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1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16화(116/373)
“솔직히 가면무도회 같은 거 무슨 재미인지 몰라.”
마법으로 자신의 외모를 바꿔 알아보지 못하게 한 뒤 즐긴다라.
사람의 가치는 트레잇, 즉 재능과 능력이 첫 번째요, 두 번째가 외형 아닌가?
그거 두 가지는 신이 내려준 확실한 재산이니.
혈통은 가치를 떠나 필수적으로 깔린 기본 사항인 것이고.
“오늘은… 다른 이유로 가시는 거니 말이에요.”
“하긴, 놀러 가는 건 아니니까.”
거울을 보며 베르뷔트가 자신의 몽실거리는 머리칼을 손가락을 톡톡 쳐 볼륨을 넣었다.
“그 망나니 구워삶으러 가는 거긴 하지.”
그러니 더 아쉽다. 가면에 걸린 마법이 자신의 외모를 얼마나 망쳐놓을지.
발간 입술을 비죽거리던 베르뷔트가 우아한 동작으로 손을 내밀자 그 하얗고 보드라운 손목에 가는 금속 팔찌를 걸었다.
“이게 그 인식 교란 무효 아티팩트야?”
불빛에 비추듯 가녀린 손목을 흔드니 베르뷔트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소녀가 대답했다.
“네. 아티팩트 검사에 걸리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적은 마나만 담았다고 해요. 대신 오늘 하루만 쓰면 부서진다고.”
베르뷔트가 심드렁하게 팔찌를 톡 건드리며 물었다.
“그리고 그 망나니의 외모는 대충 외웠는데. 확실하게 구별할 방도는?”
“그 여관 전체에 은은하게 베르뷔트 님께서 좋아하시는 수국 향초를 피워 놨으니 근처에 가시면 쉬이 알 수 있으실 거예요.”
‘…라고 말하더니. 미향을 풀어서 구분이 어렵잖아.’
베르뷔트가 돌아가면 쉬이 알 수 있을 거라 말하던 고 입을 한번 찢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스쳐 지나간 누군가에게서 옅은 수국향이 났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팔찌를 매만지니 검은 머리, 갈색 눈의 사내가 화려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모습으로 보인다.
‘찾았다.’
스스로 인지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입꼬리에 걸린 오만한 미소.
상대방을 그 영혼까지 경멸하는 것 같은 오만한 시선.
‘쥐뿔도 없는 망나니 주제에.’
마치 황족, 아니 그 이상의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베르뷔트가 입을 열었다.
“잠시… 대화 나눌 수 있을까요?”
사랑스럽게, 무해하게.
그렇게 보이며 상대방을 쥐락펴락하는 것에 이골이 났다.
만지면 분이 묻어나올 것 같은 피부와 입술을 대면 녹아버리는 솜사탕 같은 머리카락.
난 아무것도 몰라요. 어리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영원한 아이.
그러니 나에게 나쁜 마음먹어요. 이런 곳이니까.
‘그렇지만 그 끝은 내 손아귀 위일 테니.’
베르뷔트는 자신만만했다. 아무리 인식 교란 마법이 걸린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해도.
자신은 베르뷔트니까.
“나야 좋지.”
이것 봐.
베르뷔트는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웃는 그 얼굴을 속으로 비웃었다.
가진 거라곤 크루거 가문의 위광과 반반한 얼굴뿐인 망나니.
하지만 지금은 내 한 입 거리 식사.
베르뷔트가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포식자의 발톱을 숨기고.
아델리안,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가디아를 손에 넣은 것만큼이나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테니.
“사람 많은 곳은 부끄러워요…….”
그러니 조용한 곳으로 유인하여 술을 나누는 척 수면제를 삼키게 하면 금방 제 손에 떨어질 터.
살짝 뺨을 붉히며 나락으로 잡아챌 기대감에 떨리는 손을 입가에 대며 말하니 아델리안이 웃었다.
“난 반대인데.”
저거 변태 아니야?
순간 가면이 깨질 뻔한 베르뷔트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촉촉한 눈으로 올려보며 속삭였다.
“그럼… 조금만 어두운 곳으로 가면 안 돼?”
어느 사내가 거부할 수 있을까.
“응, 안 돼.”
저놈은 사내가 아니다.
히죽거리며 웃는, 그나마 반반한 얼굴을 망가뜨려 버릴까.
손끝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아델리안을 바라보며 베르뷔트가 분노를 참기 위해 몸을 떨었다.
“재미없네.”
재미…….
재미가 없어?
감히, 너 따위 반푼이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게 하면 오롯하게 남는 것은 얼굴뿐인, 변변찮은 것이.
