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0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05화(105/373)
종족 차별 반대주의.
요즘 와서야 마치 유행처럼 종족을 차별하는 이들은 배우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고야 있지만 그 또한 가진 자들의 놀이나 다름없었다.
젊은 인간족들 사이에서 놀이처럼 퍼진 하나의 유행일 뿐이지.
소위 말하는 ‘수도의 꼰대들과 우리는 다르다’에서 비롯된 우월감.
혈통을 따지고 엄격하게 인간만을 우대하는 제국의 수도와는 다르게 다른 도시에서는 그것에 반발하여 좀 더 자유롭고 신식 지식인임을 내세우고 싶어 꺼낸 방패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런 시혜적인 태도에 아인족들도 속으로 반발은 일지언정 대놓고 반대는 하지 않았다.
비록 그렇게라도 자신의 아이들은 덜 차별받기 원했으니까.
중요한 건 종족차별이 고리타분한 전통이라고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엄격한 제국 수도의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래, 지금처럼.
“퉷. 아침부터 역겹네.”
“이왕이면 좀 보기 괜찮은 애들로 사지. 파충류 쪽은 영.”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에 루나는 머리에 쓴 후드를 좀 더 내렸다.
목에 금속으로 된 초커를 한 리자드 계열 아인족이 고개를 떨구고 지나간다.
[이해할 수 없어.]고개를 숙인 루나의 눈앞으로 칠판이 불쑥 튀어나왔다. 고개를 조금 드니 리프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제는 같이 지낸 시간이 쌓여서일까. 그 표정 없는 얼굴에서도 루나는 약간의 걱정과 의구심을 읽었다.
“나두.”
언제부터인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
그냥 그랬던 것처럼 인간족은 아인족을 싫어하고 아인족은 인간족을 싫어한다.
이유 없이.
아니, 이유가 있던가. 차별주의자들이 말하는 것들.
인간은 완벽하고 아인족은 불완전하다는 그 믿음.
그것이 리프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시 뜨고선 다시 몸을 돌려 걸었다.
제국에서 대중에게 공개된 가장 큰 도서관.
그 대중이라는 것도 귀족 출신의 인간만을 포함한 말이지만 쉽게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인 장서의 공개는 흔치 않은 일.
제국은 대륙에서 가장 세가 넓고 인구가 많은 편에 속한지라 귀족의 수도 그만큼 많았기에, 리프는 아델리안이 만들어준 가짜 귀족 증표를 도서관 문지기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쉽게 통과했다.
“쯧쯧 시골 귀족인가 보네. 하녀가 수인족인 걸 보니.”
루나는 뒤에서 문지기가 조그맣게 혀를 차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리프의 하녀 행세로 뒤를 따랐다.
―…….
“역사 쪽으루 찾아볼까?”
리프가 무언가 말한 느낌에 루나가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리프를 만들어 냈을 정도로 강대한 문명을 이룩했다면 어딘가엔 기록이 남아 있을 테지.
제국은 아주 오래된 곳이니까.
그렇게 한참 루나와 리프는 책장을 쏘다니며 내용이 있을 만한 책을 한 무더기씩 빼내 읽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형 생명체의 원형은 인간족이며 아인족은 부족한 영혼을 동물 같은 다른 것으로 채웠기에 생겨났다느니 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영양가 없는 책부터.
중심 없이 흩어져 지내던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았다는, 검 하나로 드래곤의 목을 자르고 모든 아인족을 제 발아래 두었다던 제국의 시조에 관한 건국기까지.
동화 같은 이야기부터 논문처럼 파고든 자료까지 뒤져 보았지만.
[없어.]“없네.”
잔뜩 모인 책을 한 번에 탑처럼 쌓아 반납대에 올린 루나가 투덜거렸다.
마치 가위로 뚝 자른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가 없다.
분명 만년도 산다는 드래곤도 있는데 어째서 아주 과거의 이야기가 없는 걸까.
대중에게 공개된 도서관이라?
그렇다기엔 역사가 아닌 다른 종류의 도서는 제법 은밀한 이야기도 남아 있는데.
이것저것 읽어도 두루뭉술할 뿐. 혹은 그냥 덧없는 이야기 같거나. 결국 리프가 원하는 과거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두 여기에 있는 책은 보편적인 거 같아. 제대루된 전문적인 자료가 아니라.”
그렇지만 실망한 리프는 보기 싫으니까. 루나가 리프를 달래듯 말을 건네자 리프가 고개를 조금 끄덕인다.
그리고선 조금 생각하다가 칠판에 슥슥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관리자님께 물어야겠어.]도련님께?
