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86
86
“그으, 끄으윽…….”
“아, 아파, 아흑…….”
수원으로 돌아가는 차 안, 적막한 실내에는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의자에 앉아 있는 헌터들은 말없이 앞만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친구, 동료가 눈앞에서 찢겨 나가는 것을 방금 전에 경험한 자들이다.
꾸욱.
손가락 사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지연은 보라의 손을 낚아채어 손을 억지로 폈다.
“눈 감고 귀 막아. 곧 죽을 사람도 없어.”
지연은 보라의 능력이 언젠간 밝혀지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연을 바라보는 보라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다. 지연은 그녀를 안아 주고는 한 손으로 눈을 감겼다. 그녀는 그대로 눈을 감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능력을 갖고 난 이후에는 상처 입은 자들을 보면 마음이 괴롭다. 자신이 치료할 수 있는데 그 대가로 얻는 고통이 두려워 주저하게 되는 개인적인 마음과 도의적인 마음이 부딪치는 것이다.
“으, 으…….”
“괜찮아, 괜찮아…….”
지연은 수원으로 가는 동안 보라를 계속해서 토닥여 줬다.
끼이익!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달리던 장갑차가 8시간 만에 멈춰 섰다. 뒤쪽 트렁크 문이 열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과 의료용 침대가 보였다.
“천천히! 한 분씩 옮깁니다. 자, 셋, 둘, 하나!”
하나둘씩 부상자들이 옮겨 나간다. 일자로 주차되어 있는 9개의 차량 모두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한국의 츠펑성 지원은 실패했다.
수원길드연합군은 970명이 출발하여 750명이 귀환했다. 지원군 총사령관의 빠른 판단으로 그나마 피해가 적은 것이다. 대구연합군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천안도 반 이상이 희생당했다.
하지만 한국의 유일한 S랭크 진후가 복귀하지 않았다. 대한길드 길드원들은 그가 다른 헌터들의 퇴각을 끝까지 돕고 어딘가에 피해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충격은 컸다. 한국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진후의 실종으로 인해 중국에 지원을 결정한 수원시장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더욱 커졌다.
수백 명의 헌터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신한길드를 이끌고 지원을 나갔던 부길드장 김이수 역시 후퇴할 때 가장 말미에 있다가 부상을 당하여 입원을 하였다.
입원실에 있는 TV에서 츠펑성 관련 뉴스 속보가 떴다. 이수는 고개를 돌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츠펑성 소식입니다. 초원을 가득 채운 몬스터 군단의 공격이 성공적으로 저지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원을 나온 한국 헌터들의 지원으로…….
이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번쩍 떴다. 화면에는 몬스터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는 츠펑성 외곽을 보여 주고 있었다. 곳곳에 원형으로 포탄이 떨어진 것만 같은 모양새가 눈에 띈다. 그 흔적은 수십, 수백 군데나 보였다.
이수는 직접 저 흔적을 본 적이 있다. 그 가운데에 홀연히 서 있던 거대한 대검의 헌터가 떠올랐다.
‘그, 그다!’
* * *
퍼석!
바닥에 눕혀져 있는 오우거의 머리통이 깨져 나간다. 여울은 놈의 몸에서 발을 떼고는 검지로 한쪽을 가리켰다.
“남은 몬스터들이 저기로 갔지?”
수언은 그 어두컴컴한 숲속을 바라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네, 아직 마아니 남았어요.”
“음…… 가자.”
여울과 수언이 후퇴하는 좀비 몬스터 군단을 따라가며 처리한 지 사흘이 지났다.
츠펑성 앞에서 놈들을 사냥할 때, 성 아래에는 여울과 수언, 진후만이 보였다. 놈들은 반쯤 처리되었을 때 츠펑성에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진후는 복귀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여울은 놈들의 뒤를 쫓았다.
까악! 까악!
칙칙하고 더운 습기가 가득한 숲, 까마귀가 유독 많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여울은 이 냄새를 잘 알고 있다.
‘시체 썩는 냄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검은 몬스터 무리가 보인다. 나무 그늘에 가려져 검게 보이는 것이다.
“그르륵, 그르륵…….”
“크흐…… 크흐…….”
몬스터 무리에 섞여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그 수가 그리 적지 않다. 마녀에 의해 되살아난 좀비들이다.
