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82
82
검은 원피스를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소녀, 한 손에는 장난감처럼 작은 검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그녀는 케라브에서 봤던 관리자이자, 푸른눈이 케라브의 딸이라고 지칭했던 소녀다. 강제로 케라브에 끌려가 자신도 은서도 그 고생을 했으니 좋은 마음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만만치 않은 상대로 보여 참고 있을 뿐이다.
“뭘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봐? 케라브 덕분에 우월감 좀 느끼지 않았어?”
그녀가 뒷짐을 지고는 산보를 나온 듯이 걸어왔다.
“여긴 어떻게 찾아왔지?”
아무 때나 자신을 찾아올 수 있다면 매우 위험한 존재다. 차라리 지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끝을 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익숙한 다크니스가 느껴지기에 한번 와 봤지. 로디스는 케라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많아서 감각이 공유되거든. 아, 여기까지는 로디스로 취급되는 건 알지?”
소녀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줄을 긋는 시늉을 했다. 게이트의 절반, 몬스터들이 넘어오는 이세계가 로디스라는 이름의 세상인 듯했다.
거대 오크의 시체를 검으로 툭툭 치던 소녀가 말했다.
“그 레벨에 용케도 갈락을 잡았네?”
소녀는 돌연 고개를 홱 돌려 여울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 아저씨, 케라브는 말하지 말랬는데 내가 도저히 답답해서 얘기해 줄게. 아저씨,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레벨업 해야지. 6개월 동안 그대로면 어떡해?”
그녀는 검으로 바닥에 숫자를 그어 대며 말을 이었다.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기억해 둬. 3년, 게이트가 열리고 3년 뒤에 137행성은 멸망했어. 그리고 원래 오늘이 지구에서 첫 게이트가 열린 날이야. 전보다 1년 일찍 앞당겨진 거지. 이제 진짜 시간이 없다는 말이야. 케라브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시간이 더 뒤틀린다고 했으니까 아저씨만 알고 있어.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말해 줬으면 레벨업을 하든지 밤의 왕이 되든지 뭐든 좀 하라고.”
그녀는 마침표를 찍듯이 검을 바닥에 살짝 찍고는 한 손으로 공간을 벌렸다.
“기억해. 케라브는 심심해서 자신을 소멸시키며 온 마나를 다하면서까지 그 훈련소를 만든 게 아니라고.”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여울은 그녀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뭘 기억하고 뭘 노력하라는 건가? 강제로 케라브로 끌고 가 놓고는 귀환자 출신이니 책임이 있다는 듯한 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들은 결코 상한 감정 때문에 흘려들을 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3년, 137행성, 멸망,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엄청난 말들이다. 케라브는, 그녀는 미래를 보고 온 건가?
“형님! 여울 형님~!”
저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길드의 길드원들과 함께 들어오고 있는 세진이 보였다. 채굴꾼 주제에 선두에 서서 자신을 목청이 터져라 불러 대고 있다.
여울은 갈락의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한 손을 들며 대답했다.
“여기 있다.”
* * *
수원도시 번화가의 사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딘가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우와…….”
“뭐야 저건? 무서워.”
“겁나 살벌하게 생겼네.”
그들의 시선 끝에는 횡단보도에 서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 가 있다. 정확히는 그가 어깨에 메고 있는 거대한 검이다.
갈락의 대검은 검은화염을 두른 자신의 검도 쉽게 막아 내는 특수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부딪친 부분은 미세한 흠집이 나 있기는 하지만 베아와 버금가는, 혹은 베아보다 더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여울은 대검을 한 손으로 들어 쭉 뻗어 보았다. 옆에서 같이 파란불을 기다리던 한 사내가 흠칫 놀라며 게걸음으로 거리를 벌렸다.
“음…….”
상당히 무거운 편이다. 이 질량에 이 정도 무게가 나오는 금속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300킬로그램은 쉽게 넘어갈 듯하다.
1년이 앞당겨졌다고 했으니 2년, 그사이에 케라브에서 봤던 대형 몬스터나 보스급 몬스터보다도 더 강한 놈들이 게이트로 넘어온다는 것,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이렇게 길고 무거운 대검이 효과적일 것이다.
다만 워낙 부피가 크니 거추장스럽고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문제인데…….
“음?”
손잡이 끝부분의 생김새가 두 겹으로 겹쳐진 것처럼 보인다. 손잡이 뒤를 눌러 보니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다.
여울은 대검을 세로로 추켜들고 손잡이를 바닥에 내려쳤다.
