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91
91
이수언은 서인하에게 안긴 상태로 조금 있다가 그녀를 살짝 떨어트리고는 물었다.
“누나, 엄마는요? 우리 엄마는 못 봤어요?”
수언의 물음에 인하는 안색이 변하며 그의 눈동자를 피했다.
“어, 어머니는…….”
머뭇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수언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일을 이야기했다.
수언의 어머니는 게이트가 처음 열린 날, 무시무시한 오크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그를 구하려던 인하의 부모님들 역시 그날 모두 당하였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수언의 눈빛은 금수처럼 변해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넘쳐흘러 그 앞에 있는 인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수, 수언…… 허윽.”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수언은 살기를 누르지 못하고 씹는 듯이 말을 뱉어 냈다.
“오크…… 놈들 어디 있어요?”
수언은 인하를 데리고 오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본거지는 한라산 산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그 부근 구석에 도착해서 보니 아예 왕국을 만들어 놓았다.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마을을 형성했고 가장 높은 곳에는 왕좌에 앉아 있는 거대한 오크가 보인다. 오우거와도 같은 크기로, 앉은키가 4미터는 넘는 듯했고 앞뒤 양옆으로 두꺼운 거대 오크였다.
수언은 숲 안쪽에 숨어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인하는 거대 오크 레고드를 보고 그가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다독였다.
“수언아,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그때, 수언이 손가락을 튕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품에서 달걀만 한 불꽃이 튀어나오고 가죽 주머니에서는 일곱 개의 검이 튀어나와 등 뒤로 부채꼴로 펼쳐졌다.
“다녀올게요. 여기 있어요.”
수언은 그대로 붕 떠올라 그 수천 마리의 오크들을 향해 날아갔다. 앞서가는 불꽃이 갑자기 3미터 높이까지 화악 타오르더니 그가 가는 길에 레드 카펫을 까는 듯이 불길을 만들었다.
나무와 수풀이 많으니 불이 확 타오르며 순식간에 이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수언은 그 위로 유유히 날아 거대 오크 레고드에게 직진했다.
그의 왕국이 불바다로 변하고 있는데도 레고드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는 왕좌에서 천천히 일어나 의자에 기대 놓은, 집채만 한 도끼를 들어 올려 자신에게 가공할 속도로 날아오는 수언에게 바로 휘둘렀다. 수언은 크릴의 뿔로 그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콰아앙!!
그의 거대한 도끼가 거세게 튕겨 나가며 레고드가 만세를 하는 자세가 되었다. 그때 수언이 그의 배에 크릴의 뿔을 찔러 넣었다. 동시에 일곱 개의 검이 그의 몸 곳곳에 박혔다.
부들부들거리던 수언의 검이 뽑혀져 나오더니 다시금 그의 몸으로 돌진했다.
투둑.
퍽! 퍼억!
이번에는 수언의 검이 레고드의 몸을 뚫고 그 뒤로 튀어나왔다. 그의 두 눈과 입, 심장은 구멍이 뚫리고 배에서는 내장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쿠우웅!
레고드의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1년 동안 제주도에서 왕 노릇을 하던 7레벨 오크 네임드 레고드, 그는 그렇게 순식간에 쓰러졌다.
수언은 놈의 목을 잘라 내고 뒤돌아섰다.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덤벼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이미 붉은 화염이 뒤덮었다.
“오늘 너희에게 지옥을 보여 주지.”
* * *
모든 것이 불타 버린 곳, 잿더미가 되어 버린 오크들의 시체 위에 한 청년이 앉아 있다. 그는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는데…… 누가 그렇게 가래?’
그곳으로 이동된 자신이 원망스럽다. 오크들에게 고통스럽게 당하면서 자신을 기다렸을 엄마를 생각하면 한쪽 가슴이 찢어진다.
수언은 인하와 함께 생존자들이 머문다는 굴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수언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 이게 누구야? 수언이 아니야?”
“아이고, 수언아, 조금만 더 일찍 오지…….”
“그 욕하는 애 맞지?”
수언은 그들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굴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집에 살던 인하를 제외하고는 자신을 무시하고 막 대하던 사람들뿐이다. 인하도 기본적인 친절로만 자신을 대했었다.
그런 수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인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우리, 이제 모두 해방이에요! 수언이가 엄청 강한 헌터가 돼서 레고드와 그 부하들을 모두 처리했어요!”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야.”
“쟤가?”
“그게 진짜입니까, 인하 씨?”
사람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믿지 않았다. 인하는 손짓하며 손수 앞장섰다.
“일단 나와 보세요.”
인하를 따라 조금씩 밖으로 나오다가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오크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람들이 믿고 실감하기 시작했다.
“수언이가 우리를 지켜 주면서 육지로 데려가 준다고 했어요. 육지는 헌터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도시도 있대요.”
“그, 그럴 리가…….”