루나가 칠판을 한 번, 그리고 리프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찾을 수 없다면…….
어쩌면.
비공정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까.
암호가 걸려 아델리안의 관리자 권한에도 풀리지 않는 문서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루나는 잠시 그것들을 떠올리다 나직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께 말해 보자.”
그분은 늘 해결책을 찾아 주니까.
* * *
“기억났다.”
셋이서 나란히 꼬치를 사 먹다 말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화장으로 눈꼬리를 좀 내리긴 했지만 분명 그거 파이얀 아니냐?
맞는 거 같은데?
“뭐가 말입니까?”
제로가 꼬지 하나를 다 먹고 나무 막대를 반으로 부수는 것을 바라보다 나는 레이첼에게 말을 던졌다.
“아까 어떤 여자에게서 백합 향이 잠시 났는데 기억해?”
“어어? 기억은 하지.”
“찾을 수 있어?”
나는 경찰견 보는 눈으로 레이첼을 바라보았고 그에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눈빛으로 날 보던 레이첼이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뭐,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는데. 그냥 공짜로?”
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곱게는 안 해주네.
“꼬치 사주잖아.”
“의식주는 네가 원래 책임 진다매!”
“아 그래서 어디 있는데.”
나와 레이첼이 옥신각신하는데 옆에서 제로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왜.”
“아델리안 님. 저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제로 너 이 녀석, 너 언제부터 이렇게 유능해졌냐?
그에 순간 나와 레이첼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레이첼이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내가 해줄게!”
이미 버스는 지나갔어, 이 사람아.
“제로, 소원권 당첨.”
나는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고 그에 제로가 기쁘게 웃으며 어디론가 손짓한다.
“저쪽으로 가시죠.”
“나나나. 내가 지름길로 안내할게. 나도 소원권!”
“저쪽 어디?”
난 레이첼을 등 뒤에 달고 제로의 안내대로 걸음을 옮겼다.
제법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된 골목을 지나 좀 더 바깥쪽으로.
발달한 상업지구를 조금 지나 보이는 약간 낡고 조악한 건물들.
그렇다고 아주 외곽은 아니라 치안이 그렇게까지 나빠 보이지는 않는 데다가 중심부와는 다르게 목걸이를 하지 않은 아인족도 조금씩 보인다.
나에게는 이곳이 좀 더 익숙한 분위기.
“수도에는 몬스터도 안 나오는데 웬 모험가 길드?”
“미궁도 없는데 수요가 있습니까?”
제로가 향기를 따라온 곳은 온갖 길드가 모인 곳에서도 모험가 길드가 있는 곳.
난 레이첼과 제로의 질문에 둘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몬스터를 패는 손맛으로 접경지에 박혀 있던 드래곤, 한 명은 미궁에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이제야 나온 도플갱어.
그러니 다른 차원에서 이곳으로 떨어진 지구인보다 모를 수 있지 암.
“미궁은 없어도 던전은 있지. 이 수도 아래는 아주 큰 수로가 있거든.”
더러운 오물도 깨끗한 물도 흐르는 수로. 그곳에서 슬라임이나 코볼트, 혹은 뱀파이어 뱃 같은 것들이 나왔던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한 것도 나오고 나중에 터지는 메인 스트림이 뭐냐에 따라 언데드가 밀려 나오거나 하기도 했지.
그러니 모험가 길드가 있고 거기에 파이얀이 있을 수도 있겠지.
“둘 다 눈에 너무 잘 띄니까.”
“후드 쓸까요?”
나는 그냥 말없이 나무 배지를 내밀었고 나도 소매에 착용한 뒤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 곳은 주점도 겸한 듯 시끄러웠고 다른 한쪽엔 벽 하나를 통째로 게시판으로 만들어 뒀는데 의뢰서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접수처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까지 천천히 훑어보는데 안쪽에 유독 하얗게 보이는 둥근 머리통 하나.
“정말요? 저는 그런 거 잘 몰라서…….”
“릴리 씨는 우리만 믿어도 됩니다.”
“걱정 마시고 뒤에만 계세요.”
구불거리는 긴 하얀 머리에 살짝 쳐진 눈썹, 그리고 주황색 눈동자.
약초사나 물약 제조사인 듯 자잘한 물약병이 담긴 허리띠와 가방.
얼핏 보기엔 청순가련한 모습이지만 글쎄.
‘사용자의 눈.’
[파이얀―가면을 쓴 백합]대표 Traits : [매료(S)] [배합(B)]
히든 Traits : [피지배자(B)] [도예(E)]
파이얀의 트레잇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료와 절단 기호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절단 기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배합?
