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1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19화(119/373)
내가 알아본 바로 그 베르뷔트라는 교단원은 아카데미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무엇으로? 다정하며 상냥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누구에게도 미움 사지 않고 연약한 온실 속 화초처럼 모든 걸 해주고 싶어진다고.
‘매료도 없이 말이지.’
아, 물론 당장 내가 본 트레잇에는 없었으나 사실은 등급이 낮아 있어도 확인이 안 되는 수준일 수도 있긴 한데.
그 말인즉슨 베르뷔트의 그 좋은 평판들은 전부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의 결과라는 소리다.
‘말 그대로 노력의 극치.’
물론 베르뷔트가 가졌던 트레잇, 연기(A)의 효과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 연기라는 트레잇조차도 저런 평판을 위해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을 게 뻔하니.
‘거기에 모태 여왕인 파이얀을 넣는다면?’
글이건 그림이건 혹은 다른 무언가라도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에 몰두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노력으로 안 되는 재능이 있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지.
물론 그 비참함을 순간의 충동으로 넘기고 제 갈 길 가는 강한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실패를 거의 해본 적 없을 베르뷔트가 파이얀이라는 매료 재능충을 만난다면?
“누이에게도 손해는 없을 거야. 쓸모도 많고 눈치도 좋으니까.”
나는 아주 생색내는 얼굴로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못 믿겠으면 신의 계약서라도 쓸까?”
“저기 보스…….”
“계약서? …저 여자가 어떤 사람이기에 네가 그런 것까지 쓰며 내게 붙이려 하지.”
“보스?”
“파이얀은 누이 말고 다른 녀석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체스 말 같은 거거든.”
“제 말, 안 들리세요?”
케인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일이 너무 많아서 몸이 두 개라도 된다면 둘 다 바깥일에 신경 쓰고 싶다는 파이얀의 말을 가디아도 나도 들은 체도 안 하며 대화했다.
“누구지. 들어보고 고려하마.”
“베르뷔트.”
내 말에 가디아의 둥근 어깨가 흠칫 떨린다.
“네 입에서 그 아이의 이름이 어째서…….”
“그 계집이 감히 날 노리는 중이라? 내 것을 탐내더라고.”
나는 일부러 다른 꿍꿍이는 없다는 듯 생각이 짧고 금방 화를 내는 척 미간을 좁혔다.
“그러니 나도 한 방 먹이지 않고서는 분이 안 풀려.”
“…생각은 해보지. 그리고 고작 그걸 말하려고 날 여기까지 부른 것인가.”
“그럴 리가. 밥이나 먹고 가. 내 아이들이 만드는 밥, 엄청나게 맛있거든.”
“거절한다.”
내 제안에 가디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후회할 텐데. 지금 제로와 루나가 찜닭을 리프가 당근 수프를 준비 중이거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가디아에게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긍정적인 답 부탁해.”
내 말에 대꾸도 없이 나가는 뒷모습. 나는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리다가 어쩐지 입이 튀어나온 파이얀을 바라보았다.
“왜.”
“보스. 이제 내가 보이시나 봐? 나 트레잇에 투명화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아, 그런 거 가지고 삐지긴.
내가 나름 상냥하게 웃으며 달래려는데 내 얼굴을 본 파이얀이 슬쩍 눈동자를 내린다.
“아니… 그게 기분 나쁘단 소리는 아니고. 보스는 귀족이니까. 당연하지…요.”
그래, 내 오만 트레잇이 뭘 했구만?
“괜찮아. 가디아도 갔으니 편하게 하고 싶은 말 해봐.”
파이얀은 내 말에 슥 내 주위를 훑는다.
어차피 가디아 때문에 케인은 제 방에 들어간 지 오래. 레이첼은 그런 케인과 게임을 하러 쫓아갔고 나머지는 식사 준비 중이니.
“솔직히 말해서. 아니, 나에게 암흑가 맡긴다며. 그래서 내가 진짜 최선을 다해서 세력을 키우는 중인데.”
뭔가 쌓인 게 있는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파이얀이 손등으로 입가를 지익 닦았다.
“아니, 거기에 규격 외 마법 폭탄 같은 케인을 던지면 어떡해? 응? 그럴 거면 처음부터 싹 쓸어버리지, 어? 뒷감당은 나한테 다 시킬 거면서!”
말하면서 점점 그라데이션으로 울분이 차는지 목소리가 높아지던 파이얀이 자신의 손으로 탕탕 테이블을 쳐댄다.
생수 마시고 술주정하는 것 같은 모습이네, 이거.
“케인이 뭘 했는데?”
참고로 나는 지금 할 일이 많아질 예정이니 아직도 기반이 불안정하다면 케인을 검 삼아 너무 강한 적들을 적당히 처리하는 데 쓰라는 식으로 편지 보냈다.
“싸그리 다 죽였다니까?”
