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1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14화(114/373)
“아니, 나도 이거 구하면서 거기가 어딘지 알게 되긴 했는데.”
나는 초대장 한 장은 네가 쓰라는 말에 왜 하필 날? 하는 얼굴로 찡그리는 파이얀을 보며 웃었다.
“왜 빼고 그래. 좋은 기회 아닌가?”
보통은 신분을 제대로 만들 능력이 없어 거기까지 가지 못할 텐데 말이지.
내가 넌지시 하는 말에 파이얀이 부르르 떨었다.
“그러니 문제지. 알잖아, 귀족의 조건. 3대 이내 완벽한 인간의 혈통! 나는 혼혈인데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들키는 순간 제국이 그토록 가치 있게 여기는 혈통을 모욕한 죄로 못해도 관련된 이들의 3대는 끌려갈 것이다.
“고작 아카데미에 다니는, 15세부터 25세까지의 귀족 자녀들이 뭐 있는 척 놀려고 모인 모임에 혈통 감지기까지 가져올까 봐?”
매번 리프와 루나 혹은 제로에게 시키는 게 미안해서 내가 직접 차를 타 파이얀에게 주니 그 표정이 묘하다.
“맛이… 아니, 그전에 당신의 그 대단한 파티 원들 중에 골라 데려가는 게 더 도움 되지 않아?”
“왜 데려가지 않는다 생각해?”
제로는 초대장으로 당당하게.
케인은 비공식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당당하게 데려갈 예정이다.
내 태연한 질문에 파이얀이 머리 위로 갈고리를 띄우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 그럼 난 왜…….”
매료. 그 위험한 트레잇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곳이니까.
“나 대신 거기서 괜찮은 정보 좀 물어와. 그리고 누가 네 손에 놀아날 거 같은지 미리 맛을 보라고.”
파이얀의 말로는 동성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 말은 틀렸다.
저것은 오러 유저거나 혹은 정신에 보정이 붙는 트레잇을 지니지 않는 이들에게는 독이나 다름없는 트레잇.
“처음 등급이 낮았을 때야 분명 이성에게 더 효과적이긴 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지. 파이얀이 마음먹고 설계하면 일반 사람은 거부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트레잇으로 강력하게 빠져드는 경우는 아마 열 명 이하.
나머진 매료로 인해 물꼬를 틔운 뒤 진심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이제 파이얀이 하기에 달렸겠지.
그러니 파이얀은 나에게 밝힌 비장의 한 수 말고도 두루 다른 특기를 익혀야 하며 화술과 용병술 또한 배워야 한다.
인형술만 가지고는 트레잇을 제대로 살릴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자신만의 심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매료만으로 모두를 거느릴 수는 없을 테니.
‘기본적으로 잠재력은 있어.’
그러니 내가 골랐지. 저 뿌리 깊은, 자신의 트레잇에 비롯된 신뢰라는 것에 대한 불신을 지우기만 하면 쉬울 것이다.
“그러니 귀족 흉내도 잘 내리라고 본다.”
괜히 어설프게 굴다가 뒤가 파헤쳐지면 나는 안 피곤해도 파이얀은 피곤하다 못해 3대가 멸족 가능하니까.
내 말에 파이얀이 날 악마 보듯이 보는데. 원래 인재는 굴려야 하는 법.
나는 어깨가 축 처진 파이얀을 내보낸 뒤 슬금슬금 내가 탄 차에 손을 올리는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뭐 해?”
“아니, 인간 꼬맹이 네가 탄 차는 한 번도 안 먹어 봐서. 매번 타는 사람만… 타는 이유가 있네!”
당연하지. 내가 괜히 루나나 리프. 제로에게 차를 부탁하는 게 아니다.
“와, 이거 뭐지? 못 먹을 맛은 아닌데, 살면서 분명 죽기 전에 마시는 차의 횟수는 한정적일 텐데 굳이 이 차로 그걸 한번 채워야 하냐는 생각이 드는 그런 맛인데?”
그런 적나라한 감평은 원하지 않았다, 인마.
다들 슬금슬금 다가와서 한 번씩 맛보고 간다.
“도련님의 차는 여전해서 좋구요.”
“그게 위로의 말은 안 된다, 루나야.”
그래. 뭐 이 몸이 무슨 재능이 있으랴. 못 마실 정도는 아닌 것만 해도 어디인지.
“제로는 나와 함께 초대장을 이용해 정문으로 들어간다. 모든 안전은 주최 측에서 책임진다며 호위도 대동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지만.”
그걸 내가 곧이곧대로 지킬 이유는 없지.
“루나와 리프. 레이첼은 인식 저하 배지를 차고 최대한 기척을 죽인 체로 무도회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
그리고 나는 케인을 바라보았다.
“케인 너는, 무도회장을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걸리지 않고 따라와.”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납치하거나 죽이거나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줘야 할지도 모르니까.
