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0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00화(100/373)
자신을 묶은 끈에 손발이 쓸려 핏기가 스며 나올 만큼 몸부림쳤으나 소용이 없다.
몰래 얼음으로 톱니를 만들어 천을 갉아 찢으려 해도 저 검은 머리의 사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번번이 허공에서 빙결이 풀리고야 만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가짜라는 말인가. 이것은 음모이며 모략이다.
‘저 가짜를 나로 내세워 가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겠단 소리인가.’
이곳에서 나를 죽이고?
회복 포션과 단검을 들고 저에게로 다가오는 아델리안의 모습이 그녀의 추측에 좀 더 힘을 실어준다.
“우윽, 읍.”
말로는 공포감을 주면 포션 효과가 풀리느니 뭐니 하며 헛소리를 하고 있으나 그 말이 진실일 리가.
다른 이들도 아델리안이 지껄인 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깨달은 건지 자기들끼리 대화 후 한 사내가 걸어온다.
제법 체격이 좋은 몸집과는 달리 순한 얼굴.
잿빛 머리에 빛이 들어오면 색이 묘하게 변하는 녹색 보석안.
‘어서 재갈을 풀어.’
저 나약해 빠진 얼굴의 사내가 다가온다는 소리는 아마도 자신의 재갈을 풀고 다시금 대화를 나누어 보겠다는 소리겠지.
눈동자에 조금 이채를 띄우고 제로라고 불린 자를 바라보는데.
한걸음, 또 한걸음.
그가 다가올 때마다 발끝부터 얼음물에 잠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육신의 추위가 아닌 영혼의 얼어붙음.
멋쩍은 듯, 혹은 내키지 않는 듯 눈가를 조금 찡그리고 우는 듯 웃는 듯한 입가를 당기던 그 사내의 큼지막한 손이 천천히 다가온다.
마치 당장에라도 자신의 심장을 손으로 끄집어내고 저 입으로 콰득 짓씹어 삼킬 것 같은 두려움.
“후웃, 후흡.”
숨이 가빠온다. 몸부림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포식자에게 사로잡힌 피식자처럼.
느리게 다가오던 그 손이 자신의 어깨를 쥐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목을 뜯어 먹기 위함인가.
죽는다.
…가 아닌.
먹힌다.
내 존재가 먹히고 녹아들고 분해되어 내가 없어지고 나라는 존재의 소멸 나라는 자아의 붕괴.
내가 누구인지 계속해서 되뇌어야 해. 나를 빼앗기지 않게 나는 가디아 긍지 높은 크루거의…….
그러니까 나는 가디아이고 아델리안은 나의 동생이고 아니. 아니아니아니아아니 그러니까 나는 긍지 높은 크루거의크루거의 가디아는 나는 그러니까 잡아먹히는 건 난데 나는 나의 이름은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어야 해 흩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내가누구냐면 나는내이름을잊으면안돼잡아먹힌다잡아아아잡아먹히잡아먹혀삼켜그그그그그그그그그―나는.
* * *
나는 어째서인지 내 앞을 막은 케인을 손끝으로 밀어냈다.
“위험한 거만 줍고 다니지.”
“무슨 소릴.”
난 잠시 레이첼을 떠올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억, 커헉!”
바닥에 배 속에 있던 것들을 토하며 사지에 경련을 일으킨다.
제로의 살기가 이 정도로 강하다고?
나는 치밀어 오르는 의문을 살짝 누르며 곱슬거리는 주황색 머리를 가진 여자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가디아보다 조금 더 많을까. 성숙해 보이는 얼굴에 몸은 비쩍 말라 있다.
머리 색과 어울리지 않는 암갈색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한 바퀴 구른 뒤 초점이 흐려진다.
“이름.”
“그어억. 억.”
“이름.”
내가 질문을 던졌지만 정신을 못 차리겠는지 연신 입가로 침을 흘리며 몸을 늘어뜨리는 모습에 나는 제로를 흘긋 바라보았다.
“뭐냐.”
“…예?”
“뭘 했길래 이래.”
“별거 안 했습니다…….”
별거 안 했다는 놈 얼굴이 저런가. 일단 캐묻는 건 뒤로 미루고.
나는 코덱스를 꺼내 클린과 정화 한번 돌린 뒤 입을 열었다.
“이제 교수님만 오시면 되겠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로가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튀어 나가고, 그 뒤통수를 의심이 덕지덕지 달린 눈으로 바라보다 케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알아듣게 네가 설명 좀 해봐.”