거기에 피 냄새가 나는 악당이었나 그런 칭호를 가졌던 거 같은데 지금은 가면을 쓴 백합으로 바뀌어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과거에 루비라는 이름으로 우리 파티에 접근했던 그 파이얀이 맞다는 것.
그 붉은 머리와 장미 향은 일종의 변장이었나.
하긴 무슨 일이 생겨 도망칠 일이 생길 경우, 다른 사람이 캐물어도 붉은 머리와 장미 향의 이미지가 강해 저런 식으로 외적인 변신을 하면 동일인물임을 쉽게 알기 힘들 것이다.
“지켜주실 거죠?”
양손을 곱게 가슴께에 모으고 고개를 기울이며 살포시 웃는 모습에 사내 두 명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도 다른 모험가들의 뒤통수를 노리며 사는 건가. 그나저나 폭탄 포션이 터져 살아남은 이가 없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둘은 이곳에 대기해.”
나는 제로와 레이첼에게 한마디 던진 후 파이얀과 마주 보는 자리에 서서 소매에 끼웠던 배지를 풀어냈다.
인식 저하 배지를 빼자마자 마치 없는 사람처럼 날 스쳐 지나가던 시선들이 천천히 내 몸에 달라붙는다.
“정말? 너무 기뻐…요. 저… 잠시…….”
눈웃음을 지으며 사근사근하게 말하던 파이얀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한다.
천천히 목소리가 갈라지며 안색이 새하얘짐에 사내 둘이서 걱정하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뒷문으로 걸어간다.
“뭐 재미있는 의뢰 있나 구경이라도 하고 있어.”
“예? 하지만.”
“아이기스가 있잖아.”
“무슨 일 생기면 비명 질러. 금방 갈게?”
나는 다시 배지를 소매에 끼운 뒤 천천히 뒷문으로 나갔다.
좁은 골목 한쪽에 등 돌리고 서 있는 파이얀.
구불거리는 하얀 머리가 가늘게 흔들리는 것이 떨고 있는 모양인데.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인 줄 알겠어.
“오랜만이야?”
내가 다가가며 웃는 소리와 섞어 말을 거니 파이얀의 어깨가 펄쩍 뛴다.
“누, 누구신데요. 저 아세요?”
“이제 와서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야.”
모르는 체할 거면 처음부터 했어야지.
내 말에 천천히 몸 돌리는 파이얀의 눈은 예전처럼 고양이같이 치켜 올라가 있다.
얼씨구, 이번엔 눈가에 눈물점까지.
분명 저번에는 점이 없었던 거 같은데. 그때는 뺨에 흉터였나?
“어떻게 알아본 거야?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어지간한 마법보다도 알아보기 힘들었을 텐데.”
나긋나긋하고 상냥했던 길드 하우스 안과는 달리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나는 웃었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눈썰미가 좋나 봐. 그나저나 어떻게 살아나온 거야?”
“단도직입적이네. 그것만 알려주면 나에게 신경 끌 거야? 아니, 그전에 진짜 왜 아는 체하는 거야? 뭐 배상이라도 받고 싶어?”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고 나를 당당하게 노려보는 기세와는 달리 몸의 미묘한 떨림.
“아니면 뭐 또 누군가의 등에 칼 꽂고 사냐고 비난이라도 할 거야 뭐야. 날 어떻게 할 셈이야?”
내가 두려운 건가.
혹시 보복할까 봐? 그러나 난 사실 파이얀에게 큰 악감정은 없다. 어차피 다리를 잘린 것도 어느 정도 내 노림수였으니.
“네가 어떻게 살던 내 알 바는 아니지. 그저 어떻게 살아났는지가 궁금한 거야.”
내 말에 파이얀이 자신의 손톱을 질근 씹어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원래 요마족 혼혈이야. 그래서인지 그날…….”
파이얀의 주황색 눈동자가 잠시 바닥을 바라보다 천천히 내 눈동자와 마주했다.
예전보다 독기가 빠진 눈.
“각성했어. 요마족의 능력을……. 그래서 안개로 변해서 나온 거야. 이제 됐지?”
안개?
나는 할 말 다 했다는 듯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가려는 파이얀을 잡아냈다.
“뭐야. 대화 끝난 거 아니야?”
“난 아직 대화 안 끝났는데.”
내가 즐겁게 말하니 파이얀이 억울하다는 듯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날 왜 이리 경계하는 거지?
파이얀의 기억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속아 다리까지 잘린 멍청이일 텐데.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