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95
95
95. 천외천(天外天)은 존재했다
신한길드 길드장 지천욱의 집무실, 그의 앞에는 다섯 명의 남녀가 양옆 소파에 앉아 있다. A랭크 이상은 통상적으로 길드장과의 면담 이후에 가입하게 되어 있다.
소식을 듣고 온 지연이 은서를 바라보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안 돼, 은서야. 언니도 위험할 때가 많았어.”
수언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걱정이다. 그저 서한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라는 지연과 은서를 번갈아 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중국 지원 때 빼고는 없지 않았나……?”
지연은 보라의 허벅지를 탁 치며 은서의 대답을 기다렸다. 같이 온 둥둥이 눈치 없이 외쳤다.
“은떠랑 가치 이써쓰면 조케따!”
“그치, 둥둥? 봐요, 언니. 언니도 있고 보라 언니도 있고, 둥둥도 있고 게다가 수언 오빠도 있는데! 저 여기 가입해서 사냥 다닐래요.”
지천욱은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로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요, 열띤 토론 중에 죄송하지만 집안 방송을 왜 내 사무실에서…….”
그때, 지연이 길드장에게 고개를 빠르게 꾸벅하고는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은서야, 아빠 허락은 받고 온 거야?”
“아빠랑 연락 안 돼요. 한 달에 한 번씩만 통화해요.”
“아빠가 아시면 절대 허락 안 하실 거야, 괜히 학교 다니라고 하신 게 아니야.”
담담하게 말을 받던 은서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언니가 왜 그렇게 반대하세요? 제 보호자도 아니시잖아요?”
은서는 말을 내뱉으면서 전에 케라브에서 지연이 목숨을 바쳐 자신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지연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렇지만…….”
지연이 고개를 숙이며 확 가라앉은 톤으로 말꼬리를 늘렸다. 보라는 지연의 어깨를 감싸고는 은서를 보며 말했다.
“언니도 걱정돼서 하는 말인 거 이해하잖아. 우리가 은서 걱정도 못 할 사이는 아니지?”
은서도 딴에는 미안한 마음에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지천욱은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어느새 그들의 대화에 동화되어 이 여중생의 진로를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흐음…… 이를 어쩐다…….”
그때 길드장 집무실의 문을 노크도 안 하고 활짝 열어젖히는 존재가 등장했다.
“여어~ 길드장님, 잘 있었습니…… 어라?”
부리부리한 눈빛, 하얀색 길드 방어복에 초록색 피를 잔뜩 묻힌 그는 원팀의 리더, 서한이었다. 그 뒤에는 원팀의 팀원들이 문틈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 * *
수언과 은서는 결국 신한길드에 가입 신청서를 냈다. 수언은 바로 가입 처리가 되었고 은서는 헌터증을 만들어오면 처리하기로 했다.
인간적인 부분도 중시하는 길드장 지천욱은 지연의 마음을 반영하여 원팀과 동행이 가능할 때만 사냥을 가는 조건을 붙였다.
지연도 그 조건을 듣고는 인정했다. 그들이라면 지금까지 드러난 게이트의 몬스터들보다 한 단계 위라고 해도 은서가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보라는 은서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보라는 자신이 그리 작은 키가 아닌데도 이제 중학교 2학년인 은서와 눈동자 높이가 비슷하여 살짝 놀랐다.
“학교 얘기는 나중에 들어서 가 보지 못했네. 뭐 너라서 걱정 안 한 것도 있고.”
은서는 보라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저도 위험했었거든요?”
“그렇구나. 그런데 나중에 휴교 끝나면 어떻게 하려고? 설마…… 학교 안 다니려고?”
“아뇨, 학교 다닐 때는 주말마다 사냥 다니려고요.”
보라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너도 참 열심이다. 그런데 수언이는 그 S랭크 헌터증 언제 받으러 가려고?”
두 걸음 뒤에서 걷던 수언은 보라가 자신을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며 멈춰 섰다.
“에? 아, 아…… 몰라요.”
“뭘 그렇게 놀라? 은서 헌터증 만들어야 하니까 그 김에 같이 가.”
“예…….”
수언은 자신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동생처럼 대하는 보라라는 여인을 대하는 것이 힘들었다.
* * *
수원도시 헌터 등록 사무실, 한 여직원이 TV에 열중하고 있다.
