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3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32화(132/373)
“나 어떡하냐, 진짜. 하… 너무 떨리는데. 루나, 한마디 해봐. 어?”
레이첼이 안절부절못하며 거실을 정신 사납게 돌아다닌다.
후하후하 심호흡도 하고 열이라도 난 것처럼 얼굴도 살짝 상기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레이첼을 루나가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영혼 없이 웃었다.
“적당히 하구 앉아요. 정신 사나워.”
“그래!”
“주먹질하는 게 그렇게 좋구?”
“응!”
“왜인지 이해는 가지만…….”
아니, 이해는 왜 가는데.
루나가 바싹 마른 자신의 옷을 각 잡아 개며 조곤조곤 하는 말에 레이첼이 본인의 옷을 대충 둘둘 말며 히죽 웃는다.
나는 소파에 기대앉아 있다가 뭔가 각자 자신의 빨래를 개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저 목가적인 풍경과는 좀 이질적인 대화 내용에 이마를 짚었다.
“오늘 밤!”
사냥에 나선다.
아, 이게 아니지.
“신나게 놀다 올 거야!”
레이첼이 어퍼컷이라도 하듯 한 손을 높이 들어 올려 흔드는 걸 보며 나는 허허롭게 웃었다.
“누가 보면 어디 좋은 데 데려가는 줄 알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델리안 님.”
결국 못 참고 내가 한마디 하자 제로가 내 옆에 앉아서 주스를 마시다가 맞장구친다.
“레이첼에겐 좋은 곳이긴 하지.”
거기에 케인도 한마디 얹는 걸 보니 우리 셋이 같은 마음이구나.
신나게 주먹질할 생각으로 환하게 웃는 레이첼에게 딴지 걸고 싶은 그런 다정한 마음.
“후후, 그럼그럼. 나에게 아주 좋은 곳이지. 캬캬, 부럽지?”
하지만 레이첼에게는 지금 통하지 않는 듯 평소라면 케인이 한마디 던졌다고 바로 덤볐을 텐데 아주 아량이 태평양이나 다름없다.
그에 나와 제로는 서로 눈을 마주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케인은 나와 제로가 앉은 소파의 팔걸이에 앉아 낮게 한숨 쉬더니 날 내려보며 입을 열었다.
“호위는 제로와 내가 중점으로 하겠다.”
“그래. 레이첼 믿고 있다간 백골만 남을 거 같지?”
“백골이라도 남기면 다행인 거 아닙니까, 아델리안 님.”
분명 명목상 레이첼은 내 호위로 투기장 모임에 참가하는 건데 눈치를 보아하니 내 경호고 나발이고 쌈박질한다고 바쁠 모양.
그래, 내 목숨 내가 챙겨야지.
나는 천으로 아이기스를 뽀득뽀득 닦았다.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관리자님.
“없을 리가. 혹시 교단 쪽에서 이중으로 함정을 깐 것일 수도 있으니 리프도 도와주면 좋겠는데.”
―당연한 말씀입니다.
“리프와 루나는 투기장 근처에서 대기해 줘. 제로와 케인은 능력이 닿는 만큼 나를 따라 들어와. 그리고 레이첼은…….”
“큭, 크크큭.”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눈에 광기가 스미기 시작한 레이첼을 보며 내가 혀를 찼다.
“…사고만 치지 말자.”
“걱정 마라고! 나 못 믿어?”
응, 못 믿어.
리프에게 준 양산형 세이렌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오늘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질 투기장에 대비해 조금 휴식이나 취할까 싶어 소파에서 일어난 순간 문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린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분명 선배가 둘, 후배가 둘 있는 제로인데 실질적 막내가 된 것인지 제로가 냉큼 일어나 문으로 다가간다.
“오랜만에 내기?”
“도플갱어는 아닐 거 같구.”
―호흡을 보아하니 일반인입니다.
“그렇지, 리프?”
볼 때마다 신기한데, 루나와 리프는 어떻게 대화가 되고 있는 걸까.
잠시 둘을 눈짓하다가 천천히 열리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옷을 잘 차려입은 풍채 좋은 중년 사내가 자신의 콧수염을 둥글게 말며 서 있었다.
“카이만 진원 크루거 대공의 영식,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는 이리나와 테이트리아 제1황녀 되시는 세리아 폰 테이트리아 님께서 내리는 말씀을 받으시오.”
아니, 지금 갑자기?
* * *
약간 폭풍이 휘몰아친 거 같네.
갑자기 제국의 1황녀가 사람을 보내는 일이 많지는 않지.
나는 나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루나의 귀를 당겼다.
“아주 예상하지 못한 전개는 아냐.”
“진짜?”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나는 입술을 불퉁하게 내미는 레이첼을 보며 웃었다.
