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87
87
여울의 집 앞, 은서는 아직도 여울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제 중2가 되어 키도 160이 다 되어 가는데 매미처럼 딱 붙어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힐끔힐끔 쳐다본다.
한참 뒤에야 여울의 품에서 내려선 은서는 그와 같이 온 수언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이 오빠는…… 아, 그때 그 케라브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수언은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슬그머니 돌아가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아, 안…… 샛키!! 흡, 아…… 미안, 안녕…….”
아이돌처럼 새하얗던 수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긴장을 하면 틱 장애가 심해지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너무 저주스러웠다.
은서는 살짝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흔들었다.
“안녕, 수…… 언오빠, 맞나? 아빠한테 들었어.”
“어, 어…… 나도.”
수언은 은서의 얼굴을 끝까지 쳐다보지 못하고 그 주변만 배회했다.
여울은 그들을 지나쳐 둥둥에게 다가가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보라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보라가 하루에 한 번씩 은서의 집에 들러 반찬도 주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고 한다.
“들었다. 고맙군.”
“뭘요. 저도 은서가 좋아서 놀러 오는 건데요.”
“더도 은떠한테 놀러 갔썼슴니다!”
“잘했다. 음…… 일단 올라가지.”
그의 말은 같이 집으로 들어가자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의외의 말이기에 잘못 들었나 싶어 멈칫했던 보라는 앞장서서 들어가는 여울을 보고는 금세 따라 들어갔다.
모두 올라온 후, 수언을 욕실로 들여보내 씻게 한 뒤 여울은 주머니에서 검고 길쭉한 것을 두 개 꺼내어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맛조개를 세로로 자른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길이가 30센티미터는 되었다.
“은서야, 이거 관찰 좀 해 볼래?”
“으엑, 이게 뭐야? 징그러워.”
은서는 기겁하며 살짝 뒤로 몸을 물렸다. 보라는 처음 보는 물건에 몸을 가까이 하며 관심을 두었다. 그녀 특유의 청량한 향이 느껴진다.
은서는 찌푸려졌던 얼굴을 조금 펴며 한 손을 뻗어 그것에 검지를 가져다대었다.
-이름: 리세의 손톱
-특이 사항: 환부를 순간 마비시킨다.
순간 마비.
여울은 팔뚝에 꽂힌 후에 오른팔 전체를 완전히 못 쓰게 되었으며 그 시간은 약 15분 정도였다. 여울은 그 정보를 알려 주며 보라에게 리세의 손톱을 내밀었다.
“고통을 덜어 줄 거다.”
“이, 이걸 나에게…… 주는 거예요?”
여울에게 선물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보라의 눈동자는 감동의 물결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그 전장에서 그 순간 자신을 생각해 줬다는 것이 더욱 가슴을 울렸다.
보라는 묵직하게 끄덕이는 여울을 대답에 리세의 손톱을 받아 들었다. 그것을 소중히 품에 안고는 다시금 여울을 바라보았다.
“여울 오빠…… 진짜 감동이에요! 오빠 최고!!”
보라는 여울에게 한 손을 쭉 뻗어 엄지를 추켜올렸다. 이럴 때는 참 평소 보였던 성격과는 다르게 발랄해 보이는 보라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은서의 한쪽 눈썹이 올라간다. 오묘한 표정이다.
보라에게 이것은 마비 아이템이 아니라 용기였다.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것을 조금 더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
보라와 둥둥을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해진 수언이 욕실에서 나왔다. 몸은 왜소하지만 키가 비슷하여 여울의 옷도 잘 맞았다.
원래 여자애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놈인데 씻고 막 나오니 얼굴에 광이 나는 듯하다. 그 증거로 은서의 시선이 놈에게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던 수언은 그런 은서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그대로 얼어 버렸다. 둘의 시선이 부딪친 채로.
턱!
여울은 바로 일어나 수언의 뒷목을 잡고는 바닥에 앉혔다.
“은서야, 수언이 관찰 좀 해 줄래?”
“으, 응? 응응.”
