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9
9
09. 10층
여울은 옆으로 몸을 한 바퀴 구르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거대했다.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거대한 괴물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회색 피부에 강철 같은 근육은 두려움을 자아냈다.
주변에는 사람으로 짐작되는 시체들이 찢겨져 있었다.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속도도 빨랐다. 괴물의 어깨가 뒤로 젖혀지자, 여울은 몸을 낮추며 안으로 들어가 괴물의 다리를 베었다.
“크허어어어어!”
화가 났는지 놈이 거세게 포효했다. 다리를 베는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피부의 단단함이 마치 돌과도 같다. 칼날 이가 나갈까 염려될 정도다.
뒤돌아서 보니 놈의 피부가 살짝 벌어졌다. 공격이 통하기는 한다. 여울은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후욱, 후욱.”
민첩하기까지 하여 유효타를 주기가 힘들었다. 이러다가 자신이 먼저 지쳐서 쓰러지게 생겼다.
간신히 팔다리를 몇 번 베었지만 긁힌 상처 정도.
‘음?’
지금 보니 처음 공격했던 다리가 멀쩡해졌다.
‘회복력?’
그다음으로 공격했던 어깨도 보았다. 보는 앞에서 상처가 아물고 있다. 여울은 깨달았다. 지금 상태로는 절대 못 잡을 놈이라는 사실을.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후웅.
그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놈의 주먹이 날아왔다. 여울은 몸을 바짝 엎드려 피했다. 이어서 반대편에서도 날아왔다.
재빨리 두 걸음 뒤로 물러서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그때, 놈의 주먹이 펴졌다. 놈의 손바닥이 여울의 몸을 강타했다.
퍼억!
여울의 몸이 화살처럼 날아가 벽에 세게 부딪혔다.
“커허억!”
몸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니 입으로 토해져 나왔다.
검붉은 피. 내장이 흔들린 듯했다.
시야가 흐릿하고 머리도 무거웠다.
하지만, 가야 한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산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아니, 계단은 아니지만, 저 멀리 하얀 마법진이 보였다. 처음 자신이 나타났던 곳과는 정반대 쪽.
그 근처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들이 많이 있었다. 다들 도망치다가 죽은 것이다.
앞뒤 잴 시간은 없다. 여울은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채찍질을 하며 곧장 달렸다.
정면의 놈이 박수를 치듯이 두 손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압사시킬 심산이리라.
더욱 가까워졌을 때, 몸을 낮추며 더욱 다리에 힘을 주었다. 여울의 몸이 그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다리 사이로 지나갔다.
놈은 금세 뒤돌아 쫓아왔다.
다리가 기니 자신의 속도를 금방 따라잡을 것만 같다. 놈이 한 손을 쭈욱 뻗었다.
저것에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마법진은 코앞, 커다랗고 우악스러운 손이 여울의 옷자락에 닿았다.
그 순간, 흰 무리가 여울을 감쌌다.
후우웅
여울의 몸이 사라지며 괴물은 헛손질을 하고 말았다.
“크허어어어엉!”
분노의 포효가 텅 빈 동굴을 무섭게 흔들었다.
* * *
푸욱!
한 여인이 트롤의 등 뒤에 매달려 두 개의 검을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두 발로 등을 차내며 검을 뽑자 트롤의 등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트롤은 비틀대다가 얼마 못 가 쓰러졌다.
“지연아, 나이스!”
“마무리는 역시 지연이야.”
사내들이 한지연을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지연은 얼굴에 묻은 진녹색 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라브라는 이 빌어먹을 던전에 갇힌 지 이제 세 달, 지연은 한 무리에서 밥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한지연은 문득 이 정체불명의 동굴에 떨어졌을 때를 떠올렸다.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은 눈을 하고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때, 오크가 나타났다. 놈들은 다짜고짜 사람들을 공격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산 채로 찢겼고, 사람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그때 도끼를 든 무리가 나타나 오크를 잡아 주었다. 사람들을 이끄는 선한 인상의 사내는 김근우, 그의 뒤를 따르는 근육질의 사내는 이도원이었다.
김근우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친절히 대했다. 전에 총이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한다.
근육질의 이도원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느 날, 웬일로 둘이 같이 라브를 구하러 나갔는데 김근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부터 이도원은 대놓고 자신에게 치근덕댔다. 다른 사내가 그의 행실을 보고 뭐라고 하자 바로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그 후로 무리는 이도원 독재로 돌아갔다.
무리는 어느새 30명이 넘어갔다. 오크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에게서 살기 위해 사람들은 이도원 무리에게 붙었고, 여자들은 하루에 한 번씩 이도원에게 가야 했다.
그들은 생존의 대가라고 여겼다.
도망쳤다가는 오크에게 죽을 것이 당연하니까, 한지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도원은 자신의 뜻에 반하면 그 자리에서 도끼로 쳐 죽였다.
공포의 나날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짐승만도 못한 삶이었다. 지연은 마음을 굳게 먹고 도망쳤다.
그때, 그녀가 머물던 곳은 2층,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동굴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2층에서 도망쳤다가, 다시 살기 위해 2층을 찾아 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큰 위험까지 무릅쓰는 남자와 만났다.
