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0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07화(107/373)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내가 의자에 걸터앉은 그대로 턱짓하자 제일 늦게 들어온 탓에 문과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케인이 몸을 돌려 문을 연다.
‘누군지 안 보이네.’
분명 경매장에서 노예로 팔리고 있을 때의 케인은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이 험한 일을 많이 당했던 터라 몸이 덜 자라 나보다도 작았었는데.
지금 문을 열고 있는 케인은 그동안 먹인 녹즙의 힘인지 제법 덩치가 커져 너머의 상대방이 보이지 않았다.
“고용주의 손님이군.”
그리 말하며 몸을 비틀 듯 옆으로 서는데 보이는 건 긴 은청색의 머리카락.
“가디아? 누님?”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불러버리는 바람에 뒤늦게 만회하고자 누님이라 부르며 몸을 일으켰다.
다가가니 얼굴은 빙결 트레잇으로 만든 것인지 서리로 만든 베일이 허공에서 녹을 듯 말 듯 넘실거린다.
이마부터 입술 어림까지 내려오는 것이 시야를 가리기 위함인가.
‘왜?’
“…일단 나가서 대화하자, 아델리안.”
가까이에서 보니 어깨가 잘게 떨리고 원래도 하얀 피부가 지금은 파랗게 보일 정도.
무엇에 이리도 긴장하는 것인지 원.
“나가서? 이 시간에 굳이? 그냥 들어와서 앉지 그래. 다들 내… 사람들이라서 보안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친구나 동료라고 말하려다 그건 가디아가 아는 오만한 동생과는 거리가 멀겠지.
“잠시. 나가서 대화하자고.”
그렇지만 가디아는 안에서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 굳어가는 음색으로 말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뭐 살기라도 뿜은 건 아니겠지.
아직 목이 뎅겅 할 느낌은 아니긴 한데.
“좋아, 그럼 나도 호위 한 명은 데리고 나가야겠어. 누나도 알다시피 난 무능력하잖아?”
이죽거리며 하는 말에 가디아가 어깨가 움찔거리며 작게 대답했다.
“…는 빼고.”
“뭐라고?”
“사내는 빼라고 했다.”
저놈의 남성 불신.
분명 케인에게 반했는데도 아직 인정하지 않는 건 저게 너무 뿌리 깊게 파고들어 그럴 거다.
“루나, 리프.”
“네. 도련님.”
―예, 관리자님.
내 말에 루나와 리프가 다가와 양쪽에 선다. 그에 서리 베일을 쓴 가디아의 고개가 잠시 둘 쪽으로 번갈아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여서 둘만 대화하자고 하는 모양인데. 그럴 거면 굳이 나갈 필요 없어.”
나는 루나와 리프 빼고는 다 방에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고 루나에겐 차를 부탁했다.
레이첼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다가 들어가란 소리에 입을 삐죽였지만, 나중에 말해 주면 되겠지.
이윽고 거실에는 나와 가디아가 마주 앉았으며 둘 사이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과자가 준비되었다.
루나와 리프는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대기 중이고, 아이기스도 비가시 모드로 내 주위를 맴돌고 있으니 단박에 목이 날아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겠지.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뭐길래 아카데미에서 외출까지 한 거야?”
천천히 서리 베일이 사라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가디아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일…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듣고 싶어서 왔다.”
케인과 제로가 없다고 그새 기운을 차렸는지 우아한 몸짓으로 차를 마신다.
지금 생각건대 아까까지 한 서리 베일은 불특정 다수의 남성을 보지 않기 위해 만든 게 아니고 순전히 케인 때문에 한 거 같은데.
이런 걸 어디서 주워들은 적 있다.
입덕부정기라고.
나는 다 안다는 얼굴로 히죽거리며 턱을 괴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서 외출까지 하고 이 시간에 온 건가?”
“오늘 예정되어 있던 학업을 모두 마치니 이 시간이었던 것일 뿐.”
“꺼지랄 때는 언제고 그렇게 이 동생이 보고 싶었어, 누이?”
내 빈정거림에 순간 주변의 온도가 내려간 듯 팔에 소름이 돋는다.
루나와 리프가 한 발짝 다가옴에 가디아가 손을 들어 저지하듯 하더니 다시 온도가 올라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네가 어떻게 내가 나임을 알았는지 궁금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헛소리는 그 정도만 했으면 좋겠군.”
알지알지. 날 핑계로 한 번 더 보고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
원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안 보면 보고 싶고 궁금하고.
지금도 케인이 들어간 방을 흘긋흘긋 보며 몸을 떠는 가디아를 보니 알 만하지.
내 비록 게시판에서 활동할 때는 레이첼 정실단이었으나… 지금은 어영부영 시작된 가족 관계라 해도 가족은 가족이니 가디아를 응원하기로 1초간 마음먹으며 입을 열었다.