화면에는 마치 히어로 영화처럼 두 사람이 거의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검을 부딪치고, 건물을 부수는 것이 보인다. 카메라로는 그들의 움직임이 제대로 잡을 수조차 없어서 얼굴은커녕 체형도 확인하기가 힘들다.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며 입에 하나, 두 손에 하나씩 세 개의 종이컵 커피를 들고 오는 사내가 그것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뭔 영화야? 카메라 앵글이 영 별론데?”
여직원은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고개를 내저었다.
“영화 아니에요, 뉴스예요.”
그녀의 말에 사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때 마침 아래 자막이 떴다.
-중국, 미등록 헌터들의 사투, 천외천(天外天)은 존재했다.
“헐…… 미쳤네, 김진후 님도 저 정도 되는 건가?”
“글쎄요…….”
사내는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커피를 한 잔 홀짝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이수언 씨는 아직도 연락 안 돼?”
“네, 전화가 꺼져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이 헌터증이면 당장에 도시에서 받는 혜택이 어마어마할 텐데…… S랭크들은 뇌부터 뭔가 특별한가?”
상사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여직원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요. 그럴수도.”
여러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 S랭크 헌터증이 발급되었는데 본인이 연락이 안 되는 것이다.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발표도 불가하다. 본인이 보이지 않아 증명되지 않으면 허위 사실 유포로 사회를 넘어서 전 세계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른 발표하여 자랑을 하고픈 수원시장에게 매일같이 연락이 온다. 덕분에 헌터 등록 사무실 직원들은 삼시 세끼 전화기만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헌터 등록을 할 때 줬던 번호가 여울의 번호라는 것을 몰랐다. 그의 휴대전화는 중국의 길거리 어딘가에 산산조각이 나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때.
끼익.
누군가가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열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저기…… 헌터증 받으러 왔는데요.”
“헙!”
그의 얼굴을 기억한 여직원은 전화기를 내팽개치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 *
달빛마저 먹구름에 가려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 비릿한 쇠 냄새가 바람에 날린다.
오래된 건물 안에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식별할 수 없는 조각난 고깃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그 중심에는 방패를 어깨에 걸친 사내가 한 손으로 어떤 사내의 목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켁, 케흑, 왜, 왜 이러는…… 도, 돈 줄게.”
그의 말을 듣던 김진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으드득.
진후는 목이 모로 꺾인 그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중얼거렸다.
“쓰레기 같은 무법자 놈이 감히…….”
그 말과 동시에 사내의 시체에서 붉은 기운이 진후에게로 흘러 들어왔다. 그는 눈을 감고 자신에게 흡수되는 그 기운을 느끼며 길게 심호흡을 하였다.
지금 진후의 레벨은 8레벨 완성형. 하지만 인간을 죽여서 얻은 붉은 기운의 힘으로 9레벨 못지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싸늘한 기운이 불어왔다.
“찾았다.”
이승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동굴 저 깊은 곳에서 쇠를 긁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에 진후는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과 5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한 사내가 서 있다.
한 번의 도약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올 동안 못 알아챘다가 지금서 그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둠 속에 가려진 그의 몸은 눈만 고양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푸른 눈이다. 그것은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진후는 단숨에 그가 인간이 아님을 느꼈다.
“너는…… 뭐지?”
“아직 먹히지 않은 특성자인가? 이거 희귀물을 찾았군. 기대되네!”
동문서답을 한 그는 바로 바닥을 박차고 가공할 속도로 진후에게 덤벼들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호전적인 기운을 마구 분출하고 있었으니 공격을 예상했던 진후는 방패를 들어 그를 향해 후려쳤다.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쩌정!!
커다란 굉음과 함께 둘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진후는 네 발자국 뒤로 밀려나고 그는 뒤로 몇 미터 날아가 공중제비를 돌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는 하얀 서리가 낀 자신의 손을 보며 이죽거렸다.
“재미있네. 언데드인가?”
냉기를 보고 바로 자신의 특성을 알아채는 것을 보면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다. 진후는 다시 덤벼드는 그를 향해 방패를 내던지며 달려 나갔다.
후웅!
그가 뛰어올라 방패 위로 몸을 날렸다. 그 타이밍에 막 앞에 도착한 진후는 검을 뻗고 있는 그의 손목을 낚아채어 바닥에 내리쳤다.