그는 이도원과는 달리 자신의 몸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후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독기를 품고 사냥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2레벨까지 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무리에서 파티 사냥을 할 때 당당히 메인 공격수로서 활약하고 있는 그녀였다.
트롤은 2레벨 4명 이상이 모여야 안정적으로 상대가 가능했다. 최소 10명은 되어야 6층 위로 파티 사냥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지연은 7층에서 10명의 파티원과 함께 사냥 중이었다.
지연은 진녹색 피가 잔뜩 묻은 검의 손잡이를 꽈악 쥐며 생각했다.
‘이도원…… 만나면 꼭 죽여 버리겠어.’
툭, 투둑.
지연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절뚝거리는 인영이 보인다. 조금 더 가까워지니 얼굴 식별이 가능해졌다.
지연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그 사람이다!’
지연은 바로 그에게 달려갔다.
“엇, 지연 씨!”
갑작스런 행동에 한 사내가 소리쳤지만 그녀는 무시하고 달려갔다.
턱.
지연이 앞에 서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전과는 다르게 눈이 살짝 감겨 있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아…….”
지연은 바로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둘러멨다. 그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어깨를 내주었다.
“지연 씨! 혼자 그렇게 갑자기 뛰어가면 어떡해! 위험하게.”
“죄송해요. 급해서 그만.”
“됐고, 이 사람은 누구…… 아는 사람이에요?”
“네, 저…….”
지연은 말하기 전에 옆으로 고개를 돌려 여울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저번에 1층에서 저를 구해 줬던 분이에요.”
“그래요? 어떡…… 하려고요?”
알면서도 물어보는 사내다. 지연은 눈에 힘을 주며 다시 말했다.
“이대로 둘 순 없어요. 우리 휴식처로 데리고 가요.”
사내는 살짝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지연 씨, 우리가 먹을 라브도 부족해서 이렇게 7층까지 올라온 거 알잖…….”
그때, 지연은 사내의 말을 끊었다.
“제 은인이에요. 상처가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꼭 부탁드려요.”
사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 사람들한테 물어보죠.”
“고맙습니다. 가시죠.”
사내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지연은 여울을 부축하며 걸음을 옮겼다. 여울은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따라 걸었다.
* * *
5층의 굴로 내려가자 두 명의 사내가 창대를 내려 출입을 막았다.
지연의 부축을 받으며 눈도 뜨지 못하고 있는 여울을 경계하는 것이다. 지연과 같은 파티의 한 사내가 앞으로 나가 말했다.
“전에 지연 씨 목숨 구해 줬던 사람이래, 상처만 치료하고 나갈 거야.”
“흠……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을 계속 받아들이면…….”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지연이 끼어들었다.
“제 몫의 라브를 나눌게요. 빨리 그것 좀 치워 주세요.”
창을 든 사내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창을 치웠다. 이 굴에서 지연의 입지는 꽤 단단했다. 2레벨이 스무 명을 넘지 않는 것이 한몫했다.
굴에 있던 사람들은 지연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는 여울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2레벨이 많지 않아 라브도 많이 부족한 상황에다가 지연에게 호감을 가진 사내들이 많으니 자연스레 느껴지는 불편한 시선들이었다.
지연은 그들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구석에 데리고 가서 여울을 눕혔다. 그의 몸 이곳저곳에 라브즙을 바르는 중에 그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왜 이러는…… 거지?”
지연은 기절한 줄 알았던 여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아, 그야 당연히…… 제 목숨을 구해 주시기도 했고요.”
생략됐지만 당연히 위기에 처한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진심일까?’
여울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티 없이 맑은 눈동자, 저절로 은서가 떠오르며 가슴이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여울은 눈을 완전히 감았다.
지금은 휴식을 취할 때였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여울은 의식을 저 멀리 보냈다.
* * *
턱.
“아얏.”
자신의 손에 손목이 잡혀 있다. 희고 가는 손, 눈을 떠보니 한지연이 보인다.
그녀의 손에는 라브가 쥐어져 있었다. 여울은 손목을 놓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얼마나 지났습니까?”
지연은 손목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아…… 한 반나절쯤 지난 것 같네요. 괜찮으세요?”
여울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녀의 말에 몸을 살폈다. 잠들기 전에 자신의 몸 상태는 외상보다 내상이 컸다.
어지럽고 피가 섞인 토가 계속 나왔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멀쩡해졌다.
라브가 내상도 치료하는 건가? 여울은 생각 접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벨 업을 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10층의 그 괴물을 잡을 수 없다었.
그때, 지연이 따라 일어섰다.
“엇, 어디 가시려고요?”
그녀가 여울의 팔꿈치 옷자락을 잡았다. 여울 특유의 싸늘한 분위기 때문에 차마 팔을 잡지는 못했다.
여울은 그녀의 손을 한번 보고 주변 둘러보았다. 꽤 많은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시기와 질투의 시선이다. 여울은 그녀를 바라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신세를 졌습니다. 그럼.”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입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울은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 한 무리가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