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2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23화(123/373)
“악!”
“아이쿠. 미안하게 되었네.”
“꺄악!”
“이런 옷이 찢어졌네. 드레스 샵에 말해 둘 테니 한 벌 맞추도록 해.”
지나가는 곳마다 소란이다.
사브리나는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페리아 황녀에게 속삭였다.
“짜증 나……. 일부러 저러는 거야, 뭐야?”
“일부러는 아닐걸.”
사브리나의 말에 페이아가 작게 대답했다. 스승이 뛰어난 사람이었을까.
분명 활을 쏘기 직전까지의 자세나 모양새는 그리 나쁘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활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저렇게 쏘는 것도 어쩌면 재능 아닐까?
무작위 공격이나 뭐 그런 트레잇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이 들 만큼 포즈에 비해서 말도 안 되는 모습이다.
“얼굴은 좀 잘 생겼지만 그게 다야. 내 사냥제를 망치고 있잖아, 지금. 이게 다 페이아를 위한 거였는데!”
“난… 괜찮아.”
사브리나가 발까지 구르며 짜증을 내자 페이아 황녀가 손을 잡고 도닥였다.
낯가림이 심해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저절로 표정이 굳고 말수가 적어지는 자신을 위해 사브리나가 계속해서 파티나 사교 모임을 주최하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꼭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할까?
어차피 자신이 9황녀이긴 하나 의미가 없다는 걸 저들은 모르고 있으니 별수 없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러 저러는 거야. 어떻게 바닥이나 나무에 박히는 화살보다 사람 엉덩이에 박히는 화살이 더 많아? 포션을 발라주면 뭐해. 옷에 구멍이 나는데!”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페이아가 자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짙은 사파이어색 눈으로 아델리안을 바라보았다.
트레잇으로 등록될 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종종 느껴지는 육감.
그것에 따르자면 분명 저자는 그리 악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그를 따르는 호위기사,
그 둘이 문제지.
자신의 미약하디 미약한, 육감일지 혹은 다른 무언가일지.
트레잇으로 확실하게 튀어나올 만큼 강하지는 않은 그것은 계속해서 저 두 명의 호위 기사에게 발톱을 세웠다.
‘한 명은 너무나도 차갑고.’
또 한 명은 너무나도 끔찍하다.
외모가 가장 추악한 이는 그 얼굴이 무색할 만큼 눈에 무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타인에 대한 기대도 신뢰도 없는 차가움.
그리고 다른 이는…….
‘무서워.’
모두 느끼지 못하는 걸까. 페이아 자신만 지금 느끼는 걸까. 인간의 겉가죽으로 숨긴 그 아래에서 꿈틀대는 원초적인 공포를.
평온해 보이는 한 겹을 들어 올린 순간 저것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데.
‘그런데 호위로 어떻게 데리고 다니지?’
그래서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다고 낯가림이 심한 페이아가 먼저 다가갈 일은 없었지만.
‘구경하는 것 정도야.’
“거기! 아델리안 경, 그만두지 못해요?”
“난 아직 기사 작위 안 받았는데?”
“이익! 원래 체면치레로 그렇게 해드리는 거지, 나도 알거든요?”
페이아는 말 위에서 아르릉거리는 사브리나를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오랜 친구가 저렇게까지 크게 짜증 내는 건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이었으니까.
“그냥 1등 상품 드릴 테니까 숲에서 나가시라고요!”
“아니, 사람 차별해? 같이 놀자고 모인 곳에서 지금 날 따돌리겠단 소리야? 사브리나 양,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이이익!”
“푸흐…….”
어쩐지 아델리안과 사브리나가 아옹다옹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마지막으로 딱 한 마리만 잡고 갈게, 그럼.”
팡!
페이아가 자신의 입가를 가리고 살짝 웃는데 순간 화살이 페이아의 목덜미를 스쳐 머리카락 몇 가닥 끓어내며 날아갔다.
“아, 아악!”
그리고 뒤돌아보니 모래색 같은 머리칼을 한 소녀의 이마 정 중앙에 꽂힐 뻔한 화살을 아델리안이 데려온 호위 중 하나가 그 직전에 낚아챈 모양.
페이아는 어쩐지 서늘해진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 * *
자작가의 세 번째 딸이라는 지극히 무난한 지위.
그리 모난 구석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세울 것도 없는 외모.
금발이지만 푸석해 모래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이 유일한 고민이었던 지극히 평범한 소녀.
부모의 성화로 들어간 아카데미의 수업은 지루했고 의욕 또한 없었으니 기숙사에 살지 않는 그녀는 아카데미가 끝난 후 친구들과 수도의 빵집을 돌아다니거나 종종 있는 사교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요즘의 낙이었다.