그 많은 좀비 몬스터들의 시선이 커다란 바위 위에 있는 마녀에게 향해 있다. 나무들 때문에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지만 놈들의 수가 가히 5천은 넘어 보였다.
1, 2레벨의 오크나 트롤도 아니고, 평균 레벨이 3은 되어 보이는 오크와 트롤, 오우거에 사람까지……. 이렇게 많은 수를 한 명의 마녀가 조종하는 것은 처음 본다.
으드득! 으드득!
바위 위에는 마녀 말고도 한 여인이 올라서 있는데 무표정으로 한쪽 팔을 내밀고 있고, 그것을 마녀가 갈비 뜯어먹듯이 살점을 먹고 있었다.
수언은 그 모습에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말했다.
“저, 저거 빨리 죽여요!”
그때, 수언의 목소리를 듣고 마녀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도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기괴한 모습은 여울의 등골도 쭈뼛 서게 만들었다.
“키헤엑!!”
입가에 붉은 피를 잔뜩 묻힌 마녀가 검지로 여울과 수언을 가리키며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그 많은 몬스터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로 달려들었다.
탁!
여울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외쳤다.
“저 마녀 먼저!”
“옙!”
으득! 우두둑! 빠각!
여울의 발에 밟힌 몬스터들의 목이 홱 꺾인다. 정면에 오우거가 휘두르는 통나무가 날아온다. 그는 두 개의 검을 교차시켜 그것을 베어 내고는 그 속도 그대로 달려갔다. 수언은 5미터 상공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온다. 이런 다수를 상대로 첫 일격은 어떻게 시작하는지 이제 숙달이 된 것이다.
“캬흐!”
고개를 쳐들어 여울을 바라보며 두 손을 활짝 펼치고 있는 마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서슴없이 베아를 아래로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앙!!
흙먼지와 함께 하얀 파동이 둥그렇게 퍼져 나갔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나무와 몬스터들이 순차적으로 터져 나간다.
스윽!
뿌연 흙먼지를 뚫고 검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그것과의 거리는 10센티미터 안쪽, 여울은 허리를 뒤로 확 젖히며 검을 위쪽으로 휘둘렀다.
카앙!
마치 무쇠를 두드린 것 같은 소리와 감각이 손끝을 울린다. 흙먼지가 걷히며 옷이 너덜너덜해진 마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에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자랑하는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가 뻗은 손을 추켜올려 아래로 내리찍는다. 그때 때마침 도착한 수언이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다.
콰앙!!
크릴의 뿔에 깃들어 있는 반탄력으로 인해 수언과 마녀의 몸이 가공할 속도로 반대로 튕겨 나갔다.
주변으로 금세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놈들에게 당할 수언이 아니다. 여울은 바로 바위를 박차고 뒤로 날아가는 마녀에게 달려들며 안주머니에서 대검을 꺼내어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앙!
거대한 대검이 마녀의 온몸을 덮치며 바닥에 그대로 찍혔다. 몸이 그만큼 단단하면 무게로 짓눌러 버린다.
“케흑!”
마녀가 몸을 들썩이며 검은 피를 내뱉는다. 여울은 다시 대검을 높이 추켜올렸다가 강하게 내리쳤다.
콰직!!
검 끝에 마녀의 얼굴이 뭉개지고 검날은 몸통을 통과하여 지면에 닿았다. 정확하게 양등분이 된 마녀의 손이 꿈틀거린다.
‘아직 살아 있나?’
여울은 그녀의 심장을 꿰기 위해 오른손을 뻗어 디카르를 소환하였다. 그때 눈앞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투둑.
그 순간 디카르를 형성시키던 손을 그대로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3센티미터 눈앞에 팔뚝을 뚫고 나온 네 개의 검은 손톱이 보인다. 동체시력으로도 잡아낼 수 없는 가공할 속도였다.
다크니스 스텐으로 감싸이지 않았다면 팔뚝을 관통하고 자신의 머리에 꽂혔을 것이다. 오른팔의 감각이 점점 무뎌진다.
마비독? 독이라면 내성이 있는데, 둘 중 하나다. 8레벨을 초과하는 마비독이든가, 독으로 판정되지 않는 다른 마비인 것이다.
파박! 팍!
네 개의 검이 마녀의 심장과 팔, 손바닥에 꽂힌다. 수언은 다급히 날아오며 외쳤다.
