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Universal Temple Legend RAW novel - Chapter (87)
=======================================
해외출장 (1) >
인터넷 전문은행 때 도입된 5분 브리핑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태석과 남창희를 향한 각 임원들의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시원시원한 목소리를 가진 태석에게는 진행을, 브리핑 시나리오나 자료취합은 남창희 대리에게 시킨다.
그런데, 태석은 현장에서 1회성 업무라서 할 만하지만, 자료를 취합하고 준비하는 남창희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물론 태석은 그를 옆에서 도와줬다.
“선배님, 저번에 짜 두신 브리핑 시나리오 틀 그대로 써먹어도 될까요? 이번에 엘성자동차 자율주행기능 홍보에 활용하신다고 하셔서요.”
“그래?”
“네. 자세한 건 엘성자동차측에서 준비할 건데, 일단 간단브리핑 식으로 쓰실 것 같아요.”
“그래. 아~ 진짜 태석이 너 들어와서 살 것 같다. 너 없었으면 이거 다 나 혼자 했을 거 아니야.”
“서로 빨리빨리 하고 끝내는 게 좋죠. 저도 야근은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번달 일 미리미리 해놓으려고요.”
“좋지.”
문제는 태석의 습득력과 이해력이 너무 좋다는 것.
‘아, 선배님은 이런 식으로 구상을 하시는 구나. 짧은 것을 좋아하셔. 브리핑을 한다고 하지만, 보고 받는 입장에서는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짧고 핵심만 말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남창희는 태석의 문서작성 능력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남들이 하루 종일 걸릴 것을 불과 2시간이면 뚝딱 만들어오니, 그조차도 혀를 내두를 지경.
그 비밀은 물론 단축키에 있었다.
태석은 한글로 문서를 작성할 때, 숨겨진 기능을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주 쓰는 용어는 [Ctrl] + [F11]키로 저장해두어서 언제든지 빨리 불러와서 문서에 써먹는다.
단축키 한번으로 자신이 자주 쓰는 용어를 불러오니, 작업 처리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한 법.
마치 속기사 수준인 태석의 실력에 팀장님은 물론 실장님도 칭찬을 아끼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일이 엄청 많은데도 언제부턴가 야근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태석은 물론 남창희 자신도 일찍 퇴근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즐기는 여유.
남창희는 후임이 들어와서 좋았다.
전략기획실에 들어온 후에는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칼퇴라니.
칼퇴라니!
그런데 해외 R/D 담당인 조 상무님이 퇴근하려는 남창희를 불렀다.
“남 대리! 어디 가?”
“네? 퇴근하려고 합니다.”
“야근 안 해?”
“아, 오늘은 일이 있어서…”
“한가하구나.”
“아닙니다. 정말정말 바쁜데….”
5년차 짬밥.
불길한 예감을 감지한 남창희가 일단 위기는 모면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사무실 정리를 마친 태석이 밖으로 나온다.
“조 상무님! 안녕하십니까?”
“어? 뭐야. 신입, 너도 퇴근하니?”
“네.”
그걸 보며 이 새끼들이 할 일 없어서 퇴근한다고 눈치를 챈 조 상무.
“뭐야? 한가하네. 나 따라 와.”
조 상무는 자신의 직무실 앞에 둘을 앉히며 말했다.
“너희들, 할 일 없으면 도와드릴 일 없냐고 물어봐야지. 어떻게 일찍 퇴근할 생각을 해?”
“……”
“나 때는 안 그랬다? 어떻게든 윗분들 일찍 퇴근시켜 드리려고 옆에서 밤새고, 도와드렸지. 그래서 이렇게 상무 자리까지 올라왔잖아. 너희도 임원 꿈꾸고 있으면 당연히 이런 근무자세를 가지고 있어야지.”
태석은 조 상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어떤 것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배달 음식부터 시켜 봐. 카드는 줄 테니까. 뭐 먹을래? 중국집? 아니면 치킨?”
* * *
우물우물, 조 상무님과 같이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는 세 사람.
남자들이다보니, 순식간에 비워지는 그릇.
식사를 마친 세 사람
태석은 중국집에서 제공한 비닐봉지에 빈그릇을 넣으며 상무님께 보고를 드렸다.
“배달원이 1층 비상문 근처에 놓아달라고 해서, 내려놓고 오겠습니다.”
“그래. 다녀 와.”
이제 본격적으로 야근을 할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태석.