오늘도 그런 평범한 날.
백작가의 사브리나 양이 다과회 대신 사냥제로 바꾼, 딱 그 정도의 해프닝이 섞인 사교 모임.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건 뭐지?
죽음의 직전에는 모든 것이 느려 보인다고 했던가.
자신의 얼굴로 똑바로 날아오는 저 화살.
‘죽는다?’
분명 몸을 숙이거나 피해야 하는데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
얼굴 바로 앞까지 날아온 화살에 아득해지는 정신.
그것이 이마에 박히기 바로 직전!
극심한 공포 때문일까 속이 울렁거린다.
소녀가 사지를 벌벌 떨며 몸을 웅크리고 토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비틀리는 고통, 내장이 쥐어짜이는 통증.
“아으아아아…….”
그리고 뒤엉키는 기억.
자작가 셋째 딸로서 누렸던 그 호사가 아닌.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으며 살았던 기억과 빵을 맛별로 먹어보기 위해 전부 시켜 한입씩만 먹고 버렸던 기억이 엉킨다.
“아. 아 아아아!”
웩! 웨엑!
토하는 소리 외에는 비명 소리도 수군거림도 없는 적막.
“왜… 도와… 도와줘…….”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무서 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 무서워.
이 기억들 대체 뭐야?
엉망으로 기억이 엉킨다. 빵 하나를 훔쳐 달아나다 잡혀 피를 토할 만큼 배가 걷어차이고 머리가 짓밟히고 조롱당하며 찌꺼기를 몸 위에 붓고.
그렇게 오물 덩어리처럼 주린 배를 안고 골목으로 숨어들어 갔다가 끌려가 이상한 약을 먹고.
아니야, 나는. 오늘 아침에도 부드러운 빵에 사과잼과 주스를 같이 마시고.
자작가의 영애. 귀족의 핏줄.
그게 나… 나는. 내 이름은.
“내, 이름이… 생각이 안 나…….”
샤카… 이건 내 이름이 아니야. 이건 그 더러운 계집의 이름인데 왜 어째서.
온몸을 뒤트는 통증에 바닥에서 경련했다. 눈앞에 흔들리던 모래색 머리카락이 어느새 빛바랜 밤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 * *
맹세하건대 난 절대 일부러 사람의 엉덩이를 노리진 않았다.
그러다 잘못해서 살 많은 엉덩이가 아닌 다른 엄한 곳에 맞아서 일이 커지느니 땅바닥이나 나무 둥치에 박히는 게 백배 천배는 나으니까.
‘제일 좋은 건 토끼나 다른 걸 맞춰 점수를 얻는 거지만.’
탑!
“으끄윽!”
“아. 미안?”
난 분명히 사람 없는 곳으로 쐈는데 왜? 어째서?
나는 눈에서 불을 뿜으려는 사내에게 냉큼 포션을 쥐여주었다.
“아무리 봐도 진짜인데…….”
“정말 못하는 게 맞다.”
뒤에서 제로와 케인이 속닥거린다. 제로가 보기에도 이게 말이 안 되나 보지?
너도 인마, 이 몸에 들어와서 이 팔로 시위 당겨 보면 알 거다. 이게 분명 잘 날아갈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그래도 내가 삽질하며 사람들의 눈총을 한계까지 받아낸 덕에 앞으로 할 일은 의심을 덜 살 것이다.
나중에 꼬투리 잡으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그게 중요하진 않게 될 테니.’
내가 목표를 찾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을 모는데 누군가가 꽃 화관 쓴 말을 이쪽으로 몰고 다가왔다.
“거기! 아델리안 경, 그만두지 못해요?”
아델리안 경은 무슨. 암묵적인 지위야 대공의 자식이니 높은 축에 속하지만 실제로 따지고 들면 작위를 받은 적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나는 사브리나의 말에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난 아직 기사 작위 안 받았는데?”
“이익! 원래 체면치레로 그렇게 해드리는 거지, 나도 알거든요?”
그러고 보니 사브리나의 머리는 그 흔히 악역 영애 머리라고 불리는 드릴머리네. 신기하구만.
“그냥 1등 상품 드릴 테니까 숲에서 나가시라고요!”
“아니, 사람 차별해? 같이 놀자고 모인 곳에서 지금 날 따돌리겠단 소리야? 사브리나 양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내가 정말 상처받았다는 것처럼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리며 고개를 모로 떨구니 사브리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어 낸다.
아, 괴롭히면 반응이 재미있는 아이네.
“이이익!”
하지만 더 놀리면 정말 나쁜 어른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마침 악신교단의 꼭두각시. 샤카가 말에서 내려 나무 둥치에 기대선다.