파이얀이 크림색의 하얀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꽉 쥐어 엉망으로 흩어댄다.
“그거 수습하는 거 나 진짜 죽어. 무리야. 아니다, 그냥 수습 안 할게. 내가 시킨 거도 아니니까!”
제일 아니라는 듯 양손을 탁 털 듯 움직이더니 의자에 기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린다.
아주 단단히 마음 상했나 본데.
케인 이 녀석, 일하기 귀찮으니 한 방에 잡초 제거하듯 싹 날린 모양.
뭐 그러면 별수 없지.
“그렇게 해.”
“어?”
“그렇게 하라고. 수습하지 마.”
내가 낮게 웃자 파이얀이 또 무슨 꿍꿍이냐는 듯 눈썹을 찡그린다.
“어차피 케인이 한 이상 절대 들킬 일 없어.”
케인의 감각을 아예 넘어서는 초인이… 없진 않겠지만 대륙에서 몇 안 되는 그들이 암흑가에 일어난 살육에 신경 쓸 리가.
제국 수도에 많아 봐야 한 명일 것이다. 그리고 존재한다면 십중팔구 왕실과 관련된 사람일 터.
그러니 뒷세계 조직의 간부 수십이 하루아침에 머리가 날아간 일 따위.
결국 아무도 모르고 서로를 의심하며, 동시에 머리가 잘릴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던 이들이 최소한의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 애쓰겠지.
“최소 몇 달은 시끄럽겠지. 서로 반목하고 견제하면서?”
“그, 그렇겠지?”
“그럼 그동안 네 세력은 최소한의 성장만 하며 기다렸다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남은 것들을 주워 먹을 정도는 되겠지 능력이?”
“당, 당연하지?”
표정으로 다 보인다. 아, 이게 아닌데 하는 그 얼굴.
표정 관리가 저렇게 안 되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남을 등쳐 먹고 살았지?
“그리고 네 트레잇 말이야. 배합도 있던데.”
내 말에 파이얀의 눈동자가 데굴 굴러간다.
“어떻게 알았지? 하여튼 그건 왜…….”
“뒷조사한 게 맞으니까 궁금해할 필요 없어. 그나저나 그건 뭐 때문에 생겨난 거야?”
내 말에 파이얀이 투덜거리다 입을 열었다.
“사람의 첫인상은 외모와 분위기. 말투와 체향 등 나름 복합적으로 정해지는 걸 살면서 깨달았거든.”
특색 있는 향수는 그것만으로도 무기가 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루비로 활동했을 때. 그 이름에 맞춰 머리카락도 붉게, 향수도 짙은 장미 향을 썼기에 자신은 눈에 띄었지만, 반대로 그런 것들을 전부 바꾸는 것만으로도 쉽게 사람의 기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
“아마 지금 이 모습이면 내가 루비로 만났을 때 사람과 마주쳐도 한참이나 내가 루비인 것을 들키지 않을 거야.”
눈썹도 다듬어 살짝 둥글고 끝이 내려가 유순해 보이는 얼굴에 화려하지 않고 고결해 보이는 얼굴과 표정.
확실히 루비라고 불릴 때와 릴리라고 불리는 지금은 크게 달라 보이지만.
“하지만 난 알아봤잖아.”
쾅!
“그게 이상하다니까?”
내가 웃으며 던진 말에 파이얀이 테이블을 다시 팡팡 쳐댔다.
“하여튼 가디아의 시종으로 들어가면 할 일이 있어.”
나는 베르뷔트에 대해 내가 보고 들은 정보를 간략하게 정리한 종이를 몇 장 건넸다.
“그 아이를 견제해 주면 좋겠다. 더불어 아카데미 내에서 네가 그 아이보다 더 타인을 잘 부리면 좋겠거든.”
내 말에 천천히 종이를 읽던 파이얀이 눈가를 살짝 접듯 생글생글 웃었다.
“뭐야. 나 휴가 주는 거야, 보스? 아, 이런 거면 진작 말하지.”
고작 많아야 20년 남짓 살았을 아이들이. 아무리 고등교육을 받아 영악하다 못해 사악하다 해도.
“목숨 내놓고 남 등쳐 먹던 너라면 믿을 수 있지.”
“보스. 거 남 등쳐 먹은 과거 너무 긁어대는 거 아니야?”
입을 가리고 호호하고 웃듯 말하면서도 투덜거리는 모습에 나는 마저 웃곤 입을 열었다.
“그럼 응원도 할 겸, 식사 대접이라도 할 테니 먹고 가.”
그날 파이얀은 찜닭 한 마리를 거의 다 먹고 집에 갔다.
* * *
“그러니까 세이렌은 내가 말만 하면 이제 양산형을 찍어 낼 수 있다?”
<그렇습니다, 도련님.>
나는 침대에 누워 알카이도와 대화했다. 양산형 세이렌 몇 개를 수도로 보내라고 하던 와중에 들리는 약간의 소음.
