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102)
=======================================
태석의 경영철학 (2) – 베트남 >
실망. 또 실망 뿐이다.
분명 한해 그룹 전체 매출이 수백 조 이상 나오는 엘성 그룹에서는 이까짓 일은 아주 작은 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접 산재사고를 경험해 본 태석 입장에서는 달랐다.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당사자는 얼마나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하는 처사였다.
태석이 감정에 호소했다.
“할아버지.”
“직책으로 부르라고 했잖니. 기어코 갈 생각이니?”
“네. 가야겠습니다. 할아버지도 아시겠지만, 저희 아버지 비슷한 상황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낙상사고였는데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았고, 아무도 도움주지 않았습니다. 이건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업체, 저희의 책임입니다. 제가 가서 직접 만나고 해결하겠습니다.”
“네가 가면 오히려 먹잇감을 제공할 수도 있어. 네가 계획한 스마트 시티 추진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고. 국토교통부 장관 시간 계획까지 다 잡아놓은 사항인데, 그래도 가야겠어?”
회장님이 자신을 또 평가한다.
역시나 재벌은 재벌이다.
이럴 땐 눈 하나 깜박이질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 앞에서 망설일 태석이 아니었다.
단 한 명의 생명도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그게 설사 같은 국민이 아닌 외국인이라도, 그는 분명 우리 기업을 위해서 일했고, 암이 걸려서 투병생활로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
태석이 회장님의 질문에 답했다.
“네. 가겠습니다.”
그러자 회장이 눈썹을 치켜뜨더니,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손주에게 말했다.
“그래. 그 책임은 돌아온 뒤에 묻지. 공장까지만 다녀 와. 피해자 만날 생각은 하지 말고. 목적은 단순한 현장 방문이야. 알겠니?”
“네. 알겠습니다.”
태석이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유라도 함께였다.
그녀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배, 미안해요. 저 때문에 일이 커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태석이 답했다.
“아니, 이게 왜 네 탓이야? 내가 결정한 건데?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그리고 난 이게 옳다고 생각해.”
“네.”
베트남 도착.
호찌민, 하노이, 다낭 등에 위치한 엘성의 주요 휴대폰 및 반도체 생산 공장들.
태석은 사고가 난 공장인 베트남 북부 박닌성 옌퐁공단의 공장 건물 외관부터 확인해보았다.
다행이었다.
이 곳의 크린룸 설비는 제대로 되어 있었다.
그건 일단 환풍 장치의 위치와 크기를 보면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충분한 환기량이 확보된 것으로 대략 짐작이 되었으므로 이제 내부에서 살펴볼 상태.
99.97%의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Hepa 필터나, 99.99%를 제거할 수 있는 Ultra 필터가 설치되어 있으면 무조건 O.K이다.
태석의 집은 천안이었다.
그래서 엘성 반도체 공장에 대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산 탕정 지구 반도체 공장에서 희생되었던 우리나라 반도체 공장 근로자들.
혈액암, 뇌종양, 백혈병.
모두 크린룸 설비 내 오염물질 제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생긴 일.
“나오셨습니까?”
현지 공장장이 태석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유라와 태석 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미전실 최유라 대리입니다.”
“미전실장으로 새로 부임한 김태석입니다. 공장장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실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순욱입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환기설비부터 확인해도 될까요?”
“네.”
다행히 베트남 현지 공장은 크린룸 설비가 제대로 갖춰진 반도체 공장이었다.
방진복을 입고 산업용 크린 룸에 들어가 일하는 근로자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중금속 유해물질을 방진복을 입은 채로 하나하나 옮기는 근로자들.
모두 현지인들이다.
Clean Room Class(청정도 등급)는 10이었다.
1제곱미터 안에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먼지가 10개 미만인 상태.
환기횟수는 시간당 무려 200회.
천장에서 중력방향을 따라 바람이 계속해서 내려온다.
그래서 맞출 수 있는 청정도 수치.
중금속 자체가 작업장 상단 부분인 호흡기로 들어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완전무결한 상태.
이것 또한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일했으니까 알 수 있는 것들.
실제 현장을 본 두 사람은 공장장을 따라 격리실에서 방진복을 벗고 나오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현장일에는 약한 최유라가 태석이 했던 행동을 떠올리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다 괜찮은 건가요? 아까 확인 많이 하시던데.”
“응. 좋아. 시설하고 안전 문제는 괜찮은 것 같아.”
태석의 말에 공장장이 안심한 얼굴을 했다.
태석이 그런 공장장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공장장님.”
“네. 미전실장님.”
