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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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CMD (6) >
다음날 오후 1시.
과장이 태석을 불렀다.
이유는 어제 기안을 올렸던 공무출장을 가기 위해서.
장소는 서울 코엑스 전시장 1층.
이동수단은 과장의 자가용이다.
태석은 지난 번, 상점에서 구입한 아이템 하나를 챙겼다.
그건 물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물건.
과장의 차량은 외제차였다.
BMW 5시리즈.
대기업 과장급이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구입할 수 있는 금액.
조철환 과장은 태석을 BMW 차량의 조수석에 태우며 말을 건넸다.
“선글라스는 왜 가져왔어?”
“그냥 챙겨봤습니다.”
“김대리는 자동차 아직 안 샀나?”
“네. 대중교통 이용해서 출퇴근 중입니다.”
“몇 시간 걸리나?”
“1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한 대 사야지?”
“아직까지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 하긴 대리라고는 하지만, 아직 1년도 안 됐으니, 모아야지.”
“그런데 과장님?”
“응. 뭐가 궁금해?”
“엘성자동차는 직원들이 왜 안 사는 겁니까?”
“국산차 왜 사냐? 혜택도 없는데.”
“네?”
“손해 보는 느낌이잖아. 같은 엘성 그룹인데, 엘성자동차 직원은 2년에 한 번 25% 할인해주고, 우리는 국물도 없고. 무슨 신라시대 성골, 진골도 아니고, 차별할 건 뭐야. 나 같으면 절대 안 사지.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태석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저도 안 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열사 중에 한동자동차 있잖아. 해외에서 직수입해서 판매하는 곳. 거기서 사면 임직원 할인 혜택 5%인가 받을 수 있어서 눈탱이 안 맞을 수 있어. 거기는 인기 있는 외제차만 수입하니까 가격방어도 수월하고.”
“아, 한동 자동차면 벤츠랑 BMW 취급하는 곳이죠?”
“응. 거기가 나름 계열사 중에는 괜찮아. 나중에 차 살 거면 외제차로 사라고. 요즘 국내 자동차 너무 비싸서, 경차 아니면 외제차랑 그렇게 큰 차이 안 나니까.”
“네. 생각해볼게요.”
코엑스에 도착했다.
여긴 교통이 너무 막힌다.
진입하는 데만 무려 30분.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1층으로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과장과 태석.
그 앞에는 『2019 인디브랜드 페어』라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전등록한 업체들.
자신의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공식적인 홍보타임은 1년에 단 한 번.
이번 인디브랜드 페어라는 행사 뿐이다.
이 행사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으로 신진디자이너이자 사장님이 된 소기업 대표들이 만든 브랜드에게 마케팅을 지원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유통을 확보해 주는데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는 물론 해외 바이어도 여기 저기 눈에 띈다.
안내판을 보았다.
행사는 브랜드별로 A1~ A4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A1은 여성복 브랜드가.
A2는 남성복 브랜드가.
A3는 가방, 모자, 보석, 액세사리 등 패션잡화 브랜드.
A4는 아동복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태석은 과장님과 함께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장 안쪽.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인디브랜드페어 PT쇼.
그 중 가장 앞자리는 당연히 엘성그룹의 차지.
왜? 1등이니까.
엘성백화점 MD들은 앞 줄에 앉았다.
그 중 막내는 태석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김 대리, 너 아버지가 임원은 아니지?”
“그건 아닌데요.”
“그런데 왜 본사에서 네 것까지 티켓을 보내줬지? 얼마나 잘 나가길래 본사에서까지 직접 챙겨 주냐?”
본사에서 온 티켓?
누가 보냈지? 기획실장님? 비서실장님?
몰라서 과장에게 물었다.
“누가 보낸 겁니까?”
