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2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26화(126/373)
“짜증 나.”
베르뷔트가 손가락으로 오리처럼 튀어나온 자신의 입술을 꾹 누르며 투덜거렸다.
이번 일이 실패한 바람에 가디아와는 멀어져 버린 것이 제일 아쉬운 일이었기에.
이제는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친한 척 다시 달라붙어도 차갑게 밀치고 지나간다.
그 모습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가디아의 평판은 더더욱 떨어지는 상황.
‘그렇지만 어차피 누가 수군거리는 건 신경 안 쓰겠단 거지?’
그 바람에 베르뷔트 자신의 이미지가 더욱 가녀리고 지켜줘야 할 후배로 굳어져 가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무시당하는 것이 즐거울 리 없는 법.
더군다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베르뷔트로선 더더욱 신경이 거슬렸다.
“나중에 우리 교가 더 이상 힘을 숨길 필요가 없을 때 납치할 사람 중에 가디아의 이름도 올려놔. 후회하게 만들어 줄 겸 트레잇을 쥐어짤 거야.”
그리고 머저리 아델리안의 콜렉션들도.
“으읏, 갖고 싶어!”
아름답고 강하며 희귀한 것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베르뷔트 자신이 가질 것이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들이면 곤란해.
흔하지 않은 것들이 좋아.
“다시 한번 만나보시는 건 어때요?”
베르뷔트의 화장품을 하나하나 닦고 있던 소녀의 말에 베르뷔트가 미간을 좁혔다.
“그 망나니를 또?”
저번의 가면무도회가 또 생각나 기분이 나빠지는 듯 가라앉는 목소리에 소녀가 급하게 덧붙였다.
“저번 무도회는 아무래도 베르뷔트 님의 진가를 보여주기 힘들었으니까요.”
소녀의 말에 베르뷔트가 흐응 하며 몸을 뒤척였다.
“하긴… 표정이나 고개의 각도, 목소리의 높낮이 이런 게 중요하긴 해. 그렇지만 어쩐다…….”
다시 직접 아델리안을 노릴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나중에 그를 죽이고 그가 모아둔 이들을 꿀꺽만 해도 될 거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던 베르뷔트의 뇌리에 순간 그날 아델리안이 건넨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끈질긴 사람은 남녀노소 매력 없는 법이거든?”
“후, 후후. 맞아. 나중에 교단이 일어설 때 그를 납치해서 고문하고 죽이는 건 너무 쉽잖아. 그렇지?”
그때 느낀 분노와 모멸감.
분노로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길게 입꼬리를 올렸다.
몸뿐만이 아닌 마음까지도 부숴야 재미있지 않겠어?
베르뷔트가 침대 밖으로 손을 뻗자 베르뷔트의 시종 대신 시중을 들던 아카데미의 학생이 손거울을 쥐여주었다.
그 거울로 베르뷔트는 무섭게 웃는 얼굴을 확인한 뒤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이번엔 순진한 모습으로 배시시 웃었다.
“내 손안에 심장을 직접 빼서 올려줄 만큼 길들여보지 뭐.”
어차피 그 아델리안이란 멍청이는 하찮은 트레잇으로 가족에게서도 가문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해 그 욕구로 망나니짓을 하는 거겠지. 뻔하다.
그 인정 욕구와 더불어 수컷의 보호 본능과 과시욕 등을 살살 긁으며 안달이 나게 하면 쉽지 않겠어?
나만 널 이해한다. 너는 쓸모없지 않아. 이런 달콤한 소리를 속삭이면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제일 클래식하지.”
클래식하다는 건 그만큼 잘 통했기에 널리 쓰였단 소리고.
“약간의 술이 들어가야 더 쉬울 테고.”
침대 위에서 베르뷔트가 몸을 돌려 엎드린 뒤 다리를 까닥거렸다.
“교단이 회유한 이들 중 적당한 귀족을 골라 초대장을 보내.”
무난한 술자리가 좋겠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베르뷔트가 거울 속 자신에게 미소를 지었다.
* * *
“사람이 언제 가장 신을 찾는다고 생각합니까.”
“힘…들 때요?”
“맞아요. 힘들 때요. 그때 급하게 신을 찾은 다음 필요 없으면 내팽개칩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인간족이건 아인족이건 결국에는 나약한 한 생명체라는 방증일 뿐이니까.
“그럼 신을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어디인지 아십니까?”
대신관의 물음에 성녀 에리엘이 그의 손을 계속 곁눈질하며 입을 열었다.
“신전, 신전 아닐까요?”
“틀렸습니다.”
틀렸다는 말에 성녀 에리엘이 천천히 소매를 걷었고 얇디얇은 회초리가 허공을 가르고 에리엘의 팔을 한 번 휘감듯 때린다.
