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2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21화(121/373)
드뷔오나가 준 것은 치사하게도 다과회 초대장이다.
‘야비하네, 야비해.’
이게 왜 문제냐 하면, 보통 다과회 같은 모임은 남성 귀족은 거의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뭐 기껏해야 약혼자와 함께 오는 정도?
사실상 다과회에 참석하는 귀족 중 아는 사람이라곤 드미트리와 드뷔오나를 제외하면 남자 여자를 떠나 아무도 없다는 소리.
그러니 나로선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참여하기가 좀 껄끄러운 초대장이었다.
“이건 뭐, 꽝이네.”
내가 초대장을 들고 흔들며 짜증 내는데 부엌 쪽에서 파이얀이 고개를 슥 내민다.
“보스.”
“넌 찜닭 이후로 계속 온다?”
“그야 보스가 보내신 누구 덕에 지금 몸 사리고 있을 때라 아지트 대신 이곳으로 피난 온 거거든?”
말은 잘하지. 나는 날 부른 파이얀에게 왜 불렀냐는 듯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금 내 아이들이랑 통화하다가 들은 건데, 다과회 그거. 사냥제로 바뀐다는 말이 있어.”
“갑자기?”
“찻잎이 습기 차서 못쓰게 되었나 봐.”
엄청 구하기 힘들고 비싼 거라 다과회도 연 건데 막상 그 주인공이 되는 찻잎이 망가져서 홧김에 피라도 봐야 한다는 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참여하면 망신당할 건 뻔하네 거.”
“왜?”
나는 파이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파이얀은 내 트레잇 상태를 모르지 참.
“그런 게 있다.”
별수 없지. 내 망신을 팔아 황족의 정보를 보고 올 시간을 사는 수밖에.
* * *
다과회가 사냥제로 바뀐 게 맞는지 뒤늦게 드뷔오나가 여관으로 하인을 보내 알려줬다.
보통 그런 모임은 자신이 직접 사냥한 동물들로 점수를 따지는 곳이라 코덱스를 꺼낼 생각이 없는 나는 가봐야 사실상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지 알리는 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쪽에서 손해를 벌충해야 한다.
수도로 온 김에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틀을 닦아 놓거나 얻어 두고 가는 게 좋겠지.
특히 게임에서 받을 수 있던 업적은 여기서도 당연히 업적으로 치부될 것이다.
아니라면 레이첼이 굳이 넣지는 않았을 거 같거든.
당장 생각나는 업적은 왕실에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혹은 황족과 결혼하는 것 정도지만.
가끔 나타나는 랜덤 인카운터 이벤트를 떠올리면 황실에 숨은 도플갱어 포션 사용자를 잡거나 수도의 하수도에서 나오는 몬스터나 언데드를 잡거나.
‘그러고 보니 하수도 안쪽에 유적… 있으려나?’
나는 아공간을 열어 이곳에 떨어졌던 초창기에 기록해 둔 던전과 유물에 대해 읽기 시작했다.
게임에서는 잠입형 던전이라 한 번만 감시에 걸려도 바로 데드 엔딩이 떴는데.
여긴 현실이잖아.
그러면 어찌 되는 거지?
왕궁 내부와 이어진 던전이라 바로 참수되는 건가.
일단 언데드나 몬스터가 하수도 안쪽에서 밀려 나오는 건 후반부니까 지금은 뭐 없을 테고.
원래는 비상 탈출용으로 만들어 둔 비밀 통로였을 테니 하수도 안쪽 길만 잘 찾으면 왕궁으로 바로 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왕궁까지 들이닥친 적에게서 도망치는 용도가 아닌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 쓰는 건…….
‘아무래도 알람이나 경계 마법 같은 게 작동하겠지?’
하지만 성소 침입자라는 업적이 꽤 짭짤했던 거 같은데.
“별수 없군.”
황족과 안면 트고 왕궁으로 초대받은 뒤 바깥이 아닌 안쪽에서부터 들어간다.
위치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좀 둘러보면 떠오르겠지.
후반에 메인 파티가 아닌 다른 파티로 왕실 우호도를 극으로 쌓으면 황태자 혹은 황태녀를 안전하게 호위하며 탈출하는 퀘스트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길은 대충 알고.
아주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라면 괜찮을 것이다.
혹 들킨다 해도 제국에 존재하는 초인 같은 경우 말귀가 아예 안 통하는 부류는 아니니.
‘아마도 아마도.’
미묘하게 주먹구구식으로 생각이 돌아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늘 있는 던전이나 유물 같은 물건들뿐.
다른 것들은 한순간의 감정에 따라 얼마든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니까.
