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2화(12/373)
루나와 케인을 쓰다듬으며 느꼈던 즐거움?
정말 잠시 잠깐이었다.
“후우, 하아…….”
이 쓸모없는 몸뚱어리 같으니라고.
밤새 술 마시고 정시 출근하는 아침, 속이 메스껍고 누가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다리에 온 만신이 찌뿌드드한 바로 그 느낌.
무슨 연무장 달리기 몇 바퀴에 폰 숙취를 느끼냐 이 몸은.
“헉, 허어 더는 후아.”
나는 더 못 뛰겠다 버겁게 말하며 살살 속도를 늦춰 걷는데 내 등을 누군가 확 밀며 억지로 달리게 한다.
“마크……!”
“도련님. 그런 달리기론 고블린도 못 따돌립니다.”
내 다리가 내 의지랑 상관없이 움직이는데, 넘어질 거 같으면 뒷덜미를 잡아서 바로 세워 다시 밀고 다시 밀고.
달릴 때 등 뒤에서 누가 밀어주면 편할 거 같지?
전혀 아니다. 내가 여력이 있어야 아 좀 편하네 싶지.
이미 밑바닥인 상태에서 강제로 밀려지는 것은 내 몸에 대한 학대나 다름없었다.
“그, 그만해!”
나는 숨을 너무 급하게 쉬어 목이 아프고 입 안이 말라 뻑뻑해짐을 느끼며 비틀거리는데, 그 와중에 나를 추월하는 케인의 옆모습이 보였다.
‘이 자식이?’
희미하게 보일락 말락 하는 저 입꼬리.
너 지금 나 비웃었냐?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마크에게 잡혀서 뛰는데!
그래도 여행하려면 말이 없어도 이동 가능한, 최소한의 기초 체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케인의 말에.
승마 말고 달리기도 좀 해볼까? 하고 솔깃한 내가 바보였다.
케인이 구르는 걸 구경도 할 겸 살살 산책 삼아 뛰려던 내 원대한 계획이 왜 이렇게 되었지?
“으웨엑.”
난 겨우 마크의 간악한 손아귀에서 벗어나 숨을 몰아쉬며 헛구역질했다.
“도련님. 이제라도 체력을 키워보겠단 생각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제 매일 나오십시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란 소리인가.
내가 그리 달갑지 않을 게 뻔한 마크지만 나름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호의적이다.
저게 수양의 차이인가.
일반 평기사들은 흘긋흘긋 날 노려보거나 자기들끼리 입 모양으로 쑥덕거리는 게 느껴지지만 그나마 마크는 달랐다.
내가 할론을 빼앗아 간 데다 케인까지 낙하산으로 꽂았을 때 마크는 눈으로 날 죽일 거 같았는데 말이지…….
그래도 케인이 마크의 시험을 통과하고 이 기사단의 훈련을 아직은 일반인에 가까운 몸으로 버틴 것에 가산점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저 말은 선 넘었지.
“매일? 무슨 소리야? 나 바쁜 사람이야.”
“내일도 뵙겠습니다, 도련님.”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걸음을 옮기면 갓 태어난 기린처럼 다리가 삐그덕 할 것만 같다.
‘이런 걸 매일? 절대 못 하지.’
나는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마크의 눈을 피해 어그적 도망갔다.
* * *
“그게 무슨 말이지.”
귀도 뇌도 쌩쌩 돌아갈 네가 잘못 들었을 리 없다.
“말한 그대로야. 심부름 다녀와라. 너 혼자.”
우리 케인이 달라졌어요 1탄이다, 인마.
나는 그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케인을 보며 아무런 꿍꿍이가 없단 표정을 지어내곤 상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절대 아침에 구보 뛰는데 네가 비웃고 지나가서 그러는 건 아니고.
나 그렇게 도량이 좁은 사람이 아니다.
“왜, 겁나? 너 혼자 나가면 또 사기당할까 봐?”
“헛소리하지 마라.”
“아니면 뭐 뒤통수 맞고 기절하니 낯선 천장일까 봐? 걱정 마. 형이 너 어디 팔려가게 두겠니? 투자금이 얼마인데.”
