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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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검사 (4) >
회장은 송 비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이 일 년 같은 기분.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 때문인지, 그가 비서실과 연결된 호출벨을 눌렀다.
– 네. 회장님.
“서 비서, 얼음물 좀 갖다 줘.”
– 네. 알겠습니다.
윤지는 회장의 호출에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크리스탈 컵에 넣었다.
회장님 전용 찻잔을 들고 회장실에 들어가는 그녀의 시야에 회장이 잡힌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상기된 얼굴.
무언가 긴장한 표정.
“어. 서 비서, 내려놓고 나가 봐.”
“네.”
그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
그때, 송창식 비서실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온다.
윤지가 입을 열었다. 목적지를 밝히지 않았던 비서실장의 출장.
하지만 묻는 건 불문율.
그저 안부인사만 할 뿐이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서 비서, 회장님은 안에 계시지?”
“네.”
그가 자신의 비서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딸깍.
분명 회장실로 향하는 전용문을 여는 소리.
윤지는 궁금했다.
평소와는 다른 다급한 얼굴.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일인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회장실 문에 귀를 대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는데, 부회장실에서 자신의 동기가 나온다.
“윤지야. 뭐해?”
“아~ 깜짝 놀랐잖아.”
“뭔데? 너 이상하다?”
“몰라도 돼.”
* * *
한 시간 전, 속초로 가는 버스 안.
김태석은 회장님의 전화번호를 일단 저장했다.
‘이해가 안 되네. 태석이형한테 전화할 거, 나한테 한 거 아니야?’
그때, 채팅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강남존잘남 : 얘들아, 나 봉사활동 하러 미얀마로 간다. 회사 탈출이다.
김태석 : 네? 갑자기 왜요? 형, 경영수업 받는 거 아니셨어요?
강남존잘남 : 그럴 사정이 생겼어. 다 내 잘못이지 뭐. 아무튼 태석이 너 보면서 많이 느낀 점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가서 사람 되고 올게.
서윤지 : 오빠, 가끔 전화할게. 같이 못가서 미안해.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리면 안 돼 알지?
강남존잘남 : ㅇㅇ. 오빠 믿어.
김현수 : 조심히 다녀오세요.
최진영 : 잘 다녀오세요.
김태석 : 태석이형,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형의 결정 응원할게요. 화이팅입니다!
강남존잘남 : ㅇㅇ. 그래도 잘 가라고 인사하는 사람은 동기들 밖에 없네. 다들 고맙다.
그리고 다른 채팅방.
장동훈 : 똥만 싸다 가네. 나쁜 자식. 저거 회장님한테 찍혀서 가는 거임. 봉사활동은 개뿔.
김현수 : ㅋㅋㅋ 그래요?
최진영 : 충격이넹.
김태석 : ㅡ. ㅡ 동훈이형도 좋게좋게 생각해요. 뭘 그렇게 과민반응 하세요? 아~ 윤지 이 방에 따로 초대할까요?
장동훈 : 됐어. 여자 초대하지 마.
김태석 : ㅡ. ㅡ^
동기들과의 채팅을 즐길 시간도 이제 끝이다.
어느덧 목적지가 다가온다.
지난 번에는 푸르스름한 녹음이 에메랄드 빛과 같았는데, 지금은 하얀 설산에 갇힌 느낌이다.
금방이라도 순록이 뛰어다닐 것 같은 설악산이 저 앞에 보였다.
속초에 오면 항상 느끼는 점.
설악산의 절경이 정말 빼어나다는 것.
공룡능선과 울산바위의 위엄은 자연의 위대함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연수원에 도착했다.
지난 날, 적설량 15cm라는 날씨예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정돈된 연수원 내부.
이미 제설차량을 동원해 정비를 끝마친 이 곳에 대형버스가 하나, 둘 대열을 맞춰 정차했다.
그런데 한 번에 내리진 않는다. 왜? 통제했으니까.