대략의 성격을 알고 있어도 내가 예측하는 대로 선택할 리가 없다.
거기에 내가 바꾼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디에서 아예 모르던 것이 튀어나올지 어찌 알겠어.
가디아의 도플갱어 사건만 해도 몰랐던 일인데.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 고민해 봐야 천재 트레잇 달린 사람 구해 닦달해서 나오는 말이 더 쓸모 있겠지.
그런데 그건 안 되잖아? 그러니 그냥 나는 나랑 내 사람들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락이 쏟아진다고?”
<예. 도련님.>
지금 도시 하나짜리 최하급 사이렌과 도시 두세 개짜리 하급 사이렌만 몇몇 유력자들에게 돌린 상황인데.
하긴 그들도 머리가 있다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 줄 알 테니.
<대부분 투자 등을 말하더군요. 그리고 몇몇은 보안 문제는 확실하냐고 물었습니다.>
“그거야 뭐.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세이렌들은 절대로 도청되지 않는다고 진실을 걸고 신의 계약서 쓴다고 하면 되니까.”
거짓말만 안 하면 된다. 세이렌 프로토 타입은 우리가 생산한 게 아니니 상관없다.
<황실 쪽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아, 그 부분 말이야.”
나는 나에게 슬쩍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제로에게 입 모양으로 고맙다 말한 뒤 적당한 온도로 내려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알카이도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황족 있어?”
<황실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보안 등급이 높은 데다 황실에 유리한 정보만 나오는 경향이 짙어 함부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역시 그렇겠지?
나는 블루베리 타르트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리아 바빠?”
<그녀라면 지금 서류 정리를 하고 있을 겁니다.>
별수 없지. 정보가 없으면 캐내는 수밖에. 밥값 할 때가 왔네.
“불러줘, 그럼.”
잠시 타르트와 차를 마시고 있으니 세이렌 너머로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네, 아델리안 님? 저를 여기 두시고 왜 안 오세요? 언제 오세요? 하하하!>
응?
살짝 목소리에 감정이 담긴 것 같은데… 에이, 설마.
그렇게 바빴나.
“아, 조만간 한번 가야지. 그런데 아리아. 뭐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와, 진짜 옆에 있으신 거 같이 들려요. 신기하다. 그런데 뭘 물어보시려고요?>
“황족 중에 좀 괜찮은 사람 없어?”
<…네?>
세이렌 너머 목소리가 떨린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그야… 다들 좋은 분이시겠죠? 앗! 저 급한 서류가 생각나서 가야 될 거 같아요, 아델리안 도련님!>
“아리아 폰 테이트리아.”
내가 나직하게 말하자 순간 세이렌이 잠들기라도 한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들리는 약간의 심호흡 소리.
<언제부터 아셨어요?>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아. 네가 왜 도망쳤는지, 돌아가지 않을 건지 내가 굳이 물을 필요 없는 것처럼.”
아리아가 말해 주는 이들 중에 13황자 샤하드나 아니면 내일 만날 황족이 있다면 쉽겠지만.
아니면 다시 계획을 짜야 하니까.
<…맞아요. 저는 테이트리아의 제27황녀 아리아 폰 테이트리아입니다. 절 강제로 돌려보내실 건가요?>
“아니.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말했잖아. 여행할 자금 정도는 생기는 일이라고. 아리아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미궁 도시 라비린으로 돌아가도 좋아.”
물론 그 이후에 있을 일은 온전히 아리아의 몫일 것이다.
<전… 이곳이 나름 좋아요. 할론 선배님도 잘해 주시고 다른 분들도 친절하시고. 일은. 너무너무! 힘들지만!>
…조만간 회계 같은 트레잇을 가진 이를 더 찾아 보내야겠네.
<자매들은 대부분 상냥해요.>
“1황녀도?”
내가 웃으며 말하니 아리아가 딸꾹질한다.
<그, 세리아 언니는 다들 아시다시피…….>
“내가 네 말을 믿을 수 있게 제대로 말해야 할 거야.”
<…아델리안 님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 그에 나는 조금 달래듯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내가 뭐 크게 나쁜 짓이라도 하겠어? 제국의 안녕에 해라도 끼치겠어? 안 그래?”
<그건… 그렇죠?>
나에게 정보를 단순하게 팔아넘기는 느낌이 아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 만든 세이렌이 워낙 큰 파이라 황실과도 적당히 나눠야 할 거 같아서 그러는데. 그나마 좋은 사람과 손을 잡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런 거라면 사실 1황녀인 세리아 언니가 제일 나아요. 가장 세력이 강하고 자신의 사람에겐 잘하니까.>
물론 저 말이 틀린 게 아니다. 단순하게 나도 장사만 생각했다면 1황녀 세리아와 손을 잡았겠지만.