“수언이 혼자서 레고드를 처리한 걸 보면…… 충분히…….”
“아무리 그래도 난 못 믿겠네, 그리고 어차피 레고드도 없어졌는데 육지로 갈 필요가 있나?”
“그러다가 게이트가 또 생기면…….”
사람들은 반은 믿지 못하거나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을 선ㅌ택하여 반만 수언을 따라나섰다. 그중에 배를 몰 수 있는 선장이 있어 그들은 별 탈 없이 육지로 넘어갈 수 있었다.
육지로 넘어와 천안으로 추측되는 벽이 보일 때쯤, 수언은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보았다. 그곳에는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저장되어 있는 유일한 사람의 문자였다.
-수언, 돌아오면 은서를 지켜 줘라
수언은 그 문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울 아저씨, 은서…….’
지옥에서 만난 유일한 인연, 이제 수언에게 그들밖에 남지 않았다. 은서에게 간다.
* * *
전에 몇 층이었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 폐건물 안.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삑.”
그의 가슴 쪽에 달린 주머니에서 하얗고 조그마한 새가 쏙 얼굴을 드러낸다. 남자, 여울은 한 손에 시이를 담고는 손가락으로 그를 살폈다.
“삐익, 삑.”
여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시이가 두 날개를 펄럭였다. 부러진 부분은 깔끔히 나아 있었다. 어떤 약도 말을 듣지 않지만 자연 회복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쉬게 하고 싶지만 자신의 목숨은 하나뿐이다.
“시이, 내 주변 50킬로미터 이내에 마족이나 게이트가 있으면 알려 줘, 최소 200미터 상공에서만 지켜보고.”
“삑!”
시이는 걱정 말라는 듯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는 저 멀리 날아갔다.
레벨업만이 살길이다. 10레벨이 된다고 그를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레벨업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여울은 호첸을 보았던 동쪽을 힐끔 보았다가 바닥을 박차고 서쪽으로 달려 나갔다.
두두두두!
잔잔한 진동이 느껴진다. 지진과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지면을 두드려서 나는 진동, 여울은 가만히 있다가 진동이 시작되는 방향을 예측하고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두두두두두두!
작은 산을 넘어서니 눈앞에 광활한 평야가 넓게 펼쳐졌다. 그곳에는 수천, 수만 마리의 몬스터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트롤, 오우거,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블랙다콘까지, 중대형 이상의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 행군하니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여울은 바로 대검을 뽑아 들어 그곳을 뛰어들었다. 그의 대검이 몬스터들에게 닿기도 전에 크게 휘둘러진다. 동시에 바람이 진하게 일어나 놈들에게 넓게 뻗어 나갔다. 그것은 마치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검처럼 놈들의 허리를 깔끔하게 잘랐다.
덩치 큰 마족에게서 얻은 베헤모스의 기운과 비슷한 특성이다. 이것 역시 딜레이나 연속성은 없지만 베아로 인한 힘이 아닌, 특성이라는 특이점을 생각하면 베아보다도 더 유용하게 쓰일 듯하다.
여울은 중국에 사람이 없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시이가 마족으로 의심되는 자를 발견하면 그 자리를 피해 다녔다. 게이트를 발견하면 보이는 대로 들어가서 클리어를 했다. 게이트 안은 마족들에게서 안전하다는 인식도 있었지만 게이트 키퍼가 주는 마석과 경험치를 기대해서다.
그렇게 수원을 떠난 지 3개월, 지금까지 세 명의 마족을 피했고 여덟 개의 게이트를 닫았다. 잠은 사흘에 한 번씩 자며 사냥에만 열중했지만 케라브 고층에서와 경험치 차이가 심한 건지, 아니면 9레벨이기 때문인지 레벨업은 전혀 느낌이 없었다.
잠깐만 한국에 가서 지연에게 경험치를 확인할까? 아니다. 어차피 10레벨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시간만 낭비할 뿐, 레벨업이 될 때까지 지금처럼 사냥에만 집중한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은서에게 전화를 하는 날이다. 여울은 가까운 도시를 찾아가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아빠!
“은서, 잘 지내고 있었어?”
-응, 보라 언니가 맛있는 것도 많이 해 주고 잘해 줘. 아빠…… 언제 와?
“아빠는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학교에는 별일 없어?”
-예서랑 친해졌어. 우리 집에도 가끔 놀러 와. 아빠 오면 보여 줄게, 예뻐.
“우리 딸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예쁘지.
“설마, 우리 딸…….”
갑자기 시간이 느려진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멈춰 서고 저 멀리 한 사람만 지극히 평범하게 걸음을 옮긴다. 500미터? 아니, 300미터? 거리 측정이 정확했던 여울의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단발의 노란머리, 뱀파이어처럼 하얀 얼굴, 사나운 눈매…… 호첸이다.
그가 왔는데 왜 시이가 발견하지 못했지?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서? 아니다. 그의 눈동자가 파랗게 이글거리지 않는다. 어떻게?
