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1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15화(115/373)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위험한 물품을 반입하는지, 아티팩트를 가져왔는지 검사하더니 놓아준다.
그에 어슬렁 걸어 천천히 저택 안으로 들어섰는데.
얼씨구 절씨구.
물론 이곳의 성인은 18세. 거기에 귀족인 걸 감안하면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일탈에 제재는 없었을 터.
‘난리 났네.’
어린것들이 발랑 까져 가지고.
아.
물론 지금 내가 하는 생각들이 소위 말하는 꼰대 같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내가 지구의 윤리라는 잣대를 함부로 들이밀어선 안 된다는 것도 아주 잘 알지.
그렇게 치면 애초에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신분제의 특혜며 내 손에 묻은 피는 누군가의 목숨이니.
‘그렇지만.’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후후…….”
“참, 아리땁소.”
작으면 겨우 내 어깨에 올 만한 것들이 서로 나이에 맞지 않는 밀어를 나누고 빙글거리며 춤을 추고 안대를 쓰고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잘도 움직이는 시종들을 희롱하고.
‘썩었네.’
제국 썩었네, 아주.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이게 그냥 머리로 아는 것과 적나라하게 보는 건 또 다른 일이다.
게다가 내 코끝에 아주 미세하게 맴도는 향기.
구역질 나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달콤한 냄새.
‘분위기상 이거 누가 봐도 그냥 향은 아닐 텐데.’
눈을 안대로 가린 시종이 들고 가던 쟁반 위에서 은잔 하나를 쥐었다.
혹시 독이라도 탔을지 의심 많은 이들을 위해 아예 은식기만 쓰는 건가.
매끈한 잔에 비친 나는 금발에 푸른 눈.
하지만 표면이 매끄럽지 않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일그러진 촛대의 장식에 비친 나의 머리카락은 검은색.
그마저도 내가 나임을 제대로 인식한 순간 금색으로 보인다.
가면에 걸린 인식 교란 마법은 내가 지닌 배지의 인식 저하 마법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고작해야 머리카락 색과 눈 색 정도를 말 그대로 교란하는 정도인가. 어쩌면 체형도 조금 들어갈지 모르지.
그만큼 약한 마법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내가 아주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발부스의 안개나 나무 배지급의 강력한 정신계열 마법은 느낌상 바로 튕겨내는데, 애매모호한 마법은 아주 약간의 빈틈을 두고 반응하는 느낌.
“재미없게 왜 혼자 있어요?”
“누군가를 기다리거든.”
“뭐야아… 선약이 있어?”
난 간간이 걸어오는 말을 적당히 쳐내며 일정한 시간마다 자리를 옮겼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서 즐기지도 않는 파티 참여자는 너무 수상쩍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욱하는 성질 고려하고 레이첼과 올 걸 그랬나.’
모두 쌍쌍이 붙어 있는데 나 혼자 있는 게 더 눈에 띈단 말이지.
파이얀은 어디서 뭘 하는지 바로 눈에 보이지 않고. 제로는…….
‘저기 있네.’
아리따운 분이 두 분이나 제로를 잡고 안 놔주니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방해하겠나.
히죽거리며 구경하고 있으니 곤란한 얼굴로 자꾸 뒷걸음질 치다가 구석까지 몰린 제로가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는데, 어찌 알아본 건지 살았다는 표정을 짓지만.
내가 구해 줄 이유가 있나.
딱 봐도 도플갱어도, 포션 사용자도 아닌 사람들이니 당장은 제로가 저기 붙어 잡혀 있어도 상관없는 셈.
그렇다고 뭐 저 정도 일에 내가 인식 저하 배지를 줄 필요도 없지.
“그럼 수고.”
“자, 잠시!”
내가 손 흔들고 슬쩍 물러나려는데 제로가 필사적으로 탈출한다.
어.
그러면 곤란한데.
이런 곳에서 중간에 여성도 없이 인마. 우리끼리 붙으면 되냐. 저거 분위기 파악 못 하네.
내가 다급하게 두리번거리다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온, 아찔한 백합 향을 따라 몸을 돌렸다.
“저와 하실 대화가…….”
“나야, 이얀.”
내가 파이얀을 찾아 어깨를 쥐자 가면의 인식 교란 덕인지 태연하게 작업용 멘트를 던진다. 그에 미리 약속한 파이얀의 애칭을 부르고.
그리고 동시에 제로 또한 내 어깨를 쥐었다.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전혀. 이 눈치 없는 것아.”
나는 파이얀을 방패 삼아 제로와 함께 발코니로 들어서 유리문을 닫았다.
“듣는 이는?”
“마나막을 펼쳤습니다.”
“잠깐… 잠깐만… 둘이 그러니까 보스랑 보스 부하?”
파이얀은 나를 보스로 부르기로 했나. 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눈에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보일 테니.
“그럼 누구겠어.”
내가 가면을 살짝 벗었다 다시 쓰니 파이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아니… 어떻게 날 찾은 거야? 가면에 마법이 걸려있는데…….”
