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3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36화(136/373)
아니, 솔직히 다들 공감할 것이다.
어떤 미디어건 꼭 민폐 끼치는 캐릭터가 하나 정도는 나온다는 걸 말이야.
이게 보는 입장에서는 아오, 저놈 저거 왜 저래. 왜 귀신 나온다는 데 헬로? 하면서 들어가는데. 왜 가지 말란 데 가고 하지 말라는 데 하냐고.
하며 욕하며 보지만 사실 그렇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뭐 사건 하나 터트리려면 사고 빵빵하게 쳐주는 캐릭터가 효자인 거다.
‘근데 그게 내가 될 줄 몰랐지.’
솔직히 좀 억울했다. 세리아가 날 이렇게 가둘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
‘왜냐면 나와 척질 필요가 없으니까.’
어차피 날 잡고 쥐어짜 봐야 내 뒤의 카이만이 날 조종한다 여긴다면 의미 없는 행위니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침대에 앉아 반대쪽 의자에 앉은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저희 아버지가 매우 바쁘셔서 제가 여기 반년을 있어도 상관 안 하실 수 있는데.”
“에이, 아델리안 공자가 반년 여기 있는 건 신경 안 써도. 세이렌이란 아티팩트의 판매가 늦어지는 건 신경 쓰지 않을까요?”
아, 그건 또 그렇지.
정말 카이만이 주도했다면야.
나는 초조한 것처럼 다리를 떨었고 그 덕에 한쪽 발목에 채워진 족갑이 철럭철럭거렸다.
쪽팔려. 애들을 부르더라도 이건 풀고 불러야 한다.
“뭐 몇 가지만 충실하게 이행한다면 오늘에라도… 당장 저녁 식사 이후라도 돌아갈 수 있어.”
뺨을 장밋빛으로 붉히며 세리아의 눈이 호선을 그린다. 그 자수정색 눈동자엔 장난기가 넘실거렸다.
그에 나는 네네 하듯 한숨 쉬며 머리칼을 흩어낸 뒤 구부정하게 무릎 위로 팔 올려 턱을 괸 뒤 대답했다.
“조건은요?”
“이거.”
세리아가 허공으로 손을 올리니 올백으로 머리를 꽉 묶은 시녀가 물잔 하나를 손에 쥐여 준다.
“독?”
“땡, 약이야. 부작용도 거의 없는.”
거의라니, 거의라니.
내가 살짝 미간을 문지르며 바라보니 네까짓 게 내 말을 거역할 수 있겠냐는 듯 세리아가 웃었다.
“황실에서 쓰는 자백제야. 부작용은 쓰기 전후로 기억을 잃는 정도?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순간 물어보고 싶다는 세리아의 눈이 유난히 번들거리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관통하는 직감.
지금 세이렌도 세이렌인데. 뭔가 나에게 원하는 게 있구나.
그리고 모든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가능성은 하나지.
‘내 몸에 무언가를 하려 했는데 안 통했구나.’
차에 탄 약 말고도 쉽게 할 만한 건.
[세이라 폰 테이트리아―은밀한 계략자]대표 Traits : [봉인(SS)] [교만(S)] [잔인함(A)]
히든 Traits : [악식(C)] [중독(E)]
봉인 트레잇 풀었구나.
평소에는 스스로 자신의 트레잇에 봉인을 걸어 타인에게 숨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봉인된 교만과 잔인함 트레잇 덕에 성격도 좀 더 원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트레잇, 아마도 오만이겠지. 그것을 봉인하기 위해 시도해 봤겠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니 봉인이 풀린 교만과 잔인함이 급발진한 건가.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비트는 자]대표 Traits : [금력(SSS)] [오만(S)]
히든 Traits : [부유감(B-)] [사용자의 눈(SSS)]
후, 젠장. 부유감에 벌써 마이너스가 붙었네.
세리아의 봉인(SS)보다 분명 등급이 낮은 내 오만이 봉인되지 않은 게 관심을 끈 게 분명하다.
그러니 약을 먹여 오만을 꺾은 뒤 그 김에 계약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도장 찍고 싶다는 건데.
“어때? 그냥 이거 마시고 하는 말에 대답만 잘하면 집에 곱게 갈 수 있어. 아델리안 공자.”
“계약서도 막 찍고요? 그런데 제게 계약서가 없는데.”
“제국의 1황녀를 만나러 오면서 계약서 한 장 품에 품지 않고 온단 말이야?”
후후 하며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세리아가 유혹하는 것처럼 물컵을 느리게 흔들었다.
‘너무 오래 끌면 애들이 온다.’
그건 또 곤란하지.
나는 짧은 시간 내 계산을 돌렸다.
독은 아니라지만 자백제 정도의 강력한 약물, 거기에 일정 시간 기억까지 지워버리면 독극물, 혹은 저주나 다름없는 쪽으로 판정이 날 것 같은데.
