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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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품 >
지점장의 칭찬이 방금 전 같은데, 태석과 민성은 이미 강원도 삼척이었다.
무려 3시간 20분.
겨우 고객 한 분을 만나기 위해 투자한 시간.
고객과의 약속시간이 끝났을 때는 벌써 오후 9시.
김민성 팀장이 태석을 향해 묻는다.
“찜질방? 아니면 호텔?”
“여기 근처는 해수 찜질방이 유명하다던데요.”
“마지막 날을 찜질방? 후회 안 하지?”
“네!”
그래서 호텔 대신 찜질방에 입장한다.
찜질복을 입기 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는 두 사람.
이미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
선배가 태석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한다.
“야!”
“네?”
“너 왜 이렇게 크냐?”
“에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크크, 네가 부러워서 그런다. 다 씻었으면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올라와. 나는 먼저 가서 맥주 시켜놓고, 군계란 까고 있을게.”
“아, 네.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태석은 씩 웃었다.
덜렁덜렁.
남들에 비해 꿀리지 않는 크기.
태석은 수건으로 물기 묻은 몸을 닦으며 생각했다.
‘조상님, 정말 고맙습니다.’
* * *
태석은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찜질방에서 쉼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새벽.
토굴방에서 잠을 자고, 다시 삼척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헤어짐이 아쉬운지,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남 터미널 앞.
아쉬움. 하지만 헤어짐의 순간.
태석이 먼저 선배와의 작별 인사를 건넨다.
“선배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뜬금 없이 손가락을 접으며, 태석과 다시 만날 날을 세는 선배.
“다시 오려면 8개월 남았나?”
“… 선배님.”
“8개월 뒤, 전략기획실 떨어지게 되면, 다른 데 고민하지 말고, 우리 지점으로 와. 같이 영업하자. 언제든 받아줄게.”
“네. 그렇게 할게요.”
군대에서도 헤어져봤고, 공사판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던 태석.
정들었던 사람과 떨어지는 것에 익숙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못했다.
서로 말은 안 해도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두 사람.
그 관계를 선배가 먼저 정리한다.
“태석아, 이왕 결정한 거, 쿨하게 가라. 미련 갖지 말고.”
“네. 진짜 갑니다.”
태석은 뒤돌아서자마자 2개월간 들었던 선배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건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을 다니며, 맛 집도 같이 다니고, 때로는 호텔에서, 찜질방에서, 같이 목욕도 하며 고객에게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이 고객은 뭐가 필요할까요? 이렇게 같은 고민을 하던 녀석인데…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 같이 진심을 담아 일했던 녀석인데…
그런 놈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떠나간다.
그래서일까?
선배는 아쉬운 마음에 후배의 이름을 불렀다.
“태석아!”
“네?”
그리고 그와 함께 다니며 계약했던 보험에 대한 책임을 지려한다.
“네 이름으로 계약한 건은 내가 승계해서 관리하고 있을 테니까, 이쪽은 걱정하진 마라. 알았지?”
태석은 그런 행동을 하는 선배가 고마웠다.
그래서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끝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배와 후배.
후배와 선배.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
“감사하다는 말 하지 마. 내가 오히려 감사하니까.”
“네. 선배님.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
서로 다른 목표는 결국 그들의 갈 길을 운명처럼 갈라놓았다.
이제 당분간 만날 수 없는 선배와 헤어진 태석이 고속버스에 오른다.
고향, 천안으로 가는 청년.
그의 앞에 나타난 새로운 창.
보험료 수당만 2, 000만원이 넘어서 그런지, 보상이 좀 크다.
[Point 40을 획득하였습니다.]* * *
집에 내려왔다.
이제 곧 이사 가는 날.
엄마와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하고, 아저씨네 집으로 이사 가기로 한 날짜가 바로 내일이었다.
작은 집.
옷장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태석은 아버지의 옷을 정리하는 엄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이제 옷들 버려야 되지 않아?”
“버려야지. 헌옷 보관함에 넣고 와.”
“응.”
그런데 옷 안에 두툼한 지갑이 보인다.
아버지의 지갑.
그리고 그 안에 든 사진.
태석이 그것을 보며 말했다.
“엄마! 이거 우리 가족 사진인데?”
“어?”
강혜정은 아들이 건네준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태석이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촬영한 사진.
지금 보기에는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녀와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아들의 입학식에 참가하기 위해 몰래 빠져나온 김형곤의 모습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 엄마와 아빠의 양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
그는 어린 태석.
