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1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12화(112/373)
기절한 드뷔오나는 깨어난 뒤 한 번 더 하자 난리를 쳤고 반대로 1칩 2칩에 혼신의 힘을 쓰던 드미트리는 그대로 녹아웃.
적당히 놀려준 뒤 돌아와 이제야 쉬는데. 나만 조금 지쳤는지 나머지는 쌩쌩하게 자기들끼리 모여 젠가를 한다.
“아, 이번 판은 무효라고!”
“응, 아니야. 사탕 주시구요.”
“저는 이왕이면 사과 맛으로 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사과 맛이 좋은데.
잘 논다.
이게 신체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 젠가를 하니까 뺀 다음에 다시 쌓는 모양을 대각선으로 세우고 있지 않나.
저거 거의 진기명기 수준 아니냐.
저런 거 보면 부유감 트레잇 없어도 현실감이 전혀 없을 것 같다. 저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은데.
대각선 모서리로 서 있는 젠가 위에 또 옆모서리로 얹는 걸 보면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가능한 모양.
나는 그 진귀한 광경을 바라보며 척추에는 안 좋지만 내 기분에는 좋은 자세로 앉아 이번에 얻은 것을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날짜 장소와 더불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요건인 격과 정식 초대장까지.
결국 아카데미에도 다니지 않는 데다 정식적인 방법이 아닌,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황족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전부 얻었는데…….
“가면무도회. 너무 클래식한 거 아닌가.”
나는 내기의 대가로 받은 초대장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턱을 괴었다.
고급스럽게 금박을 입힌 검은 종이에 은은하게 뿌린 향수까지.
드미트리 남매가 줄을 댄 왕족이 이 모임에만 참여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티 타임이나 무난한 사냥 모임 혹은 연극 같은 것을 보는 모임도 있겠지.
아마 일부러 가면무도회의 초대장을 주었을 것이다.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파티니 연줄과는 거리가 먼 곳이니까.
최대한 약속은 지키면서 날 엿 먹이고 싶었다는 거겠지. 내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마법이 걸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 사이에서 헤매기를 바라며.
‘뭐, 사실 누가 누군지 알아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긴 한데.’
오히려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이 나에게 있다는 게 문제지.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비트는 자]대표 Traits : [금력(SSS)] [오만(S)]
히든 Traits : [부유감(B)] [사용자의 눈(SSS)]
그새 부유감이 B까지 떨어진 걸 봐라.
만금의 소유자 대신 비트는 자라는 새로운 칭호가 달린 이유는 짐작이 간다.
‘원작에서 제법 비틀어졌다 이거겠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골드보다도 내가 원작을 비튼 것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에 더 크게 미친다는 소리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였다. 내가 원작을 비트는 만큼, 내 목적을 이루기 더 쉬울 테니까.
‘그 와중에 트레잇은 여전하네.’
칭호는 바뀌되 트레잇이 고정인 걸 보면 이것 또한 이유가 있을 터.
단순하게 생각나는 이유야 많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동안 아껴 쓴다고 아껴 쓴 사용자의 눈인데 벌써 부유감이 B까지 떨어졌다는 게 중요하지.
“후…….”
가면무도회 가서 황족이고 나발이고 알아보려면 사용자의 눈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그런데 무도회잖아.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소리인가. 물론 이 나이 때 아이들의 감수성을 생각하면 100명 200명 오는 정말 제대로 된 무도회는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10명 20명 온다는 소리는 또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의심 가는 사람을 한 명씩 확인한다?’
어느 세월에.
머리카락 색이나 체형 같은 것으로 미리 정보를 알고 가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 인식 저하 마법은 통하지 않으니 그건 제쳐놓는다고 해도 가발을 쓰거나 염색 정도는 가능한 일이니까.
그렇다고 한번 켜서 우르르 다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내 트레잇을 확인했을 때 부유감이 C나 D까지 바로 떨어져 있으면?’
아직 악신교단과 싸울 거대한 세력을 만들기도 전이다.
중심축으로 활동할 메인 파티를 이제 키우고 있고 내가 그동안 미궁이나 정령의 숲같이 타국까지 돌아다녀도 카이만이 제재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이제야 비로소 손을 좀 크게 뻗어 볼까 하는 타이밍.
그런데 벌써 부유감이 이렇게 떨어지면 나중에는?
물론 부유감이 전부 떨어진 뒤 소멸한다 해도 나에게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고작해야 살기 좀 느끼고 피어를 좀 느끼고 정신계 마법에 취약해지는 정도겠지.
저게 큰 변화라고 보면 큰 변화지만 반대로 내가 대처 가능한 데다 막아줄 동료가 있다는 전제하에는 별거 아닌 페널티에 가깝다.
