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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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시험 (1) >
회장의 방문에 모두가 긴장했다.
오늘은 입사식이 있는 날.
원래는 연수원장에게 위임해서 진행되는데, 갑작스럽게 회장이 방문하니, 모든 일이 꼬였다.
연수원장실 내부.
화려한 인테리어.
꽃향기가 그득한 화분. 단조로울 수 있는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꿔주는 유화.
그 중 회의용 테이블 가장 끝 상석에 회장이 앉는다.
“다들 앉지.”
『네. 회장님!』
회장이 미소를 지으며 참가한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김태석. 나의 손주. 그리운 핏줄.
유전자 분석의 조작이 오히려 그를 손주라고 알려준다.
거의 100퍼 확실하니 직접 행차한 것.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얼굴이 없다.
“다들 모인 게 아닌가?”
“통제인원 제외하고 다 모였습니다.”
회장이 벽에 걸려있는 속초 엘성연수원 조직도를 살펴본다.
교육지원팀. 사원 김태석의 사진이 보인다.
그가 다시 물었다.
“교육 지원팀은 어디 있나?”
“지금 신입사원하고 입소식 연습하고 있습니다. 30분 뒤에 의식행사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간단히 예행연습 하고 있습니다.”
“그래?”
Y염색체가 일치하므로. 거기가 크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보고,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가 없으니 속이 뒤집힌다.
“그럼 행사 현장부터 가지.”
“네.”
커다란 강당.
회장이 열려 있는 뒷문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태석은 막내답게 오늘의 입사식 진행을 맡았다.
그가 무전을 통해 물었다.
『김정미 선배님, 진행합니까?』
『아니, 아직 통제 못 받았어.』
『지금 회장님하고 같이 들어오시는 것 같은데요. 진행해야 될 것 같은데요? 빨리 물어보고 통제해주세요.』
『어. 기다려!』
김정미가 뒤쪽에서 내려오는 김창모 회장과 윤성목 연수원장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상사인 교육과장에게 통제를 받는다.
그녀의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태석에게 전달되었다.
『태석씨, 원장님이 주관하신대. 바로 진행해.』
태석이 자신의 방송 마이크를 통해 진행을 시작했다.
강당에 울리는 중후한 목소리.
다른 곳은 몰라도 목소리만큼은 제대로 물려받은 그가 방송을 통해 사원들에게 지시했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모두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극장형 강당에 모인 신입사원들.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녀가 미소를 머금은 채, 짝짝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회장의 실물을 보는 것이 처음이 될 터.
원래는 교육 수료 때 뵙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입사식 때 오시니 다들 시선이 회장에게 쏠릴 수 밖에.
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가장 앞줄 상석에 앉기 시작한다.
태석은 그들이 다 앉은 것을 보며,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갔다.
『오늘 행사에는 엘성그룹 김창모 회장님, 윤성목 엘성연수원 원장을 비롯한 많은 귀빈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2019 신입사원 입소식을 거행하겠습니다.』
회장은 태석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그냥 좋았다. 핏줄이라 땡겼다.
얼른 대화를 나누고 면담을 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래도 자신은 회장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수 백명의 신입사원들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순전히 김태석만을 보기 위해 왔지만, 자신의 체면이란 게 자신의 행동을 통제시킨다.
참으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래서 얼른 입소식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녀석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니 또 기분이 좋아진다.
『먼저 엘성그룹에 대한 역사와 소개 영상 시청하겠습니다.』
기업의 역사가 펼쳐진다. 자신의 얼굴이 비춰진다.
그래서 눈물이 글썽 거린다.
그런데, 그 동영상 안에 자신의 핏줄이 아닌 엄한 놈이 들어가 있다.
부회장. 자신의 양자가 비열하게 웃음을 짓는 사진이 보인다.
‘뭘 잘 했다고 저렇게 웃어?’
처음에는 녀석에게 기업을 물려줄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근본은 어디 가질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뺏기기를 싫어했던 진태.
학교를 다닐 때에도 친구가 신제품을 들고 다니면 꼭 빼앗아야만 직성이 풀렸던 양자.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그게 꼭 나쁘다고 말할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수준이라는 게 있는데.
겨우 볼펜 한 자루, 게임기 팩 하나 가지고, 그 욕심을 드러내니 답답했을 수 밖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
녀석은 53세인데,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닌다. 자식만 잘 키워도 이렇게까지 욕은 안했을 텐데.
분수에도 맞지 않는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니 우습기까지 하다.
아내의 유언만 없었다면 진즉에 내쳐버렸을 텐데.
회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양자를 거두는 게 아니었어. 어떻게든 우리 아들을 찾았어야 되는데…’
그러나 이제 다 지나간 일.
후회해봐야 소용 없다.
동영상이 끝나고, 김태석이 입을 열었다.
『원장님 말씀이 있겠습니다.』
김태석의 울리는 목소리.
방송 앰프 때문인지 아니면 핏줄이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몸을 전율시킨다.
그래서일까? 회장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험해보고 싶다고. 동영상에서 보았던 매스게임 때의 모습이 아니라, 저 녀석의 실력, 센스 등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원장의 손을 붙잡는다. 그가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원장이 당황한 채 회장을 쳐다본다.
“회장님?”
“잠깐 그대로 있어봐.”
그러나 회장의 시선은 진행자를 향했다.
‘이 상황에서 넌 어떻게 할래?’
태석은 당황했다.