<듣자 하니, 너 누나랑 만났다며?>
“오랜만이네, 레피드.”
알카이도의 손에 들린 세이렌을 그새 빼앗았나 보네.
세이렌의 연구로 방에 틀어박혀 있다더니 연구가 제법 끝나가는지 세이렌을 통해 건네는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왜, 대화라도 하고 싶어?”
당장 레이첼 불러줄까? 하는 말에 레피드가 학을 뗀다.
<그런 근육 바보랑 할 말 없다. 보나 마나 봉인 풀어 달라는 말은 씨알도 안 먹힐 테고. 난 단지 인간, 네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을 뿐.>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사랑은 종족을 초월한다지만 폭력도 초월할 줄은 몰랐다.>
“오해가 있다.”
<아니, 없다. 방생하지 말고 꼭 같이 지내도록 해. 마음을 휘어잡아서 드래곤 하트를 반 쪼개 네 몸에 박으면 너도 누나만큼 살 수 있다. 힘내라.>
아니, 이건 무슨.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는데 레피드가 날 놀려먹고 기분 좋아졌는지 크게 웃으며 알카이도에게 세이렌을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도련님. 정말입니까.>
“정말이겠어?”
레이첼이 원래는 케인과 감정선이 있었다는 것을 떠나서, 아름다운 데다 강하기도 한 존재인 것도 떠나서.
어차피 나는 부유감 덕에 그런 식으로 설렘은 느끼지 못한다.
내가 태연하게 대꾸하니 알카이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챠비드 접경지부터 시작된 전염병이 슬슬 대두되고 있습니다.>
가면 무도회 때 파이얀이 캐낸 정보에도 그 말이 있었지.
전염병.
챠비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장기간 납치 사건으로 수인족에게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새기고.
반대로 챠비드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전 대륙에 퍼져 나가며 그 병에 특히 취약했던 인간들로 하여금 챠비드가 전염병의 근원지로 생각되게 만들어 수인족에 대한 인간의 증오심을 키운다.
원래는 부족 단위로만 거의 뭉치던 수인족이 핍박받던 와중에 수인왕이 탄생해서 모든 수인족을 하나로 모아 대륙과 전쟁했지.
그게 원작과 이노센트 사가에 있었던 설정.
이번엔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다. 수인족도 전력인데 그런 식으로 깎아 먹을 필요 없지.
“좋아. 그럼 이제 풀어.”
그러니 지금 푼다.
너무 초반에 약을 풀었다면 전염병을 다른 종류로 바꿔 시행했을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퍼진 다음에는 병의 종류를 바꾸는 일은 이미 손해가 너무 커 하지 못할 터.
단번에 픽픽 쓰러져 죽는 그런 병이 아니다.
고열, 구토 및 하혈. 온몸의 둔통과 기력 저하. 체력 저하 등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도 당장 죽지는 않지.
병자를 늘려 부양하는 이들을 압박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장시간 보여 증오를 쌓다가 나중에 있을 2차 전염병 계획 때 1차와 2차 전염병이 모두 걸린 사람에 한해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육박하게 되는 방식.
그러니 지금 약을 풀면 된다.
고통받는 이들은 많아도 죽은 이들은 적으며 악신교가 당장 작전을 취소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매몰 비용이 들어간 지금.
“우리가 병을 퍼트린 뒤 약을 팔아 돈을 받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게 이윤을 최소화하면 좋겠어.”
<카이만 님과는 확실히 다르시군요, 도련님.>
하긴, 계산적과 모략이 트레잇에 붙어 있는 카이만이라면 욕을 먹더라도 비싸게 파는 방법을 택했을지 모르겠다.
대륙에서 찍어 내는 모든 골드를 크루거 가문이 점령하고 크레딧을 일종의 기축 통화처럼 운용하려던 카이만이 이 일을 알았다면 큰일 났겠지.
“난 아버지와 다르거든.”
영혼부터 딴 판에서 왔지.
<명을 따릅니다.>
나는 느리게 웃었다. 악신교단이 노리는 모든 수를 망치지는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망치고 막고 방해할 것이다.
“그리고 황족에 대한 자료도 좀 더 자세하게 보내줘.”
드뷔오나에게 제로를 걸고 받았던, 또 다른 황족과의 만남 주선.
그것까지 쓰고 나면 나는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샤하드와 다른 황족 중 누구와 손을 한번 잡아 볼 것인지.
혹은 둘 다 잡거나 둘 다 잡지 않거나.
어떻게 내가 행동해야 악신교단에게 엿을 먹이고 대륙의 멸망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을지.
그리고 케인에게 먹일 만한 업적은 없을지.
<가까운 시일 내 보내겠습니다.>
나는 몇 가지 말을 더 건넨 뒤 알카이도와의 통화를 종료했다.
나머지는 자료를 본 다음에나 정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