당황한 듯이 큰 눈을 빠르게 깜빡이던 은서가 고개를 서너 번이나 끄덕였다. 수언이 부끄러운 듯이 두 손을 천천히 내민다. 은서가 머뭇거리다가 두 손을 뻗는다.
턱, 턱.
그때, 돌연 여울이 나서서 수언의 오른팔을 쭉 당기더니 은서의 손을 그의 손목에 올려놓았다. 관찰은 굳이 손을 잡지 않아도 가능하다.
은서는 민망했는지 허공 어딘가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수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으, 응.”
-레벨: 8(MAX)
-경험치: 0.3퍼센트
-특성: 염력
“허억…… 이 오빠 레벨이 8이라니…….”
“지, 진짜로 레벨이…….”
“올랐군.”
이로써 확실해졌다. 레벨 완성이 한계는 아니라는 것. 하지만 지금까지의 케라브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분명 무언가를 의미한다. 케라브가 아니라면 시스템 음성도 없으니 레벨 완성이라는 말도 몰랐을 것이다.
레벨 완성…… 그저 레벨업만 더 힘든 것인가? 아니, 분명 뭔가가 있다. 케라브의 그 소녀는 레벨 완성 이후의 레벨업을 ‘한계를 뛰어넘는다’라고 표현했다. 한계를 뛰어넘는 힘은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여울은 수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수언, 레벨이 내려가지 않게 조심해라.”
“레, 레벨 다운이요?”
“그래.”
“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알겠어요.”
그날, 수언은 여울의 방에서 잠을 잤다. 하루라도 제대로 숙면을 취하게 하기 위하여 여울은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수언의 헌터증을 만들기 위해 헌터등록소를 찾아왔다.
방금 각성을 한 것인지, 아니면 레벨이 올라가 재등록을 하는 것인지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테스트 신청을 하려는데 신청을 받는 여직원이 여울을 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엇, 혹시 A랭크 헌터님 아니세요?”
여울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수언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재평가하실 건가요? 아니면 이분 신청인가요?”
“이 아이 테스트 신청입니다.”
“그렇군요. 진태 팀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서요. 예약 신청자로 올려놓을게요.”
예약 신청이면 빨리 할 수 있는 건가? 아무튼 이진태 그 사람은 자신이 해 준 것도 없는데 덕은 자주 본다. 그렇다고 뭔가 부탁을 하는 자도 아니다.
“예.”
여울은 수언과 함께 대기석에 앉았다. 수언은 긴장이 되는지 다리를 떨며 두 손으로 무릅을 몇 번이나 쓸었다.
“이, 이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냥 대충 해라.”
그때, 비각성자로 판정된 이번 신청자의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수언의 이름이 불렸다.
“다음 예약 신청자분, 이수언 님, 들어가세요.”
그 여직원은 일부러 예약이라는 말을 더 크게 말했다. 원래 다음 차례였던 사내가 살짝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 앉으며 수언을 노려보았다. 다른 대기자들도 이제 막 왔던 수언을 아니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언은 그런 시선은 느껴지지도 않는지 그저 두 손을 털어 대며 하얀색 박스에 들어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대기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뭐야, 저 사람은…….”
“예약? 그런 것도 있었나.”
“고위급 공무원이나 헌터는 미리 예약할 수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 말과 함께 이번에는 여울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수언과는 달리 ‘혹시?’ 하는 호기심과 신기함이 담긴 눈빛이다.
그때 첫 번째 하얀색 박스에서 점수판이 떴다.
-띠링
-100
100점은 만점을 의미한다. 그 꿈의 숫자가 뜨자 순간 장내가 얼어붙었다. 뒤늦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대기자들이 고개를 돌려 점수를 확인하고는 똑같이 얼어붙는다.
“뭐, 뭐…….”
-띠링
-100
누군가가 입을 떼려는 순간 다음 테스트의 점수가 떴다. 모든 대기자들의 입이 찢어질 듯이 벌어지며 직원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콰아앙!!