감히 나에게 재미를 논해?
베르뷔트가 분노에 잠식되어 이곳이 무도회장인 것을 떠나 손을 쓰려 하던 그 순간.
제 죽을 자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바로 몸을 돌려 걸어가는 것에 베르뷔트가 뒤늦게 쫓기 시작했다.
“자, 잠깐.”
“끈질긴 사람은 남녀노소 매력 없는 법이거든?”
손목을 움켜쥐었으나 그것도 잠시.
저를 홱 하니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걸어가는 그 뒷모습에 베르뷔트는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멍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푸흡… 차였나 봐.”
“가까이서 보면 가면의 마법을 뚫고 못생김이 나오나 봐?”
그리고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겨진 베르뷔트에게 쏟아지는 조소.
그에 베르뷔트가 주위를 홱 하니 돌아보자 다들 시선을 돌려 자기들끼리 속삭인다.
‘나중에… 다, 다 죽여버릴 거야.’
일단은 저 아델리안이라는 망나니부터.
전부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제한.
그리고 베르뷔트의 자신감.
그 두 가지 이유로 베르뷔트는 이 무도회장에 교단원들을 많이 깔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젠장, 어디 있는 거야?’
보기보다 발이 빠른지 그렇게 사라진 후, 얼마 있다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난 베르뷔트가 이곳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교단원들을 재촉해 다시 아델리안을 찾아 나섰을 때는 사방에 금발도, 마법으로 변했을 흑발 보이지도 않던 상황.
육체적으로 강인한 타입은 아니었던지라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아니, 아니지.’
자신이 받은 수모를 생각하면 단번에 죽이는 것은 수지에 안 맞지.
베르뷔트가 이를 갈며 두리번거리던 그때.
마차를 타기 위해서인지 급한 걸음으로 정원을 가로지르는 아델리안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저기요. 우리 대화 좀 해요.”
급했던 베르뷔트가 아델리안의 손목을 잡는 순간, 그 오만한 눈초리가 짙어졌다.
“무슨 대화.”
싸늘한 그 어조에 베르뷔트가 살기를 웃음으로 무마하는데 아델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할 대화가 따로 있나?”
“단둘만 있을 곳으로 가요.”
그래서 널 강제로 끌고 가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해줄 테니.
베르뷔트의 음험함이 눈가로 넘실넘실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것일까.
아델리안은 입으로 가타부타 답하는 대신 바로 베르뷔트의 손을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자, 잠깐!”
저, 저 예법을 여관에 두고 나왔나. 레이디가 이렇게까지 말을 거는데 저렇게 무례할 수가!
베르뷔트가 어이가 없어 바라보다 뒤늦게 어금니를 빠드득 갈며 쫓는데 미로 같던 정원의 코너를 도는 순간 아델리안이 온데간데없는 듯 사라졌다.
“이… 이 망할 놈아!”
결국, 분노에 찬 베르뷔트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 *
“난 사실 아무 일 없을 거라 믿고 있었어.”
“입가에 묻은 것부터 닦아라.”
세이렌으로 루나와 연락해 합류한 곳은 외곽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온 작은 광장.
거기서 루나와 리프, 레이첼이 도시락이라도 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그마한 분수대 옆에 놓인 벤치에서 오순도순 도시락 까먹으며 기다릴 만큼 걱정 안 했다는 건 내가 잘 알겠다.
“맛있냐?”
“먹을래?”
제로는 바로 숙소로 갈까, 아니면 합류를 위해 나와 케인의 흔적을 따라 이쪽으로 올까.
그러고 보니 그걸 안 정했네.
“도련님이랑 케인 꺼두 여기 있어요.”
―여기 주스도 있습니다, 관리자님.
“고마워.”
잠시 야식도 먹을 겸 제로를 기다려 볼까. 앉아서 루나가 건넨 계란 토마토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토마토는 살짝 데쳐 혀에 걸리는 껍질이 없는 데다 바질을 넣어 오래 볶은 듯 질척한 물기가 없었고 반대로 계란은 촉촉하게 스크램블에그식으로 만든 듯 부드럽다.
‘빵도 버터에 한번 구웠나?’
별다른 소스 없이 토마토와 바질을 볶아 살짝 졸인 것만으로도 약간의 시큼함과 더불어 간이 맞는 게 이거 맛있네.
“맛있지?”
내가 말없이 한입 더 크게 베어 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이첼이 뿌듯하게 물어본다.
“네가 만들었나?”
“아니! 제로가!”
그런데 왜 네가 뿌듯해하냐.
