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08)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08화(108/373)
“베르뷔트? 늘 상냥하게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야.”
“그 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기로 소문났잖아. 모든 비밀을 말하게 된다니까?”
“다정하고 얌전하고, 그러면서도 외모는 달콤한 게 은근히 인기 많지.”
여리고 야물지 못한 베르뷔트. 어리고 순진한 아이.
그 몽실거리는 갈색 머리와 천사 같은 미소.
부드러운 음성과 다정한 한마디.
그러니 알 수가 있나.
그녀의 본 모습을.
“암살자는 꾸준히 보내. 그 여관에서 일하는 종업원도 매수해서 일행의 머리카락을 가져와.”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할 것처럼 웃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살짝 찌푸린 미간과 비틀린 입술.
베르뷔트의 말에 교단의 정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디아를 몰아세우기 위해 반출해 온 포션. 다시 되돌려 놓는 것도 우습잖아?”
그러니 알뜰살뜰하게 써서 괴롭혀줄 생각이었다.
어디 한번 두려움과 공포로 밤을 지새워보라지.
어차피 그 아델리안이라는 망나니는 무능력자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공격하는 것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가족과 동료와 같은 외모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습격당한다면 누구라도 버틸 수 없을 테니까.
24시간 곁에 둔다고 해도 사람이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아델리안의 일행 중 그 누구라도 잠시 떨어지는 순간을 노려 보낸다면.
뭐 처음에야 신경 쓰지 않고 죽여댈지도 모르지.
자신의 친누나일지도 모르는 가짜 가디아마저도 죽음에 가까운 공포 혹은 폭력을 행사했던 쓰레기니까.
그러다 운이 좋아 손이 꼬여 진짜를 죽인다거나 진짜를 가짜로 의심하게 되거나 하는 일이 영영 없을까?
무조건 포션을 쓸 필요도 없지. 키와 체형이 비슷한 이를 찾아 염색 정도 시킨 뒤 종종 근처에 얼쩡거리게만 해도 의심은 하지 않을까?
의심은 사람을 점점 좀먹게 만드니 운이 좋다면 아주 미쳐버리게 할지도 모르잖아.
“난 그런 게 짜릿해.”
베르뷔트가 체리 한 알을 이 끝으로 물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누군가의 삶이 나 때문에 망가지는 거, 내가 그 사람을 휘두르는 거 말이야.”
그래서 공들여 가디아를 망치고 있었는데.
머저리가 방해한다면 나도 괴롭혀줘야지. 안 그래?
“꾸준히 보내. 잊을 만하면 그의 지인들로 분장한 이들을 보내란 말이야. 뭐 몇 번은 아주 허접해도 좋아.”
도플갱어 포션을 먹인, 정말 진짜 같은 가짜와 누가 봐도 가짜인 가짜들을 마구잡이로 섞으면 정신적 피로가 더 늘어날 테니.
단단한 체리를 이 끝으로 깨물자 붉은 과즙이 핏물처럼 입술을 타고 내린다.
짓이겨져 즙이 나오는 체리를 입안에 머금은 베르뷔트가 붉게 얼룩진 자신의 입술을 뱀처럼 핥았다.
* * *
“방금 또 저 멀리서 지나갔네. 이게 몇 번째야?”
―루나 선배님은 4번째입니다.
나는 리프가 건네주는 칠판을 받아 읽었다. 루나가 4회, 제로가 2회, 리프가 2회, 레이첼이 3회. 그 와중에 케인은 없는 게 더 웃기네.
“다녀왔어요. 무슨 대화 중이였구?”
보석상에서 내가 주문한 주사위를 찾아온 루나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그에 레이첼이 깍지낀 손을 뒷머리에 대고 있다가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방금 저어 쪽에서 분홍 머리에 토끼 귀를 한 여자애가 지나가더라.”
웃긴 게 뭔 줄 알아?
그 토끼 귀, 바짝 서 있더라고.
무슨 괴담이라도 말하듯 레이첼이 루나에게 속삭이자 루나가 자신의 드롭이어를 양손으로 잡곤 움찔한다.
“또… 또 저였다구요?”
“게다가, 엄청나게 열 받는 일이 또 있었어.”
레이첼이 분노로 눈동자를 이글이글 불태우며 어금니를 으득 갈았다.
“내 흉내를 내는 놈은 남자더라.”
레이첼의 키가 커서 장신의 여성을 당장 데려오긴 힘들었는지…….
호리호리한 사내에게 붉은 가발을 씌워 주위를 맴돌게 하더라고.
