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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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는 일 >
태석의 첫 출근.
그리 친하지 않은 장동훈과 같은 부서.
장동훈은 태석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왔어요?”
“네. 잘 지내셨죠?”
“동기인데 말 트는 게 어때요?”
“형인데, 제가 어떻게 말을 놓아~요.”
“그냥 말 편하게 하자. 우리 동기잖아. 호칭만 형으로 하고, 친근하게.”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해.”
“네. 알았어요.”
“그래. 숙소는?”
“어제 근처 고시원 하나 잡았어. 단기 방 얻기는 좀 애매해서.”
“말 편하게 하니까 좋네. 나는 근처 하숙집으로 잡았어.”
“가끔 술 한잔 할까요?”
“좋지. 요짜는 빼고.”
“응.”
서로에 대한 탐색이 끝나고.
시간에 맞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둘이 배정된 곳은 엘성그룹 인사팀 중에서도 HRM쪽이었다.
때마침 사무실 안에 있던 선배 둘 중 하나가 신입사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 앉아요.”
“네.”
“저희 봤을 텐데, 인적성 평가에서 기억 나요?”
여성 선배의 말에 태석이 기억을 떠올렸다.
세미 정장 차림. 그리고 저 목소리.
생각이 났다. 그래서 말했다.
“작년에 입사하신 김정미 선배님이시죠?”
“우와, 기억력 엄청 좋다. 이름까지 기억하네?”
“아, 과찬이세요.”
그러자 옆에 있는 남자 직원이 태석과 장동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정미씨, 뭐가 그리 즐거워? 무슨 일 있어?”
“아, 여기 신입사원이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서요.”
“그래? 내 이름도 기억 하나?”
태석은 자신의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누구였더라? 아… 어제 컴퓨터로 확인했었는데…’
그런데 옆에 있던 장동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강진유 대리님 아니십니까?”
아니었다. 그 이름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남자 직원이 장동훈에게서 김정미에게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친구 뭐라는 거야?”
그러자 김정미가 능청스러운 얼굴로 선배에게 말했다.
“아, 왜 그러세요? 기억 못할 수도 있죠.”
“아니, 아예 말을 말던가.”
선배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김정미가 씩 웃었다.
“후후. 강 대리님, 진짜 너무~ 웃기세요.”
태석은 이게 서로 농담하는 것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약간의 시간.
그리고 약간의 힌트.
덕분에 남자 직원의 이름을 기억해낸 태석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저 알고 있습니다.”
“그래?”
“14년에 입사하신 강민율 대리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삐진 척 했던 강민율의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이건 진심이었다.
“후후, 너 이름 뭐라고 했지?”
“김태석입니다.”
“김태석! 그래! 내가 넌 점 찍어 논다.”
“감사합니다.”
선배들은 사소한 것에 좋아하고, 사소한 것에 삐졌다.
그건 대기업이든, 노가다 판이든 똑같았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이런 것들이 있다.
강민율 대리가 기지개를 펴며 모두의 앞에서 말했다.
“어휴~ 이제 좀 빡센 것은 다 끝났네. 이번 달은 특채만 하면 되지?”
“네. 대리님, 좀 쉬세요. 제가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여기 신입들 가르칠게요.”
“대충 해. 어차피 인사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후후, 대리님이나 저나 둘 다 전략기획실 지원했다가 인사로 남았잖아요. 여기 이 친구들도 혹시 알아요? 여기로 다시 지원해서 올지?”
그 둘의 말에 태석과 동훈의 낯빛이 변했다.
‘우리가 전략기획실 지원했던 것을 알고 있었어?’
하긴 여기는 인사팀이었다.
거기다 엘성의 두뇌라고 불리는 그룹 본사.
막강한 파워를 가진 곳.
“야, 너희들, 개선 평가서? 그거 개판으로 적어도, 어차피 우리가 제일 먼저 본다? 알지?”
“아…”
이미 다 전략기획실의 의도까지 알고 있는 선배들.
더구나 같은 루트를 타 본 선배들이기에.
전략기획실 지원을 했던 선배들이었기에 한 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났다.
‘역시 여기는 엘리트였어.’
김정미 사원은 1년 선배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작년에 입사했어요. 처음에는 전략기획실 가려다가, 여러 직무 해보니까, 인사 쪽이 더 전망이 있어보여서 올해 이쪽으로 지원했고요. 여러분들처럼 상반기 입사인원이에요. 잘 부탁해요.”
“네!”
