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55)
=======================================
유전자 검사 (3) >
월요일 아침, 태석이 아침부터 초등학교 앞에서 신입사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밖에 나와 있는 태석이 안쓰러웠는지 들어오라고 말했다.
“밖에 추워. 들어와서 기다려.”
“아니에요. 괜찮아요. 기사 아저씨.”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월급 받으면서 하는 일인데요. 당연히 해야죠.”
버스 기사 아저씨는 청년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차량 앞 문을 닫았다.
그 때, 앞 차량에서 한 여성이 태석을 향해 말했다.
“태석씨!”
“네. 김정미 선배님.”
“우리 쪽은 다 탔어.”
“네. 저희 쪽 아직 2명 덜 탔습니다.”
“그래? 난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다 타면 전화 줘.”
“네. 알겠습니다.”
* * *
지난 주, 속초 연수원에서의 첫 모임.
2018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로 합격한 사람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 사람들.
연수원장님을 중심으로, 교수요원으로 활동하는 선배들과 신입사원들을 양성하는 지도 선배들.
이렇게 두 조직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당연하달까? 태석은 그 중 막내.
그래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인사팀에서 같이 근무하던 1년 선배.
“태석씨, 오랜만이에요.”
“네. 김정미 선배님.”
“후후, 진짜 놀랐어요. 활약이 대단하던데요. 아랍어는 또 언제 배웠어요?”
“기초만 할 줄 알아요. 운이 좋았네요.”
“B동이죠?”
“네. 선배님은 C동이시죠?”
“그렇죠. 저는 여직원 담당이니까. 한 달 동안 같이 잘 지내봐요.”
“네. 선배님.”
* * *
다시 현재.
앞에 버스에 타고 기다리던 김정미 사원이 태석에게 전화로 묻는다.
– 아직도 안 왔어요?
“네. 1명 덜 탔습니다. 아직 5분 남아서, 전화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다른 버스는 다 탔거든요. 빨리 연락해 봐요.”
“네.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2019년.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
태석이 전화를 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다. 나이도 같고. 설마 아니겠지?
“강민용씨?”
– 네?
“어디세요?”
– 집인데요.
“오늘 연수원 이동 차량 탄다고 신청하시지 않으셨나요?
– 아, 엄마 차 타고 갈거에요.
“… 네. 저 혹시 상반기에도 합격 하셔서 연수원 오시지 않으셨나요?”
– 아, 네! 맞아요. 왜요?
“아닙니다. 그럼 연수원에서 뵙겠습니다.”
태석은 쓴 웃음을 지었다.
룸메이트였던 그 놈이었다.
그놈의 빽.
국회의원 아들 놈이라 그런지, 퇴사한 놈이 기어코 엘성 그룹에 다시 발을 들였다. 태석이 고개를 저으며 전화를 들었다. 1호차에 탄 김정미 선배한테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선배님, 저희 차량 모두 탑승했습니다.”
– 그래요. 출발할게요.
“네.”
전화를 끊고, 기사 아저씨를 향해 태석이 말한다.
“앞 차, 따라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응. 알았어.”
앞좌석과 앞좌석 사이 조그마한 통로에 서서 신입사원들을 쳐다보는 태석.
자신을 쳐다보는 똘망똘망한 눈이 무려 40쌍.
이제 막 입사한 젊은 청춘들.
그들은 태석을 보며, 무언가 기대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태석은 자신과 오버랩 되는 김민성 대리를 떠올렸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자신이 김민성 대리를 쳐다볼 때,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뭐든지 다 할 줄 알 것 같았던 선배.
그러나 자신이 그 위치에 서 보니, 좌불안석.
선배는 당당했고, 멋있어보였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자신을 향해 무언가 바라는 눈빛.
그래서일까?
태석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정면을 바라보며, 좌, 우 고르게 시선을 분배하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작년에 입사한 김태석 사원이라고 합니다. 경력은 짧지만, 여러분들의 지도 선배로 발탁이 되어, 4주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기 소개를 하면서도, 한명, 한명 소외되는 사람 없이 눈빛을 마주친 태석의 행동에 모두가 눈인사로 응답하며, 태석이란 존재에 반응했다.
어느 여성 신입사원이 손을 들었다.
“선배님! 질문 드려도 될까요?”
드디어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용기를 낸 여성.
그녀를 향해 태석이 방긋 웃었다.
“네. 말씀하세요.”
“선배님은 직무, 어떤 것을 신청하셨나요?”
하긴 엘성그룹에서 이런 질문은 가장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엘성그룹은 공채로 들어온 신입사원의 경우 직무를 정해주지 않는다. 성적에 따라, 적성에 따라 자신에게 알맞은 직무를 소개해주고, 그 중에서 지원하게 만든다.
태석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제 직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직무는 기획이죠.”
“네?”
“저는 전략기획실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연수원에서 5등 이내에 들면, 전략기획실에 지원할 기회를 얻게 되죠. 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 1년 동안 여러 직무를 돌며 평가를 받게 되죠. 지금도 아직까지 평가 대상이고요.”
태석의 대답에 웅성거리는 후배 사원들.
그룹의 꽃이라는 전략기획실이기에, 태석의 행보가 멋있게 보였던 것.
호기심 많은 신입사원들이 하나 둘 손을 드는 가운데, 태석이 가장 앞에 있는 녀석을 가리켰다.
그러자 얼굴이 하얀 남성 신입사원이 미소를 머금은 채, 태석에게 물었다.
“선배님! 전략기획실을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고 계신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글쎄요. 제가 한 노력들이 여러분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알고 싶나요?”
그러자 호응하는 후배들.
『알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태석을 선배로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그게 바로 선배.