콰지직!
“어멋!”
“흐어억!”
보도블럭이 쪼개지며 주변 사람들이 까무러치듯이 놀란다. 무게가 있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소리와 함께, 본의 아니게 바닥까지 부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손잡이 뒷부분이 1센티미터가량 눌리며 그 커다란 대검이 녹아내리더니 이내 손잡이만 남았다. 녹는 모습은 마치 다크니스 스텐과도 같았다. 흡수되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성질 같은데 저쪽 세계는 이런 금속이 흔한가 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옆의 사람이나 횡단보도 맞은편 사람들이 파란불인데도 입을 쩌억 벌린 채 건널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울은 손잡이만 남아 버린 대검을 안주머니에 갈무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집에 와서 눌러 보니 웬만한 힘으로는 손잡이 뒷부분의 장치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작정하고 포권을 취하는 자세로 강하게 눌러야만 다시 대검이 튀어나왔고, 5레벨인 은서의 힘으로는 지금처럼 불가능했다.
“이익, 이…….”
들어 올리지도 못하니 한구석에 질질 끌고 가서 벽에 고정시키고 그 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우, 안 되네, 증말. 둥둥이는 가능하려나.”
둥둥은 근력특성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여울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버튼을 눌러 대검을 작게 만들었다.
“은서야, 학교생활은 어때?”
은서는 입을 쭉 내밀고는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글쎄…… 그때 이후로 애들이 좀 안 다가오기는 하는데, 편해, 지낼 만해.”
“그래, 다행이네.”
여울은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은서와 또래로 보이는 그 소녀, 그녀는 어디서 태어났고 대체 무슨 일을 겪으며 자랐을까? 그녀가 말한 멸망의 날은 앞으로 2년. 그때까지만 버티면 게이트가 완전히 끝날 것인가? 모르겠다.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눈앞에 있는 이 천사를 위해, 자신은 그날을 대비할 것이다.
“은서야, 아빠…….”
쿠구우웅!!
천둥과 같은 소리와 함께 집 전체가 흔들렸다. 여울은 벌떡 일어나 은서의 머리를 감싸고 가만히 있었다. 몇 초 후, 밖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있어.”
그는 바로 베란다로 뛰어가 밖을 살폈다. 아래에는 오우거 두 마리가 건물과 사람들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있고, 맞은편 건물에는 지름이 10미터는 될 법한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그곳에서 새하얀 손이 느릿하게 튀어나온다. 마치 네발짐승처럼 바닥을 짚은 그 손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칠흑처럼 검고 긴 생머리를 지닌 머리가 튀어나왔다.
게이트로 급히 다가온 헌터들은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간형 몬스터를 접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때, 그녀의 손이 앞으로 쭈욱 뻗어 나갔다.
“커헉!”
한 헌터의 목이 그 가녀린 손에 끊어질 듯이 강하게 쥐였다. 그녀는 검은 머리로 뒤덮인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눈이 보였다.
“캬하악!”
그녀는 사람이 낼 수 없는 초고음을 내지르며 한 손을 쭉 추켜올렸다. 그러자 헌터의 목이 함께 뽑히며 척추뼈까지 쭈욱 딸려 나왔다. 그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사람들은 경악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는 헌터의 목을 거칠게 내던지고는 두 손을 하늘 위로 천천히 추켜올렸다. 그러자 목이 없는 헌터의 시체가 일어나 검을 뽑아 들고, 게이트 안에서는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 나간 오크와 트롤, 오우거 좀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으아악!”
좀비 몬스터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멈추지 않고 덤벼들며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저것이 마녀의 진정한 힘이다. 전에 20층에서 보았던 마녀와는 전혀 다른 강함이 느껴진다.
여울은 갈락의 대검을 뽑으며 뒤돌아서 은서에게 말했다.
“은서야, 아빠 나갔다 올게.”
* * *
그날, 마녀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게이트가 동시에 열렸다. 수원도시에만 그 거대한 게이트가 세 개나 열려 초비상사태가 되었다.
사냥을 나갔던 대형 길드들은 전체 긴급 소환하기에 바빴고, 중소형 길드들은 정부와 함께 게이트 주변을 철벽으로 두르고 몬스터들을 상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도시의 건물은 죽지 않는 오우거들에게 무너졌고, 사람들의 시체는 다시 일어나 다른 사람들을 공격했다.
“모두…… 모두 죽을 거야…….”
“신이여…….”
사람들은 그 아수라장을 보며 처음 무방비 상태에서 게이트를 맞이했던 때가 떠올렸다.