“일단 사무실 들어가서 이야기 하죠.”
“네.”
일단은 근로환경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현지 근로자들은 몇 시간씩 일하나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12시까지 4시간 일하고 1시간 쉬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일해서 점심시간 제외하고 총 8시간씩 일하고 있습니다.”
“야간 조는 없는 거죠?”
“네. 한 때 TSMC가 불이 나서 반도체 가격이 많이 올라갔을 때는 24시간 3개조로 돌렸었습니다만, 지금은 생산 수요를 조절하는 중이라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군요. 공장에서 직영근로자하고 하청 근로자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
“제 질문이 잘못 되었나요?”
“아닙니다. 관리자를 제외한 근로자는 100% 하청업체를 통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게 인건비도 적게 들고, 사고 났을 때도 처리가 쉽습니다.”
그의 말에 태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비용절감이 좋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무책임한 형태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는 태석을 보며 안전부절 못하는 공장장.
하지만 태석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공장 시설이 안전한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환자를 만나러 갈 수 밖에.
“팜 탄빙양이 살고 있는 곳 아시죠? 혈액암 걸리신 분.”
“네.”
“거기 연락처나 주소만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베트남 옌퐁의 한 시골 마을.
공장에서 무려 1시간 반이나 개조된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야 팜 탄빙이 살고 있는 집에 갈 수 있다.
작은 길.
차량은 진입할 수 없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
덜커덩덜커덩 거릴 때마다 살집이 거의 없는 유라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많이 아파?”
“아니요.”
“유라 넌 많이 좀 먹어야 겠다. 뼈 밖에 없으니까 아프지.”
“아니에요. 제가 무슨 뼈 밖에 없어요.”
그때, 태석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전화는 당연히 할아버지.
“네. 회장님, 김태석입니다.”
– 그래. 우리 손주, 공장에 가보니까 기분이 어떠니?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래. 다 해결된 상황이니까, 그만 방황하고 바로 비행기 타고 돌아와! 국토부 장관이 갑자기 내일 보잔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행동 하지 말고 돌아오렴. 아래 것들이 하는 일에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게야. 알겠니?
태석은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할아버지?”
– 그래. 그래.
“할아버지… 안 들려요. 여보세요?”
– 난 잘 들리는데. 여보세요? 태석아?
“안 들려요. 할아버지. 안 들려요. 끊고 다시 전화해볼게요.”
태석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전원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시켜버렸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저는 그 분 꼭 뵙고 갈 거예요. 제 눈으로 확인해야겠어요.’
도착한 시골 마을.
주변에 야자수, 한국에서는 20년 전 거의 다 없어진 길고 가느다란 전선을 잇는 전신주.
집을 사이로 흐르는 작은 수로.
다 쓰러져가는 집.
그 곳에서 한 중년 여성이 방문객을 보며 나온다.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얼굴을 보며 태석이 고개를 푹 숙이며 영어로 말했다.
“엘성 그룹에서 왔습니다. 김태석 실장이라고 합니다. 팜 탄빙 양을 만나러 왔습니다.”
“네. 안쪽으로 들어오시겠어요?”
그녀는 담담한 듯 자신의 딸이 누워있는 침대를 보여주었다.
누워있는 그녀의 몰골은 장난이 아니었다.
피부의 붉은 반점이 온 몸에 전이가 되어 있다.
그녀는 혈액암 말기였다.
그래서 그런가 말조차 할 수 없었다.
태석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알아들으시나요?”
“네. 알아들을 거예요. 지금 혈액암 말기라서, 의식을 자주 잃어요. 말도 못 하고요.”
태석이 팜 탄빙 어머니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태석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옆에 있던 유라 또한 감정이 격해졌다. 그녀 또한 입을 막는데 갑자기 눈물과 콧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면 그녀의 어머니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울었는지 이제 눈물도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태석이 마음을 가다듬은 채,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치료는 받아보셨나요?”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도 감정이 격해졌는지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맞는 혈액이 없대요. 골수가 없대요. 국내에선 고칠 수가 없대요.”
그때, 공장장이 태석을 따로 불러내며 말했다.
“미전실장님, 여기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뭘 알아서 합니까?!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다고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본사 비서실장님으로부터 전화받았습니다. 실장님 얼른 복귀하시라고 전하랍니다.”
“지금 여기서 그게 할 말인가요? 당신이 안전교육, 직무교육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 없을 거 아닙니까?”
“저도 전임자 때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석 또한 할 말을 잃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모두가 피해자.
하지만 생명이 꺼져가는 그녀를 보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던 현장을 보니 태성의 마음이 더욱 더 격해진다.