태석은 자신이 그동안 생각했던 가치관, 행동 등을 모두의 앞에서 밝혔다.
“저는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어요. 그건 사람과의 관계에요.”
태석의 말에 신입 사원들이 조용히 경청한다.
“기업은 조직이에요. 조직은 어떤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을 뜻해요. 그 조직이 잘 움직이려면, 그 조직을 이루는 단위들이 서로 잘 융합하고, 움직여줘야겠죠. 그 단위들은 알다시피 사람이겠네요.”
태석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람과의 관계는 때로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하고, 링겔만 효과처럼 역효과를 내기도 해요.”
“링겔만 효과가 뭔가요?”
태석은 자신의 지식을 꺼내들었다.
자신의 전공이 바로 경영. 그래서 이 분야는 사실 전문분야.
비록 학점은행제지만, 그렇다고 공부에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그의 지식.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여럿 모일수록 그 성과는 더욱 더 떨어지는 현상을 말해요.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태만이라고도 부르고 있죠. 다들 경험이 있을 거에요. 조별 활동을 하게 되면 누군가는 열심히 하는 반면, 누군가는 방관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죠.”
그러자 한 남성이 생각했다.
‘맞아. 대학에서 조별 과제 하면, 항상 조장만 일하고, 어떤 년은 아프다는 핑계로 잠수타고, 어떤 놈은 치킨이나 피자 사오면서 돈으로 때우려 하고.’
태석이 이어서 말한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잘 돌아갈 수가 없어요.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거든요. 이럴 때는 자신에게 여유가 생기면 상사를 서포트 해주세요. 후배직원을 도와주세요. 동기에게 도와줄 일 없냐고 물으세요. 제가 전략기획실에 가기 위해 하는 행동은 바로 이런 식으로 조직을 잘 돌아가게 만드는 거에요. 답변이 되었나요?”
그러자 한 여성이 또 손을 들었다.
“그럼에도 정말 싫은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정말 싫다면 무시하는 게 답이겠죠? 그래도 그 관계까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시라는 말 밖에 해드릴 수가 없겠네요. 사람과의 관계는 어느 무언가로 딱히 정의하기엔 힘든 게 사실이잖아요. 이 정도면 답변이 되었을까요?”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 이후에도 질문세례는 이어졌다.
시덥지 않은 질문도 많았다.
그럼에도 태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 친구는 아직 없습니다.』
『나이는 노코멘트 할게요. 나이가 중요하진 않죠?』
『여러분의 지도선배로서 각종 집합, 규율, 행동 등에 대한 통제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애로사항도 들어주고요. 제가 직접 교육하는 과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글쎄요? 개인적으로 사내 연애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서로가 좋다면 어쩔 수 없겠죠? 아직까지 저희 엘성그룹 내에서 사내연애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었기 때문에…』
* * *
같은 시각.
김창모 회장은 회장실에 있었다.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식음을 전폐한 채, 업무도 미뤄두고 과거의 추억을 가슴속에 삼키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
아들의 죽음이란 소식이 절망적으로 다가왔을 그였다.
차라리 못 찾았으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일까?
그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 화면에 나온 인물은 현재 연수원 지도 선배로 파견 가 있는 김태석 사원.
‘이 녀석이 내 진짜 친 손주인가?’
너무나 불행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이 인사기록에 드러나니, 마음이 아프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자신을 웃게 한 녀석이 자신의 손주였다니.
이런 아픈 과거를 숨기고 있었다니.
다행히 녀석은 밝고, 씩씩하고, 명석하게 잘 자라주었다.
비록 고등 교육의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핏줄 답게 스스로의 힘으로 전략기획실 자리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도전하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결과가 나온다.
녀석이 손주인지, 아닌지 밝혀진다.
24시간이 걸리는 유전자 감식 결과.
비서실장이 그의 아내로부터 들었던 내용.
첫 번째 증거. 김형곤이란 사내가 부모를 잃어버린 곳이 부산이었다는 점.
두 번째 증거. 아들이 원래 살던 집이 냉장고가 있었을 정도로 잘 살았다고 말했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 자신처럼 크다는 거.
1970년에 집에 냉장고가 있는 집안은 거의 없다.
더구나 부산에서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점.
이 2개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거기까지 크다.
직접 봐서 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녀석과는 목욕탕에서 만났었으니까.
자신의 핏줄은 그래서 더 잘 안다.
회장은 녀석을 보니 다시 한 번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송 비서! 아직이야?”
– 죄송합니다. 아직 결과는 안 나왔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보겠습니다.
“확실하대, 아니래? 거기 연구원들은 뭐하는 놈들이야? 빨리빨리 안 돼?
– 죄송합니다.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습니다.
회장은 결국 참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모니터에 기록된 김태석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김태석 사원입니다.
“…….”
– 여보세요? 전화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
어제까지만 해도 녀석의 목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떨리는 회장.
그래도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김태석 사원, 회장이에요.”
– 네? 회장님?
“잘 지내죠?”
– 네. 잘 지냅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다.
“지켜보고 있어요. 어려운 일이나 애로사항 있으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요. 뭐든지 다 들어줄테니까.”
–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네. 말해요.”
– 제가 혹시 잘못한 게 있습니까?“
“아니… 전혀… 흑… 끊어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회장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동안의 고생했던 세월이 모두 보상 받는 것만 같았다.
‘이 것이 핏줄이라는 건가?’
그때, 울리는 회장의 스마트폰.
발신자는 당연히 송창식 비서실장이다.
“그래. 결과 나왔나?”
– 네. 바로 들고 가는 중입니다. 바로 회장실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오게.”
유전자 검사 (3) > 끝
ⓒ 제이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