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1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13화(113/373)
‘뭐 하는 작자야, 정말.’
파이얀은 의식적으로 앞만 보며 걸었다.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 넣고 불안정하게 두리번거리며 걷는 사람이라니. 누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으니까.
‘이런 걸 그냥 들고 다니다가 냉큼 내주질 않나. 남의 모습을 베끼는 이상한 것들과 대립하지 않나.’
주머니가 무겁다. 자신의 동전 주머니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 받은 마정석과 보석들.
단번에 급처분해도 엄청난 돈이지만 시간을 들여 제값 받으며 판다면 일반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돈.
거기에 아름답고 강한 동료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아델리안이 들어가란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움직이던 그 사람들.
미궁 도시 라비린에 있으면서 외모가 뛰어나거나 독특한 사람도 많이 봤었고, 어디서 한 자리 차지하고 살지 왜 이런 데서 미궁을 돌지? 하고 생각할 만큼 강한 사람도 본 적 있지만.
‘그들은 좀 격이 달라.’
아마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게 일부러 힘을 감추지 않고 적당히 보여준 것일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전율에 가까운 격차.
하녀로 보이던 토끼족과 억센 손으로 움켜쥐면 부러질 듯 가녀린 소녀마저도 느껴지는 기세는 모두 오러 유저급은 되었다.
‘거기에 나머지 셋…….’
요마족 혼혈이라 마나에 민감한 파이얀은 단번에 직감했다.
아델리안을 제외한 고작 다섯 명이서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
‘중요한 건 그런 동료가 있는데도 내가 필요하다는 것.’
자신은 그들과 애초부터 쓰임이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도구란 원래 그렇지. 자신은 조금 더 음습한 칼일 뿐, 그래도 아델리안이 손에 쥔 무기인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허울뿐인 믿음보다는 확실한 거래.’
그것이 주는 안정.
‘초대장 따위 금방 얻을 수 있어.’
파이얀은 자신만만했다. 자신이 가진 트레잇을 어떻게 써야 더 효율적인지 알아냈으니.
파이얀의 주황색 눈이 반짝였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너, 트레잇 콜렉터 기질 있지 않냐?”
레이첼이 어깨동무하며 하는 말에 나는 미간을 모으며 밀어냈다.
“무슨 소리야.”
“안에서 들어보니 걔도 꽤 희귀한 트레잇이던데.”
뭐 그렇긴 하다.
“거기에 트레잇 콜렉터가 희귀하진 않잖아. 인간 귀족들 고급 취미라며?”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토끼야. 이 녀석 트레잇이 뭐라고?”
레이첼이 날 자신의 팔 거치대로 보는지 자꾸 어깨동무하길래 슥 밀어내며 내가 대답했다.
“알려지기로는 금력에 오만.”
“풉.”
“뭐, 거기에 예지안이 있지.”
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뒷말은 들은 체도 안 한다.
“도련님 괴롭히지 말구 이리와.”
“괴롭히긴 누가 괴롭히냐. 솔직하게 말해서 가능성 높은 질문이지.”
레이첼이 자신의 허리에 손을 얹고 숙소 안을 느긋하게 훑어본다.
“오러 유저가 무슨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경지인지 알아? 그런데 여기서 오러 유저도 안된 놈이 어디 있어?”
인간 꼬맹이 빼고, 하며 또 내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자 나는 슬쩍 피하며 리프가 가져다준 스콘과 무화과 잼을 받았다.
“레이첼, 착각하나 본데. 난 트레잇을 보고 파티를 만든 게 아니야. 강한 파티를 만들려고 모은 이들이니 트레잇이 남다를 뿐.”
“거짓말.”
그에 레이첼이 히죽거리며 내 옆에 앉아 내가 비율 좋게 잼을 발라 놓은 스콘을 빼앗아 간다.
“단순하게 강한 놈들을 모으는 거 아니잖아.”
“단순하게 강한 놈들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내 말에 레이첼의 표정이 묘해진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 말하지 마.”
약간의 충동이 섞인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대륙의 안녕과 너희의 행복이라고. 뭐 우스갯소리처럼 넘길까 진심인 듯 아닌 듯하면서도 한번은 제대로 말할까 했던 순간.
레이첼이 내 입을 가릴 것처럼 손바닥을 내밀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원하는 게 뭐든지 간에.”
“도련님께서 무엇을 원하셔두.”
“아델리안 님 뜻대로.”
―관리자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냥 해라.”