“낸들 아냐? 우리 같이 아랫것들은 윗 사람들이 시키면 그냥 말 없이 가는 거야. 그래야 오래 가지. 아무튼 업무에 집중하자고. 보고 마음에 드는 브랜드 있으면 얘기해 봐. 우리 동탄점도 남성, 여성브랜드는 물론 네가 맡고 있는 영패션 입점업체들을 미리 알아봐 둬야 하니까.”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어쩌죠?”
“본사에서 품평회 열어서 평가해보고 정해주겠지.”
“네.”
“그런데 마음에 들 거야. 내가 봐둔 브랜드가 몇 있거든. 이따가 한번 맞춰 봐. 난 사전조사 다 해왔으니까,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게 없겠냐? 전국에서 다 왔는데!”
화려한 조명.
인산인해.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이 한 순간 무대에 고정된다.
런웨이. 모델들이 워킹하는 장소.
아찔아찔, 다리를 엇갈리며 걷는 모델들에게 시선이 저절로 쏠리고.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쉬지 않고 울린다.
인디브랜드라 그런지 독특한 디자인들이 즐비했다.
70년대, 8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반짝이로 도배된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모든 옷에 유화가 그려져 있는 브랜드도 있고, 화려한 꽃무늬로 시선을 끄는 브랜드들도 있다.
태석은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그러자 모델이 입은 옷의 추정 가치가 가격으로 표시된다.
[리라 린넨 티셔츠 : 39, 215원] [리라 린넨 사다리컷 셔츠 : 15, 734원]다들 추정가치가 생각보다 낮다.
물론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것들도 있었다.
[스타폴 원피스 : 164, 457원] [스타폴 트임 스커트 : 131, 941원] [제이스콥 스키니진 : 98, 356원] [제이스콥 라운드넥 : 65, 314원]하지만 생각 외로 영패션에 알맞은 브랜드는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남성패션, 여성패션 브랜드에 특화된 디자인.
그때 과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자식, 너 모델 보러 왔지? 그래서 선글라스 챙겼구나?”
“아… 아니, 그건 아니고요. 과장님.”
태석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응?”
“저 스타폴 브랜드하고 제이스콥 보신 거 맞죠?”
“어? 어떻게 알았어?”
“아… 맞구나. 사람들이 사진 많이 찍어서 그럴 것 같았어요.”
“뭐야? 분위기 보고 찍어서 맞춘 거야?”
“네. 아, 그런데 영패션 관련 브랜드는 패션쇼에 없네요.”
태석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사라졌다.
그걸 본 조철환 과장이 입을 열었다.
“김 대리, 설마 실망한 거야?”
“아니요. 실망한 건 아니고요. 그냥 멋있고 예쁘긴 한데, 제 분야는 없는 것 같아서요.”
“원래 영패션은 이런 곳에 잘 안 나오지. 브랜드 자체의 구매력이 다른 쪽보다는 많이 떨어지니까.”
“네. 이해합니다.”
태석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쉬웠다.
약 45개 업체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모였는데, 패션쇼에 런칭한 영패션 브랜드가 하나도 없다니…
“어쩔 수 없겠는데? 김 대리, 너무 걱정하지는 마. 세상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겠니? 그리고 네가 막 브랜드를 발굴할 위치도 아니잖아.”
태석은 과장의 말에 넉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쉬워요. 그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과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저도 런칭할 브랜드 알아봐야 되잖아요.”
“우리가 못 정하면, 본사에서 알아서 런칭 브랜드 정해줄 거야.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게 본사잖아. 자체 품평회 하고, 런칭 할 만하다 싶으면 바로 적용하는 거지. 우리 같은 말단은 본사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 분명 업무를 못하는 건 아닌데, 너무 욕심이 없다. 그 표정을 읽었는지, 과장이 김태석을 다시 지적했다.
“김대리는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는 욕심이 많은 것 같아. 그런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런 욕심이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다해 보여.”
“욕심은 아니고, 열심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보였다면 주의하겠습니다.”
“후후, 내가 너무 기죽였나? 꼭 주의하란 것 까진 아니고.”