적당한 알리바이를 위해서는 제로를 쓰기보다는 케인을 비수처럼 숨겨 데리고 가는 것이 낫다.
“별것 없으면 나랑 제로만 실컷 춤추다 오는 거고.”
내일 밤 재미있을 거야.
* * *
“분명 재능 같은 거 없다고 하지 않았어?”
베르뷔트가 웅크려 엎드린 이의 등에 발을 올리며 말하자 교단원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기에서 이기고 초대장을 얻었다는 거야?”
“매수한 카지노 직원의 말로는 본인이 직접 한 게 아니라 뛰어난 하인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단원이 머뭇거리다 천천히 베르뷔트에게 속삭였다.
“그가 데리고 있는 이들이 카지노 직원의 말로는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이들로 꾸려져 있다 합니다.”
“그래?”
하긴 간혹 그런 머저리들이 있다. 자신이 타고난 능력이 부족하여 그것을 타인으로 채우려는 이들.
혹은 단순하게 희귀한 물건을 탐내는 것처럼 손아귀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콜렉터들.
망나니라더니 그런 취미도 있었나.
“나쁘지 않네.”
타인의 수집품을 빼앗는 것도 재미있지.
“교란하기 위해 도플갱어 포션을 먹인 이들 종종 보냈지? 그럼 트레잇은 몰라도 외모는 당장 확인되겠네?”
“안 그래도 그동안은 얻지 못했던 검은 머리카락까지 들어왔으니 보여드리겠습니다.”
카지노의 지하에서 누군가의 공격을 피하며 끊어진 딱 한 올.
그걸 가져왔다는 듯 말하는 교단원의 모습에 베르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반출해 온 포션이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가디아를 무너뜨리는 데 쓰려고 가져온 것이니 아델리안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들의 외모를 확인 후 자신이 빼앗으면 그 또한 괜찮은 일일 터.
베르뷔트는 자신의 발 받침으로 웅크려 있던 이를 발끝으로 밀며 웃었다.
“마셔봐.”
“네… 네에.”
분홍색 머리와 조금 더 진한 분홍색 눈을 가진 아담한 체구의 토끼 수인.
“매우 귀엽긴 하지만 수인족이라니. 더러운 피는 필요 없어. 뭐 허드렛일 시키는 데 쓸까 봐.”
키가 늘씬하다 못해 훤칠하고 쾌활한 분위기의 붉은 머리 붉은 눈을 가진 미인.
“…좋은데? 탐나.”
연하디연한, 긴 녹색 머리와 노란색 눈동자. 마르고 가녀린 체구에 처연한 분위기의 소녀.
“우는 얼굴을 한번 보고 싶은걸?”
그 아델리안이란 망나니. 어디서 저런 계집들만 모은 거야? 트레잇을 지금 다시 확인하면 ‘안목’ 같은 게 붙어 있을지도 모르지.
긴 의자에 기대 팔 하나 늘어뜨려 입에 넣어주는 과자를 아작 씹어내던 베르뷔트가 자신의 몽실한 갈색 머리를 톡톡 매만졌다.
“흐응. 계집 말고 사내도 제법…….”
잿빛 머리에 녹색 보석안. 큰 키에 넓은 어깨와 반비례하는 순한 외모.
“쓸모 많을 거 같은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모았지?”
하다못해 눈알만 뽑아 팔아도, 하고 베르뷔트가 중얼거리며 찻잔을 들던 순간.
탁, 특드르릇―
“하.”
순간 놓친 찻잔이 바닥에서 구르며 붉은 차를 뱉어냈다.
“가져야겠어.”
트레잇 제일주의를 뭉개버리는 외모.
칠흑 같은 검은 머리와 홀릴 것 같은 황금색 눈동자. 분명 사내인 게 확실한 외모임에도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아우라.
저 정도면 한평생 교단 안에서 가둬놔도 쓸모가 많겠지.
베르뷔트가 서늘한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짙게 웃었다.
“이번 가면무도회, 나도 참가할게.”
* * *
단순하게 효율만 따진다면 제로에게 타인의 머리카락이나 피를 먹여 외형을 바꾼 뒤 데려가는 게 맞을 것이다.
효율만 따지면 그게 맞지. 나중에 추적을 따돌리기에도 편하고 아무리 가면무도회 때 나눠주는 가면에 약한 인식 교란 마법이 걸려있다고 해도 제로는 얼굴뿐만 아니라 체형도 손꼽히게 완벽한 편이니까 눈썰미 좋은 사람들의 기억에는 남을 테니.
‘하지만.’
악신교단이 쓰는 포션은 대상자의 정보. 즉 머리카락이나 피 등을 적게 넣으면 외형만 복제되나 제로의 경우는 약간의 기억까지 얹는다.
아주 스치는 단편적인 기억이라고는 해도 자꾸 누적되면 그게 제로의 정체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가뮈르와 바하디 때와는 조금 상황이 다르지.’