다 끝나고 따로 만날 거라 여긴 듯한 파이얀을 보다가 으쓱거리며 웃었다.
“영업 비밀이지. 그리고 제로는… 좀 알아낸 게 있긴 하고?”
아무리 봐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잡혀 제대로 못 움직인 것 같던데 말이지.
내 질문에 제로가 조금 답답해진 얼굴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흩어낸다.
“일단… 제 아이들은 없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내 생각에 제로의 지배하에 있지 않고 악신교단과 손을 잡은 도플갱어는 없을 테니.
다만 늘 최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일을 진행하는 것일 뿐.
“다만 포션 사용자는 하나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 사람이 부디 황족은 아니길 바라며.
“나중에 나랑 확인하러 가자. 그리고 파이얀.”
내가 파이얀을 낮게 부르며 물음에 파이얀이 자신의 하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감으며 대답했다.
“난 이것저것 많이 알아냈어. 자세한 건 정리해서 보고할게, 보스.”
자신 있는지 눈꼬리가 올라간다. 그에 내가 기분 좋은 음색으로 속삭였다.
“대략적인 것만 말해 봐.”
“전염병, 그리고 황족의 내부적 서열.”
충분하네.
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파이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아, 아니지.
“저 앞까지만 같이 가야겠어.”
사내 둘과 여인 하나.
뭐 아주 드문 조합도 아니다.
그런데 사내 둘이 가면 무도회에서 붙어 다닌다?
쓸데없는 시선 따위 전혀 달갑지 않지.
솔직히 뭐 오해하건 말건 아무 상관도 없다. 루나나 리프, 레이첼을 보아도 가슴이 뛰지 않는 부유감 덕에 오해받을까 가슴 졸이며 전전긍긍할 리가.
다만 시선을 모으는 것은 지금이면 안 되지. 나중에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순간에.
그때 한 방 먹이듯 나를 드러내야지 야금야금 흠집 나듯 누군가가 나를 알아내려 해선 안 되는 거다.
그러니.
‘지금 그런 이가 있다면.’
“잠시… 대화 나눌 수 있을까요?”
가면의 마법 덕에 지금까지 본 이들은 전부 묘하게 초점이 맞지 않았다.
내 눈이 아닌 다른 곳을 보는 그 눈동자들.
하지만.
지금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거는 소녀.
갈색의 부드럽고 녹아내릴 것 같은 솜사탕 같은 머리와 헤이즐넛 같은 갈색 눈동자.
“나야 좋지.”
내가 한 손을 모른 척 뒷짐 지듯 얹으니 제로가 지나가는 척하며 손끝을 툭 친다.
먼저 가 있으라는 신호와 알겠다는 답.
[베르뷔트 더 아그리아―악신교의 세 번째 선별자]대표 Traits : [연기(A)] [지배(B)] [탐욕(B)]
히든 Traits : [세뇌(A)] [무정(C)]
너구나. 지금 날 노리는 게.
우리는 서로 가면을 쓰고 서로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부유감으로, 저 아이는 내가 모르는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완벽히 알아봤으나.
“사람 많은 곳은 부끄러워요…….”
“난 반대인데.”
서로 모른 체하고 이러는 게 우습다.
마음 같아선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 케인을 불러 슥삭하고 싶지만.
‘느낌상 저쪽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거 같거든.’
“그럼… 조금만 어두운 곳으로 가면 안 돼?”
“응, 안 돼.”
네 이름도, 트레잇도, 외모도 알았으니까 여기서 더 볼 필요 없지.
나는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손등으로 베르뷔트의 뺨을 일부러 매만지듯 쓸었다.
“재미없네.”
그리고는 베르뷔트를 남겨 둔 체 몸을 돌렸다.
목덜미를 물려 독이 퍼지기 전에 발 빼야지.
아쉽게도 정면 승부는 내 취향이 아닌 데다 지금은 할 생각이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흑막 컨셉이라고.’
“자, 잠깐.”
“끈질긴 사람은 남녀노소 매력 없는 법이거든?”
나는 내 손목을 잡는 베르뷔트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쪽으로 걸었다.
그에 근처에서 가면을 쓰고 밀회를 나누던 이들이 낮게 비웃는 소리가 등 뒤에 흩어진다.
트레잇에 신체 관련된 트레잇은 없었으니, 나는 적당히 정원을 한 바퀴 돌며 못 볼 꼴 다 본 다음 음악 소리가 들리는 홀로 걸음을 옮겼다.
외각의 불이 어두운 곳은 밀회용. 이곳은 친목용인가.
음식과 술, 그리고 춤.
가벼운 운동처럼 사교 댄스를 재미 삼아 추는 사람들과 술과 음식을 마시며 가십을 즐기는 이들.
“그러니까 이번에 그 고고하신 얼음꽃께서 말이야.”
“쉿, 여기 있을지도 모르잖아?”
“뭐 어때. 이런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런 곳의 매력 아닌가?”