“마지막으로 딱 한 마리만 잡고 갈게, 그럼.”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에 약간 힘을 실었다.
케인과 미리 나눈 신호.
그대로 빠르게 화살을 시위에 겨눠 샤카 쪽으로 날렸고 그 화살은 케인이 마나로 인도해 그대로 샤카의 이마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샤카의 눈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공포에 질린 그 순간.
죽음을 느낀 바로 그 순간 케인이 빠르게 움직여 샤카의 머리에 화살이 박히기 전에 잡아냈다.
“무, 무슨!”
이 모든 것이 눈 한 번 깜짝할 시간 동안 이루어졌고 뒤늦게 아이들을 따라온 호위나 다른 아이들이 나에게 무어라 항의하려던 순간.
“우욱, 웨엑!”
먹은 것들을 전부 토해 내며 자작가의 영애가. 아니, 악신교단의 꼭두각시 샤카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몸이 비틀릴수록 조금씩 변해 가는 외형에 급하게 뛰어오던 아이들이 추춤,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난다.
“다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무언가 이상합니다.”
케인 너 인마. 연기는 좀 못한다?
아니면 그 녀석 성격에 지금 대충하고 있거나.
케인이 뭔가 귀찮은 것 같은 손길로 물러나라는 듯 허공을 젓는 동안에도 모래색 같던 금발이 점점 다른 색으로 물들고 뽀얗고 상처 하나 없던 피부가 거칠어진다.
적당히 보기 좋게 살이 붙어 있던 팔도 갑자기 가늘어지며 관리받아 매끈하던 손톱도 끝이 갈라지고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거 내가 아니야.”
샤카는 점점 변하는 제 몸과 손을 보다가 비명을 질렀고 눈앞에서 한 명의 사람이 또 다른 모습으로 뒤틀리며 돌아오는 모습에 다른 아이들은 차가운 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창백해졌다.
“이게… 뭐야?”
“분명 자작가의… 걔 아니었어?”
“변신 마법이나 뭐 그런 거야?”
“그렇겠지! 당연하게 그런 거 외에 더 있어?”
아이들이 점차 수군거리며 손끝을 떨었다. 단순하게 외형을 바꾸는 마법을 쓰고 몰래 잠입한 거라면 괜찮다는 듯, 상관없다는 듯이.
그러다 아까 전부터 샤카와 붙어 빵집 이야기를 하고 서로 귓속말을 하며 키득거리던 여자아이가 몸을 벌벌 떨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까까지 나랑만 아는 비밀 이야기했단 말이야!”
“나, 나랑도!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구!”
꺄아악.
순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비명 소리가 터졌다.
방금까지 웃으며 대화하던 친구가 사실은 완전히 타인이었다는 공포.
내 믿음과 우정이 처음부터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두려움.
“어딜, 어딜 가요! 위험하지 않아. 내가 확인할 테니!”
마치 한낮에 귀신이라도 나온 것처럼 치마를 들고, 급하게 말에 올라 도망치는 모습에 사브리나가 상황을 정리하러 시도했지만 될 리가 있나.
“뭐야. 난 또 큰일날 뻔했나 했더니. 누군가가 숨어들어온 걸 찾은 건가?”
“아니야! 나, 나는 자작가의 영애란 말이야!”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바닥에서 헐떡거리던 샤카가 소리쳤다. 그에 나는 어이쿠 무서워라 하는 느낌으로 물러나며 사브리나의 호위들에게 턱짓했다.
“신원 파악이 되지 않은 침입자인데. 안 데려가나?”
“그, 그래요. 일단 데려가서 확인하죠. 그리고 아델리안 당신. 이 일은 나중에 따로 대화해요, 우리.”
내 말에 사브리나와 그녀의 호위가 버둥거리는 샤카를 끌고 간다.
일단은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파악하고 나면 참고인으로 날 부를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괜찮을 터.
이번 일과 저번의 가디아의 사건으로 도플갱어 포션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할 테고 그 포션을 푸는 방법도 어림짐작해서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과거에는 이걸 몰라서.’
지체 높은 황족이 바뀌고 감히 황족에게 누군가가 죽음 직전의 공포나 고통을 줄 일은 전쟁이 한창이던 후반까지 없었으니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이 꼬이고 정보가 새어 나갔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이제는 도플갱어 포션으로 입는 피해를 아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거다.
내가 천천히 토마의 고삐를 잡고 돌아가려 말머리를 돌리는데 페이아 황녀가 자신의 백마를 타고 나에게 다가왔다.
“황녀님도 돌아가셔야지. 친구들도 다 갔는데.”
내가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페이아 황녀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당신… 일부러 그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