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90
90
후우우웅!
바람이 등을 떠민다. 아니, 바람에 몸이 비집고 들어간다. 눈앞에는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핏방울이 같이 떨어지고 있다. 부서진 난간에 기대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노란머리 사내의 모습도 보인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손가락은? 움직인다. 이제야 경직된 몸이 말을 듣는다. 검을 찔러 오는 순간 몸을 살짝 틀어서 심장이 꿰이는 것은 피했지만 폐에 구멍이 났다. 이대로는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
“흡.”
여울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바닥을 향하며 외쳤다.
‘다크니스 큐ㅇ…….’
퍼억!
큐어를 시전한 순간 허리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며 동시에 섬뜩한 예기가 느껴졌다. 여울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다시 뒤돌며 그 예기를 향해 디카르를 휘둘렀다.
차앙!!
자신의 목을 향해 오던 검과 디카르가 부딪쳤다. 우스울 정도로 쉽게 여울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디카르는 저 멀리 튕겨 나갔다. 그가 검을 두 손으로 다잡고 아래로 내리찍는다. 여울은 고개를 꺾어 그의 검을 피하였다. 그 순간에 등이 땅바닥에 닿았다.
콰아앙!!
숨이 잠시 턱 막혀 왔다. 여울은 그대로 숨을 참고 자신의 목을 자르기 위해 옆으로 그어져 오는 그의 검날을 맨손으로 잡았다.
지직! 지지직!
그의 검이 얼마나 날카롭고 견고한지 콘크리트 바닥을 마치 두부처럼 줄을 그으며 다가온다. 손을 감싼 다크니스 스텐은 잘려 나가고 손가락에서 피가 흐른다. 완력에도 밀려 결국 목에 그의 검신이 닿았다.
이대로는 그가 원하는 결과만 낳을 뿐, 여울은 한껏 두 무릎을 굽혀 그의 등을 찍었다.
퍽!
배를 누르는 힘이 살짝 빠지며 검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여울은 그 틈에 허리를 튕기고 몸을 옆으로 굴려 그에게서 빠져나왔다. 동시에 뒷발을 뻗어 그의 턱을 올려 찼다.
팍!
견제용 공격이었지만 일부러 피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그의 턱을 강타했다. 그러나 돌덩이를 디딘 것처럼 얄팍한 소리와 감각이 자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건 불가능한 싸움이다. 도망쳐야 한다.
그는 여울의 발로 턱을 맞아 고개가 살짝 꺾인 그대로 눈만 내리깔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눈동자는 여울을 향해 있다. 마치 가소로워하는 느낌이다.
“인간이…… 제법이구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왔다. 여울은 견제용으로 장전시킨 베아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동시에 그가 왼손을 손바닥이 보이게 넓게 펼쳐서 뻗었다.
콰아아앙!
충격파의 굉음과 여파가 주변 건물을 무너트리고 귀청을 찢었지만 바로 앞에 선 그는 머리카락만 휘날리고 있다.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이다. 그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발버둥 쳐 봤자 인간인 것을…….”
여울은 그의 상체에 디카르를 던지면서 아래로는 마녀손톱을 던지고 결과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뒤로 달렸다. 그는 검을 사선으로 그어 디카르와 마녀손톱을 손쉽게 쳐 내고는 바닥을 박찼다.
콰앙!
그가 디딘 바닥은 폭탄이 터진 듯이 콘크리트가 터져 나갔다. 그의 신형은 총알처럼 쏘아져 왔다. 그 속도가 여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좁혀 온다.
여울은 방향을 꺾어 벽을 박차고 공중에서 휙 몸을 뒤집었다. 동시에 품에서 대검을 꺼내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내리쳤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마주 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인다. 크기 차이로는 열 배도 넘는다.
콰아앙!
내리치는 여울의 대검과 올려치는 그의 검이 강하게 부딪쳤다. 대검은 여울의 두 손을 벗어나 대포알처럼 날아가 한 건물의 벽에 깊게 박혔다. 목을 잡아 오는 그의 손이 보인다. 여울은 허리를 뒤로 확 꺾어 피하며 두 발로 그의 손을 쳐 내고 뒤로 한 바퀴 돌아 거리를 벌렸다.