“아리아. 나에게 이럴 거야?”
직업 알선까지 해준 나에게. 어?
<…진짜 저에게 왜 이래요. 저 정말 무섭단 말이에요.>
“큰 거 안 바랄 테니 1황녀를 제외한 후보를 말해.”
나는 아리아가 말해 주는 세 명을 천천히 메모지에 적었다.
어차피 이 중에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꾸며낸 이가 없진 않겠지만.
최소한의 명단도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
* * *
“오징어볶음.”
먹고 싶다.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며 고개를 흔드니 리프가 내 방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던지 문을 열고 다가온다.
―관리자님. 오징어볶음 말씀하셨습니까.
“아니, 구이.”
여기서 무슨 오징어볶음이냐. 나와봐야 토마토나 바질을 넣고 볶는 식이지, 내가 원하는 오징어볶음은 아닐 테니 적당히 메뉴를 바꾼 후 일어났다.
―오늘 돌아오시면 해두겠습니다.
“그래. 다녀올게.”
나는 리프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낮은 한숨을 쉬었다.
‘아 가기 싫다.’
이게 부유감이 있다 해도 사람들의 멸시는 대미지가 좀 박힌단 말이지.
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했던 라베스에서 케인과 외출했을 때 절절히 느껴보지 않았나.
그래도 별수 없지.
“케인이랑 제로는 방도를 좀 생각해 봤고?”
“아닌 거 같던데요, 도련님.”
내가 씻고 나와 루나가 건네주는 옷을 입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거실로 나오니 케인과 제로가 나를 바라본다.
그래도 명색이 귀족인데 호위 하나나 둘 정도는 데리고 가야 맞으니까.
문제는 루나 같은 경우 수인족이고 리프는 언어 소통이, 레이첼은 언제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폭탄이라서 불가.
남은 건 케인과 제로인데.
‘얼굴이 너무 튀어.’
이게 문제다. 그렇다고 배지를 착용하면 누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고.
“저 지나가는 사람 머리카락이라도 좀 얻어 오겠습니다, 아델리안 님.”
“기각이다, 인마.”
그런 건 케인의 외모를 업그레이드할 때 외에는 안 쓰는 게 좋지.
“남의 눈에 안 띄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황족도 있는데 은신할 생각 하지 말고.”
역시 그 아티팩트를 써야 하나.
발부스의 아티팩트 중 외형을 랜덤하게 바꿔 주는 아티팩트가 있다.
다만 이 물건은 말 그대로 랜덤 성형이다 보니 혹시 제로나 케인이 오늘 무슨 사고라도 치거나 나중에 그때 본 호위 데려오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서 후순위로 미뤄둔 거지만.
“별수 없네.”
나는 아공간을 열어 5×5 큐브처럼 생긴 아티팩트를 꺼냈다.
회색으로 변한 큐브에 마정석을 하나 가져다 대니 마정석이 스륵 가루로 변하며 스며들고 이내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케인 먼저.”
내가 케인에게 큐브를 던지니 케인이 한 손으로 큐브를 드르륵 돌렸다. 그리고 큐브 위에 뜨는 15초라는 시간.
“야, 그거 성실하게……!”
한 번 막 돌리더니 더는 손대지 않는 케인. 그렇게 15초가 지나니 6면 전부 맞춘 게 없는 케인의 경우 정말…….
“어이구야.”
“와아.”
“선배님, 얼굴 대단하십니다.”
얼굴에 칼자국도 난 데다 턱은 부정 교합. 피부는 두꺼비 같고…….
더는 설명을 생략한다.
레이첼이 지금 늦잠 잔다고 안 나와서 다행이지, 아니면 웃는 소리로 귀가 터졌겠지.
실제로 루나는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다음은 제로.”
“예.”
한 번으로는 충전시킨 마정석의 마나를 전부 쓰지 않았는지 아직도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큐브를 제로에게 던졌다.
다시 큐브 위에 뜨는 15초.
드륵― 다르륵―
제로의 손이 몇 번 움직이더니 15초 안에 두 면의 큐브를 맞춘다.
결과는 적당히 못생긴 얼굴.
이거 난이도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다녀오세요, 도련님.”
내가 정말 못생긴 케인과 적당히 못생긴 제로를 바라보다가 푸하 웃어버리곤 루나가 주는 로브를 입었다.
“다녀올게.”
이제 가자. 사냥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