“아, 아저씨!!”
팔뚝을 내려다보니 네 개의 손톱이 꽂혀 있다. 미사일이 발사하듯이 손톱이 손에서 뽑혀 나온 것이다.
마녀는 이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주변 몬스터들이 우르르 쓰러져 내리는 것을 보아 그녀가 죽은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언데드에다가 마지막에 기습까지 했던 몬스터, 찝찝함을 남길 순 없다.
“수언아, 100미터.”
“아, 넵!”
수언이 바로 멀리 날아간다. 여울은 대검을 들어 올려 넙적한 검면을 바닥에 내리쳤다.
콰직! 콰직! 쾅쾅콰앙!! 콰아아아앙!
마녀의 시체를 아예 쥐포로 만들어 놓고는 마지막에 베아의 충격파로 마무리를 했다. 이제 검은 피만 바닥에 조금 남아 있을 뿐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낯선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지르르 통과했다.
“음?”
“엇, 어라?”
수언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울을 쳐다봤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 아니, 아주 예전에 느꼈던 감각이다.
“아저씨 저…… 레벨…… 업 한 것 같아요?”
매우 놀란 눈치다. 그는 7레벨 완성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에 케라브를 나오기 전에 소녀가 레벨 완성이 마지막은 아니라는 힌트를 주었으니 예상하고는 있었다.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 더 열심히 몬스터들을 잡았을 수언을 생각하면 조금 더 레벨업이 느려진 듯했다.
레벨업, 이것은 케라브에 가서 막 레벨이 생성되었을 때 느꼈던 감각이다. 케라브 레벨업을 외쳐서 레벨 진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바로 레벨업이 되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시스템 음성이 없는 듯하다.
여울은 왼손 주먹을 꽉 쥐었다가 바닥에 내리쳤다.
콰아앙!
치이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수증기가 발생하며 힘을 주었던 부위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1레벨 때처럼 한 부분 한 부분을 직접 힘을 주어 레벨 동기화를 시켜 줘야 하는 것이다.
이제야 점점 케라브의 시스템이, 케라브 레벨업이라고 외쳤던 시동어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케라브’라는 관리자가 조금 더 안전하고 성공적인 레벨업을 시스템으로 돕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을 부위별로 동기화시키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자칫 잘못하면 팔다리가 터져 나가 불구가 될 수도 있다.
주변에는 아직 좀비 몬스터들이 대략 천 마리는 남아 있다. 그 마녀에게 검은심장을 부여받은 놈들이다. 그들은 마녀가 죽어도 같이 죽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만큼 마녀가 그들을 만드는 것이 힘이 드는지 그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울은 마비를 일으키는 마녀의 손톱을 칼론의 주머니에 챙기고는 수언을 보며 말했다.
“일단 여길 벗어나자. 날 띄워 줘.”
“옙!”
수언은 여울의 몸을 띄우며 그곳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수언과는 단지 몇 개월 만에 만났는데도, 사냥을 할 때 죽이 잘 맞는다. 틱 장애 때문에 이미지는 어벙해도 순발력과 판단력, 전투 감각이 뛰어난 수언이다.
* * *
여울은 수언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수언은 바로 엄마를 찾아야 한다며 길을 떠나려고 했다. 이제야 알았지만 수언의 집은 제주도라고 한다.
“하루라도 제대로 쉬고 가야지. 따라와라.”
여울은 억지로 수언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6개월 동안 편하게 씻지도, 먹지도 못한 수언이다. 일단 휴대전화와 헌터증을 만들어 경비를 그곳에 입금시켜 줄 생각이다.
“아빠아!!”
집 앞에는 이미 연락을 받고 나와 있는 은서와 둥둥, 보라가 보였다. 은서가 100미터 6초 정도의 기록이 나올 속도로 달려와 품에 안겼다.
같이 갔던 헌터들은 돌아왔거나 죽었는데 자신의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니 보라가 계속 설명을 해 주고 타일러도 많이 걱정이 됐던 것이다.
톡, 톡.
여울은 미안한 마음에 아무 말 없이 은서의 등을 토닥였다. 은서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자연스레 옆에 있는 수언을 보게 되었는데 시선이 위험하다. 자신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은서에게 시선이 꽂혀 있다.
그런데 이놈, 부끄러움도 탄다. 괜히 데리고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