의문을 가질 틈 따위는 없다. 여울은 왜 사람들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지 알고 있다. 그가 그만큼 빠른 것이다.
‘은신.’
여울은 은신과 동시에 휴대전화를 부쉈다. 그에게 은서의 목소리를 들려줄 순 없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상대적으로 그의 움직임은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빨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파랗게 변한다. 여울은 생각할 세도 없이 바로 반대로 튀어 나갔다.
콰아아앙!!
호첸이 손바닥을 쫙 펴고 방금 전 여울이 있던 곳을 내리쳤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검은 파동이 무서운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근처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파동에 휩싸여 찢겨 나가고 건물들이 터져 나갔다.
슥.
여울은 자신의 옷깃에 그의 파동이 스친 것을 느꼈다. 아슬아슬하게 그 범위에 들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닌 듯하다. 투명도가 점점 옅어지며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그 증거로 호첸이 초토화된 바닥을 밟고 자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여울은 그에게 장전된 베아를 던지고 간발의 차로 하나 남은 마녀손톱을 던졌다. 확인할 필요도 시간도 없다. 바로 다시 건물 벽을 박차고 뒤로 빠졌다.
콰아아앙!
귓가로 충격파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전처럼 그가 손바닥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소리는 아니다. 조금이라도 그의 발을 늦춰 주길 바라며 골목길 틈으로 들어갔다.
후웅!
불안감은 적중한다. 그가 다가오는 소리가 무섭게 가까워지고 있다. 여울은 방향을 꺾지 않고 대검을 꺼내어 바닥에 박고는 그것을 도움닫기로 삼아 더욱 튀어 나갔다. 대검이 진로 방해로 0.5초라도 시간을 벌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콰앙! 훙!
뒤에서 폭발음과 함께 섬뜩한 느낌이 든다. 뒤돌아보니 자신이 바닥에 꽂았던 대검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다. 그 뒤로 대검의 몇 미터 뒤에 있는 호첸이 보인다. 그런데 그의 발목에 익숙한 것이 꽂혀 있다.
‘마녀손톱……?’
베아의 충격파 때문인지 그가 손톱을 쳐 내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은신을 다시 할 수 있는 10분을 버티기도 힘들거니와, 그 이후에도 은신을 하고 다시 거리를 벌리려면 저번처럼 다른 마족이 관여하지 않는 이상 가능성이 희박하다.
적은 확률이라도 모든 힘을 쏟는 수밖에 없다. 여울은 버서커와 블레이드를 외치며 상체를 기울여 대검을 피했다.
지나가는 대검이 얼굴 앞까지 왔을 때 손바닥으로 검면을 때렸다. 대검이 반 바퀴 휙 돌았을 때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아채 그에게 휘둘렀다. 다른 손에는 디카르가 형성되고 있다.
콰앙!
대검이 힘없이 저 멀리 튕겨 나간다. 동시에 디카르가 그의 왼쪽 발목으로 향했다. 그의 무릎이 움찔하지만 다리는 굽혀지지 않는다.
서걱!
‘됐다!’
그의 발목이 반 이상 잘려 나갔다. 그 사이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상처 입은 다리로 자신을 추적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데 그가 검도 아니고 손을 자신에게 뻗어 왔다. 여울은 이때다 싶어 디카르를 두 손으로 잡고 사선으로 힘껏 올려쳤다.
터억!
디카르의 검신이 잡혔다. 손가락이 잘려 나갔어야 정상인데 검신이 그의 손에 잡힌 것이다. 자세히 보니 검신의 뒷면을 잡고 있다. 그 짧은 순간에 손이 앞이 아닌 뒷면으로 돌려서 잡은 것이다.
빨리 놓고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한 때, 디카르가 확 당겨지며 여울의 몸이 끌려 들어갔다.
퍼억!
그의 손이 여울의 가슴을 파고 들어갔다. 여울은 그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이번에는 방향을 틀지도 못했다. 강한 이물감이 드는 것이 자신의 심장을 쥐어 잡고 있다.
이렇게…… 인간도 아닌 것에게 죽는 것인가? 처음으로 다크니스 특성자인 것이 후회된다. 그저 은서와 지구로 돌아와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전기가 오른 듯이 찌릿해진다. 마치 어둠의 장막을 쳐 놓은 듯하다. 하얀 안개가 사방에 퍼지는 것이 전에 케라브에서 푸른눈을 만나는 공간과 비슷했다.
눈앞에는…… 푸른눈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난, 죽은 건가?”
푸른눈은 전과 마찬가지로 정자세로 앉아 고개를 저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0.13초 후에 죽습니다.”
“너는 왜 나타난 거지?”
푸른눈은 그답지 않게 여울을 가만히 바라보며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현신의 힘은 대상의 강함에 비례합니다. 내가 잠시 여울 님의 몸에 현신해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