굉음과 함께 세 번째 박스 뒤쪽이 터져 나갔다. 세 번째 테스트는 펀치머신으로 기억한다.
-띠링
-ERROR
에러가 떴지만 누구도 그 결과를 의심치 않았다. 부서진 기계가 내뿜는 뿌연 연기 사이로 수언이 손부채질을 하며 나온다. 사람들은 그를 마치 산신령이라도 나오는 듯이 우러러보고 있다.
여직원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18세 이수언 씨…….”
그녀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S랭크.”
* * *
진후는 수원길드연합군이 귀환한 지 이틀 만에 수원으로 돌아왔다. 상처 하나 없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역시 S랭크라며 그를 찬양했다. 대한길드는 놀라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그가 홀로 벽 밖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하여 쫓아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 때 진후의 대답도 오해를 사기 쉬웠다.
“그 많은 몬스터들을 혼자 상대하신 겁니까?”
“벽 위에 중국 헌터들의 지원도 있었습니다.”
진후는 여울의 성향을 생각하여 일부러 그의 이야기는 뺀 것이다. 그도 적지 않은 몬스터들을 처리하여 군단을 철수시키는 데 일조했으니 오해랄 것도 없었다.
끊이지 않는 인터뷰를 받아 주는 중에 진후의 눈동자가 한곳에 멈추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한 중년인이 있었다. 빼빼 마른 몸은 볼품없지만 진후에게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자다.
터벅, 터벅.
진후가 인터뷰도 받지 않고 한곳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자 자연스레 다른 기자들도 그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절도 있게 한 번 숙였다.
“늦었습니다, 길드장님.”
“왔군요, 백일권 님.”
진후의 입꼬리가 살며시 말려 올라갔다. 조금은 마음에 안정이 될 것 같다.
진후 이후 또 한 명의 S랭크 출현에 헌터등록소는 발칵 뒤집혔다. S랭크는 비디오 판독, 전문가 판독 및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후에나 헌터증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임시로 A랭크 헌터증을 받고는 그곳을 나섰다.
여울은 수언의 휴대전화를 구입하고는 헌터증과 연결되어 있는 계좌로 5억을 입금시켰다. 그리고 서한에게 들은 지엠이라는 사이트도 알려 주었다. 지금 검색해 봤을 때 수언의 이야기는 없었다.
수언의 집은 제주도지만 지금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 편은 물론, 비행기 운행 자체가 아예 없다. 유일한 에너지 자원인 마력엔진 비행기가 개발 중이지만 아직 상용화는 되지 않았다.
그러니 직접 걸어서 해남까지 갔다가 배가 있으면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수언은 검을 두 개만 뽑아도 무한으로 날아다닐 수 있으니 배가 없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여울은 수언을 남쪽 벽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주머니에는 아직도 라브가 있다고 하니 먹을 것은 문제없을 듯하다.
“일 생기면 이 번호로 바로 전화하고.”
“예.”
“어머니 찾아서 수원 오면 날 찾아오고.”
“알겠어요, 아저씨.”
수언은 걸음을 옮기며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도 잘 지내세요. 연락할게요, 여울 아저씨!!”
여울은 그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수언은 그 뒤로도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가 몸을 띄우고는 바람처럼 날아갔다.
터벅터벅.
수언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다가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남쪽은 가장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다. 특히 벽 근처는 더욱 사람이 적어 지금 주변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장대비가 내리는 오후, 아무도 없는 무너진 도시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찌릿!
낯익은 감각이 물비린내를 타고 피부를 스친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근육이 수축된다. 전에 한진과 수린, 라타를 만나기 전에 느꼈던 그 감각이다. 여울은 걸음을 멈춰 서고 초감각을 펼쳤다.
저벅저벅.
저 멀리서 검은색 가죽 옷에, 가죽 후드를 깊이 뒤집어써 얼굴을 식별할 수 없는 자가 걸어오고 있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색 창이 들려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가까워질수록 살갗을 찌르는 살기가 점점 전신을 뒤덮는다. 10미터 거리에서 멈춘 그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크로우…… 당신일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