내가 없던 곳에서 능력을 깨우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식이었을 뿐.
살롱 때처럼 적어도 누군가의 기억 혹은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굳이 다른 방법이 있는데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고 해야 할까.
“혹시 모르니 배지는 내가 들고 있다가 일이 틀어져 탈출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줄게.”
갑자기 습격당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 일이 틀어지면 얼굴을 들키면 안 되니.
“네.”
내가 던진 말에 소매 깃을 정리하는 제로가 대답했다.
아티팩트는 들고 갈 수 없다 하여 반지 형태의 작은 아공간 아티팩트는 두고 갈 생각이나, 크루거의 가주 반지는 혈계전승으로 발동되는 아티팩트이니 아마 일반적인 마법 아티팩트로 걸리지는 않을 터.
코덱스나 기타 필요한 것들은 일단 크루거 반지의 아공간에 밀어 넣고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거기 가면 인식 교란 가면을 준다는데.”
“그래두 안 돼요. 제 원래 하는 일이 뭐였는지 알구 계시죠?”
알긴 알지…….
아델리안의 행패에 일반 하녀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격이 맞지 않아도 튼튼하고 순종적이라 붙인 메이드.
나는 말 없이 루나가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걸 바라보다 느리게 웃었다.
“다녀올게.”
“인간 꼬맹이. 무슨 있으면 비명 지르기 전에 문 부수고 갈까?”
“절대 안 돼. 그냥 내가 비명 지르면 들어와.”
―관리자님. 제가 동태를 감지하고 있겠습니다.
리프 믿는다.
나는 검은색 가죽 장갑의 목을 잡고 살짝 당겨 손끝까지 빡빡하게 채워 끼며 케인과 제로에게 입을 열었다.
“케인은 절대로 들키지 말 것. 그리고 제로는.”
“동족이 있는지. 혹은 포션을 마셔 저와 조금이라도 감응되는 이가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도플갱어 포션의 재료에는 도플갱어에게서 빼앗은 무언가가 들어갔기 마련.
그러니 모든 도플갱어의 종주인 제로는 약한 신호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
“가자.”
향유를 발라 뒤로 넘긴 머리가 신경 쓰이는 듯 어색한 몸짓으로 고개를 돌리던 제로와 말없이 검은 로브를 쓰는 케인.
건틀릿을 끼고 손가락을 우둑거리는 레이첼과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쓰던 손동작을 배운건지 엄지를 치켜든 리프.
그리고 배시시 웃으며 잘 다녀오고 이따 보자는 듯 손을 흔드는 루나.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린 뒤 밖으로 나왔다. 초대장마다 대기 장소가 다르니 제로와는 떨어져 혼자 걷는다.
제법 어두워진 밤. 그리고 얽히고설킨 뒷골목.
약속 장소까지 검은 로브를 쓰고 가 기다리니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듯 작은 마법 등을 끈 마차가 서행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느린 헛기침 세 번.
“이 야밤에 어딜 가시려고 이런 곳에 서 계십니까… 그려.”
“낭만을 찾아가지.”
“그 낭만이 무엇입니까?”
“한밤의 유희, 한 번의 해방.”
천천히 마차 문이 열린다.
하… 암호 누가 만들었냐.
얘네들 나이가 딱 이런 거 좋아하는 나이던가.
아니, 나 말고 다른 놈들은 이런 암호 말하며 힘든 기색 없이 멋에 취하는 건가.
의문이 든다.
어디선가 아주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케인 이 자식, 세이렌은 루나에게 맡긴 덕에 나만 일방적인 공격을 받아야 하네.
내가 이를 뿌드득 가는데 마차는 점차 더 외각으로 빠져나가더니 누가 봐도 수상하리만큼 번쩍거리고 화려한 데다 음악 소리가 번지는 저택 하나가 나타난다.
‘아니, 이게 무슨 은밀한 모임이야? 광고 제대로 하고 있구만.’
내가 어이가 없어 혀를 차는데 마부가 입을 열었다.
“밖에서 보기엔 으스스한 폐 저택이죠. 크흐흐. 불빛 하나, 음악 소리하나 들리지 않던. 하지만 놀랍지 않습니까.”
마차가 녹슨 대문을 지나자 마부가 흘긋 내 안색을 살핀다.
“이렇게 화려한! …저번에도 오신 적 있나 보시군요. 놀라지 않으시는 걸 보니.”
아, 환상 마법이라도 걸어뒀던 건가.
내가 보기엔 같았지만, 내가 뒤늦게라도 놀란 척하자 마부가 살짝 뿌듯한 기색으로 말을 건넸다.
“의자 아래에 가면이 있으니 쓰고 내리시면 됩니다. 그럼 도련님이 누구인지 저도, 저 안의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거 재미있겠네.”
나는 오만하게 웃으며 가면을 쓰고 천천히 내렸다.
밝은 빛이 뿜어지는 저택의 문이 마치 무언가의 입 같다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