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0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02화(102/373)
“진짜 접경지랑은 공기부터 다르네. 공기가 달다 달아.”
레이첼이 신나서 성큼성큼 걸으니 하나로 묶은 긴 붉은 머리가 꼬리처럼 흔들린다.
[먼지가 더 많은 거 같은데.]“나두 그렇게 생각해…….”
접경지 가비오렌에 비해 공기가 달다는데 무슨 소리인지. 오히려 나무보다 사람이 많으니 더 시끄럽고 공기도 나쁜 것 같은데.
루나는 신이 나서 저 끝까지 혼자 걸어갔다가 뒤늦게 깜짝 놀라 되돌아오는 레이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디 가구 싶은 곳 있어?”
“일단 수도 왔으면 어? 술부터 좋은 거로 조져야지!”
외곽 중의 외각 가비오렌에서야 질 좋은 술이 한정적이었겠지만 이곳은 다르잖아 하며 침이 고이는 듯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는 모습에 리프가 조금 눈매가 가늘어진다.
[숙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니면 도서관이나.]익숙하게 슥슥 손바닥만 한 칠판에 적는 리프의 모습에 레이첼이 무슨 소릴 하냐는 듯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려 어깨동무한다.
“우리 셋이 어? 친해지려고 나온 건데! 그리고 친해지려면 뭐다? 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루나 자신과 리프는 술을 마시기 위한 변명으로 끼워진 게 틀림없지만.
‘괜찮겠지.’
이것까지 예측했으니 아델리안이 돈을 넉넉하게 주었을 터.
그리고 오우거부터 사이클롭스까지, 한동안 전투의 연속이었으니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바빠도 틈틈히 휴식을 취하자는 건 늘 아델리안이 말했던 거기도 하고.
“그럼 어디루 갈 건데?”
흘긋흘긋.
노예나 고용주가 따로 있다는 뜻의 목 초커 대신 케이프를 두른 게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어깨를 스치는 시선에 루나가 아래로 기울어지는 고개를 억지로 세우며 물었다.
“수도에서 유명한 곳은 많지만.”
아델리안처럼 돈이 많은 건 아니니 적당히 비싼 곳으로? 하며 레이첼이 씩 웃는다.
“너무 싸구려로 가면 오히려 시비만 붙어.”
[인식 저하 배지를 사용하면?]“도박하러 온 사람이 그런 거 써봐. 뭔 수작이냐 하고 쫓겨나지.”
배지로 인해 흐릿해진 존재감으로 카드 게임 같은 거 뒤에서 보고 말해 주거나 할지도 모르니까, 하는 말에 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레이첼이 고른 곳은 정식 귀족들이나 그에 준하는 이들이 오가는 최고급 카지노가 아닌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상급 카지노.
귀족 작위는 없지만 귀족 출신이거나 아주 돈이 많은 평민이 주로 이용하는 듯 적당히 화려하고 적당히 시끄러운 모습에 루나는 자신의 귀를 매만졌다.
“정지. 그 수인족은 출입 명부를 작성하고 가시오. 그리고 수인족은 게임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막 도박장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앞을 지키던 사내가 루나를 가로막음에 레이첼과 리프가 눈꼬리를 올렸다.
“무슨 소리야. 귀 달리고 꼬리 달렸으면 골드에도 귀 달리고 꼬리 달렸나. 입장료는 똑같이 내는데 왜 게임을 못해?”
[어이없음.]레이첼의 말에 오히려 사내가 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수인족이니까.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실 겁니까, 말 겁니까.”
이런 가게 앞에서 오래 일하면 딱 봐도 귀족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법. 아니, 애초에 귀족이면 저런 소리를 할 리가 없지.
사내는 얼굴은 다들 반반해도 귀족으로 보이지는 않는 여자 둘과 토끼족 한 마리를 보며 대놓고 혀를 찼고 그에 레이첼이 욱하며 입을 열려는 찰나, 루나가 펜을 들어 명부를 작성했다.
“이제 들어가두 되죠?”
“…통과.”
그에 뭔가 아쉽다는 얼굴로 칫, 하며 통과를 외치는 사내의 모습에 레이첼이 한 발짝 크게 다가서는데 루나가 슬쩍 팔을 잡고 카지노 안으로 당겨 들어갔다.
“놀러 나와서 몬스터만 잡구 다녔어?”
“아 그렇긴 한데, 뭐야, 왜 막아.”
보통 드래곤이 유희 나올 때는 일반적인 상식은 알고 나오지 않나? 동화책 보면 그렇던데.
루나가 씩씩거리며 성질부리는 레이첼과 눈꼬리가 아주 세모꼴로 올라가 [당장 저자를 벌합시다.] 하며 칠판을 흔들어 대는 리프를 보며 살짝 웃었다.
“둘 다 알아둬야 할 게 있어.”
루나는 입구와 도박장 안쪽을 잇는 짧은 복도에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아인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 그리고 대우. 그리고 그것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제국의 수도.
“그러니 내 걱정은 말구.”