그 사진을 보며 청년 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엄마.”
“응?”
“이거 내가 가지고 있어야겠지? 아저씨 보시면 싫어하시겠다.”
“그런가?”
“당연하지. 엄마가 아빠 사진 가지고 있으면 아저씨가 좋아하겠어?”
태석의 말에 강혜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 사진은 우리 아들이 가지고 다니는 게 낫겠다.”
태석은 엄마의 말대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을 자신의 지갑 안에 챙겼다.
그리고 지갑 안에 든 또 다른 사진.
이번엔 흑백사진이다.
건물 앞, 한 명의 아저씨와 40여명의 아이들이 함께 있다.
태석이 말했다.
“엄마? 이 아저씨, 결혼식 때 주례하셨던 그 고아원 원장님 아니야?”
“아니야. 그 원장님 아버지셔. 그때 원장님은 1970년대니까 태석이 네 나이 또래였겠지?”
“아…”
태석은 저번에 주례를 섰던 고아원 원장님의 아버지가 여러 아이들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갑자기 집 안으로 아저씨가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붙어 있는 두 모자(母子)를 향해 말했다.
“둘이 뭐해요? 나 모르는 비밀 있어요?”
김한울 아저씨는 씩 웃었다.
그리고 태석이 보고 있는 사진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아들! 나하고 형곤이 사진 보고 있었니? 나도 그 사진 있는데.”
고아원에서 어릴 적 찍은 사진.
“아저씨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지갑에서 똑같은 흑백사진을 꺼내놓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원장님이 나랑 형곤이 들어온 바로 다음 날에 찍은 사진이야. 1970년, 그땐 참 배고팠지. 우리 원생 누나, 형들도 다 표정이 안 좋지? 배고파서 그래.”
아저씨 말대로 아버지와 아저씨의 표정은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렇네요. 그땐 참 살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태석은 추억에 잠긴 아저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이 사진은 제가 가져도 될까요?”
그러자 김한울이 태석을 향해 말했다.
“왜? 잘 생긴 새 아빠 사진 가지고 싶어서?”
태석은 생각했다.
이 아저씨는 진지하면서도 가끔 장난을 너무 친다고.
그래서 약간은 반항하기로 했다.
“아니요? 우리 아빠 어렸을 때 사진이 이것 밖에 없어서 그렇거든요?”
그런데 그 반항도 잘도 받아치는 김한울 아저씨.
“아빠와 아들이 같은 사진 가지고 있으니까, 뭔가 짠한 부자 사이 같지 않아?”
“네?”
“아니, 그렇잖아. 태석이가 아빠인 나랑 같은 비밀을 갖고 있잖아.”
“…… 이상해요.”
“큭큭.”
아저씨의 농담이 끝나고, 태석이 옷장 안에서 아버지의 짐을 마저 꺼내서 헌옷보관함에 버리려는데, 김한울 아저씨가 엄마를 향해 말했다.
“괜찮겠어요? 유품이잖아요.”
“이제 잊어야죠.”
“꼭 안 잊어도 돼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옷, 귀중품, 그리고 사진들을 모두 정리하기 시작하는 강혜정.
그것을 보며 태석은 실감했다.
엄마가 정말 아저씨랑 결혼했다고.
이제 한 가족이 되었다고.
그래서일까?
김한울 아저씨는 엄마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후후, 저 사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아버지는 뭐하고 계실까? 지금쯤 어디에서 살아계실까 하고.”
김한울의 말에 강혜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았다.
“찾아보진 않았어요?”
“어릴 땐 경황이 없었죠. 혜정씨도 알잖아요. 1970년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누가 누굴 찾아주고 그러겠어요?”
“그랬죠. 그때는 다 어려웠죠.”
“물론 다 어렵진 않았어요. 저희 집은 굉장히 부자였어요. 제가 고아원 오기 전에 살던 집에 냉장고가 있었다니까요.”
“아, 그때 정말 냉장고가 있었어요?”
“그럼요. 우리 집이 얼마나 잘 살았는데요.”
“후후, 형곤씨도 항상 그 얘기 하곤 했는데.”
“크크, 형곤이도 자기 집 원래 잘 살았다고 항상 말하고 다녔었죠. 언젠가는 엄마, 아빠가 자기 찾아올 거라면서. 저하고 항상 내기했었거든요. 누가 먼저 찾아오나. 뭐, 결국, 둘 다 아무도 안 왔었지만.”