“뭐 사올까. 너랑 말하는 것보다 당장 나가는 게 내 정신 건강에 더 이로울 것 같군.”
약간 기분 나쁜데?
그렇지만 결과만 따지면 케인이 일시적으로라도 본인 의지하에 타인과 교류하고 오겠다 말한 것이니.
나는 미리 준비한 금화 하나를 케인에게 퉁겨줬다.
“사거리의 파미야 빵집이 요즘 핫하다더라. 난 청포도 타르트 하나.”
“저… 저는 당근 케이크요.”
“더 시켜도 돼, 루나.”
“그으럼… 당근 케이크랑. 알콩달콩 사랑의… 허니 쿠키요.”
“…무슨.”
나는 차마 알콩달콩을 입안에서 굴리지도 못하는 케인을 보며 보란 듯이 낄낄거렸다.
“아, 그거 맛있겠네. 알콩달콩 사랑의 벌꿀 쿠키. 그거 말고 비슷한 이름의 과자 없어?”
“아찔하고 달콤한… 베리베리 타르트?”
“응, 그거까지.”
그걸 나보고 사오라고? 하는 얼굴을 한 채 눈으로 욕을 던지는 케인을 깔끔하게 무시한다.
“케인 다 기억하지? 적어서 보여주지 말고 꼭 말로 주문해 와. 네 것도 빼먹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사와라.”
“꼭?”
“꼭.”
이야, 눈으로 말 잘한다. 캬! 개로 시작해서 끼로 끝나는 그 무언가를 자꾸 던지는구나.
나 혹시 독심술 이런 거 생긴 건 아닐까?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만금의 소유자]대표 Traits : [금력(SS)] [오만(S)]
히든 Traits : [부유감(S-)] [사용자의 눈(SSS)]
응 아니야.
“다 사면 후원 안쪽의 인공 호수로 와라.”
나는 손을 짤랑짤랑 흔들며 케인의 등을 눈으로 떠밀곤 벌써 입맛을 다시는 루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루나도 고생 많았으니까 오늘 좀 즐길까?”
“아… 아니에요. 저는 재미있어서… 좋아요.”
그래도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 있나. 다 웨딩 엔딩 보자고 하는 일인데 피크닉은 제때 같이 보내야지.
“가자, 루나.”
말은 그래도 오늘 소풍 가자니까 신 나는 듯 뺨이 발그레해져 양손으로 귀를 잡고 얼굴에 세수하듯 비비던 루나가 크게 끄덕거린다.
역시 귀여움으론 치사량 급이라던 히로인답다.
내가 포용력 넘치는 누님파만 아니었다면 아찔해졌을 것 같은 파괴력이야 아주.
나는 나도 모르게 엄지를 한번 들어주곤 루나와 함께 말에 올라탔다.
화려한 크루거 성의 뒤편엔 일상적으로 보이는 화원과 온실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들어가면 나무가 우겨지며 샛길이 드러난다.
이젠 제법 승마에 익숙해져 머리칼이 날릴 정도로 빠르게 말을 달려 샛길로 접어드니 한동안 울창한 나무만 눈에 보였다.
내가 모르는 대책이 있겠지만 누가 숨어 살아도 모르겠는데.
낮은 산 하나와 제법 너른 숲, 거기에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까지 있는 크루거 성의 후원… 이걸 후원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
다그닥거리는 말발굽 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멀리서 울리는 새소리 덕에 뭔가 힐링 하는 기분이 든다.
옆을 문득 돌아보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분홍색 머리카락과 하얀 귀를 나풀거리며 말을 타는 루나가 눈에 들어왔다.
‘귀가 저렇게 팔랑거리는데 안 아픈가?’
잠시 뻘한 생각이 스치는 와중에 루나도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좀 친해진 사이라곤 해도 소심하기 그지없는 루나라서 그런가 냉큼 시선을 돌리면서 입을 연다.
“처음에는요… 말을 왜 타는지 모르겠구 그랬는데, 지금은 알 거 같아요.”
“그래? 왜 타는 거 같은데.”
“뛰어서 가면… 중간에 못 조니까요.”