아니, 대륙에서 깽판 치는 교단과도 적대 관계에 황족을 지금 몇 명이나 만났는데.
고작 제국의 계승 서열이 1위라는 이유만으로 분위기가 이렇게 될 일인가?
하긴 이렇게 격식을 갖춘 뒤 대놓고 이름을 밝히며 초대한 건 처음이라 그럴지도.
“하긴, 이번에 풀리는 아티팩트가 세이렌이니까.”
케인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제국에는 별별 아티팩트 많잖아. 그럼 마탑이나 연금탑에도 황녀가 사람을 보낸다는 거야?”
레이첼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제로도 시선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아델리안 님 덕에 스크롤이나 아티팩트 같은 마법 물품을 많이 봐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이렌 판매가 그렇게 큰일입니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미궁에 감금되어 있어 세상 물정 모르는 존재 1과 주먹질만 한다고 접경지에 틀어박혀 산 덕에 세상 물정 모르는 존재 2를 번갈아 보았다.
거기에 당연하게 천 년은 넘게 비공정에 있었던 3번인 리프까지 나를 물끄러미 보는 게, 루나는 그나마 어렴풋이 아는 것 같지만 설명이 필요하긴 하겠지.
보통은 그렇다. 내가 발부스의 창고를 삼킨 데다 워낙 크루거 가문이 돈이 많으니 발에 채도록 많은 게 스크롤이요, 아티팩트였다곤 하나.
평민 가정 정도 되면 적당히 괜찮은 아티팩트 한두 개나 겨우 가보로 내려오는 게 현실이니까.
“특히 통신용 아티팩트는 그 위치가 애매하거든.”
내가 운을 띄우니 세상 물정 모르는 1, 2, 3과는 달리 케인은 이해한 듯 말을 이어받아 입을 열었다.
“보통 군사적으로는 무기 아티팩트를 선호하고 일상용으로는 생활 아티팩트를 선호한다.”
“그래서 그냥 먼 곳에 사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보통 편지나 한 번씩 비싼 값을 치르고 통신 수정구를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거든.”
“통신이라는 건 나 혼자 물건을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대응하는 물건을 다른 사람도 들고 있어야만 쓸모 있는 거니.”
나와 케인이 번갈아 설명하니 다들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통신용 아티팩트는 보통 짝이 정해져 있어서 비싼 값을 주고 사더라도 단 한 사람과만 대화 가능하니 그 누가 사겠는가.
정말 돈이 썩어나는 귀족의 연애용이나 군사용으로나 쓰지.
그런데 이번에 세이렌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평민이 구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하거나 조건을 달아서, 일대일 대응이 아닌 다자간의 통신이 가능한 채로.
사실 조금만 생각하면 혁명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
“아마 아예 써보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보는 사람은 없겠지.”
“맞아.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매력이 있거든.”
당장은 체감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곧 이게 얼마나 유용한 물건인지 다들 알게 될 테니.
거리의 제한? 사실 평민의 입장에서는 성 한두 개 정도의 거리면 충분하다. 보통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으니까.
가족과 친구 그 외 대부분의 지인이 성 하나, 혹은 두 개의 거리 안에 사는 게 보통이고 그보다 더 넓은 거리를 지원하는 세이렌은.
‘아주 비싸게 팔면 되니까. 적은 수만.’
그게 도청하기도 편하고 말이지.
“그렇다면 아델리안 님께서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맞아, 황궁이면 아무리 괴물 같은 저 녀석이라도 몰래 따라 들어갈 수 없을 텐데.”
―제가 아이기스만큼 작았다면 따라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관리자님.
나는 리프의 말에 결국 못 참고 웃어버리며 느긋하게 고개를 뒤로 넘겼다.
“너희들 날 너무 못 미더워하는 거 아냐?”
“아, 그야 너 약하잖아.”
나는 레이첼의 말에 울컥했지만 차마 할 말은 없었다.
솔직히 내가 지금 이 파티에 있어서 이런 취급 받지, 코덱스 하나만 들고도 어지간한 곳에선 대환영인데 하필 내 파티가!
너무 강해서!
“애초에 나는 제국에서 단 셋뿐인 대공가의 단 둘뿐인 후계자야. 게다가.”
나는 천천히 말하며 손가락에 끼워둔 크루거의 반지를 한 번 챠르륵 돌렸다.
“비록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으나 지금 가주 대리고. 다른 곳은 몰라도 황실에선 알고 있겠지. 우리 가문을 견제하니까. 그러니 괜찮아.”
“견제하는 곳에 혼자 가는데 왜 괜찮습니까, 아델리안 님?”
“견제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초대했다는 게 중요하거든.”
날 어떻게 할 거면 납치를 하건 암살을 하건 몰래 들어와야지.