“도박하는 곳입니다.”
가진 무기를 요정에게 강화하려 할 때 좋은 강화 효과가 붙길 바라며. 푼돈으로 랜덤하게 아티팩트를 뽑을 수 있는 곳에서 좋은 아티팩트를 뽑고 싶을 때.
신전도 마찬가지.
성년의 날 때 가장 많이 신을 찾는다.
인생 최대의 도박 날이니까. 좋은 트레잇을 위한 기도로 신전이 가득 차버리지.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본성이 튀어나오죠. 성녀 에리엘, 그대가 지금 가르침을 받기 싫어 어떻게든 내 눈치를 보며 머리를 굴리듯이 말이에요.”
겉모습만큼 사람 좋게 생긴 중년의 대신관이 허허롭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델리안 공자에게 초대장을 보낼 겁니다. 보기에는 친분을 나누며 가볍게 게임을 즐기는 곳이겠지만. 그곳에서 성녀 아리엘,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아주 약간만, 그 기적들로 그를 미혹게 하세요.
“신이 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하세요.”
당신이 그의 신이 되는 것도 좋겠지.
대신관이 성녀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리엘이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자료만 보면 해적질에 맛 들리기 딱 좋은 놈인데?”
돈과 술, 여자를 밝히고 강한 자에게는 약하며 약한 자에겐 강한 데다 툭하면 하녀에게 손찌검하고 화풀이로 물건을 던져 대공가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수인족을 메이드로 넣었을 정도.
“그래도 누군가를 죽였단 소문은 없는 걸 보면 겁쟁이인 게 분명해.”
비열하고 졸렬하며 자신보다 못한 것들에게만 강한 야비한 녀석.
아르만이 서류를 톡톡 치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런 녀석이 그 카이만 가문의 단 둘뿐인 후계자란 말이지?”
거기에 세이렌이라는 큰 이권까지 손에 쥐었고?
“남쪽에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야.”
남해 군도에서는 무엇보다도 강인함을 최고로 치니까. 하루에도 수 번은 바뀌는 날씨의 변덕을 이기고 배를 몰고 무거운 그물을 당기고 해양 몬스터들과 싸워가면서.
해적을 밀어내고 인어족들과 눈치 싸움에 다른 나라의 해군과도 으르렁거려야 하지.
원래 거친 곳일수록 규율이 강한 법.
자신보다 못한 것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이가 없진 않겠으나 이렇게 소문이 자자하게 돌 정도로 머저리 짓을 하는 건 덜떨어진 해적들이나 하는 짓인데.
“나 그냥 눈 딱 감고 여장이나 하면 안 될까?”
그 가디아가 더 말이 잘 통할 것 같은데.
아르만의 우는 소리에 그의 부관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래서 수도에 오기 싫었는데.”
“별수 있습니까.”
“하긴 뭐라도 하나 들고 가야 대단하신 남부 제독께서 좋아하겠지?”
아르만이 양팔을 소파 뒤로 걸어 넘기며 고개마저도 뒤로 제쳤다.
“뭐, 그런 망나니랑 이권 운운하려면 사업적 동료보다는 같은 쓰레기로 다가가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그런 녀석들은 미래의 일보다 당장의 재미에 목숨을 거니까.
“나도 망나니나 하지 뭐. 초대장 보내. 영 소문 안 좋은 황족이나 귀족들도 같이.”
쓰레기는 쓰레기들끼리 놀아야지 하며 아르만이 씩 웃었다.
“가장 자극적인 건 피가 튀는 폭력이겠지.”
투기장을 열어.
아르만의 말에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 옷은 어때?”
아까 옷이랑 색만 다른 무투복 아니냐고.
“후우, 건틀릿은 벗는 게 낫겠지? 중간에 무언가 없는 접촉이 더 즐겁겠지?”
맨손으로 누굴 때리고 싶다는 말을 너무 즐겁게 하는 거 아닌가.
나에게 온 초대장 중 레이첼과 동행할 투기장 모임을 보여주니 벌써부터 신났다.
하긴, 접경지에서 이곳으로 온 뒤 제대로 된 싸움은 없었으니.
‘차라리 팀을 나눠서…….’
수도에서 제약이 큰 루나와 리프, 레이첼을 한팀으로.
‘으음.’
케인은 강하니까 솔직히 어디든 막 보낼 수 있는 데다 접경지에서 잠시 갈라진 것은 확실하게 합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스쿼드를 나누기 좀 그렇지.
애초에 지금 나누면 한 스쿼드는 굉장히 멀리 가야 하는데 아무리 세이렌이 있다 하더라도.