“그럼 그냥 나가자, 여기 말고 좀 허접한 곳으로 가면 되지.”
“그래두 수인족을 받아 줄 정도면 범죄자들이나 도박하는 곳일 텐데.”
레이첼이 툭 던진 말에 루나가 고개 저으며 대답하자 레이첼이 짜증이 나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지 말구 들어가자. 나두 안이 궁금하단 말이야.”
도련님은 이런데 안 오실 거구, 언제 리프랑 나랑 이런 데를 구경해 보겠어. 하는 말에 레이첼이 머뭇거리다 이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좋아, 이 언니가 어? 잔뜩 따는 거만 기대해.”
그에 루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리프와 레이첼의 등을 떠밀었다.
“캬, 물은 좋네.”
기본적으로 작위를 받지 않았거나 받을 예정인 귀족의 자제나 돈이 많은 이들이 오는 곳이라 내부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오가는 이들도 대부분 외모가 나쁘지 않았다.
그에 레이첼이 안을 쓱 한번 둘러 본 뒤 루나와 리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거는 도박용 아티팩트인데, 버튼 눌러서 같은 그림을 3개 맞추는 거야. 그리고 저쪽은 주사위 게임, 저쪽은 카드 게임.”
레이첼이 익숙하게 골드를 칩으로 환전해 오더니 술을 쟁반에 올리고 지나다니던 웨이터를 잡고 제일 작은 칩 세 개랑 술 석 잔을 바꾼다.
“술 마실 때는 마나를 억누르고 마셔야 제맛이니까 지금부터 마나 돌리기 없기.”
취해야 맛이지! 하며 향긋한 사과 향이 피어오르는 술잔을 건네줌에 루나가 쥐고 바라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게임은 못하지만 술 정도는 마셔도 아무 말 하지 않는지 사과 주스 맛이 나는 술을 홀짝거리며 두리번거리는데 리프가 입을 열었다.
아델리안과 케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
타인에겐 입 모양만 벙긋거리는 듯 공기의 울림도 느껴지지 않지만 루나는 어쩐지 알 거 같은 기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해보구 싶어? 가보자.”
“그림 맞추기? 초보자는 역시 그림 맞추기나 주사위지.”
리프가 관심을 보이니 신이 난 듯 레이첼이 양손으로 루나와 리프의 등을 밀며 벽 쪽으로 갔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연달아 그림 맞추기에서 칩이 터지니 레이첼이 리프의 귓가에 속삭인다.
“치사하게 골렘급 시야로 보기 없기다. 인간 기준으로 능력치 맞춰라?”
[왜?]“그래야 재미있지!”
어쩐지 레이첼이 접경지에서 도박 빚이 많더라.
루나가 혹시 몰라 자신이 여유로 들고 있는 골드를 떠올리며 주사위 게임으로 자리를 옮기는 둘을 따랐다.
처음의 그림 맞추기 게임 이후엔 적당히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리프와는 달리.
언니만 믿으라며 자기 가슴을 치던 레이첼은 얼큰하게 취한 채 눈에 불을 켜고 카드를 노려보았다.
“나 칩 얼마나 남았지? 환전 한 번 더할까?”
“도련님이 도박에만 쓰라구 주신 돈은 아닐 텐데.”
바들거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지는 레이첼의 모습에 루나가 그녀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말하자 레이첼이 붉은 눈을 번뜩였다.
“아 따서 갚는다고. 따면 된다니까?”
[도박 상담은.]아델리안에게?
벌써 리프도 마나를 돌리지 않아 조금 취한 듯 살짝 빨개진 뺨으로 칠판을 드는 모습에 루나가 살짝 웃다 말고 입꼬리를 내렸다.
그 도박귀신이 들린 것 같았던 난쟁이.
발부스를 떠올린 루나가 레이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하필 그때와 같은 카드 게임. 느낌이 썩 좋지 않다.
“그 판만 하구 나가자.”
“아 안 돼. 지금 감 잡았단 말이야.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싹 쓴다니까?”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하는 레이첼을 보며 루나가 웃는 얼굴로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데 그 순간 누군가 말을 걸었다.
“어, 이것 봐라. 너 그 망나니 놈 하녀 아니야? 설마 팔린 건가?”
“아니야, 드미트리. 어깨에 크루거 가문 문장이 박힌 케이프 걸치고 있잖아.”
기름이 섞인 것 같이 두툼한 목소리와 반대로 얄상하게 찢어진 목소리.
루나는 몸을 돌리자마자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드미트리 도련님과 드뷔오나 아가씨를 뵈어요.”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지닌 쌍둥이 남매.
아델리안이 지금과는 달리 좀 더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연기하던 시절의 친구.
루나가 넙죽 고개를 굽힘에 리프는 미간을 좁히고 레이첼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뭐야, 누군데?”
“도련님이랑 아시는… 귀족분들입니다.”
“갑자기 웬 존대 아야야.”
제국의 수도에서 감히 아인족이 인간에게 반말을 쓸 수 있을 리가.