서로 누구인지 모르는 익명이라는 가면.
그게 사람을 얼마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지 나도 잘 알지.
“아, 그래서 말이야. 이번 사냥제 때 한 방 먹이려고 그러잖아.”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허풍선이인 건 알겠어, 후훗.”
술에 취해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어깨동무하고 마시는 영애들부터.
“볼일 보러 멀리 갈 일 있어?”
“술 마시더니 정신 나갔나 봐. 하하.”
누군가 자신의 허리춤을 잡고 장난스럽게 몸을 흔드니 저렇게 웃긴 건 생전 처음 본다는 얼굴로 웃어대는 이들까지.
하긴 원래 아이들은 더러운 개그 참 좋아하지.
세파에 찌든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적당히 술 한 잔 들고 홀의 바깥쪽으로 돌았다.
그나마 이곳은 스킨…이 주가 되는 공간이 아니라서 제로가 덜 곤란한 얼굴로 자신에게 조잘거리는 여인들과 적당히 말 상대하며 슬쩍 술잔을 한쪽 방향으로 기울여 돌린다.
‘저쪽.’
긴 소파에 엉켜 서로 키득거리는 여자 셋과 남자 둘.
‘다섯 정도면.’
아까 베르뷔트까지 포함하면 여섯.
그 정도는 괜찮겠지. 트레잇을 전부 꼼꼼하게 볼 필요 없이 필요한 것만 골라보면 되니까.
나는 슬쩍 벽에 붙으며 제로에게 신호했고 내 몸짓에 제로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떤 레이디의 손을 잡고 중앙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미리 말한 대로 이 자리에서 다른 이들을 보고 추는 법을 배운 모양. 잠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쏠리는 동안 나는 제로를 보는 척 황족이 낀 무리로 시선을 돌렸다.
“춤추는 선이 아는 애가 아닌데?”
“가면에 의해 보정 받았다 해도 저런 체격을 가진 이가 누구 있더라.”
제로를 보며 떠드는 아이들, 그에 난 천천히 사용자의 눈을 되뇌었다.
‘마법. 정령술. 창술. 이런 건 넘어가고. 단명… 이건 좀 안타깝네. 아 찾았다.’
[샤카―악신교단의 꼭두각시]대표 Traits : [인내(B)] [예법(C)]
히든 Traits : [결벽(B)] [감정(C)]
모래색 같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녀.
이제 남은 것은 그녀가 지금 황족으로 변해 있느냐 아니냐인데. 그건 의외로 쉽게 알 수 있었다.
[샤하드 폰 테이트리아―제12 황자]대표 Traits : [허약(B)] [예민(B)]
히든 Traits : [단명(C)]
봉인 Traits : [천재(B)] [무골(B)] [신성(C)]
레피드 때 단 한 번 본 봉인 트레잇.
일단 이것으로 황족에게까지는 교단의 손이 뻗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교단이 누구를 바꿔치기하고 있는지 알아냈으니.
여기 더 있을 필요 없지.
나는 한 번 더 샤카의 생김새를 확인한 뒤 천천히 홀을 나섰다.
“하아, 저기요. 우리 대화 좀 해요.”
그리고 마차를 타기 위해 정원을 가로지르는데 누군가 내 손목을 잡는다.
나는 급하게 곁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아, 수풀에 숨어 괘씸한 짓을 하는 아이들이 셋.
“무슨 대화.”
나를 찾아 이곳저곳 헤맨 것인지 살짝 숨이 찬 모습의 베르뷔트를 바라보자 이내 숨을 고르고 나를 마주 본다.
그리고 낚아챈 내 손목을 매만지며 살짝 웃는 모습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정말 깜찍하고 귀엽다고 여길 모습이지만.
‘설마 황족까지 있는 파티에 암살자를 데려오진 않았겠지.’
그런 건 나 하나로 족하다.
“이런 곳에서 할 대화가 따로 있나?”
나를 당장 푹찍하려는 게 아니라면. 납치 혹은 회유.
“단둘만 있을 곳으로 가요.”
그렇게 해서 얻을 것은.
‘많지.’
솔직히 내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니까.
일단은 지금은 후퇴가 시급하다.
나는 느리게 웃으며 잡힌 손목을 빼는 동시에 뜀박질을 시작했다.
“자, 잠깐!”
그리고 내가 미로처럼 꾸며진 정원의 코너를 한번 도는 순간 케인이 날 짐짝처럼 낚아채 나무 위로 올라가 이동한다.
“탈출하자.”
“그러지.”
흘긋 뒤를 보니 내 뒤를 따라 뛰던 베르뷔트가 멈춰 두리번거리고 정원 반대쪽에서는 제로가 자신을 노리던 사람들을 따돌리는 것이 보였다.
오늘 배지를 쓸 필요는 없어서 주지 않았더니 한 번에 따돌리지 못하고 중간중간 잡히는 모습이 꽤 곤란해 보이지만.
‘나만 아니면 되지.’
그럼, 살아서 만나자, 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