“주위에 일반인이 별로 없다 보니 조절을 못 한 것일 뿐.”
아, 하긴. 바하디와 가뮈르가 트레잇을 개화시킨 데다 제로와 대련하던 인물이 케인에 레이첼인 것만 생각해 보면 납득 할 수 있는 말이다.
힘 조절 못 했을 수 있지. 암.
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어리둥절한 얼굴로 제로와 함께 온 가짜 리안나 교수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이 여자… 누구지?”
“입은 옷이랑 머리에 묶인 리본을 보아하니. 누굴까요?”
내가 히죽거리며 말하니 리안나 교수가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린다.
뭐 지금은 자신이 진짜 리안나 교수라고 생각할 테니 상관없지만.
‘이곳에 숨어 있을 교단 놈들은 좀 놀라겠지.’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여 알아냈는지. 어떻게 포션 효과를 없앴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그것이 아주 잠시라도 내 무기가 될 테고.
“그럼 나머지 조사는 아카데미 쪽에 맡기도록 하죠. 저는 누님 좀 만나봐야겠습니다.”
나는 리안나의 곁을 스쳐 나갔다. 바로 옆방에 갇혀 있을 진짜 가디아에게로 가기 위해.
마법으로 문을 잠근 건지 케인이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이윽고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조금 창백한 안색의 가디아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진짜다.”
“알아, 누나.”
눈이 붉어진 것을 보니 울기라도 했나. 그 자존심에 자신이 가짜로 몰린 것도 모자라 이성을 잃고 누군가를 죽이려 덤볐다는 것이 충격적이겠지.
나는 일단 케인은 문밖에 두고 제로만 대동한 채로 가디아의 앞으로 가 마나 수갑으로 보이는 팔찌를 풀었다.
“도대체… 그자는 뭐지?”
아직도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조금 머뭇거리며 나에게 케인을 묻는 가디아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듯 쓸어주며 입을 열었다.
“말해 주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어, 누이.”
“뭐지?”
내가 비록 레이첼을 제일 밀기는 했지만 한때 가디아 코인도 적지 않게 샀던 몸이라서 그러는데.
“처음 본 순간 어땠어? 몸에 전율이 흐르고 심장이 뛰고 어지럽고 그러진 않았어?”
내 말에 가디아가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긴가민가한 얼굴로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면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만.”
역시, 한눈에 반한 거지, 전기 통한 거지. 햐. 역시 내 주식은 틀리지 않았다.
루나나 리프, 레이첼은 첫 만남부터 틀어져서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만 가디아는 애초에 처음 보자마자 저런 식이었으니까.
갤에서 분석한 게 맞지. 남성 불신의 가디아가 케인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는데 그걸 인정 못 해서 덤빈 게 맞다니까.
“누이, 그거 사랑이야.”
내가 히죽거리며 하는 말에 가디아가 눈으로 욕을 한다.
“그게 무슨 개소리지.”
입으로도 욕하네.
하지만 나는 당당했다. 조금 진정된 것 같으니 다시 대면해도 되겠지.
나는 케인을 불렀고 다시 나타난 케인을 본 가디아가 움찔거린다.
“자, 지금 어때? 일단 호흡은 가빠졌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고 있고 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군.
하고 나직하게 말하는 가디아를 보며 나는 모든 걸 다 안다는 눈으로 웃었고 그에 가디아는 혼란 그 자체의 눈으로 케인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실례지만 아델리안 님. 들은 반응은 저도 익숙한데…….”
“너도 누구 좋아하냐?”
제로가 살짝 귓속말함에 내가 깜짝 놀랐다. 아니, 언제 어느 세월에 제로가?
“그게 아니라 그건 완전히…….”
“그럴 리 없다. 이제 내가 진짜임을 알렸다면 넌 꺼져.”
첫눈에 반함 부정기가 시작된 것 같은 가디아가 흉흉한 눈빛으로 우리를 쫓아냄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당분간 수도에 있을 테니 나중에 참고 조사 같은 거 해야 하면 부르라고.”
지금은 저렇게 아니라 해도 결국은 가디아도 인정할 것이다.
애초에 원작에서 케인을 위해 카이만의 목까지 날려버렸으니.
케인에게 루나는 순종이었고 리프는 신뢰였으며 레이첼은 활력이었고 다른 이들은 휴식과 긴장감이었다면.
가디아는 맹목이었다.