그럼 미약한 중독 저항 인첸트가 들어간 작은 아공간 반지는 둘째 치더라도, 아이기스에 딸린 저주 및 주술 같은 유사 마법 공격에 대한 내성 효과와 더불어 부유감을 생각한다면.
‘실패했을 때 내가 잃을 것은?’
내 존재의 모든 것?
나는 구부렸던 몸을 펴낸 뒤 침대에 양손을 뒤로 짚어 느슨하게 몸을 늘렸다.
“6개월간 밥은 잘 나오리라 믿습니다.”
그냥 세리아 황녀가 나가면 애들에게 연락하자.
지금 내 몸수색을 해서 알몸으로 가둔다 해도. 아이기스와 미리 빼둔 세이렌 프로토 타입까지 털린다고 해도.
크루거 반지만 안 뺏기면 상관없다. 그 안의 양산형 세이렌으로 구조 요청하면 되니까.
반지마저 뺏으려 든다 해도 사실 크루거 반지는 뺄 수 없다. 내 손가락을 자른다면 모르겠다만.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라는 혈계 전승자에게서 떨어진 반지는 그대로 본가에 신호를 보내게 되니 이러나저러나 구출 신호가 가는 건 매한가지.
케인 등이 쳐들어와 날 빼내 간다고 세리아 황녀가 항의하진 못할 것이다. 정식 재판으로 간다면 신전에 요청하여 기억 대조로 넘어가려 할 테고, 그럼 뭐 먼저 감금 시도한 게 딱 나오니까.
“이상하단 말이지. 다른 대공가의 후계자들은 이렇게까지 나에게 뻣뻣하지 않았는데.”
너 마음에 안 들어 하듯 세리아가 손짓하다 올백 머리의 시녀가 나에게 혼다.
어, 설마.
“잠깐. 6개월간 있는다니, 윽!”
내가 민폐 포지션 엑스트라라니! 밟지 말란 바닥 돌 밟아서 돌 굴러오게 만드는 그런 조연이야, 지금?
내가 힘주어 밀어냈으나 그 시도가 무색하게도 시녀는 신체 관련 트레잇이 있는지 손쉽게 나를 제압해서 입을 벌리게 하고 물컵 속 약물을 쏟아 넣는다.
“윽, 읍!”
삼키기 싫어!
아니, 이러면 기도메타 들어가야 하잖아.
나는 결국 몇 모금 삼킨 뒤 세리아를 노려보았다. 그 명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천사의 얼굴을 가졌으나 교만하고 사악한…….
이윽고 내 몸이 바닷속으로 던져진 것처럼. 혹은 모래 지옥 속으로 늪 속으로 그 어떤 것을 더하더라도 떠오르지 못할 것 같이, 그렇게.
가라앉았다.
올백 머리의 시녀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아 내 얼굴 위로 떨어트렸다.
내 팔은 그대로 내 얼굴을 치고 아래로 떨어진다. 고통 대신 무딘 감촉만이 느껴졌다.
“완전히 약효가 돌았습니다.”
“좋아, 시험해 볼까? 네 이름은.”
내 의지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숨을 쉬는 것마저 방해받는 듯 중간중간 심호흡이 멈췄다가 답답해질 무렵 이어지길 반복했다.
그러나 세리아의 목소리만큼은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렸고 그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던 내 몸은 대답만은 힘겹게 할 수 있었다.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
어디 한번 궁금한 거 다 물어봐, 황녀님.
아이기스와 더불어 부유감 만세다.
* * *
“아델리안의 마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나무 위에서 명상하듯 눈을 감고 모든 힘을 마나의 탐색과 감지로 돌렸던 케인이 천천히 눈을 뜨며 하는 말에 루나가 저 멀리 어렴풋하게 보이는 황성을 응시했다.
“그게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겁니까, 선배님.”
“잠이 들었거나.”
“저항 불능인 상태지, 뭐.”
케인의 말을 레이첼이 받으며 히죽 웃는 모습에 루나가 입을 열었다.
“레이첼은 여기에 남아줘.”
“엥? 왜!”
당장이라도 황성에 튀어 들어가려 했던 듯 쪼그려 앉아 허벅지 근육을 두텁게 늘리던 레이첼이 자신보다 높은 나뭇가지에 앉은 루나에게 항의했다.
“그야 우리는 얼굴 가리구 조용히 들어왔다 나올 생각인데 레이첼은 아니잖아.”
“아니야! 나도 조용히 따라갈게!”
“레이첼 후배님, 솔직히 주먹 휘두르면서 웃는 순간 다 들킬 수 있습니다.”
“윽, 으으으으윽!”
레이첼이 할 말 없는지 입을 삐죽거렸고 리프는 천천히 인식 저하 배지를 귓불에 귀걸이처럼 뚫어 박았다.