“찍었어.”
“…뭐라?”
“찍었다고.”
나는 상큼하게 윙크를 날리며 혹시 모를 가디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슬금 고개를 뒤로 물렸다.
“찍… 그렇다면 가짜의 변장은 어찌 풀었지? 분명 마법적인 변장도 아닌 특수한 방법으로 한 변장이었을 텐데.”
나는 슬금 발끝으로 바닥을 밀어 의자를 약간씩 테이블과 띄우며 말했다.
“누나. 내가 그걸 왜 알려줘야 해? 착각하나 본데, 누나는 나에게 지금 빚을 진 거고 나는 누나를 구해 준 사람이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알아봤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오히려 중요한 건 가디아가 나에게 빚을 졌고 그것을 언젠가는 갚아야 할거라는 점.
그걸 한번 짚으니 가디아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오만이 트레잇으로 붙은 아델리안 만큼은 아니라도 가디아 또한 지체 높은 귀족 태생에 외모도 트레잇마저도 출중하니 자존심이 강하지.
가디아가 무의식적으로 힘을 발산하는 듯 들고 있는 찻잔에 냉기가 번짐에 루나와 리프가 내 곁으로 붙는다.
“너…….”
“잊지 마. 나는 누나 자신의 가치만큼 손해 봤다는 걸.”
나에게 가디아는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만큼 갚아야 할 것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가디아 수련 크루거’라는 자아 그 자체를 부정당하고 뺏겼을지도 모르니까.
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듯 가디아가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면서도 공격은 하지 않았다.
“너…….”
“케인!”
“……!”
하지만 무어라 더 말하려 하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불안해서 난 냉큼 가디아 퇴치용으로 케인을 불렀고 케인이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가디아가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다.
“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얼굴을 쓸어내리듯 서리 베일을 급하게 만든 가디아가 허겁지겁 케인과 제일 먼 동선으로 방을 빙 둘러 나갔다.
“갔냐? 갔어?”
“도련님의 가족분이셔. 갔냐 갔어라니.”
“아델리안 님. 이야기는 잘하셨습니까.”
레이첼이 답답했다는 듯 바로 방에서 튀어나왔고 제로 또한 머리를 긁적이며 나온다.
내가 꺼내놓은 다과를 레이첼과 리프에게 밀어주는데 레이첼이 하나 집어먹으며 나를 본다,
“이상하네. 너는 가족이라고 막 봐주고 할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의미야?”
내가 남은 차를 마시며 되묻자 레이첼이 씩 웃었다.
“정에 휘둘리지 않을 것처럼 생겨서 휘둘린단 소리지. 특히 인간 귀족들은 더하잖아. 이번 일도 너무 쉽게 해결해 준 거 아니야?”
그렇게 보일 수도 있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애초에 가디아는 나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아.”
목이 뎅겅 하며 겁먹는 소리를 속으로 내긴 했지만 케인 같이 확실한 대처 방법이 있으니까.
게다가 아이기스가 있는 한 케인이 당장 내 곁에 없더라도 이제는 쉽게 죽을 리도 없고.
원작에서도 처음엔 건방진 귀족 히로인의 클리셰처럼 등장해서 케인과 함께 구르고 고생하다 결국 죽은 세 명의 히로인 중 하나가 되었으니. 오히려 약간 애틋하다면 애틋하다.
‘오히려 카이만이 더 견제되면 되는 거지.’
거긴 초반에 어떻게 해보기도 뭐하고 후반에 그냥 딜로 치는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원작에서 희생되는 세 명 중 하나인 루나에게도 시선을 잠시 돌리다 입을 열었다.
“오히려 나중에는 필요하기도 하고.”
“에잉… 이만 들어가서 게임이나 하자.”
내 말에 레이첼이 재미없어졌단 얼굴로 그럼 그렇지 하더니 하나 남은 과자를 리프랑 반 나눠 먹더니 흥미를 잃은 듯 보드게임을 들고 루나랑 같이 방으로 들어간다.
“게임 하실 거면 저도 끼고 싶습니다.”
그에 제로도 어디선가 사탕 병을 챙겨서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데 케인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얼마나 더 머물 생각이지.”
케인의 말에 나는 음, 하고 소리를 내며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드미트리와의 내기에서…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지면 뭐 금방 나가는 거고. 아니면 한동안 있을 예정이지.”
내 말에 케인이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린다.
사실 돌아가는 상황을 봐야 알 테지만 황족과의 대면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으면 파티를 다시 나눠 진행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할 터.
거기에 아직 언급만 해둔 상태지만 파이얀이 내게로 오면 좋고 혹은 오지 않더라도 암흑가 세력을 어느 정도 손에 넣어야 한다.