‘하지만 레이첼이 그냥 넣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지.’
이곳으로 떨어진 나에게 레이첼이 준 것은 아델리안의 몸과 사용자의 눈, 그리고 부유감밖에 없다.
무려 다른 세상의 육신과 이 세상 모든 이들의 트레잇을 볼 수 있는, 어찌 보면 신의 권한이나 다름없는 사용자의 눈과 동급의 혜택이라고 볼 수 있는 거지 부유감이란 게.
‘알카이도에게, 아니지. 그쪽은 세이렌 양산화의 막바지를 달리는 중이라 바쁘니.’
제일 무난하게 고를 수 있는 방법은, 이 모임에 내 사람들을 더 데려가는 것.
어차피 가짜 귀족 신분이야 내가 만들 수 있으니, 아쉽게도 나와 케인 외에는 의사소통이 힘든 리프 외에 누굴 데려가도 할 만할 것이다.
‘그럼 이 초대장을 더 얻는 게 급한데.’
“뭐가 그리 심각해?”
내가 고민에 잠겨 있던 순간 곁에서 풍기는 바나나 머핀 냄새.
한쪽 볼에 다 욱여넣고 말을 하는 듯 레이첼의 뺨이 한쪽만 튀어나와 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아니, 갑자기 왜 시비?”
허튼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이 초대장 몇 장 더 얻어볼까 하는 중인데. 쓸 만한 방법이 당장 생각 안 나네.”
내가 가면무도회의 초대장을 흔들며 말하자 레이첼이 주위를 휙휙 둘러보다가 나에게 몸을 숙여 속삭인다.
“건방진 놈보고 얻어오라그래. 얼굴로.”
“레이첼, 대련할까.”
“귀도 밝긴. 너랑 안 해!”
레이첼이 정말 작게 속삭였는데 케인이 바로 불러제낀다.
젠가는 끝났는지 대련 안 한다고 방금 말한 주제에 또 싱글벙글 웃으면서 케인과 오러 안 쓰고 대련하자며 가는 뒤꽁무니에 나는 혀를 찼다.
저러다 조금 있으면 너만 이기냐며 뒤엎고 나올 게 뻔하지.
“도련님. 제가 도와드릴 건 없구요? 나중에 위험하진 않겠죠?”
“별거 아니야. 나 혼자 가도 되긴 하거든.”
그냥 부유감이 안 떨어지는 수준으로 사용자의 눈을 아껴 쓸 수 있는 상황이길 기도 메타 들어가면서 말이지.
루나가 슥 다가와서 묻는 말에 나는 루나의 귀를 당겨주며 다른 손으로는 아이기스를 툭 쳤다.
“그리고 위험은 어차피 근처에…….”
똑똑.
근처에 너희들이 있을 테니까 하려던 그 순간.
누군가 노크했다.
“캬하. 이번에야말로 케인에 사탕 건다.”
“나는 레이첼에게 걸구.”
“그럼 나도 레이첼.”
“인간 꼬맹이, 다시 생각해 봐?”
[레이첼.]우리의 사탕 내기에 레이첼이 주먹을 으득 쥐었고 제로가 하하 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난다.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저는… 리프로 할까요?”
자신까지 레이첼에게 걸었다가는 피를 보게 생겼는지 슬쩍 입으로는 리프를 말하면서도 손으로는 레이첼을 콕 찍고 간다.
제로, 약아졌어.
저리 해놓고 정말 리프를 가장한 암살자면 리프에게 걸었다고 하고 반대로 레이첼을 닮은 남자가 오면 레이첼이라고 할 거면서.
“누구세요.”
저번처럼 문 열자마자 칼로 찌르거나 마법을 난사하려고 하거나 폭탄을 던지려고 하려나.
일단 케인이 아닌 제로가 문을 열기 위해 일어났다는 것은 즉발성 화력 공격은 안 할 거라는 증거.
내가 제로에게로 아이기스를 밀어 붙여주자마자 시큰둥한 목소리로 문을 연다.
“어……?”
“음?”
그리고 들리는 작은 목소리.
“아델리안 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제로가 몸을 비틀어 옆으로 서니 제로의 큰 몸에 가려져 있던 누군가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델리안, 너는 언제까지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놀 거야? 이 나쁜 남자!”
“우리 파티에서는 개소리 금지.”
나는 레이첼이 히죽거리며 하는 말에 웃으며 대꾸하곤 안을 슥 훑어본 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파이얀에게 손짓했다.
“어서 와.”
“그, 나중에 다시 올게…요.”
파이얀이 슬금 뒷걸음질 치려는데 제로가 친절하게 문을 닫는다.
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는 듯 소매로 이마를 닦던 파이얀이 어디 끌려가는 사람처럼 발을 질질 끌며 내 쪽으로 옴에 나는 피식 웃었다.