“사실 지금이 가장 한가하면서도 바쁠 시기에요. 공채 시즌이 전부 끝났고, 특채로 지원하는 경력직 인원들만 관리하면 되거든요.”
“네.”
엘성 그룹에서 인사 직무는 크게 2가지로 나뉘었다.
그녀는 태석과 동훈을 향해 물었다.
“혹시 HRM에 대해 알아요? 이 정도는 공부해 왔어야 하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동훈이 나섰다.
“휴먼 리소스 매니지먼트의 약자로, 인적자원관리를 뜻합니다.”
“하는 일은요?”
“… 사람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걸론 부족한데?”
태석은 한쪽 손을 들었다. 그녀에게 말해도 되냐는 제스처였다.
“네. 말해봐요.”
“HRM은 보통 공채, 특채 등 채용과 관련된 직무교육(OJT), 그리고 사원들을 재배치하는 직무 변경 등을 담당하고, HRD는 신입 연수, 사이버교육, 기타 OJT를 담당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HRM으로 공채, 특채 등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어제 막 배정 되서 공부할 시간은 얼마 없었을 텐데, 잘 준비해왔네요.”
“아닙니다.”
“그럼 일단 쉬고 있어요. 저기 책상 2개 있죠? 거기에 앉아서 짐도 놓고, 몸도 풀고.”
“넵!”
“20분 뒤부터 일 시켜볼게요.”
태석은 씩씩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야만 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남들과 시작점이 다르니까.
반면, 태석을 보며 장동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친구가 대단하구나. 1등 한 게 그냥 한 게 아니었어. 어디 학교지? 서운대인가? 고연대? 얘도 외국계인가?’
20분 뒤.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는 시작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뭔가 대단한 일을 시키진 않았다.
“여기 경력직 지원자 이력서 띄워둔 건데, 확인해서 3년 미만인 사람들은 추려줄래요?”
“네.”
경력직 접수인원이 무려 3, 115명.
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긴 엘성그룹.
국내 최고의 기업이다.
월급이 최고는 아니지만, 일단 세계에서 먹혀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거의 모든 산업군에 진출해있기도 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대기업.
그나저나 파일 양이 엄청났다.
태석은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선배님, 저 혹시 이거 다 해야 하는 건가요?”
“응. 당연하죠. 그거 내일까지 해야 될 양이에요.”
“접수인원이 엄청 많네요.”
“후후, 경력직은 별 것도 아니에요. 신입사원은 4~5만명은 기본인데?”
“그 정도나 되나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둘 다 파이팅! 분류한 파일들은 모아서 내 사내 메일로 보내요. 사내메일 다 만들었죠?”
“네!”
“그럼 계정 적으면 내가 우리 부서로 돌려놓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건 강민율 대리도 마찬가지였다.
태석은 그들의 일이 왜 과중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문의 전화가 계속해서 빗발친다.
연봉은 어떻게 되나요?
준비해야 될 건 무엇이 있을까요?
기숙사나 아파트는 제공되나요?
지방 말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조건은 없나요?
거기에 외국어로 묻는 질문까지.
기타 등등.
굉장히 단순한 업무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면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이해했다.
단순히 일을 떠 넘긴게 아니라, 그들 또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 뿐이니까.
장동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태석아, 둘이 분량 나누자.”
“어? 어떻게?”
“내가 위에서부터 12개 유형 할 테니까, 네가 13번째부터 23번째까지 해줘. 숫자 대략 세보니까, 내가 1600명, 넌 1500명 정도 될 거야.”
“알았어.”
지원 계열은 25개.
각 계열사에 경력직으로 지원한 3115명의 사람들.
컴퓨터 화면에는 자체개발 엘성그룹 입사지원 프로그램이 떠 있었고, 그 곳의 유형 구분란에는 25개 직렬이 나와 있었다.
그 25개 직렬을 클릭하면, 엑셀시트처럼 각 계열로 지원한 명단과 간단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고 장동훈이 반반씩 하자고 말 했던 것.
장동훈은 앞서 같이 지냈던 룸메이트에 비해 똑똑했다.
그리고 앞서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여유가 느껴졌다.
‘첫 인상에 비해서는 사람 하는 게 괜찮네.’
태석은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했다.
마음을 줘도 될 것 같은 사람. 그리고 같이 일해도 손해 보지 않을 사람으로 그를 정의했다.
태석은 자신에게 할당된 직렬을 확인해보았다.
13번째부터 하나하나 눌러보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7번째 직렬을 누르자, 영문 이름만 나온다.