솔직히 말해 다른 이들은 케인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가디아는 아니었단 말이지.
그러니 잘 지내면 좋겠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내 목도 안전하고…….
원작에서는 아델리안이 아예 안 나왔으니 걱정이 덜 되지만 이노센트 사가에서 가디아는 아델리안의 목을 날려버린다.
그러니 내 생명줄 연장을 위해서라도 케인과 가디아가 잘 지내기를.
나는 잠시 속으로 기도했다.
* * *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말이야.”
“그럼 하지 마.”
레이첼이 슬 운을 띄움에 루나가 웃으며 말을 자른다. 그에 리프가 살짝 웃었고 레이첼이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아, 왜 나만 미워해?”
“감히 제가요? 제가 가진 재주는 고작 요리하구 말을 씻기는 것뿐인데.”
레이첼은 자신의 가슴께에 겨우 오는 키의 루나를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쟤가 왜 토끼족이지. 혈통서 까봐야 한다. 아마도 핏줄에 고양이족의 피가 섞여 있을 것이다.
어차피 수인족은 서로 다른 외형끼리 만나도 자식을 가질 수 있으니 내기해도 좋지 암.
“아, 일단 들어보시라고 선배님들.”
레이첼이 크아아 소리지르 듯 양팔을 벌리고 하는 말에 루나의 분홍색 눈과 리프의 노란색 눈이 레이첼에게로 향했다.
“지금 남자들 하나도 없잖아. 아, 지금이 기회라고.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 하러 가자. 어?”
심장을 짜릿하게 만드는 도박! 위장을 짜릿하게 만드는 술!
레이첼이 눈을 반짝거리며 연신 손으로 잔을 꺾어 목으로 넘기는 시늉을 하자 루나와 리프의 시선이 그럼 그렇지 하듯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일단 숙소는 구했으니 말을 좀 빗겨 주구 당근도 좀 나눠 주구 할래.”
[저는 도서관.]“아니, 이 천금 같은 시간에 말 시중이랑 도서관이 무슨 소리야. 아니, 놀아야지!”
레이첼이 답답한 듯 가슴을 쾅쾅 쳐댔다.
아델리안은 생긴 것은 아주 망나니에 입에 올리지도 못할 유흥만 골라서 하다못해 약이나 술 혹은 뒷골목에서 앙심 품은 여자가 찌르는 칼에 죽을 것처럼 생겨놓고.
어찌나 착실하게 여행하는지. 도대체 저놈의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물론 오우거나 사이클롭스가 주는 손맛은 잊지 못할 정도지만.’
드래곤이, 아니지.
사람이 어찌 한가지 빵만 먹고 살 수 있겠는가. 치는 손맛은 치는 손맛대로. 주사위 굴리는 손맛은 굴리는 손맛대로 있는 법이거늘.
“그렇게 놀러 가구 싶어?”
“아니, 수도잖아! 몬스터 접경지, 그 오지에서 이렇게 사람 많고 좋은 거 많은 곳에 왔으면 구경도 좀 하고 맛있는 것도 좀 먹고 그러고 싶지 않아?”
레이첼의 말에 루나가 자신의 귀를 쓰다듬었다.
레이첼이야 겉보기엔 인간인 데다 체구 또한 위압적이고 강해 보이니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것 같은 시선은 느껴 본 적이 없겠지.
시선이란 게 가끔은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무섭고 아프다는 것을 레이첼도 리프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아인족만이 제대로 아는 고통이니까.
―하긴, 지금까지 봐온 곳 중에 제일 화려하긴 합니다.
표정 변화 없는 리프의 눈도 조금 반짝인다. 정확하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루나는 이상하게도 늘 느낄 수 있었다.
리프도 궁금한 눈치고 레이첼은 아까부터 어디 한군데 망가진 것처럼 들떠 있으니…….
아델리안이 케인에게서 받아 자신에게 잠시 맡긴 세이렌을 떠올린 루나가 자신의 어깨에 덮인 케이프를 만지작거렸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인간인 레이첼과 리프.
거기에 크루거 가문의 문장이 박힌 케이프라면…….
“그럼 둘러보는 정도라면야.”
“좋았어!”
레이첼이 그 큰 키로 겅충겅충 뛰며 좋아한다. 리프도 호기심이 이는 듯 살짝 웃는 모습에 루나가 토템처럼 주머니 속 세이렌을 꽉 쥐었다.
“어딜 먼저 가구 싶어?”
“도박장!”
레이첼이 신이 난다는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