“루나, 차를 부탁해. 나머진 좀 들어가라.”
“거실이 제일 넓은데 맨날 들어가래.”
―저는 과자를 준비하겠습니다. 관리자님.
그렇다고 내가 파이얀을 내 방에 데리고 가랴?
툴툴거리면서도 일어나는 레이첼과 무감각한 눈으로 파이얀을 한번 바라본 뒤 들어가는 케인의 모습이 파이얀이 조금 혼란스러운 눈으로 내 맞은편에 앉는다.
“여길 찾아왔다는 건 내가 제안한 걸 수락하겠단 소리지?”
나는 장밋빛 차 위에 설탕으로 절인 레몬을 올려 티스푼으로 살짝 눌러 저으며 웃었고 반대로 파이얀이 손끝을 살짝 떨며 띄운 레몬을 젓지 않은 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동안… 조금 주위를 맴돌면서 나름대로 널 관찰했거든?”
둘만 있다고 좀 편해졌는지 덜 떨리는 모습.
“그런데, 당신 뭐야 진짜. 나는 이해를 못 하겠어……. 어떻게 그러고 살 수 있는 거야?”
파이얀이 백합 향을 풍기며 자신의 하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지금 이 방에 있던 사람들은… 진짜 네 동료가 맞아? 누군가 바뀐 사람 있는 거 아니야?”
아니면… 너도 진짜 맞아?
하듯 날 바라보는 모습에 나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왜, 무서워?”
“무섭지! 그럼 안 무서워? 내가 네 주변을 관찰하며 본 가짜들만 해도 10명이 넘어. 구경하던 내가 의심병이 생길 정도야.”
도대체 누구에게 노려지고 있는 거야? 하며 불안정하게 눈동자만 움직여 사방을 관찰하는 파이얀.
‘이런 반응은 또 처음이네.’
나는 그 모습이 제법 신선했다. 이게 보통 사람의 반응인가?
보통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파이얀도 닳디 닳은 모험가 출신이긴 하지만. 우리 파티에 비하면 보통 사람이니.
“그렇게 무서운데 나랑 손잡을 생각은 어떻게 했어? 네 얼굴을 한 누군가가 널 죽이고 날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 안 해?”
“생각해!”
그렇지만 하며 파이얀이 자신의 손끝을 맞잡았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무언가에게 노려지는 사람이면, 그만한 가치가 있단 소리겠지. 그리고… 네가 그랬잖아.”
“뭘.”
“신의 계약서.”
그랬지. 파이얀은 확실히 내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세력을 꾸려나갈 능력이 있으니까. 사실 무력 쪽은 확인하지 않았으나 매료, 그것 하나만 제대로 굴려도 내가 손해 보진 않을 일.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는 한없이 0에 수렴하니 만약 손을 잡는다면 이러쿵저러쿵 말로 하는 약속 대신 신의 계약서는 어떠냐고 언질 준 적은 있다.
“그게 왜.”
내 되물음에 파이얀이 주황색 눈으로 나를 곧게 바라본다.
“그게 있으면 서로가 절대 배신하지 못하니까.”
배신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 파이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러고 보니 호문클루스의 던전 때, 안쪽에서부터 폭발음이 들렸지.
거기에 우리 파티가 그랬듯 저쪽도 신체의 일부를 내놓거나 한 명을 달라고 들었을 테고.
‘그들이 고른 게 파이얀이었던가.’
거기에 짐작해 보자면 파이얀의 저 매료. 저것의 이점은 상대의 호감을 쉽게 살 수 있는 데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약간의 암시만 곁들이면 세뇌 수준으로 깊어진다는 것.
그 말이 가지는 의미는, 지금까지 파이얀이 받았던 모든 호의나 긍정적인 감정이 매료에서 비롯되었을 거란 소리였다.
어찌 보면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본 적 없을지도 모르지.
뭐 추측이지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우정, 믿음, 사랑. 이런 것들이 주는 고양감과 그것에 대한 동경.
지구에서도 그런 것들이 잘 팔렸는데 이곳은 더하겠지.
“서로 절대 배신하기 없기, 이런 문구라도 넣어줘?”
“그걸 바라는 거야.”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옅게 웃었다.
신의 계약서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나만 알고 있으면 되니까.
서로에게 족쇄가 될 것 같지만 사실 아니라면 내 쪽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지.
“좋아. 그렇다면 서로 원하는 것을 두고 계약할까.”
챠르륵―
나는 크루거의 반지를 한 번 돌리다 아공간에서 계약서를 꺼냄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사인하고 나면 아마 바로 움직여야 할 거야.”
나는 지금 초대장이 더 필요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