그렇게 안 하면 병목현상이 발생하니까.
모든 차량에서 한번에 내려 연수원으로 들어가면, 그만큼 입구에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1호차부터 3분 간격으로 내리도록 입을 맞춘 것.
태석은 자신의 차례가 오자, 차량 문 밖에서 탑승한 인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면 접수데스크가 있을 겁니다. 거기서 일단 개인신분증을 제시한 후, 서명을 실시하면, 앞에 앉아계신 선배님들이 각자의 방을 배정해 줄 겁니다. 그 통제에 따라주세요. 트렁크에서 개인 짐 챙기고요.”
* * *
연수원생일 때는 몰랐는데, 지도 선배가 되니 뭐 이리 바쁜지 모르겠다.
먼저 집합시켜 팀장을 뽑고, 처음이니까 식사 장소까지 인솔도 해야 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소회의실에 하루 종일 대기하며, 신입사원들의 애로사항을 접수한다.
뭐가 그리 질문이 많고, 궁금한 게 많은 건지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신입사원들.
철이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이도저도 안 되는 사항들을 말하는데 태석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오늘 외출 안 되나요?”
이런 질문은 애교에 가깝다.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요.”
그러니 주변 지도선배들도 어이가 없는지 막말이 튀어나온다.
“조윤형씨는 내가 청소부로 보여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쓸데 없는 말 하지 말고 돌아가서 직접 뚫어요.”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사항일 경우도 있으니, 일단은 다 들어줘봐야 한다.
“난방이 안 됩니다. 많이 추워요. 방열기가 고장난 것 같아요.”
“그래요? 일단 기계실에 연락해볼게요. 그때까지는 여기 회의실에 있는 비치된 온풍기라도 가져가서 써요. KC인증마크 없는 온열기는 사용하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도선배님, 뜨거운 물이 안 나오네요.”
“일단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뜨거운 물 틀어줄 테니까, 공동 샤워실 이용하도록 해요.”
“체육복 사이즈가 작습니다.”
“사이즈 원래 몇 입으시죠?”
“110입니다.”
“알겠어요. 일단은 개인적으로 가져온 트레이닝 복 입고 있어요. 창고 가서 찾아서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저번 주 연수원장님으로부터 교육도 받았고, 나름 준비도 철저히 했다고 했는데, 신입 사원들을 하나, 둘 다 챙기려니 신경 쓸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래도 지도 선배로 뽑힌 3명은 각자 의견을 나누며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다.
이제 2년차가 된 김태석이 입사 5년차인 남창희 대리와 이제 3년차인 김정미 선배를 향해 말했다.
“선배님들, 팀장 다들 뽑으셨어요?”
“응. 아까 다 뽑았지.”
“그럼 오후 9시까지 팀장 소집해서 별도의 임무를 주죠. 설문지 분배해서 작성하라고 지시하고, 체육복 사이즈 안 맞는 인원 체크해오라고요.”
태석의 말에 남창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낫겠다.”
김정미 또한 태석의 의견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일단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신입 사원들끼리 서로 교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교체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남은 체육복은 따로 또 주문하는 걸로 하면 되겠네.”
그러자 지켜보던 선임지도선배 남창희가 씩 웃는다.
“그러네. 김태석씨! 훌륭한데?”
“다 생각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선배님 커피 한잔 하실래요?”
“나야 좋죠. 정미씨는?”
“저는 괜찮아요.”
“그럼 난 설탕 반만 넣어서 진하게.”
“네. 알겠습니다.”
태석이 인스턴트 커피를 타는 동안, 김정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창희 선배님, 저는 여성 숙소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첫날이라서 직접 가봐야 될 것 같아서요.”
“그래요. 정미씨 다녀와요.”
“네.”
2층이 남자숙소, 3층이 여자숙소.
그렇기에 남자는 3층에 올라갈 수 없다.
김정미가 자리를 떠난 후, 남창희가 태석을 보며 씩 웃었다.