‘현지 브로커? 알아서 해결해? 해결이 전혀 안 되고 있잖아!’
이건 해도 너무했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치료라도 받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시골에서 서서히 죽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태석은 엘성에 의해 베트남이 개발되고 발전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들은 것과 현지 사정은 천지차이였다.
이곳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1970년대였다.
대한민국 6.25전쟁 때, 우리나라의 우방국으로 군사물자를 지원해 준 잘 살던 우방국의 현재 수준은 완전 낙제점 수준이었다.
그리고 산업 재해자에 대한 처우는 아예 없느니만 못했다.
화가 단단히 난 태석이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채, 그녀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잠시 둘만 있게 해주셔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준다.
태석이 환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팜 탐빙씨.”
그녀가 힘 없는 눈을 깜박이며 태석을 바라보았다.
“정말 죄송해요. 엘성그룹에서 나온 김태석이라고 해요. 팜 탐빙씨랑 저는 동갑이라고 들었어요.”
태석은 침을 삼킨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위로 한마디 못 들으셨죠? 저희 그룹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해 주셨는데, 이런 재해를 겪으시고 정말 많이 힘드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너무 늦게 왔어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뚝뚝 흐른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서 스르르 감기는 눈.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을 잃는다는 그녀가 지금 또 의식을 잃은 것이다.
맞는 골수를 구하지 못해, 아니 그 이전에 수술 받을 돈이 없어 집에서 죽어가는 그녀.
태석이 속으로 무언가를 외친다.
그러자 미지의 문이 나타난다.
태석이 그 문을 열었다.
양복, 캐주얼, 구두, 신발 등이 보관되어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밑에 크리스탈 물병. 그 이름은 엘릭서.
1/5이 차 있는 크리스탈 물병의 입구를 열고 그녀의 입에 조금씩 넣기 시작하는 태석.
‘좋아지실 거예요. 그러니 다 용서하세요. 정말 죄송해요.’
* * *
태석이 유라와 함께 귀국했다.
그러자 송창식 비서실장이 김태석을 모시러 인천공항까지 직접 찾아왔다.
“비서실장님 나오셨습니까?”
“도련님, 회장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네. 각오 하고 있습니다.”
회장실.
김창모 회장이 태석을 불러놓고 처음으로 고함을 질렀다.
“미전실장!”
“네.”
“내가 현장 가지 말라고 했지? 국토교통부 장관 온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 전화를 끊고 피해자를 만나러 가? 그것 때문에 약속을 미뤄야 했잖아!”
“죄송합니다.”
그때, 회장실로 걸려오는 전화.
회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구야?”
그러자 전화를 받은 태석의 동기 김 비서가 말했다.
– 회장님, 국토부 장관 전화왔습니다.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네. 국토부 장관님, 김창모입니다.”
– 아, 회장님. 손주님 소식 들었어요.
“네. 그러셨군요.”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에 회장이 소리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켰어? 내가 그래서 조심하라고 했거늘…’
태석에게 향하는 싸늘한 눈총.
그런데 의외로 국토교통부 장관의 목소리가 밝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말을 이어갔다.
– 손주분이 다녀가시고 기적이 일어났다던데요? 혈액암 말기였던 여성분이 싹 나았다고. 그 분이 직접 오셔서 사과하고 난 뒤에 의식을 차렸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그래서 현지에서 아주 난리라네요.
“네?”
– 손주 분이 피해자 직접 만나 뵙고 용서 빈 적은 처음이라고도 하더군요. 특히 해외기업에서는 처음 있는 사례라면서 현지 언론에서는 엘성그룹 본 받자, 선진국 대한민국의 정신을 본받자면서 대서특필 되었다고 하네요.
아~ 지금 들려온 소식인데 베트남 정부쪽에서도 저희 청와대 비서실장 쪽으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국빈방문 때 회장님과 손주 분인 김태석군도 같이 방문해주었으면 좋겠다고요. 일단 자세한 것은 청와대 비서실쪽에서 또 연락을 드릴 겁니다. 일단 내일 다시 한 번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합시다. 회장님.
“네. 알겠습니다. 장관님.”
말도 안 되는 행운.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며 김창모 회장이 김태석을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해도 좋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손주의 영문 모를 기운.
그야 말로 행운의 여신.
회장이 자신의 손주의 이름을 불렀다.
“태석아.”
“네. 할아버지.”
“뭐 먹고 싶니?”
“네?”
“할애비랑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태석의 경영철학 (2) – 베트남 > 끝
ⓒ 제이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