콰직!
냉기 파동이 터져 나가며 그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고, 진후의 배에는 그의 검이 꽂혀 있었다. 분명 오른손에 쥐고 있었는데 내리치는 그 찰나에 검이 사라지더니 왼손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진후는 한 손으로 검을 붙잡고 데가베르로 그의 팔을 잘랐다. 동시에 그는 경직이 풀리자 뒤로 주욱 빠졌다.
그는 잘린 팔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그 힘, 참 거슬리네.”
그의 잘린 단면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이며 출혈이 멈췄다. 자신보다 두 배는 빠른 회복력이다. 진후는 바로 그의 검을 뽑아 바닥에 내던지고는 그에게 덤벼들었다. 내장이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진후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함께 달려들며 한 손을 뻗자 그 손에서 검은색 검이 다시 생겨났다. 진후는 데가베르를 든 오른팔을 자르려는 그의 공격을 무시하며 왼손을 뻗었다.
오른팔이 깔끔하게 잘리며 왼손이 그의 머리를 잡았다. 진후는 온 힘을 다하여 그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지익!!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터지는 냉기에 그의 팔다리가 풀렸다. 진후는 다시 그의 머리를 들어 콘크리트 바닥에 찍었다.
쾅! 쾅! 콰직콰직! 퍼석!
근력이 특화된 진후의 근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머리는 완전히 짓뭉개져 너덜너덜해졌다.
“후우, 후…….”
진후는 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나오는 것을 보고는, 행동을 멈추고 자신의 잘린 팔을 가져와 붙였다. 지금 보니 그 양이 상당하고 색이 검붉었다.
“뭐지…… 으, 으…….”
검붉은 기운은 점점 양이 많아지더니 이내 그 주변을 꽉 채울 정도로 퍼져 나가 회오리치며 진후에게 흡수되었다.
“크흡, 크아아악!!”
진후의 허리가 부러질 듯이 휘어지고 바닥을 내리친 손가락은 콘크리트를 파고 들어갔다. 들어오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다.
“크하…… 크, 흐으…….”
검붉은 기운은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갈무리되었다. 진후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바라보며 넘실거리는 힘을 만끽했다.
헌터 천 명을 죽인 것보다 더한 힘이다. 그자의 얼굴은 그저 평범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안 먹힌 특성자’라는 말, 그리고 푸른 불꽃이 담긴 눈이다.
“푸른 눈을 찾아야겠군.”
진후는 피 묻은 손을 한 번 털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 * *
수원도시 북쪽 외곽 올림픽 경기장, 가지각색의 남녀가 속속들이 모여든다. 핫팬츠에 그것을 완전히 가려 주는 오버핏 티셔츠를 입고 자기 몸만 한 백팩을 멘 은서는 바로 옆에 맨손으로 덜렁덜렁 온 수언을 바라보고 물었다.
“이야~ 넓다. 오빠, 기대되지 않아? 재밌겠지?”
수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으, 응…….”
수언은 아직도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듣기로는 은서도 사람들이 많은 곳을 기피한다고 들었는데, 학교를 다닌 이후에 많이 좋아졌나 싶다.
저 뒤에서 은서의 하얀 다리를 힐끔거리던 짧은 머리의 사내가 그녀의 옆에 나란히 걷는 수언을 보고는 이죽거렸다.
“여기가 중고딩이 연애하는 곳인 줄 아나.”
그 사내의 옆에 있던 민머리의 사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나도 삼십 년째…… 아오, 저렇게 어린 것들이 어떻게 가입했지? 빽이 있나…….”
그 둘은 투덜거리면서도 여전히 은서의 다리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모여든 사람 수는 대략 백여 명, 약속된 시간이 되자 신한길드를 상징하는 하얀 방어복을 입은 한 사내가 강단 위에 올라섰다.
“신한 17기 헌터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2주간 여러분의 전술 훈련을 총괄할 교관 이선호입니다.”
이선호는 신입 대원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훈련할 전술은 대규모 몬스터 전투를 위한 것으로, 랭크에 상관없이 모두 필수로 숙지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이번 중국 지원에서도 이 전술로 인해 다른 길드와는 차별화되게 최소한의 피해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자신의 랭크는 잊고 훈련에 열중하도록 합니다. 17기,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목청이 터져라 대답하는 은서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상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