“태석씨.”
“네. 선배님.”
“소문 많이 들었어. 정말 대단하던데?”
“뭐가요?”
“이미 사내 인트라넷 엘성일보에 다 떴어. 뭘 모른 척 해. 최초의 3관왕이라며.”
커피를 타서 남창희에게 건네는 태석이 질문에 대답하며 쇼파에 앉았다.
“아… 운이 좋았습니다. 커피 드세요.”
“그래. 거기까진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지. 근데 알아? 여기 지도 선배 자리는 다 전략기획실 목표로 했던 사람들만 올 수 있는 것.”
“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략기획실 떨어진 사람이나 중도포기한 사람이 온 적 있어도, 전략기획실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이 온 적은 없었거든.”
“……”
남창희가 목소리를 깔았다.
태석은 그 의미를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한 채, 커피잔을 내려놓은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 성공할 것 같다는 거야. 우리 한 달동안 잘 지내자.”
“그런 거면 좋겠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뭐가 아니야. 딱이면 딱이지. 악수!”
“네. 선배님.”
남창희가 씩 웃는다.
그리고 생각했다.
‘실장님,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첫 인상은 나쁘지 않네요.’
* * *
그룹 본사 회의실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회장이 퇴근하고, 서윤지와 김현수가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청소 시작하자.”
“응.”
윤지는 회장실.
김현수는 부회장실.
회장 / 부회장 담당 비서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관행적으로 회장은 실장인 송비서와 윤지만 부르고 있었고, 부회장은 박비서와 현수만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각자의 영역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바로 비서의 역할.
일의 마무리는 항상 정리다.
윤지는 회장실에 들어갔다.
회장님의 책상.
항상 놓으시는 대로 볼펜과 메모장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크리스탈 컵 안에 비워져 있는 물이 보인다.
‘평소에는 반 이상 남기셨었는데… 어떤 고민이 있으셨을까?’
서윤지는 의아한 얼굴 뿐이다.
그래도 의심을 거두고 시선을 돌렸다.
쓰레기통이 보인다.
구겨진 서류.
그것을 비우기 위해 쓰레기봉투로 집어넣으려는데 보이는 글씨.
[유전자 감정서]윤지가 깜짝 놀라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며 쳐다보았다.
‘유전자 감정서?’
성명 : 김창수, 김형곤
관계 : 부자
성별 : XY, XY
좌위 : 대립유전자1, 대립유전자2.
그리고 나열된 16개의 STR 유전자.
김창수와 김형곤 사이의 친부자 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총 16개의 STR 유전자 좌위를 분석하였습니다. 성염색체를 제외한 15개 STR 유전자 좌위를 분석한 결과, 둘은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회장님이 왜? 도대체 왜 친자 확인을 하셨지?’
서윤지가 풀리지 않는 의문에 빠졌다.
그런데 자신의 동기 녀석이 부르며 회장실로 들어온다.
“윤지야. 안 끝났어?”
“잠깐만!”
“왜?”
그녀의 손에 폈다가 다시 구겨지는 유전자 감정서.
그것을 세미정장 안쪽 가슴주머니에 넣는다.
그때, 그녀 스스로 가슴을 만지는 것을 목격한 김현수가 깜짝 놀라며 사과를 했다.
“아, 미안!”
“왜 들어와? 프라이버시 몰라?”
“불 끄려고 했었지. 엿보려던 거 아니야.”
“알았어. 이상한 오해 하지마. 끈 풀려서 정리하고 있었던 거야.”
“응.”
서윤지는 현수가 회장실을 나가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주머니에 넣은 종이를 펴서 펼쳐보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다.
찰칵! 찰칵!
사진에 담긴 정보.
그것을 보며 그녀가 생각했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야. 그나저나 김형곤이 누구야? 누굴까? 누구길래… 검사를 했을까?’
유전자 검사 (4) > 끝
ⓒ 제이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