루나는 레이첼의 발을 살짝 밟았고 그에 아픈 소리를 내는 레이첼에게로 드미트리의 시선이 옮겨갔다.
“아델리안이 수도에 있나? 아카데미에도 안 다니잖아. 그나저나 저 계집들은 아델리안이 데리고 다니는 건가?”
“뭐, 그렇지 않겠어? 망나니 버릇 남 못 준다더니… 그럼 아델리안도 지금 이 카지노에 있는 거야?”
두툼한 손으로 목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 드미트리와 가느다란 손목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말하는 드뷔오나의 질문에 루나가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도련님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어요. 금방 오실 겁니다.”
루나는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세이렌을 통해 아델리안에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사념만으로 말을 거는 행위는 익숙지 못해 꼭 손을 써야 했다.
하지만 고작 수인족 하녀가 인간분들 앞에서 함부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간 건방지다느니 무슨 짓을 하려 한 거냐느니 트집 잡겠지.
그러니 아델리안의 이름을 대면 당장 큰 사고는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루나는 일단 둘러댔다.
원래 주인의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지만 아델리안이라면 용서해 줄 테니 일이 커지는 것부터 막고 싶었던 것.
하지만 루나의 바람과는 달리 드미트리는 연신 루나와 리프, 레이첼을 바라보며 히죽거리다 한 손을 리프의 어깨 위에 놓았다.
“뭐 그럼 아델리안이 오기 전까지 잠시 내 말동무나 해주겠어?”
“또 시작이네, 그러고 보니 토끼족아. 그때 아델리안이 산 검은 머리의 잘생긴 남자 노예는 여기 없어?”
리프는 자신의 어깨를 뭉근하게 어루만지는 통통한 소시지 같은 손을 보며 고민했다.
딱히 공격적인 손길도 아니라 상관은 없었다. 다만 저 남자의 몸에서 나온 기름이 자신의 어깨에 묻는 것이 신경 쓰일 뿐.
게다가 눈치를 보아하니 당장 손가락을 꺾어 버리면 루나가 힘들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일단은 가만히 있는데 그걸 승낙의 신호로 받은 것인지 점점 내려오는 손길에 레이첼이 손끝으로 두툼한 드미트리의 손목을 쳐올렸다.
“악!”
“무슨 짓이야?”
돼지 같은 괴성을 지르더니 손목을 쥐고 나뒹구는 드미트리를 보며 드뷔오나가 날카롭게 소리치자 레이첼이 귀를 긁었다.
“아니, 그쪽이야말로 뭘 하는 거야. 우리가 너희 시종이야? 쟤가 네 첩이야?”
“저 계집 뭐야? 뭔데 분수도 모르고 저러는 거야? 뭐 어디… 귀족 출신이라도 돼?”
“저분은… 아델리안 도련님의 호위이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아델리안 님께서 아시는 분이구요. 그러니 무례를 용서하세요.”
레이첼의 돌발적인 행동에 그녀에게 뭐가 있는지 의심하는 눈빛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드뷔오나와는 달리, 손목의 고통이 가셨는지 이제는 분노로 눈에 불을 켠 드미트리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네년이 감히!”
“감히 뭐. 돼지 같은 게.”
“무어라! 이… 이. 얼굴이 반반해서 내가 좀 예뻐해 줄까 했더니!”
루나가 누군가 말리러 올까 두리번거렸지만 제법 소란이 일어도 입씨름 단계라서 그런지 제지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눈요깃거리인 듯 드뷔오나까지 관망하기만 했다.
[때려도 돼?]“안 돼…….”
레이첼과 드미트리가 왁왁거리는 동안 슬며시 들어 올린 리프의 칠판에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레이첼의 신분은 아마도 평민으로 등록했을 테니 일이 정말 커지면 이쪽이 불리할 터.
루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드미트리와 레이첼에게 쏠린 순간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세이렌을 쥐었다.
<아델리안 님… 도와주세요!>
“못생긴 년이!”
“방금은 반반하다며?”
“이런 막돼먹은 여자를 호위로 삼다니 아델리안 녀석이 그렇지!”
“너랑 무슨 상관이야.”
한번 맞아서 그런지 당장에라도 멱살잡이를 할 것 같았던 드미트리가 한걸음 떨어져서 욕만 해대는 것에 레이첼이 실실 웃었다.
“고작해야 침대 데우는 용도겠지. 보나 마나 어디 하자 있는, 반푼이 계집이니 뻔하구나!”
그러다 순간 하자 있다는, 반푼이라는 말에 실실 웃던 레이첼이 얼굴을 굳혔다.
의자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180cm는 넘는 키로 드미트리를 한참 내려보자 드미트리가 움찔거렸다.
“뭐라고?”
“하… 하자 있는, 반푼이라고 했다.”
반푼이.
그게 레이첼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남들 눈에는 알기 어려울 만큼 미세하게 레이첼의 동공이 세로로 길어졌다.
그에 루나가 레이첼의 손목을 잡으며 바르르 떨었다.
아델리안 님, 제발 얼른 오세요. 드미트리가 죽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