답이 없다. 킬러 생활을 하면서도, 케라브에서도 싸우면서 절망적이라고 느꼈던 때가 없었다. 그는 뭘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인다. 이런 자를 고작 1레벨 더 올린다고 상대할 수 있다고? 아니, 그런 기회가 오기나 할 것인가?
그때, 그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검을 휘두른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검을 마주 휘두르는 한 여인이 생겨났다.
쩌정!!
그녀도 푸른눈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 동료 둘을 죽였던 여인이다. 그녀도 마족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기회다. 여울은 바로 디카르를 회수하며 바닥을 박차고 위로 올라갔다. 대검의 손잡이를 눌러 최소화시키며 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난간 안쪽으로 바로 몸을 숨겼다.
‘은신.’
여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큐어로 인해 출혈은 잡혔으니 외적인 흔적은 없다.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는 다크니스의 흔적이 남을 테니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한다.
그 노란머리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약 5킬로미터 밖, 그로 인한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곳에는 노란머리의 손에 목줄기가 잡힌 여인이 보인다. 두 손발이 축 처져 있는 모양새가 이미 거의 죽어 있는 상태다. 노란머리는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여울을 찾는 듯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입을 오물거렸다. 여울은 그녀의 입모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호첸 님께서 어떻게…….’
그때 호첸이라는 자로 추측되는 노란머리가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잡고는 그대로 위로 뽑아 버렸다.
츄아아악!
기다란 척추 뼈가 딸려 나오며 머리가 없어진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친다. 그는 양쪽으로 그녀의 몸과 머리를 던져 버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울이 있는 방향이다.
여울은 거리가 멀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을 확 숙였다.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자다. 어떻게 자신을 쫓을지 모른다. 여울은 그의 반대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호첸…… 피해야 한다.’
* * *
쏴아아아!
바다 특유의 짠 내가 세찬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친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이 파도에 휩쓸려 검은 바위에 부딪쳐 찢긴다.
검은 돌 위에 세워진 부둣가 부근,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움막을 세우고 그곳을 차지하고 있다. 두 마리의 오크들이 창을 들고 바닷가 부근을 순찰한다.
“크룩?”
“카오르?”
바닷가에 나타나는 이상 현상에 두 오크가 고개를 돌렸다.
촤아아아아악!
저 멀리서부터 물보라가 크게 일어나고 있다. 마치 제트스키가 달리는 듯한 모습이다.
“게라크 리무아…….”
순찰 오크 한 마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자세히 보았다. 그 가운데에 물 위를 달리는 사람이 보인다. 그는 매우 빠르게 오크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크, 크루카!!”
오크가 창을 뻗으며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거의 동시에 그들의 이마에 검이 꽂혔다.
터덕!
입을 벌린 상태 그대로 쓰러진 오크들 앞에 한 청년이 내려섰다. 오크의 외침에 움막에서 나온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그 청년에게 몰려들었다.
우락부락한 오크들이 무기를 앞세우고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데 청년의 표정에는 긴장감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아…… 역시 육지가 좋아.”
청년의 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크 무리가 그를 덮쳐 왔다.
“크룩하!”
“크룩하!!”
그는 수백 마리의 오크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제주도에서 열린 첫 게이트의 게이트 키퍼는 5레벨 오크 레고드였다. 그는 막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세우고 다른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도 잡아먹으며 더욱 괴물이 되었다.
육지에서는 딱 한 번 제주를 위하여 해군을 보냈으나 레고드와 그의 부하들에게 처참히 당했다.
제주는 레고드의 군단에게 초토화되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굴이나 지하에 숨어 오크들을 피해서 비참하게 연명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오크가 창을 들고 해안가를 지나간다. 그 뒤 바위에 한 사람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사내 둘과 여인 한 명이 각자 가방을 메고 사내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 일을 반복했는지 행동에 익숙함이 묻어났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수신호 하나로 모두가 머뭇거림 없이 행동에 들어간다. 한 명이 망을 보고 나머지 셋이 물가로 가서 무언가를 끌어당겼다.