아니, 실컷 물어놓고?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얹는 녀석들을 보다 피식 웃었다.
“언제는 내 마음대로 안 했어?”
나는 부러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어서 강해지라고 다들.”
“뭐 얼마나 강해질까?”
레이첼이 히죽거리며 하는 말에 나는 턱을 괴었다.
“하늘만큼 땅만큼.”
* * *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깊게 잠들었을 시각.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녀석. 우리를 너무 모르는 거 아냐?”
레이첼이 리프가 스콘을 먹으며 떨어트린 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슥슥 쓸어 바닥에 버리며 하는 말에 루나가 빗자루를 가져오며 입을 열었다.
“뭐가?”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는 듯 바라보며 빗자루를 건네는 손길에 레이첼이 입술을 비죽거리며 받아선 바닥을 쓸며 대답했다.
“그렇잖아.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니.”
그런 거 시간만 들이면 되는 건데.
“인간들은 참 웃겨. 고작 20년, 30년만 기다리면 되는 일을 너무나 큰 일처럼 생각한다니까.”
레이첼의 말에 말할 자격이 없는 리프와 제로가 루나를 바라보았다.
“보통은 20년, 30년이 고작이라구 할 수 없을 만큼 100년 남짓 산다구.”
“걔가 그럴 거 같아?”
여기 있는 이들 중 누가 고작 100년만 살아? 하듯 레이첼이 빗자루에 손과 고개를 얹고 웃었다.
“걔라면 어디서 늙지 않고 오래 사는 무언가를 찾아올 거 같은데. 안 그래?”
감당할 수 없는 적이나 낫지 못하는 병 혹은 저주에 걸리지 않는 한 레이첼 자신은 드래곤이며 리프는 골렘이다.
제로 또한 평균 수명을 짐작할 수 없는 도플갱어이고 순수 인간인 케인마저도 앞으로 더욱 강해질 테니 이대로만 가면 수백 년은 우습게 살겠지.
루나 또한 마찬가지. 이제 오러 유저니 조금씩 더 강해진다면 그 또한 오래 살 테니 이 안에서 누가 일찍 죽을 것을 두려워할까.
그러니 고작 20년에서 30년. 그 정도의 시간만 지나면.
“이 안에서 반은 하늘과 땅만큼 강해질걸?”
능력을 제한한 레이첼 자신은 논외로 둔다고 해도 케인은 무조건, 제로와 루나는 큰 가능성으로. 리프 또한 그 비공정인가 뭔가 부활하면 가능하겠지.
“간과하는 게 있군.”
레이첼의 말을 가만히 듣던 케인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20년, 30년이란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에 레이첼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곤 고개를 기울인다.
“그럴 수가 있나?”
하다못해 갑자기 화산이 터지고 미친 드래곤이 제국에 브레스를 뿜는 데다 엉덩이 무거운 마족들이 중간계로 넘어온다고 해도.
“충분히 20년, 30년 버틸 것 같은데?”
많은 생명이 사그라들겠지. 뭐 인간의 제국이 불타오르고 대륙이 망가진다고 해도.
아델리안이 이 파티를 안고 20년, 30년 못 버틸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런 일들이 불특정 다수가 아닌 아델리안의 파티만을 노리고 일어나지 않는 한.
“뭐… 나야 사실 모르고 있는 게 재미있으니까 말하지 말라고야 했는데, 너희는 아델리안이 하는 일, 원하는 일이 정확하게 어떤 일인지 모르는 채로 그냥 이렇게 가도 괜찮아?”
레이첼이 낮게 웃었다.
“눈빛 하나 태도 하나에두 사람은 목숨을 걸 수 있는 거니까.”
“일족의 모든 것을 빚졌는데 무엇이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리자님의 명은 절대적.]레이첼의 눈이 케인에게로 향하자 케인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 * *
가면무도회란 무엇인가.
‘가면 쓰고 춤추는 곳이지.’
그럼 그 춤이란 무엇인가.
‘귀족들의 모임이니 대충 사교 댄스 아니겠어?’
그게 문제였다.
생각해 보니 난 아델리안이 워낙 망나니로 기틀을 잘 다져둔 덕에 예법이고 나발이고 대충 수박 겉핥기로 굴어도 넘어갔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르지.
물론 친목회의 주제가 가면무도회인 거지, 정말 춤 실력을 만천하에 자랑하는 그런 자리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른단 말이지.’