이런 식으로 일반적인 초대장도 아닌 사람까지 보내 정식으로 초대할 정도면 오히려 안심해도 된다는 소리다.
“그래도 잘되었어. 오늘 당장 오라고 안 한 게 어디야.”
“맞아!”
오늘 투기장 가야 하는데. 일 꼬일 뻔했지.
진짜 오늘 투기장 안 갔다간 레이첼이 어떻게 폭주할지 모르니까.
* * *
“잘 참을 수 있기는 무슨.”
고양이가 생선을 안 먹는다 하지 왜.
“그… 저 레이디는…….”
“내 호위. 한 명씩 데리고 오라며.”
“억지로 데려온 게 아니고?”
“안 데려왔으면 내 멱살 잡았을걸?”
나는 이미 신나서 마운팅한 채로 주먹을 휘두르는 레이첼을 바라보며 술을 한 모금 홀짝인 뒤 어쩐지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아르만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아, 내가 돈 건 다음에 들어가지…….”
버는 돈이야 푼돈이겠지만 그래도 재미 삼아 해볼 만한데.
다음 차례 때 걸어볼까.
나는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니는 레이첼을 어이가 털린 눈으로 보는 아르만을 느리게 바라보았다.
‘사용자의 눈.’
[아르만 게일 헉슬리―해룡의 가호를 받은 자]대표 Traits : [항해(B+)] [신념(B+)] [해전(D)]
히든 Traits : [해룡의 가호(SS)] [철혈(C)]
응, 월척이다.
미래의 강철 제독님.
“당신, 아까 날 오해했지? 이런 곳에 여자 호위를 데려오다니 하며 온갖 생각 다 했잖아.”
“그, 그건.”
나는 히죽거리며 당황한 아르만의 얼굴과 트레잇을 안주 삼아 맛있게 술을 마셨다.
“하지만 저걸 봐. 누가 이용당했지?”
“캬하하하! 또 덤비라고!”
그새 한 명 더 보낸 레이첼이 얼굴에 튄 피를 손등으로 닦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광역 도발을 거는 레이첼의 모습에 아르만이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다.
“사람을 말이야, 그렇게 막 오해하고 그럼 쓰나.”
“미…안하게 되었소.”
“에이, 친구 사이에 무슨. 친구니까 봐줄게.”
내 말에 얼굴로 대놓고 언제부터 우리가 친구 사이였냐고 묻는 아르만이지만 차마 자기가 먼저 실수해 놓고 지금 따질 수는 없는지 헛기침만 한다.
아, 원작 후반에 활약하던 강철 제독의 햇병아리 시기라니.
‘게다가 아직 개화 전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엑스트라이자 유닛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남 좋은 일 할 수야 있나.
대표 트레잇이 B+라니. 사실 이 나이대라면 어딜 가서도 으스댈 수 있는 등급이지만 귀족들의 세계에선 다르다.
지금 내 본가에서 서류를 만지는 아리아만 해도 정령(A)였으니까.
‘이때면 자신의 애매한 재능에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을 때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하겠지.
“슬…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델리안 경.”
“그냥 아델리안이라 불러. 우리 친구 하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언제… 하, 그래요, 그래. 친구 하지.”
털털한 아르만의 성격답게 자신의 머리를 한 번 거칠게 흩어낸 뒤 악수를 청한다.
그에 나는 가볍게 손을 잡고 흔들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투기장이라, 역시 뱃사람이라 거친 걸 좋아하나?”
“왜, 아주 남부 촌놈이라는 말도 더하지.”
내 말에 아르만이 투덜거렸고 난 웃었다.
“내 취향일 거라 생각했나 본데. 틀렸으니 하는 말이야. 이번에 가문에서 시작한 사업 때문에 날 보자고 한 거겠지?”
“더 덤빌 놈 없나? 어? 고작 이게 끝이야?”
“적당히 해야지! 내려와!”
나는 뒤에서 레이첼과 다른 이들이 꽥꽥대는 소리는 못 들은 체하며 웃었고 아르만은 그런 나와 난동부리는 레이첼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긴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이야기하기 힘든데, 자리를 옮기지.”
“역시 업무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서 해야 맛이지.”
세이렌으로 빚을 지게 하건 트레잇으로 빚을 지게 하건 지금 넝쿨째 굴러온 아르만을 냉큼 잡아야 한다.
‘다른 네임드는 몰라도 아르만은 확실하니까.’
한 번 마음을 얻어 두면 배신하지 않는 성정인 데다, 해룡의 가호를 메인으로 띄우는 순간 해상 이벤트에서는 메인 파티도 뒤로 미루는 유닛이 되니까.
쓸데없이 머리를 굴려 휘두르려 할 필요 없이 정공법으로 들어가도 문제없을 터.
나는 히죽거리며 투기장과 조금 떨어진 방으로 안내하는 아르만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