“빨리, 빨리 당겨.”
여기저기 찢어진 볼품없는 그물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유일한 생명줄이기도 하다. 그곳에 잡힌 고기 몇 마리를 건져 가방에 집어넣고는 다시 은밀히 움직였다.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네 개의 포인트는 돌아야 굴에 있는 15명이 굶어 죽지 않는다.
서인하는 오늘 몇 주 만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네 개의 포인트를 모두 돌고 나니 네 명의 가방이 모두 물고기로 꽉 찼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흔하지 않다. 오랜만에 굴 안 모든 사람들이 포식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굴로 귀환하는 길이었다.
쐐액! 퍽
파공성과 함께 무언가가 인하의 귓불을 스치고, 앞서가는 리더의 머리에 꽂혔다. 리더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갑자기 멈추더니 이내 그대로 고꾸라졌다. 뒤통수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인하는 너덜거리는 귀를 만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섯 마리의 오크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갑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한 마리는 한 손에 활을 들고 있었다. 오크는 순찰이 아니면 두 마리 이상 같이 다니지 않는다. 놈들은 자신과 일행을 기다렸던 것이다.
“튀어!!”
“인하! 정신 차려!!”
한 사내가 인하의 팔뚝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그제야 인하는 피가 흐르는 귀에서 손을 떼고 정신을 붙잡았다.
그때.
퍼석!
자신을 잡아끌던 사내의 관자놀이에 화살이 박혔다. 그것은 사내의 두 눈을 관통하고 반대편으로 화살촉이 경쾌하게 튀어나왔다.
“끼야아악!!”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인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다리는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굴 쪽으로 도망칠 수는 없다. 이 오크들이 원하는 것도 그것이다. 인하는 전속력으로 달리며 앞서가는 사내에게 외쳤다.
“오빠는 굴로 가서 알려! 나는…….”
인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앞에 바위 아래에서 튀어나오는 네 마리의 오크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콰직!
“아, 으, 아으으으.”
사내가 그중 한 마리의 오크에게 머리를 잡혔다. 사내는 두 손으로 오크의 손을 잡고 괴로워했다. 오크는 인하를 보고 씨익 웃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파악!
사내의 머리통이 터져 나가고 목 없는 몸통은 아래로 떨어졌다.
인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어디로 가든 이 오크들을 벗어날 수가 없다. 두 명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관통시킨, 활을 든 그 오크가 이번에는 자신을 향해 화살을 겨눈다.
“으, 으, 꺄아아아!”
인하는 그 순간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그 화살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구 달렸다.
슈웅!
귓가로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저 화살에 머리통이 뚫릴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 순간, 인하의 몸이 붕 떠올랐다. 다리 사이로 화살이 지나가고 앞을 가로막던 오크들이 닭 쫓던 개처럼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살고 나니 지금의 이 비현실적인 상황이 인식되었다. 공중에 떠 있는 자신과 다시 자신을 겨누는 오크.
“어, 어어…….”
그 오크 뒤에 자신처럼 공중에 떠 있는 한 청년이 보인다.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귀찮다는 듯이 대충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네 개의 검이 날아와 오크들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슥! 스슥!
그 무시무시한 검에 열 마리의 오크들이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렀다. 청년은 아래로 내려와 바닥을 걸었고 인하의 몸은 점점 그에게 옮겨졌다. 그에게 가까워지며 인하의 발도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한 걸음 앞, 인하는 그 청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수, 수언이……?”
수언은 쓰러져 내리는 인하를 두 손으로 붙잡고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하 누나.”
서인하는 수언의 옆집에 살던 4살 연상의 누나다. 인하는 2년 전에 실종한 수언이 마치 신처럼 염력을 쓰면서 나타났으니 귀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수언이가…… 맞아? ……요?”
“응, 맞…… 싯팔! 아요.”
“맞구나…… 우리 수언이.”
인하는 그제야 안심한 듯이 그를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