“아닙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런웨이에서 모델들의 패션쇼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그 다음은 당연히 국내, 해외 바이어들의 현지 미팅이 이어 진다.
조철환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점찍어놓은 브랜드는 45곳 중 3군데.
그러나 패션계 사람들의 눈은 다들 비슷했다.
과장이 찍은 3군데에 다른 경쟁 바이어들의 미팅요청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본사에서 늦게 온 직원이 있었다.
조철환 과장보다는 한참 선배.
엘성백화점 본사 MD관리부장인 김영현 부장.
그가 조철환 과장을 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어때요? 조 과장, 독점 런칭 가능해보여요?”
“대화해보니까 조금은 힘들 것 같습니다.”
“대현 놈들하고 로토 놈들이 장난 아니게 붙는 것 같은데, 걔네는 조건 얼마나 불렀대요?”
“확실치는 않지만, 제가 듣기로는 독점으로 런칭하고, 33% 마진 불렀다고 들었습니다. 인테리어 금액 50% 지원 조건으로요.”
“33%에 50% 인테리어 금액 지원까지 했다고?”
“네. 아마 실질적으로는 5천만원 정도 불렀겠지요. 거기에 자체품평회도 무조건 통과시켜주는 조건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디브랜드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마침 부장님께 전화드릴까 했었습니다.”
“아, 이건 아닌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세 곳 중 한 군데도 품평회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조건이 나빠 경쟁업체에 우선권을 빼앗긴 것.
다른 곳은 공격적인 영업을 하는데, 엘성 측은 브랜드 가치만을 생각하며 다른 곳보다는 나쁜 조건을 제시하다보니, 독점 런칭이 쉽지많은 않다.
다른 곳은 줄을 서도 모자른데, 유독 잘나가는 브랜드들은 엘성을 피했다.
태석은 솔직히 본사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인정했다.
백화점에서는 누가 말해도 1등은 로토였다.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사업을 더 크게 성공시킨 로토 그룹.
얼마 전 로토 월드 타워를 지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올린 그 그룹의 위상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태석은 그 업체들의 MD가 부러웠다.
공격적인 방식.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본사에서 실어준다.
2주 뒤.
컨택에 실패한 그 인디브랜드 3곳은 전부 대박이 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대현 백화점 수원점 여성패션의 매출이 그날 하루 23% 상승했다는 데이터가 그 소문을 입증했고.
로토 백화점 영등포점 매출 또한 17% 상승을 견인하며, 차세대 대박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본사인 김영현 부장은 실적 압박은 물론, 각 백화점의 MD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휴일을 반납해서라도 각종 인디브랜드를 발굴하고, 매출 신장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하라는 지시.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 제시하는 조건에서 양보는 없다는 것.
사측에서 제시한 조건.
1. 인테리어 지원 없음.
2. 매출의 35%를 입점비로 책정.
1/3이 넘는 금액을 떼어가는 상황.
여기서 인건비, 재료비를 빼면 솔직히 입점 업체가 남는 건 얼마 없었다.
거기에 인테리어 지원도 하지 않고, 1개월에서, 3개월 단위 계약을 한다.
홈쇼핑에서 20% 떼 가는 것도 엄청난 비판을 하는데, 35%를 입점비로 책정하다니…
그러다보니 다른 백화점과 달리 엘성백화점에는 인디 브랜드가 잘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성공 조짐이 보이는 브랜드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보니까.
그런데 이제 상관 없었다.
태석에게는 선글라스가 있으니까.
제 아무리 인디브랜드라도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매직 아이템이 있었으니까.
태석이 말했다.
“과장님?”
“응.”
“이태원 로데오 패션거리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패션 거리?”
“네. 제가 듣기로는 인디업체들이 거기에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가보지!”
태석은 씩 웃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챙겼다.
백화점 CMD (6) > 끝
ⓒ 제이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