물론 단순하게 육안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긴 해서 일반인이 봤다면 감쪽같이 속긴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괴담 속 주인공처럼 두려워하며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후후… 박살 내주겠다. 감히 남자를 변장시켜?”
“제가 너무 얕보이나 보구… 예전처럼 되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관리자님. 물리적으로 제거는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세 명을 보며 천천히 웃었다.
이런 이들이 옆에 있는데 내가 겁먹을 리가 있겠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나는 상대를 쳐부술 의욕이 가득한 루나와 리프, 레이첼을 바라보며 루나가 찾아온 주사위를 건네받았다.
“이제 며칠 후면 승부할 시간인데. 잊진 않았지?”
내 말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레이첼 빼고 루나와 리프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시 주사위를 루나에게 돌려주었다. 며칠 동안 이 주사위에 익숙해지는 것이 관건.
보석과 귀금속으로 만들어 외양이 매우 화려한 데다 조형미도 뛰어나니 이 주사위를 드미트리에게 주면 과시욕 있는 그 녀석은 이것을 써먹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 내가 마법적 함정이라도 파지 않았는지 알아야 보겠지만.
난 마법보다 훨씬 단순한 방법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거든.
데그르륵―
“어때?”
숙소로 돌아온 뒤 주사위를 테이블 위에 몇 번이고 굴리며 루나에게 묻자 루나의 분홍색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으음, 소리가 다르긴 하구요.”
“그렇지?”
단순하게 짝을 맞추기 위한 거였다면 다이아와 사파이어로 주사위의 눈을 만드는 대신 루비와 사파이어로 만들었겠지.
하지만 관건은 주사위의 눈을 이루는 보석이 차이가 나야 했기에 사실상 색만 다르지 같은 광물이라고 할 수 있는 루비는 제외했다.
주사위의 눈이 주사위의 면에 딱 맞거나 살짝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 아주 살짝 튀어나와 있는 것이 내가 직접 제작을 의뢰한 이유.
주사위 면이 바닥에 닿는 그 찰나.
그 짧디짧은 시간에 보통 사람이라면 들을 수 없는 소리.
주사위의 눈이 바닥에 닿는 소리.
단 하나의 주사위라고 해도 그 소리만 듣고 알아채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게임에 쓰이는 주사위는 2개.
즉 컵 안에서 흔든 뒤 바닥에 놓으면 컵과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다 최종적으로 멈추는 그 순간에.
그 찰나 바닥과 접촉하는 소리를 구분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 눈이 돌출된 주사위 게임은 절대적인 승리법이 있다는 소리다.
“할 수 있겠어?”
“사실 완벽하게 구분하기는 힘들 거 같지만. 드미트리 도련님 보다만 잘 맞추면 되지 않을까 하구 생각해요.”
루나가 주사위를 연신 굴리며 웃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는 잡은 모양.
“늘 생각하지만 넌 진짜 나쁜 놈이야.”
이런 걸 누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해?
하듯 레이첼이 구르는 주사위 하나를 들어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렇게나 나쁜 놈이야?”
내가 히죽거리며 되물으니 레이첼도 마찬가지로 악당처럼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남은 생각도 못 한 편법으로 날름 이기려는데 어?”
도박으로 많이 망해본 레이첼의 칭찬에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주 악당이야 아주. 귀 좋은 오러 유저 토끼족으로 주사위 게임을 하려 하지 않나 골렘으로 기억력 좋으면 유리한 게임을 하려 하지 않나.”
“그러니까 카드 게임도 기대해봄 직하지 않나?”
명색이 드래곤인데.
하는 내 눈빛에 씩 웃던 레이첼이 슬금 입꼬리를 내린다.
“그건… 내가 직접 편법 없이 내 힘으로!”
“지면 봉사하러 가는 거다, 너. 드미트리가 시키는 것에 군말 없이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야.”
“종족도 내 힘이지.”
드미트리의 성질을 박박 긁어뒀으니 뭘 시킬지 두려울 터.
“다녀왔습니다.”
“오, 어서 와, 어서… 으윽!”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이내 레이첼이 한 손으로는 자신의 눈을, 다른 손으로는 리프의 눈을 가린다.
어쩐지 등 뒤가 좀 환해진 느낌도 나는데 동시에 뒤에 얼음을 가져다 둔 듯 서늘해지는 감각.
“루나.”
“네에, 도련님…….”
게다가 루나마저 시선을 아래로 깔고 있단 소리는…….
“내 등 뒤에… 있어?”
나는 루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심호흡한 뒤 천천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윽.”
눈부셔.