회장님이 왜 원장님을 못 올라가게 만드는지 몰랐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식행사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
무선 마이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금 회장님과 같이 앉아있는 원장님과 자신 뿐이다.
태석이 다시 불렀다.
『원장님 말씀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원장은 단상에 오르지 못했다.
회장이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회장은 김태석의 대처능력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룹의 CEO는 다양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 상황을 극복하려면 광대가 되어 최선의 판단을 해야 한다.
어느 때에는 맹수의 왕인 사자처럼 군림해야 하고, 어느 때는 순한 양의 탈도 써야 한다.
녀석이 딱 그 상황이었다.
300여명 앞에 놓인 광대.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 광대가 재주가 없다.
씁쓸했다. 자신의 핏줄을 물려받았을 터인데.
제 아무리 가르침을 준다 해도 근본이 글러먹으면 쓸 수가 없다.
회장이 고개를 저으며 원장의 손을 놓아주려 했다.
그런데 그때, 광대의 목소리가 강당 전체에 흘러나온다.
『회장님께서 우리 신입사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장의 손을 놓아주질 않네요. 모두 회장님 말씀 듣고 싶으시죠?』
『네!』
『다 같이 그 이름 불러봅니다. 회장님!』
김태석의 말에 신입사원들이 한 목소리로 『회장님!』이란 함성을 질렀다.
사실 김태석은 회장님의 행동을 보고 유추했다.
본인이 직접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신다고. 그래서 자신에게 눈치를 주신다고.
물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정황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회장과 원장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보고 있었기에 그러한 판단을 과감히 내릴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벌어진다.
김창모는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영악한데? 내가 예상한 바를 다 벗어났잖아? 거기에 더 이상 시험도 못하게 상황을 만들어?’
회장이 예상한 상황.
1. 김태석이 당황한 채 상황수습을 못하고 멘붕에 빠진다.
2. 김태석이 잠시 진행을 멈추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3. 김태석이 자리에서 내려와, 원장에게 마이크를 넘기거나, 단상으로 데리고 올라간다.
그런데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자신을 부르다니?
그것도 신입사원들을 통해서 거부할 수 없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김태석이 또 한 번 300여명 앞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회장님께서 올라오십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회장은 강당 단상에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저희 엘성 그룹은 한국 최대의 기업입니다. 세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고요. 미래를 향한 비전과 철학을 보유한 기업입니다. 제가 자부심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왜? 제 인생 전부를 엘성 그룹에 바쳤으니까요.』
회장의 말에 신입사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회장은 태석과 같은 핏줄 답게 브리핑을 잘 했다. 연설을 잘 했다.
『저희는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다양한 인재를 뽑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성전자를 가고 싶어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엘성생명을, 어떤 사람은 엘성자동차를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왔고요. 저희 연수프로그램에서는 그러한 적성이 과연 맞는지 검증하는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를 믿지 마세요. 우리 기업이 지난 세월동안 만들고 구축해왔던 지금의 프로그램을 믿으세요. 시스템을 믿으세요. 우리 엘성그룹은 여러분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인재로 키워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회장의 말이 끝나자, 다들 감동에 벅찬 얼굴이다.
그런데 회장은 연설 뿐만 아니라 유머감각 또한 겸비했다.
『다들 박수 안칩니까?』
『짝짝짝짝!』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평소라면 볼 수 없는 회장의 모습.
무뚝뚝한 줄만 알았는데, 회장은 말을 너무너무 잘했다.
박수 갈채를 받으며 다시 내려가는 회장.
그리고 진행자의 깔끔한 마무리 멘트.
『이상으로 2019 엘성연수원 입소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 * *
입소식이 끝나고 연수원장실에 다시 회장이 앉아있다.
그곳에 불려간 3명의 지도선배들.
아까 첫 자리에서 빠져있었던 세 사람. 남창희, 김정미, 그리고 김태석.
그들 앞에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회장.
“자네들이 잘 해야 그룹이 잘 되는 거야. 한-두달 파견이라고 대충하지 말고, 열심히들 해.”
“네. 회장님.”
그는 3명을 앞에 두고, 자신이 손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원 없이 털어놓았다.
신사업을 펼칠 때의 일부터, 그가 가장 힘들었던 일, IMF때 모든 그룹이 휘청거렸을 때, 엘성 그룹이 가장 빨리 위기를 헤처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 등.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졌다. 2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식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배가 고프지가 않다.
회장이 말했다.
“내 말만 오래했군. 다들 일어나.”
“네.”
그때 김태석이 자신이 커피를 마시던 종이컵을 들고 일어난다. 그러자 회장이 눈을 치켜뜨며 말한다.
“뭐하나?”
“제가 먹은 컵은 직접 버리려고 집었습니다.”
“놔 둬. 놓고 가.”
“네.”
“다들 나가보게.”
“네!”
그리고 태석이 먹었던 종이컵을 들어 자신의 안쪽 주머니에 챙기는 회장.
그 때, 바깥에서 회장님과 식사를 하려고 기다리던 원장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회장님, 식사 송이버섯정식집으로 예약 해두었습니다. 지금 바로 모시겠습니다.”
“아니야. 난 바로 본사로 돌아가네.”
“네!”
헬기를 타고 돌아가는 회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각, 종이컵에 묻은 김태석의 입안 상피세포에 대한 유전자 분석이 끝났을 때, 그 미소는 저번과는 달리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회장의 얼굴에 머물고 있었다.
회장님의 시험 (1) > 끝
ⓒ 제이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