어져 자신을 향했던 검로가 틀어진다. 여울의 몸은 그 대검을 넘어가며 놈을 향해 다시 검이 뻗어 나갔다.
콰직!
그 찰나, 놈이 한 손을 들어 팔뚝으로 검을 막았다. 철갑을 뚫고 들어갔지만 그 본연의 피부가 얼마나 질긴지 반도 들어가지 않은 듯하다. 그의 팔이 밖으로 휘둘러졌다.
후웅!
검과 함께 여울의 몸이 내쳐졌다.
퍼억!
거리가 짧아 몸의 균형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벽에 부딪쳤다. 숨이 턱 막혀 옴과 동시에 정면으로 놈이 대검의 넙적한 부분을 앞세우며 돌진해 오는 것이 보였다. 아예 몸을 짓뭉개서 터트려 버릴 심산인 것이다.
여울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옆으로 몸을 굴렸다.
콰앙!!
그 거대한 몸이 벽에 박히자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듯하다. 놈도 적잖은 충격이 있는지 약간 주춤거리는 시간이 생겼다. 그사이 여울은 베아를 장전시키며 놈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둘의 몸이 양쪽으로 날아갔다. 갈락의 몸이 단단하니 그 반탄력으로 여울마저도 뒤로 밀려나는 것이다.
이제 막혔던 숨도 뚫렸다. 여울은 바로 자세를 다잡고 놈에게 다시 달려갔다. 놈은 한 손으로 옆구리를 쥐고는 비틀거리고 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후웅!
디카르가 놈의 목을 향해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고, 한 손에 쥔 베아는 놈의 심장을 찔러 갔다.
퍼벅!
베아가 바위에 박힌 듯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디카르는 놈의 목을 스쳐 벽에 박혀 있고, 베아는 놈의 가슴에 미세하게 박힌 상태로 한 손에 단단히 잡혀 있다.
갈락은 베아를 뽑아 잡아당기며 강하게 포효했다.
“카디하!!”
여울은 순간 베아를 놓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저 손에 잡히면 무조건 몸이 부서질 것이다. 그는 바로 디카르를 회수하여 놈의 심장을 향해 뻗었다.
푹!
놈이 재빨리 베아를 내던지며 바로 두 손으로 디카르를 잡았지만 이번에는 꽤 깊숙이 들어갔다. 놈의 몸이 순간 경직된 것을 보면 확실하다.
여울은 이번에는 디카르를 놓고 떨어진 베아를 집어 들어 충격파를 장전함과 동시에 같은 곳에 꽂았다.
콰아앙!!
동굴 전체가 진동하며 검붉은 연기가 확 피어올랐다. 여울은 바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자신의 팔을 붙잡는 강력한 괴력에 그곳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검붉은 연기가 가라앉고, 가슴과 입에서 진녹색 피를 토해 내고 있는 갈락의 모습이 보였다. 가슴에 박았던 두 개의 검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놈은 한 손으로 여울의 팔을 잡은 채 전보다 더 불타오르는 붉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진녹색 피가 끈적하게 떨어지고 있는 놈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리그라타…… 부레카…….”
툭.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함께 뼈에 금이 갈 정도로 강력하게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며 그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그 거대한 몸은 꼿꼿이 서 있는 것을 유지한 채 숨을 거둔 것이다. 놈의 입과 심장에서는 검붉은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후우, 후우…….”
놈이 다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술 힘만 남아 있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50층 보스 나가 여왕보다도 더 강력한 상대였다.
지이이잉.
여울은 오크 갈락의 대검을 챙기고, 배를 갈라서 마석을 꺼내는 중이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휴대전화 진동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울려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허공에 뽀얗고 가느다란 손이 나오고 있었다.
쑤욱.
체구가 은서만 한 소녀가 공간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그녀는 여울을 향해 한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