그 뷰티 살롱, 진짜 일 잘하네!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듯 한기를 풀풀 풍기는 케인이 몸에서 빛을 내는 것 같은 모양새로 서 있고 제로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그 옆에 서 있었다.
“제로 손 내려.”
“앗! 너무하십니다. 애써 참고 있었는데.”
제로가 손을 내리며 크게 웃음에 나와 레이첼도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레이첼, 뒤뜰로 나와라.”
“캬하하학! 캬학! 싫어!”
케인이 미간을 좁히며 스카를 잡아도 평소 같으면 좋다며 뛰쳐나갈 레이첼이 배를 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니, 글쎄 오늘은 뷰티 살롱의 마담께서 봉인 아티팩트로 케인 선배님을 평생 가둬 두려고 하지 뭡니까.”
“저번에는 거기 일하는 사람들 다 기절시키고 오더니 오늘은 봉인 당할 뻔했네, 케인.”
요즘 수도에 인큐버스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돈단다.
왜겠어. 케인이 인식 저하 배지를 깜빡하고 나가는 순간 눈 마주친 사람들이 기절해서 그렇지.
나는 봉인 아티팩트를 부수고 살롱을 엎어버린 뒤 겨우 탈출했다는 모험담을 듣다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외쳤다.
“그럼 이제 뷰티 살롱에 못 보내잖아?”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나에게 제로가 상냥하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보라색 머리카락을 몇 가닥 꺼내 들었다.
“기절한 마담에게서 조금 얻어 왔습니다.”
제로가 삼키면 되겠네!
나는 기특하다는 듯 녹즙 무효권 한 장을 즉석에서 적어 줬고 그걸 보던 레이첼이 너무 웃어서 눈물이 맺힌 눈꼬리를 닦다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종종 루나나 제로가 녹즙 어쩌고 하던데. 그게 뭐야?”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게임 벌칙으로 녹즙 먹인 게 리프가 들어온 기념으로 친목 게임을 했을 때였나.
제로가 가뮈르와 바하디에게 배우고 리프와 비공정에서 나와 모두 모였을 때 제로가 사탕 하나로 걸려 마시고 리프는 맛만 본 뒤 쓰러지고.
추억이네.
나는 턱을 괴고 레이첼을 바라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해?”
“엥? 헉. 아니, 절대. 안 궁금해. 그냥 잊고 살게.”
내 미소에 레이첼이 학을 떼듯 자리에서 펄쩍 뛰는데 제로와 루나가 부처님처럼 은은한 미소를 한 채로 다가가 양쪽에서 팔과 어깨를 잡고 앉힌다.
“그러고 보니 카드 게임을 꼭 이겨야겠다는 의욕을 불어넣기에 나름 괜찮은 이유가 될 거 같은데… 어찌 생각해?”
“찬성한다.”
―저도 그러합니다. 관리자님.
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케인과 리프까지 단박에 대답하는 걸 보니 괜찮은 생각일 게 분명하다.
“파산하는 사람은 녹즙 먹기.”
내가 아공간에서 발부스의 카드 딜러 아티팩트와 사탕을 꺼내자 다들 알아서 자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뭔데… 뭔데 이 분위기!”
그에 레이첼만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훑어보며 일단 카드 패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윽 올인하지 말걸!”
사탕이 모두 비어버린 병을 쥐고 흔들며 울부짖는 레이첼에게로 나는 기다리면서 만들어둔 녹즙을 들고 다가갔다.
“축하해. 이걸 마셔야 진짜 내 파티지.”
다들 들어와서 녹즙을 마시고 그 고통으로 친해졌다고 기억 왜곡해도 되지 않을까.
표, 표표.
거품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터지는 걸 본 레이첼이 고개를 흔들며 거부하지만 벌칙은 벌칙이다.
“몸에는 좋구.”
“그건 인정한다.”
“레이첼 후배. 정말 몸에는, 좋습니다. 몸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두의 반응에 레이첼이 녹즙을 노려보다가 우악스럽게 컵을 쥔다.
“참 나. 이게 뭐라고. 고작 냄새가 고약한 주스 아니야?”
레이첼이 녹즙을 눈빛으로 태울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내 단숨에 들이킨다.
오, 호쾌해.
그리고.
“끄아아아악!”
장렬하게 사망.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자신의 목을 긁었다.
“뭔데 뭔데 이거! 마나가 몸을 돌잖아!”
진짜 몸에는 왜 좋은 건데! 하고 소리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헛구역질하는 레이첼을 보며 나는 히죽거렸다.
“드미트리에게 지면 두 잔.”
“쳐 죽인다, 드미트리!”
이렇게 승리의 확률을 좀 더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