과연 어떤 일을 시킬까? 그것만 고민.
제발 일찍 끝나는 일이라면 좋을텐데.
그때, 조 상무가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 비서실장 송창식입니다. 상무님,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퇴근하셨습니까?”
– 네. 20분 전에 나가셨어요. 무슨 급한 일이신가요?
“아닙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실장님.”
그리고 전화를 끊고 조 상무가 하는 말이 가관.
“퇴근하자.”
“네?”
“퇴근하자고.”
당황스러웠다.
그가 요구한 야근.
그것은 황당하게도 상무님과 같이 저녁을 먹는 일이었던 것.
외국에서는 대기업이라고 하면, 엄청 좋은 근무환경과 수평적 관계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국내와는 통용되지 않는 것들.
그룹의 브레인이라는 전략기획실은 100% 완벽한 수직 구조였다.
사람을 종으로 부리는…
그런 뭣 같은… 구조.
* * *
그럼에도 태석은 잘 버텼다.
태석 뿐만 아니라 남창희도 잘 버텼다.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곳이 바로 이 곳.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실장님이 해주신 말.
힘들어서 전략기획실까지 올라왔다가도 적응하지 못해 이직하거나 퇴사하는 경우가 무려 30%라고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게 진담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한 달이 지난 4월 말.
태석에게 처음으로 커다란 기회가 다가왔다.
그건 바로 실장님의 해외 출장을 동행하는 것.
거의 수행비서 역할이다.
“김 대리. 아랍어 좀 한다며?”
“기초 밖에 못합니다. 실장님.”
“못해도 돼. 같이 갈 명단에 넣었어. 괜찮지?”
“제가 실장님 수행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자네면 충분하지.”
태석을 유독 챙기는 실장님. 그래서일까?
남창희는 그런 특혜를 보고 혼자 부들부들.
다음 날. 실장이 태석에게 물었다.
“몇 시 비행기지?”
“인천공항에서 오전 11시 비행기입니다. 두바이 항공이고 좌석은 비즈니스 석입니다. 저희 회사 본사 앞에서 6시 55분에 공항버스 6919번 타시고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 비즈니스 석이라 자네가 아쉽겠군. 내가 임원이었으면 퍼스트클래스였을텐데.”
“얼른 실장님이 임원 다셔서 저도 같이 퍼스트클래스에 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말이라도 기분이 좋네. 내일 늦지 말고 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다음날 공항.
생각보다 대기시간은 길었다.
두근두근.
태석은 처음 나가는 해외 출장에 조금은 긴장했는지도 몰랐다.
“라운지 가서 좀 쉬자. 2시간 넘게 남았네.”
“네.”
두바이항공에서 제공하는 VIP 라운지.
인천공항 3층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투명한 유리창에서 인천 공항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이 보였다.
해외로 출국하려는 수많은 사람들.
안마 의자를 통해 마사지를 받는 채로, 창 밖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실장이 태석을 향해 말했다.
“김 대리는 어떤 위치까지 올라가고 싶어?”
“……”
“긴장 할 것 없어. 사람이란 게 다 꿈이 있잖아.”
실장의 말에 태석이 고민하다 답했다.
“임원까지 올라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사실 난 말이야. 임원 안 달아도 좋으니까, 현재 직책이나 유지하면서 오래 다녔으면 좋겠다.”
“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부장급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잖아. 자네도 알지? 우리 엘성그룹에서는 임원 못 달면 만 48세가 끝이라는 것.”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 내가 지금 만 47세야. 이제 1년 남은 거지. 최대한 버티긴 하겠는데, 언제 내 책상이 없어질지 모르니까 솔직히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아 있어.”
“임원 되시면 되지 않습니까?”
“참… 그게 쉽겠나? 신입 사원 중에 몇 프로나 임원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1% 정도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1%? 0.1% 안에 들어야 돼. 그게 임원이야.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운도 맞고 시기도 맞아야 돼. 업무는 기본이고. 운 때도 맞아야지. 쉬운 게 아니야.”
“네.”
“내려 가자.”
“네. 실장님.”
비행기 비즈니스 석.
태석은 불편함 속에서 나름 안도함을 느꼈다.
다리만 겨우 뻗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화장실에 갔을 때 보이는 이코노미석에 비해서 개인 공간이 엄청 넓다.
항공기에서 제공하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그들이 주는 기내식을 먹으며 최신 영화를 보는 실장님.