원팀이 재정비를 하고 막 벽을 넘어서던 중, 휴대전화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뭐야, 문자?”
“뭔 소리가 이렇게 방정맞아?”
“엇, 내 것도 울리네?”
“초비상경보?”
서한은 휴대전화를 꺼내어 확인했다. 수원시에서 보낸 경보 발령과, 길드에서 보낸 메시지가 보인다.
그는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 손을 들고는 입을 열었다.
“게이트 들어가 본 사람.”
“나는 없어.”
“나도 한 번도.”
“맨날 가족만 찾아다녔으니 당연히…….”
그는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이고는 발끝을 돌렸다.
“오케이, 그럼 이번에 들어가자.”
원팀은 서한을 필두로 바로 벽에서 뛰어내려 건물 옥상을 넘어가며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쿠우우웅.
대가리가 터진 오우거가 바닥에 쓰러져 내린다. 그러자 대원들이 빠르게 달려가 오우거의 피를 유리병에 챙겼다. 진후는 뒤돌아서 방패를 짧게 흔들어 진녹색 피를 털어 냈다.
그때, 저 멀리서 두 명의 대원이 달려왔다.
“길드장님! 큰일 났습니다! 수원도시에 B등급 게이트가, 언데드 몬스터들이…….”
진후는 소식을 듣자마자 방패를 어깨에 메고는 다른 대원들에게 말했다.
“가자, 이름을 빛낼 시간이다.”
콰앙!
진후는 한 발을 들어 강하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발을 디딘 곳을 중심으로 반경 50센티미터의 땅거죽이 뒤집히며 그의 신형이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대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 정말 볼 때마다 강해지신단 말이야.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 * *
수원도시는 미스릴 무기를 든 귀환자들을 필두로 간신히 게이트를 닫을 수 있었다. 하루 반나절,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사상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도시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했고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부서진 건물도 당장 통계만 15퍼센트가 넘었다. 사람들은 죽은 자가 움직인다는 귀환자들의 말을 흘려듣고 대비를 하지 않았던 정부를 욕했다.
그렇게 단체 게이트가 열린 지 사흘째.
이제 조금 수습이 되나 싶던 때에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에 지원 요청을 했다.
츠펑성 부근에 A등급 게이트가 생겨서 그 주변의 게이트까지도 닫지 못하여 몬스터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대한길드 등 우수한 길드의 헌터들을 파견해 주시어 이 난관을 함께 헤쳐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요청에는 대한길드의 이름이 콕 지목되어 있었다. 중국에도 존재하지 않는, 전 세계에 세 명만 등재되어 있는 S랭크 헌터 김진후를 겨냥한 요청이었다.
* * *
중국 츠펑성, 수천,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래로 총을 쏘며 돌을 내던지고 있다. 하지만 좀비 몬스터들은 대가리가 터져 나가도 그대로 올라와 곧 성이 함락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성벽 위에서 그 수많은 몬스터들을 내려다보는 한 청년이 보인다. 그는 갑옷이나 특수 제작된 보호구도 아닌, 평범한 셔츠와 면바지만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일반인인 듯했다.
“어이! 방해하지 말고 뒤로 빠져!”
“가라고!”
군인들은 아수라장을 넋 놓고 구경하는 얼빠진 청년을 보고 다그쳤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엇!”
“아니!”
벽 높이는 무려 30미터, 몬스터가 우글거리니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지가 찢겨 나갈지도 모른다. 군인 한 명이 다급히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후우우웅.
방금 전에 떨어졌던 청년의 몸이 지상에서 10미터 위로 붕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그의 등 뒤에는 다섯 개의 검이 부채꼴 모양으로 둥둥 떠 있었고, 계란 크기의 동그란 불꽃은 그의 허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는 마치 연주를 하듯이 양손을 우아하게 펼쳤다. 그러자 다섯 개의 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져 나가며 몬스터들의 몸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숭! 서거걱!
그의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은 모두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당하며 죽여도 죽지 않던 놈들은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졌다. 그의 검은 반응할 새도 없이 빠르고 강력하며 섬세했다.
화르르륵.
그의 몸을 돌던 불꽃이 갑자기 커다랗게 불길을 일으키더니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불꽃이 지나간 길목에 있던 몬스터들은 산 채로 뼈까지 불에 타 버려 형체도 남지 않았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신, 신이다…….”
벽에 있던 군인과 헌터들은 입을 반쯤 벌린 채로 넋을 놓고 그의 신기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