나는 피식 웃으며 입맛에 맞았는지 금세 두 조각을 해치운 케인에게 내 것까지 밀어주는데 조금 떨어진 골목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너무합니다.”
“왔어?”
제로가 어떻게 자신만 놓고 갈 수 있냐며 항의하는 이 상황에서 ‘야, 네가 만든 샌드위치 맛있더라.’ 하면 더 투덜거리겠지?
나는 ‘그래, 내가 잘못했다’를 반복하며 소화도 시킬 겸 숙소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도회 어땠어? 재미있던?”
“전혀요. 몸에 향수 내가 배여 어서 샤워나 하고 싶습니다, 레이첼 후배님.”
레이첼은 안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한 듯 제로와 어깨동무하며 가고 케인은 리프와 함께 걸으며 서로의 오러를 작은 사람 모습으로 만들어 허공에서 대련하고 있다.
그리고 루나는 나에게 슥 다가와 내 어깨 근처에 코를 대고선 킁킁거리는 시늉을 한다.
“나도 향수 냄새나지?”
애초에 들어가자마자 그 저택은 단 향이 돌았으니. 그것도 뭔가 의도적인 단 향.
그러니 내 몸에도 케인과 제로의 몸에도 배어있을 것이다.
“기분 나쁜 향냄새랑 더불어서 꽃내가 나요.”
“백합 향?”
나는 파이얀을 떠올리며 물었으나 루나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실 도련님 말고두 저희의 몸에서 다 나요. 아마두…….”
“교단 쪽에서 여관에 손 뻗은 건 알고 있는 사실이니 그쪽이겠지?”
루나와 제로. 리프가 공들여 방을 늘 정리하며 우리의 머리카락 등은 전부 소각하는 데도 도플갱어 포션을 쓴 우리들의 가짜들이 한 번씩 나왔다.
외출하며 자연스럽게 잃어버렸을 머리카락 같은 걸 줍고 다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여관에서 우리가 종종 나다니며 떨어트린 걸 주웠다는 게 더 빠르겠지.
거기에 툭하면 노크하며 누가 오질 않나, 여관 쪽에 한 번 말했지만 그쪽에서도 사실 별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봐야 같을 테고. 수도라 당장 집을 구하는 것도 여러모로 힘든 구석이 있었고.
“수국… 향? 수국 향 같아요. 그런데…….”
루나가 한참 생각하다 내 몸에 묻은 향기가 무엇인지 알아챈 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루나 자신의 옷 소매를 킁킁거렸다.
“저희 몸에 밴 향기부다 더 진한 수국 향.”
그에 나는 베르뷔트를 떠올렸다.
“아, 교단의 사람이 접근했었거든.”
내 손목도 잡고 몸도 붙었으니 그때 묻었겠지.
어쩐지 찝찝해졌기에 내가 옷과 팔을 툭툭 쳐 터는데 루나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생겼어요?”
생각난 김에 기록해 둘까.
나는 아공간에서 메모지와 깃펜을 꺼낸 뒤 나만 알아볼 수 있게 한글로 간단히 적으며 입을 열었다.
“갈색의 보들거리는 머리에 갈색 눈이고 키는 이 정도.”
내가 손날로 허공을 어림잡아 흔드니 루나가 자신의 키와 비교하듯 내 손바닥 아래에 섰다.
루나보다 조금 더 컸던 거 같긴 하네.
“여자애라서 그리 크진 않더라고.”
“아하.”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하며 어느새 여관 앞에 거의 도착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흘린 메모를 케인이 주워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공용 문자는 아니고. 뭐지.”
“왜 뭔데?”
레이첼이 케인이 주운 내 메모를 슥 가져가더니 음, 하며 자신의 턱을 매만진다.
“요정 문자도 아니고 마법 문자도 아니고.”
“내놔.”
당연히 아니겠지. 나는 한글로 베르뷔트의 외형과 트레잇 등을 적은 메모를 다시 빼앗았다.
“네가 만든 문자인가.”
그걸 다시 깃펜과 함께 아공간에 던져넣는데 케인이 묻는다.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이 대륙에서는 나만 쓰고 있을 테니.
“뭐 비슷해.”
죄송합니다, 세종대왕 님. 하지만 대왕님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곳이라서 이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려는데 케인이 아주 살짝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럼 시간이 날 때 알려주는 게 어떤가.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문자가 있다면 나중에라도 쓸 일이 있지 않겠나.”
케인이 웬일로 의견을 다 내지?
나는 여관방으로 들어가며 낮게 숨을 흘리다 여상스레 대답했다.
“그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