아델리안에게 받았던 자가수복 기능이 붙은 원피스형 갑옷과 방패로 변형 가능한 암 워머까지 찬 뒤 루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레이첼만 빼고 모두 몸을 일으켰다.
“혹시 뒤쪽에서 다른 무리가 난입할 수 있으니 후방을 부탁드립니다. 레이첼 후배님.”
“제로, 둘러대는 솜씨가 많이 늘었다? 어?”
“도련님이 연락도 없이 잠들었을 리는 없구. 당장 위험하진 않겠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나을 거 같아.”
루나와 케인, 제로와 리프까지 전부 인식 저하 배지를 착용한 후 로브를 두르자 레이첼이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손을 흔들었다.
“다녀와.”
순간 네 명의 몸이 나무 위에서 퉁기듯 앞으로 쏟아졌다.
사람들을 피해 달리는 것보다, 건물 사잇길로 돌아가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듯 모두 지붕을 밟아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나와 리프가 전위를, 루나가 보조를. 그리고 제로가 후위를 맡는다.”
“아까 케인 선배께서 황궁 안의 결계 덕에 아델리안 님의 위치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돌입하면 제가 바하디로 잠시 변해 정령으로 찾겠습니다.”
“발견하면 내가 도련님을 안구 먼저 나갈 테니 뒤를 부탁해.”
―돌파는 케인 님이 해주세요. 모든 공격의 방어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델리안의 말대로 혹시 모를 황성에 존재하는 실력자의 심기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제법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그것으론 부족했을까.
황성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케인이 고개를 들었다.
살기는 아니나 확실한 위협. 혹은 유인.
강한 누군가가 케인을 마나로 툭툭 찔러 댄다.
“바꾼다. 루나가 리더로 중위를 맡고 나는 지금 이탈한다.”
“끝나구 나중에 숙소에서 합류할게.”
그리고 지금까지는 모두와 보폭을 맞춘 것이라는 듯 케인이 90도 각도로 꺾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국의 황성은 그것만 뚝 떼어 놓고 보면 작은 마을만 했다.
그 정도로 넓고 거대한 곳이기에 가장 큰 정문 외에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만들어진 네 개의 중문, 그리고 그사이 틈틈이 위치한 작은 문들까지.
총 스무 개에 달하는 문이 존재했다.
케인이 마차의 기척을 추적한 덕에 몇 번째 작은 문으로 들어갔는지 아는 상황.
‘워낙 넓은 곳인 데다 저쪽에서 먼저 일을 꾸민 것이니 힘으로 밀고 들어가더라도 근위대가 전부 출동하진 않을 거라고 케인이 말해 줬으니까.’
루나는 챠비드의 작은 가족 무리 출신이었다. 그러니 전술이나 전법, 전장을 읽는 눈 같은 건 뛰어나지도 않았고 재능도 없었지만 루나의 파티엔 케인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재능을 하나로 뭉쳐 빚은 것 같은 존재.
모든 돌발 상황을 미리 외우게 한 케인 덕에 루나는 가장 강한 창 하나가 빠져나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로, 리프. 문을 부숴버려.”
성문의 벽을 뛰어넘으면 결계에 걸리거나 알람 마법이 작동할 수 있지만 성문은 다르다.
늘 드나드는 사람이 있는 데다 성벽도 아닌 성문은 혹시 모를 마차 사고 등으로 얼마든지 부서질 확률이 있기에 바로 긴급 알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 한 대가 드나들 만한 크기의 철제문이 우그러지며 뒤로 넘어간다.
저쪽에도 마나로 탐색 및 감지를 할 수 있는 이가 있었던지 문이 망가지자마자 루나와 제로, 리프에게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고 리프는 마나 심장을 돌려 마나의 막을 막는 대신 더욱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뭐, 뭐야…….”
가장 앞에서 동료의 방패가 되는 것이 리프의 몫.
수십 발의 화살을 몸으로 받아냈으나 고통 따윈 없다는 듯 빠르게 뽑아 제로에게로 넘겼고, 제로는 그 화살을 그대로 병사들에게 연사했다.
마나의 막으로 튕겨내는 것보다 재생하는 것이 마나가 적게 든다. 리프는 관통이 아닌 참격만을 암 실드로 막으며 자신의 손바닥부터 팔꿈치까지 찔러 들어온 창을 움켜잡아 창대로 오히려 병사를 후려쳤다.
“이쪽입니다!”
후위에서 제로가 화살로 견제하고 리프가 공격을 받아내며 루나가 빠른 다리로 병사들의 뒤로 돌아가 후방에서 교란하던 와중, 제로가 바하디의 정령술로 아델리안을 찾아낸 듯 소리쳤다.
그리고 그 시간, 케인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제국의 수도 가장 외곽까지 달려가 폐허가 된 작은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감히 제국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던 놈이 너로구나.”
그곳엔 어디서 보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초로의 사내가 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