자신의 이론이 틀림없다는 듯 히히 웃는 토끼 소녀의 다리를 보다 다시 눈을 돌렸다.
“루나야……. 보통 사람은 말보다 느리단다.”
내 말에 ‘아니, 세상에 그게 사람이야?’ 하듯 귀가 한번 하늘 높이 쫑긋하는 루나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저렇게 세상 물정 모르니 나중에 노답 파티 굴릴 때도 온갖 바가지를 다 썼지.
일반 엑스트라 NPC로 물건을 구입하면 상점 창에 적힌 가격 그대로 살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노답 파티로만 사면 ‘하지만 당신은 바가지를 써버렸다.’ 뭐 이런 멘트 날려주고 돈 엄청 뜯어가고.
그럼 그 출혈을 메꾸기 위해서 케인이 물약 없이 아슬하게 낮은 던전 돌다가 인성 마모되고.
‘와 진짜 개노답 파티다.’
나는 그때를 회상하다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화면으로 봤을 때도 복창 터지는 줄 알았는데 그걸 실제로 본다? 수명 단축이 뻔하다.
“…설마 빵집에서도 바가지 쓰고 오는 건 아니겠지.”
엄청 넉넉하게 예산을 손에 쥐여주고 보낸 건데.
난 문득 알콩달콩 어쩌고 하고 있을 케인을 떠올리다 촉촉하고 서늘한 바람이 뺨에 스침에 정신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역시 돈이 최고야.”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숨기지 못했다.
무슨 저런 호수를 인공으로 파서 집 뒤에 두지?
애초에 집 뒤뜰이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크기란 게 웃긴 건가.
나는 호수가 잘 보이는 나무 아래에 말을 세워선 자유롭게 풀을 뜯도록 둔 뒤 미리 준비한 두꺼운 담요를 말 안장에 묶은 가방에서 꺼냈다.
“그럼 케인이 올 때까지 우리끼리 놀까?”
주인공 없는 단합회라면 단합회다.
지금은 루나와 나뿐이지만 언젠간 가디아도 레이첼도 다른 히로인들도 전부 모여 하하 호호하는 걸 바라볼 날이 오겠지?
레이첼 외엔 다들 한군데씩 아픔이 있는 아이들이라 소설로 볼 때 일상 파트가 나오면 그게 그렇게 힐링일 수가 없었는데…….
“와… 바람, 시원해요, 도련님…….”
“좀 구경해도 좋아. 케인 오려면 좀 남았을 테니까.”
내 말에 소담스레 배시시 웃던 루나가 끄덕하곤 호숫가로 뛰어간다.
나는 나무 둥치에 등을 기대곤 숨을 골랐다.
앞으로 갈 길도 멀고 해야 할 것도 많지만 사람이 어떻게 늘 채찍질만 하겠어.
‘조급해하지 말자. 따지고 보면 2년 정도 빠르게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고.
사실 마음 한구석으론 누가 한국인 게이머 아니랄까 봐 ‘한국인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지만 지금 나와 같이 있는 건 상태 창만 보이는 게임 속 유닛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걸 잊지 말자.’
나만 조급해서 몰아붙이고 그러지 말자.
‘아직 다들 어린애니까.’
케인이 복수심과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무리해서 달리지 않게 내가 태클을 잘 걸어야지.
“여기서 낚시를 아무도 안 해서 그런가… 뭐야, 저거.”
나는 메이드복 치마를 둘둘 걷고 들어가 발차기만으로 물고기를 밖으로 날려 보내는 루나를 보다가 불을 피워야 하나… 하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니, 무릎까지만 들어갔는데 물고기가 있어?”
“작은 물고기가… 많아요.”
아니, 무릎까지 물이 오는데 물고기를 어떻게 발로 차서 날린 거지?
푸릇한 잔디를 밟고는 잔디가 발가락 사이로 올라와 간지러운 듯 꼼지락거리는 루나의 하얀 발을 흘긋 바라보았다.
보기엔 굳은살도 없는데 토끼족은 다 저런가?
“그래도 물보라에 옷이 좀 젖었네, 루나.”