그리고 그 옆에서 수행하는 자신.
태석은 작년 이 맘 때를 떠올렸다.
허리를 다쳐 공사장에서 하루하루 근근히 버티던 삶을.
그때는 엄마도 병에 걸리고, 자신의 허리도 끊어질 듯 아파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같이 현장에서 일하던 아저씨들 앞에서는 항상 씩씩한 척 해 왔지만, 사실 주변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기에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고 현재의 길을 걷고 있다.
실장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도와준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
가정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닌데, 자신의 좋은 점만 바라봐주신다.
태석은 피곤함 때문일까 이륙한지 한 시간 밖에 안 된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다가 곯아떨어진 실장님에게 담요를 덮어드렸다.
그리고 책을 꺼내들어 여행영어에 관한 책을 보고 또 보았다.
왜? 아직까진 500Point를 못 모았으니까.
출입국 사무소.
실장님은 영어를 굉장히 잘 하셨다.
원어민 수준까지라고는 말 못해도 굉장히 능숙한 표현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Are you 세퍼레이트 or 투게더?』
『일행입니다.』
『입국 목적이 어떻게 됩니까?』
『행사 참석하려고요. 저희 엘성그룹 중동지역에서 전략 TF 점검이 계획되어 있거든요.』
『엘성? 엘럭시!』
『얍! 댓츠 롸이트!』
『내가 엘성폰 쓰잖아. 엘럭시 나인! 너무 좋아.』
『엘럭시! 그거 우리 회사에서 만든 것 맞아.』
『오케이 오케이! 유 캔 고우!』
엘럭시면 다 통하는 편한 세상.
공항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
1번 GATE를 나가자, 그 귀중한 존재를 깨달았다.
사막의 열기. 건조하고 메마른 바람.
태석은 실장님과 함께 바로 택시를 잡았다.
호텔에 도착하자, 안내데스크 입구에서 일하는 리셉션 남성이 태석에게 말을 걸었다.
능숙하진 않지만, 기초 영어는 가능해진 태석을 보며 실장님이 웃는다.
‘많이 부족하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석이 호텔방을 얻고는 실장님께 말했다.
“4층 방번호 131입니다.”
“그래. 올라가자.”
“네.”
호텔 안. 일단 캐리어를 놓고 실장이 태석을 부른다.
“김 대리!”
“네.”
“늦었어. 내려가자. 지금 내려가야 돼. 다들 모였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과 함께 내려간 곳은 2층. 비즈니스홀.
그곳에는 이미 엘성의 글로벌 인재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자신을 마힌드라라고 소개하는 인도인이 실장과 악수를 나누며 대화를 시작한다.
태석은 알았다.
글로벌 기업에서 영어는 필수라고.
한국에서는 그리 쓸 일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해외 글로벌 인재와 소통하려면 영어를 못하면 대화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실장님이 대화를 시작했다. 물론 영어였다.
『많이 기다리셨죠? 늦어서 죄송합니다. 확인해보니까 다 참석하신 것 같네요. 오늘은 엘성그룹 중동지역 해외지부 전략기획부의 핵심 멤버들이 모인 자리입니다만, 일단 처음이니만큼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데 중점을 두도록 하죠. 업무 이야기는 그 다음입니다. TF장이 누구시죠?』
실장의 말에 방금 전 실장과 대화를 나누었던 인도인이 일어났다.
『네. 마힌드라 이사님.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마힌드라 카람찬트입니다. 마힌드라라고 부르면 되겠습니다. 저는 엘성그룹 인도 전략기획실장으로서, 여러분들이 각 국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폰에 대한 B2B, B2C 전략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서로 많은 대화를 통해, 각 국가의 전략 수립에 얻어가는 게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TF장으로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룹 본사 전략기획실에서 나온 도성수 부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2주간 진행되는 엘성그룹 전략기획 TF의 간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TF에 파견 나오신 우리 엘성그룹의 글로벌 인재들의 의견을 종합, Kick – off(보고 시작)과정까지, 여러분들을 서포트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도, 한국, 아랍에미레이트, 일본, 러시아, 유럽 등 수많은 국가에서 모인 사람들이 각자를 소개하고 있다.
태석은 놀랐다.
각국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것.
회장님은 어떤 생각으로 TF를 결성하시게 한 것일까?
어떤 결과를 원하시는 걸까?
태석은 아직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석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해외출장 (1) > 끝
ⓒ 제이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