그의 씁쓸한 말에 강혜정이 다시 물었다.
“한울씨가 부모님 먼저 찾지 그랬어요?”
“성인 돼서는 많이 찾고, 수소문 하고 했죠. 의사 된 이후에도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그런데 못 찾겠더라구요. 세상이 너무 급변했어요. 제가 어릴 때와 성인이 되었을 그 때는 세상이 너무 달라진 거예요. 거리도, 풍경도, 사람도. 전부.”
“……”
그의 말에 혜정과 태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씁쓸한 추억.
그 기억은 김한울 아저씨 혼자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월의 인고를 이겨낸 김한울은 씩씩했다.
“하하,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요?”
“뭔데요?”
“저나 형곤이 둘 다, 원래 이름을 몰라요. 지금도요.”
“네?”
“저희 둘 이름을 고아원 초대 원장님이 저희 이름 다 지어주셨어요. 주례 서신 분 아버님이요.”
“아, 그래요?”
“이름만 알면, 이름만 기억했다면 진짜 가족들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결정적이었어요. 너무 어릴 때 부모님을 잃어버려서.”
“……”
“신기하죠? 아직도 제 원래 이름 모른다는 거.”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래야죠. 이제 대충 정리된 것 같은데, 나머지는 내일 오는 이삿짐센터 직원들한테 맡기고, 가족끼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네.”
“태석이, 너도 같이 먹어야지?”
“네. 아저씨.”
“그래.”
김한울은 아직까지 마음을 열지 못한 새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티를 내진 않았다.
녀석은 언젠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불러줄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하며, 지금은… 아니, 오늘은… 기필코 듣고 싶다.
* * *
김한울은 근처에서 가장 좋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족들을 데려갔다.
평소 맛있는 것을 못 먹었던 혜정씨와 그 동안 회사 다니느라 고생한 태석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태석이 녀석이 갑자기 체크 카드를 꺼내든다.
“야! 아빠가 계산하려는데.”
“아저씨, 저도 돈 이제 많이 벌어요.”
“네가 벌어봐야 얼마나 번다고, 아빠는 한 달에 800도 넘게 벌어.”
“후후, 저 저번 달에 아저씨, 2배는 더 벌었어요.”
“거짓말 하지 말고.”
“진짜에요. 그러니까 오늘은 제가 살게요.”
끝내 계산을 하는 새 아들이 야속한 김한울.
그는 오늘 밥을 사며, 태석에게 말하려고 했었다.
‘밥 사줬으니까! 아빠라고 불러봐. 응?’
그런데 그 기회를 앗아간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끝까지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른다.
‘짜식.
[아빠!]그 한마디가 어렵냐?’
돈을 떠나서, 사람과의 감정 문제.
이제는 가족인데, 여전히 거리를 두는 녀석.
그 녀석은 뷔폐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마구마구 퍼오며, 3명이 앉은 테이블 위에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양을 퍼왔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응?”
“우리 하나씩 다 먹어보자.”
“그래.”
“이제 몸 괜찮은 거지?”
“응. 의사선생님이 깨끗하대. 암세포 하나 없이 다 깨끗하대. 그러니까 걱정 마.”
“응. 잘 됐다.”
엄마만 챙기는 태석이 얄미운 김한울은 와인 한 병을 시키더니, 술을 따르며 입 안을 축이며 생각했다.
‘어휴, 얌체 같은 놈. 내 마음도 모르고!’
그런데, 그때 태석이 자신의 본심을 말한다.
“아저씨.”
“왜?”
“올해 안에는 아… 빠라고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어… 어?”
녀석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래서 김한울은 놀랬다.
그가 솔직하게 말해서일까? 그의 마음에 울컥한 감정이 끼어들었다.
“죄송해요. 아직 마음 정리가 덜 돼서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태석의 말에 김한울이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 태석을 몰아붙인 건 아닌가 하고.
‘그래. 너무 나만 생각했어. 태석이한테는 시간이 필요 했을 텐데.’
그래서일까?
그의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런 모습을 보며 태석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가 간절히 원한다고.
아빠라고 불리기를.
그러나 마음이 아직은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말했다.
“아저씨? 울어요?”
그 말을 듣고, 강혜정은 미소를 짓고.
김한울은 글썽거렸던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결혼한 아내 옆에서 새 아들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야. 안 울어! 내가 왜 우냐?”
아버지의 유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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