나중에 시작해도 되는 부분이지만 이왕 온 김에 씨앗이라도 뿌려 놓는 게 편하겠지.
―관리자님. 이제 제법 늦은 시간이니 내일을 위해 주무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럴까?”
뭔가 자기 아쉬워 아공간에서 책을 한 권 뺄까 하던 와중에 리프가 말을 던진다.
오늘 보석상에 가서 주사위 제작도 의뢰했지. 파이얀도 만났지. 가디아도 만났지.
‘피곤할 만한가.’
똑똑.
슬 쉬러 갈까 싶어서 일어나는데 작은 노크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루나와 제로 레이첼은 게임 하러 들어갔고 리프는 욕실에 물을 받고 있으며 케인은 창가에 앉아 붉은 책을 빼고 있으니 내가 열어 볼까.
별생각 없이 문과 제일 가까이 있던 내가 다가가 여는데 눈앞에 은청색 머리칼과 아이스블루 눈동자를 지닌 사람이 서 있다.
“누나. 뭐 두고…….”
챙캉!
뭘 두고 간 거냐 물어보려는 순간 내 목으로 꽂히는 비수.
그것을 아이기스가 쳐냄과 동시에 반탄력으로 밀자 몸을 한 바퀴 돌린 가디아가 다른 손에 들린 비수를 내 얼굴로 날린다.
순간 내 몸이 앞으로 쏠릴 만큼 누군가가 강하게 내 몸을 뒤로 당겼고 동시에 케인이 비수를 치자 리프가 앞으로 막아선다.
파바밧―
순간 녹색 빛이 도는 바늘이 수십 개 뿌려졌고 리프가 그것들을 모두 제 몸으로 막은 뒤 한걸음 물러나자 케인이 허공에서 바늘을 뿌린 가디아의 손목을 잡아 부수며 방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한시도 눈을 못 떼게 하네.”
“도련님, 괜찮으세요?”
레이첼이 나를 확 잡아당긴 듯 나는 레이첼의 몸에 기대 있었고 루나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묻는다.
제로는 케인이 제압한 가디아의 귀를 양손으로 팡 치듯 가격해 기절시켰다.
“드루이드 기술 중에 이런 게 있답니다.”
내가 방금 뭐한 거냐는 듯 시선을 던지니 제로가 멋쩍게 웃는다.
자신과 연결된 도플갱어의 기술에 조금씩 더 능숙해 지고 있는 건가.
난 일단 레이첼의 품 안에서 몸을 일으켜 고개를 움직였다.
“이거 가짜지?”
“누가 봐도.”
케인이 기형적으로 손목이 꺾인 가짜 가디아의 몸을 발끝으로 굴려 보여준다.
양 귀에 피를 흘리며 기절한 그 외형만큼은 진짜 가디아 그 자체지만.
이건 사용자의 눈으로 확인할 필요 없이 가짜 가디아에 배후는 악신교단임이 확실하지.
그쪽에서 내가 가디아를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라고 보는 모양인데.
대충 무슨 효과를 노리고 대놓고 가짜를 보냈는지 알 것 같다.
“어쩔까?”
“뭐야? 안 죽여?”
“굳이 죽여야 해?”
은근히 이 세계는 잔혹하다. 나야 부유감 덕에 누군가가 죽는 것에 대한 충격이 없다지만 루나마저도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두려움을 보인 적 없으니 말 다 했지.
전반적으로 쉽게 죽고 죽이는 것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느낌.
내 말에 다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죽이면 깔끔한데 왜 안 죽이느냐는 눈빛이다.
그리고 난 그게 마음에 안 들고.
뭐랄까 현대인의 감성으로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사람의 목숨이란 무거운 거며 손에 피를 더 묻히고 싶지 않다.
뭐 이런 건 아니고.
그래도 명색이 세계를 멸망에서 구할, 용사라면 용사라고 할 수 있는 녀석들이 너무 막 죽이고 다니면 그렇지 않아?
어찌 보면 꼰대 같은 생각이긴 한데. 이게 악신교단 쪽이 사람을 막 죽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무력화된 상태의 사람까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쩐지 교단 놈들에게 놀아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죽이면 악신교단 쪽에서 좋아할 거 같아서 싫다.”
내 말에 다들 빠르게 입을 연다.
“음.”
“아, 그럼 찬성.”
“어디 멀리 버리구 올까요?”
“제로가 포션 풀면 경비대에게 넘기자.”
“예, 제가 깨워서 포션 효과 풀겠습니다.”
모두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리프가 몸에 박혔던 바늘을 모두 뺀 듯 다가와 입을 열었다.
―관리자님. 물이 식습니다.
암살자가 잠깐 찾아왔지만.
뭐 평화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