알고 보니 해외 연구인력.
‘모르고 그런 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인원 수까지 세서 자기가 1600명 정도고, 나는 1500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혹시 몰랐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형! 여기 직렬에 지원한 사람들 문서, 전부 영어로 되어 있는데, 형이 하면 안 될까?”
“응? 너 영어 못 해?”
“어. 나 영어 잘 못해.”
“뭐? 거짓말 마.”
“영어 진짜 못하는데…”
“그럼 바꾸자. 내가 뒤쪽 할게.”
“어. 고마워.”
태석은 자신이 오해했음을 느꼈다.
그는 진짜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한다.
태석은 그래도 그의 앞에서 실수를 안 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조금이라도 공격적으로 나갔으면 서로 마음이 틀어지지 않았을까?
역시 사람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2시간이 지났다.
수작업으로 확인해야 되는 것들이 있어서 300여명 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엑셀 시트처럼 바로바로 클릭해서 걸러지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첨부파일을 하나하나 열어서 이력서를 확인해야 되니 머리가 아프다.
“쉬면서 하자. 첫날부터 일 빡시게 하면 탈 나.”
“네.”
“담배 태우는 사람?”
“저 피웁니다.”
태석은 손을 들까 잠시 고민했다.
‘담배 인맥도 쌓긴 쌓아야 하는데…’
아니다. 굳이 몸에 해로운 담배를 하면서까지 인맥을 만들 필요는 없다.
몸이 최우선이다.
건강이 최우선이고.
이미 한번 허리를 다쳐본 태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혼자 남은 태석.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태석은 담배를 태우러 장동훈과 강민율 대리가 나가고, 김정미 선배가 화장실에 갔을 때, 그는 메모장을 꺼내며 실무를 하면서 느꼈던 단점을 하나하나 적어내려갔다.
1. 경력직 지원자에 경력사항 몇년인지 기입란 만들기.
‘이런 점 하나하나가 쌓이면 괜찮은 개선 보고서가 될 거야.’
직접 일을 해보고, 비효율적인 점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려는 점.
이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일단 사람들은 익숙해지면, 그 익숙함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일을 하는 사람 중에는 비효율적인 일을 정말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태석이 그랬다.
그는 평소 효율적인 업무를 강조했다.
목수 일을 했을 때도, 도장일을 했을 때도 항상 최적의 동선, 안전을 확보한 가운데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연구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경력년수를 추가해달라는 내용을 메모장에 적어두며 미소를 지었다.
* * *
같은 시간.
건물 1층 외곽 흡연부스.
담배를 태우러 간 강민율은 장동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때? 할만 해?”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다 모르지. 하다보면 익숙해져.”
“네.”
“그나저나 태석이 그 친구는 어때? 연수원 때 친했나?”
“친하면 친하고, 아니면 아닌 적당한 정도인 것 같습니다.”
선의의 거짓말.
서로 사이가 나쁘다고 하면,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도 있고, 개개인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대답을 끝낸 장동훈의 말에 선배가 반응했다.
“아, 그래?”
“그냥 다른 팀이고 숙소 위치도 달라서, 가끔 만나는 정도였는데, 지내보니까 잘 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1등 했겠지?”
“아… 네.”
조금은 아쉬웠다. 1등이란 위치.
내가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장동훈은 아쉬운 마음을 날려보냈다.
최선을 다 했지만 5등.
그게 자신의 위치.
그가 상념에 빠졌을 때, 선배가 담배 연기를 뿜더니 말을 이어갔다.
“김태석 있잖아.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것 같애.”
“네?”
“아니, 학벌 하나 없이 학점은행제로 들어온 친구가 이렇게 승승장구 하고 있잖아. 그렇다고 경력이라곤 쳐주지도 않는 노가다 경력 뿐인데.”
“… 그랬었습니까?”
“뭐야? 몰랐어?”
“아, 네.”
“그 친구한테 잘 해줘. 네가 형이지?”
“네. 나이는 제가 많습니다.”
“아까 대충 들어보니까, 영어 때문에 조금 신경 쓰는 것 같던데. 우리그룹 올해부터 영어 성적 안 보는 거 알지? 그런 부족한 점이 보이긴 하지만, 티 안 나게 동기끼리 서로 잘 하고.”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장동훈은 생각했다.
여기 선배들이 참 성격이 좋다고.
그리고 사람들을 잘 만났다고.
물론 김태석도 그 좋은 사람 중 하나라고.
처음으로 하는 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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