미리 여행 용품을 좀 사둬서 다행이네.
크루거 반지 대신 다른 아공간 반지를 조작해 부싯돌을 꺼내 근처 잔가지 등을 모아 불을 피웠다.
뭔가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피크닉을 생각했는데 급격하게 정글의 *칙이다.
“물고기도 구워줄까?”
“제가 내장 손질해 올게요, 도련님.”
그리고 오히려 이런 게 더 적성에 맞는 듯 평소보다 생기발랄해진 루나가 풀밭에서 퍼덕거리는 물고기 몇 마리를 들고간다.
“뭐… 나쁘지 않네.”
게다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케인도 오고 있다.
셋이서 사이좋게 물고기 구워 먹고 후식으로 알콩달콩 쿠키인가 먹으면 되겠구만.
‘과연 성공했을까.’
우리 케인이 달라졌어요, 가능?
나는 기대에 차서 점점 커지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흰색이 섞인 검은 말을 타고 온 케인이 한 손으로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리며 내려온다.
“사왔냐?”
“그래.”
“바가지는?”
내 말에 케인의 미간이 살풋이 좁혀지다 내 쪽으로 은화 몇 개를 던지길래 허둥지둥 몇 개는 받고 몇 개는 흘려서 구시렁거리며 주웠다.
“성격 봐라. 성격 봐.”
“넌 귀족 같지도 않고.”
“우리끼리 있으니까 그렇지. 저번에 내가 너 기사단에 꽂아 줄 때 못 봤어? 다들 권력 막 쓰네 하는 눈으로 날 보더만.”
어차피 카이만이 붙여둔 호위 겸 감시는 적당한 기행으로만 볼 테고 말이지.
나는 주워낸 은화를 작은 아공간에 넣으며 살짝 감탄했다.
웬일로 바가지도 안 썼네. 세상에 케인 이 자식 너도 바가지 안 쓰고 물건 살 줄 아는 인간이었구나!
나는 조금 대견하단 눈으로 케인을 바라보았고 그에 케인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도련님. 저 왔어요.”
배를 가르고 나무 꼬챙이까지 끼워 야무지게 해온 루나를 귀 당기기로 칭찬해 준 뒤 모닥불 옆에 일단 꽂아 놓고 담요 위에 앉았다.
“사온 것부터 꺼내 봐.”
알콩달콩이랑 아찔 달콤 구경부터 해보자.
케인은 무언가 잘못 씹은 듯한 얼굴로 맞은 편에 앉아 들고온 바구니에서 하나씩 꺼냈다.
일단 내가 주문한 청포도 타르트 있고 루나가 주문한 당근 케이크에 동글동글한 저게 알콩달콩 사랑의 허니 쿠키인가.
뭔가 검푸른 베리와 빨간 베리로 하트가 그려진 게 아찔하고 달콤한 베리베리 타르트일 테고.
“네건?”
설마 안 사온 건 아니겠지 하는 내 눈초리에 한숨 쉬며 바구니의 바닥에서 애플파이를 꺼내는 케인.
그것에 순간 나는 침음을 흘렸다.
‘케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가 해주셨던 애플파이.’라고 공식 프로필에 적혀 있었지.
으윽, 이런 게 기억 폭행인가. 원작 정주행 좀 작작할걸.
나 혼자 창조 슬픔에 더 괴로워지기 전에 얼른 청포도 타르트 한 조각을 들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나가보니 어때? 밖의 분위기는.”
와삭!
싱싱하고 탱글한 청포도와 크림, 파이지가 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
이거 개 맛있네. 나는 청포도 타르트를 한 조각씩 둘에게 나눠주며 케인을 바라보았다.
“와… 맛있어…….”
“별건 없더군. 다만… 요즘 아인족과 수인의 노예 경매가 자주 열린다고 하더군. 작년보다 평균가가 내려가서 지금 사는 게 이득일 수 있다는 대화를 들었다.”
“흠?”
그에 나는 눈썹을 조금 올리곤 생각에 잠겼다.
‘아인족과 수인족 노예 물량이 늘었다고?’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한데…….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상큼한 타르트를 마지막까지 입에 욱여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