나는 천천히 루나와 케인, 제로와 리프. 그리고 레이첼까지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누구 사교 댄스 아는 사람?”
아무도 대답을 안 하네. 물론 기대도 안 했다.
“내 생각에 한 명 정도는 나랑 같이 가면무도회에 갈 거 같거든?”
파이얀의 트레잇과 그녀의 연기력, 수완이 생각보다 남달라서 말이지.
한 장, 어떻게든 한 장은 구해 올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누가 춤추며 밀담을 나누자고 하면 어찌 될까?”
“지금이라두 댄스 교사를 찾아볼까요?”
“그건 곤란해.”
이곳은 제국의 수도다. 외각의 다른 영지에서 댄스 교사를 모집한다면 귀족이되 귀족이 아닌, 비 세습 작위를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수도는 다르지. 교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진짜 귀족 거기에 그중 몇이나 악신교단과 연관 있을지.
악신교단은 매우 이중적인 집단이다. 인간만을 가장 우선시하면서도 잡졸로는 몬스터를 쓰지. 그렇지만 특히 공들이는 것은 인간, 그리고 귀족.
그러니 불특정 다수와 쓸데없이 접점을 늘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데리고 갈 사람은 한정적이긴 했으니.
“별수 없지. 혹시 춤을 추게 되는 것에 대비해서 거기서 모든 동작을 외워.”
루나는 수인족이라서, 리프는 나와 케인. 루나를 제외하면 필담만 가능하고 레이첼은 다혈질이다.
그럼 남는 건 제로와 케인.
그러나 케인은 인간혐오 인간 불신자.
요즘은 덜 하다고는 하나, 글쎄… 선한 이들만 모인 곳도 아닌 그런 자리에 단순하게 강함만 보고, 쓰임새만 생각해 케인을 데리고 간다?
‘뒷감당 누가 하라고.’
나는 설마 자신을 뽑지는 않겠지? 하는 노려보는 케인과 반대로 설마 저요? 하듯 어색하게 눈을 맞추는 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할 수 있지?”
“아,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마도?”
“무조건… 그 자리에서 외우겠습니다.”
좋아. 참고로 나는 어차피 망나니 컨셉이니 가면무도회에서도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혹시 누가 나에게 춤을 신청한다면 발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 포션이나 하나 챙겨가야지.
‘그전에 목표를 발견하면 더 좋고.’
어차피 내 목표래 봐야 거창하지는 않으니.
그곳에 참여하는 귀족 중 몇이 도플갱어 포션을 쓰고 있는지, 이건 같이 가는 제로가 얼추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황족이 있는지, 이건 내가 확실하게 봐야 하고.
있다면 그들의 손이 황실에 제대로 닿아있다는 것이니 계획을 다시 짠다.
그리고 아직 황족까지는 닿지 않았다면.
‘도플갱어 괴담과 더불어 퇴치 방법을 퍼트린다.’
황족에게까지 손이 닿았는데 포션을 푸는 방법을 퍼트렸다간 감당하기 힘든 공세가 밀어칠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알음알음 도시 괴담처럼 여론을 조작할 수 있을 테니.
파이얀도 얻었겠다. 조금만 더 있으면 세이렌이 양산화된다.
일반적인 양산이라면 좀 더 빠르게 가능했지만 몇 가지 안전장치와 더불어 내가 이용할 만한 수단을 세이렌에 심으려 했기에 이만큼 늦어진 거니.
‘조금만 더 있으면 정보만큼은 내가 손에 쥘 수 있지.’
정보를 쥔다는 것은 그것에 따라오는 권력과 돈. 그리고 여론까지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
“그럼 저희는 그 근처에서 대기하면 될까요, 도련님?”
“그래. 네가 비명 지르면 튀어들어 갈 거리 안에 있을게.”
“저번부터 자꾸 그러는데. 솔직히 내가 비명 지르기 전에 와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적당히 농을 던지며 대꾸하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미리 정한, 엘사를 불러야 할 것 같은 리듬.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조금씩 흐려지는 파편 하나를 기억에서 꺼내며 웃었다.
“벌써?”
레이첼이 신기하단 얼굴로 문을 열자 파이얀이 자신의 하얀 머리칼을 매만지며 서 있었다.
번지는 백합 향기.
“이 정도는 해야 나도 당신들의 급을 따라가지 않겠어?”
파이얀이 제법 고생했는지 파리한 안색으로,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두 장의 초대장을 들었다.
응.
두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