‘교단이 난입하면 곤란하니까.’
나는 깔끔하게 포기하고는 건성으로 레이첼에게 호응하며 책을 읽는 리프와 제로와 함께 쿠키를 만드는 루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악덕 사업주도 아니고 애초에 효율만 생각했으면 여기 없지.
“나도 도와줄까?”
“머리끈도 보고 가!”
나는 레이첼의 등쌀을 피해 부엌으로 가다 순간 걸음을 멈췄다.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앉아만 계십시오.”
“도련님. 조금만 있으면 금방 완성돼요.”
아니, 이제 반죽하잖아.
둘 다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면 저거는 누가 봐도.
“방해하지 말라잖아? 어? 내 머리끈이나 고르자.”
어쩔 수 없이 난 질질 끌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 너무하네. 내가 반죽하면 과자가 터지기라도 하나.
“오러 쓰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지, 알지.”
나는 섀도복싱처럼 허공에 주먹을 슉슉 날리는 레이첼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질문을 내뱉었다.
“그런데 왜 좋아?”
“뭐가?”
“주먹질하는 것 말이야.”
원작이건 이노센트사가에서건 그 이유는 다만 이번 유희의 컨셉이니까 정도로 다들 추측했지만, 정작 레이첼의 입에서 그렇게 명확한 이유가 나온 건 아니었다.
“마법 안 쓰면 불편하지 않아?”
정 급하면 스크롤로 때운다고 하지만. 애초에 제약이 너무 크다.
오러도 몸 밖으로 날리는 식으로는 쓰지 않고 두르는 행위까지가 마지노선이니.
그러니 레이첼이 스스로에게 건 제약은 마나 및 오러를 절대 자신의 신체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외부 방출하지 않는다는 것에 가까웠다.
그게 말로 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제법 큰 제약이란 말이지.
“그게 왜 알고 싶어?”
“불편해 보이니까.”
내 말에 레이첼의 얼굴이 조금 차갑게 굳었다.
아주 찰나 스쳐 간 표정.
금세 다시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의자가 아닌 테이블에 걸터앉아 날 내려본다.
“뭔가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생기면 그냥 다 때려 부수고 싶지 않아?”
“네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어?”
“헹, 말이 그렇단 거지.”
으쓱하고는 재미없어졌다는 듯 들고나온 옷과 물건을 들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의심스러워.’
그렇다고 강제로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한댔지, 그게 내 말에 절대복종한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나는 문이 닫힌 레이첼의 방을 보다가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마법을 쓸 수 없다.
드래곤 로드이나 나중에 난세로 드래곤족까지 멸망각 떴을 때도 돕지 않았다.
드래곤으로 변신한 모습은 원작이건 이노센트 사가 때건 마왕전 때 외엔 나오지 않는다.
챠르륵.
나는 습관처럼 크루거의 반지를 돌렸다.
‘염두에는 둬야겠어.’
몇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맴돈다.
하지만 임의적 추론으로 빠질 수 있으니 함부로 확정해서는 안 되지.
전부 심증일 뿐. 물증이나 레이첼의 확답은 없으니까.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둘 것은 우리 모두가 위험에 빠졌을 때 레이첼이 드래곤으로 변한다거나 갑자기 마법을 쓰는 그런 장면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
‘물론 크게 기대도 안 했지만.’
적당히 안 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과 절대로 하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니까.
“뭘 고민하지.”
“뭐 이것저것? 예를 들면 세 개의 모임을 전부 참여하느냐 마느냐.”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케인이 다가와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일 좋은 건 셋 다 참석하는 건데.”
분명 함정이 있을 테니까. 셋 중 하나. 혹은 셋 전부에.
“그 함정이 우리보다 강할까.”
“그렇진 않을걸. 나를 아무래도 얕보고 있을 테니.”
내가 망신당하며 저번 사냥제에 참석까지 했으니 더더욱.
내 말에 그럼 뭐가 걱정이냐는 듯 케인이 바라보다 슥 지나간다.
다만 일이 커지면 우리가 너무 빠르게 수면 위로 부상해 버리는 게 문제인데.
그래. 뭐 미리 사서 걱정하는 걸지도 모르지.
나는 아공간에서 깃펜을 꺼내 세 장의 초대장 전부에 참석한다고 체크한 뒤 마나의 불을 일으키는 아티팩트에 넣고 태웠다.
이러면 초대장에 걸린 마법으로 참석 여부가 전달되니까.
―관리자님. 쿠키 다 구워졌습니다.
“그래? 맛이나 볼까?”
마침 쿠키도 다 되었겠다. 나는 레이첼을 부르며 쿠키가 산더미처럼 쌓인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