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3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37화(137/373)
마른 몸과 조금 굽은 등, 웃는 눈과 푹 꺼진 입가 주름은 얼핏 보이는 나이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유는 알 텐데.”
“그래 봐야 여흥이거늘… 그 아이가 크게 다칠 리도 없는데 과민한 것 아니냐, 아해야…….”
“그래 봐야 반란도 아니니 그 황녀가 크게 다칠 리도 없는데 과민한 것 아닌가, 그쪽도.”
자신의 말을 케인이 그대로 받아치자 초로의 사내가 그 주름에 짓무른 눈을 조금 크게 뜨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는 굽은 허리를 우드득 펴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웃음소리에 실린 마나의 힘에 케인이 작게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이 뚝 멈췄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네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그 나이에 비해서가 아니겠느냐. 아해야, 아직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모르는 것이냐.”
“그렇게 생각했으면 왜 날 이곳으로 유인한 거지.”
삶이 무서운 것을 모른다는 노인의 말에 케인이 숨을 비틀었다.
고작 스무 해도 제대로 살지 않았기에. 고작 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겪은 일은 모조리 폄하되는 것인가.
“그야 너 같은 아해에게 한 수 가르쳐 주려면 황성 근처는 좁지 않겠느냐.”
사내가 검버섯이 피기 시작한 손을 허공에 들어 올리자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이 공간이 일렁이더니 어느새 사내의 손에 옥빛 롱소드가 쥐어져 있었다.
“그럼 당신 삶은 얼마나 치열했는지 한번 알려줘 봐.”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케인이 스카를 비스듬하게 들며 낮게 속삭였다.
* * *
“세이렌을 파는 목적이 뭐야?”
“돈… 더 많은 돈……!”
“세이렌이 어떤 가치를 지닌 줄 알아?”
“…통신 …아티팩트.”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세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 정말 소문대로 덜떨어진 망나니라 그 능구렁이 대공이 버림패로 쓰는 거 아닐까? 이렇게나 무능한 자는 처음 봐.”
세리아의 말에 옆에 있던 올백 머리의 시녀가 단조로운 어조로 대꾸했다.
“그럴 지도요.”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뺨을 꾹꾹 찌르는 것이 무딘 감각으로 느껴졌다.
“돈이랑 술, 노는 거 외에 아는 게 없어. 세이렌이란 아티팩트를 조금만 응용하면 타국의 비밀을 캐거나 할 수도 있는데. 내가 독점하고 싶단 말이야.”
무언가를 꿀꺽하고 목으로 넘기는 소리. 세리아가 애가 타는 듯 차를 마신 것 같았다.
“그런 걸 민간 판매라니. 상상해 봐. 나만 그걸 소유하면 난 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주무를 수도 있는데.”
마시고 내려둔 찻잔을 손끝으로 원 그리듯 매만지는지 무언가 매끈한 것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골드에 미친 크루거라지만. 이런 걸 평민에게까지 팔 생각을 한 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걸까?”
“카이만 대공일 겁니다.”
올백 머리의 시녀가 대답하자 세리아가 의자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더욱 가까이 몸을 붙이는 듯 침대에 풀썩 앉는 소리가 들렸다.
“하긴 그렇겠지? 그 능구렁이, 배 속에 독사 수천 마리는 들었을 테니까. 그러니 이렇게 자신은 잠적한 상태로 이렇게 영양가 없는 망나니 녀석을 수도로 보낸 거겠지.”
참 대단해. 자신의 아들마저도 희생양으로 쓰는 것이. 까딱 잘못해서 황실과 나에게 밉보였다간 살아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작디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던 세리아가 그 가늘고 작은 손으로 내 목을 감싸 쥐었다.
“짜증 나. 화풀이하고 싶어.”
“세리아 님. 원하는 것을 언제나 가질 수는 없답니다.”
무딘 통각으로도 세리아의 손이 점점 내 목을 감아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건 알아. 절제와 관용, 자비와 헌신. 황족의 의무 어쩌고 하는 것들은 너무 지겨운걸. 게다가 이 녀석, 너무 형편없어서 망가뜨릴 재능도 없는 주제에.”
꾹!
“……!”
안 그래도 약의 효과 덕에 버겁던 숨이 종이 한 장 삼킨 것처럼 엉망으로 엉켜 들어왔다.
살기가 없는 단순한 투정. 그렇기에 아이기스도 발동하지 않는 건가.
정말 죽기 직전에는 발동하겠지만 애매하게 숨이 막히는 것은 공격으로 치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안 망가지지?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나보다 격이 낮은 걸 느끼는 데 어째서?”
약물에 절여진 내 몸이 버티지 못하고 떨리자 목을 조르던 손의 힘이 풀렸다.
“이상해. 그렇지? 이상해… 재미있어.”
천천히 다가오는 숨이 내 귀를 스쳤다. 엉망진창으로 뒤섞은 정보를 실컷 말한 건 즐거웠지만 이런 플레이는 사양이야.
‘언제 오려나.’
비록 세이렌으로 연락은 못 하고 약물 덕에 지금 몸의 통제를 잃었지만 나는 내 파티를 믿었다.
아무리 늦어도, 내가 오늘 밤까지 돌아가지 않는다면 날 찾으러.
쾅!
올 테니……?
저 멀리서 아스라하게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네 설마…….
“…무슨 소리지?”
“근위대들을 물리고 일반 병사들만 있는 상황이니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올백 머리의 시녀가 호위도 겸했나. 하긴 나에게 강제로 약물을 먹일 때 분명 신체 관련 트레잇이 있는 것 같더라.
“뭘까? 그 능구렁이가 어울리지도 않게, 그래도 제 자식은 아끼는 걸까. 아니면…….”
미끼를 한 번만 쓰고 버리기는 아쉽다는 걸까?
찬송가가 어울릴 것 같이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세리아가 후후, 하고 작게 웃었다.
* * *
“막아! 막으라고!”
“조금만 버티면 근위대가 온다!”
일부러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제로는 자신이 가진 화살 대신 병사들이 쏘는 화살을 허공에서 낚아채 다시 쐈다.
“악!”
누군가 제로가 쏜 화살을 무릎에 맞고 뒹굴었다. 그리고 그 몸 위를 리프가 뛰어넘어 복도로 진입하는 루나 대신 찔러 들어오는 창을 쳐냈다.
“나와 제로는 안으로 진입할게, 제로! 길 안내를 해줘!”
루나가 소리치자 제로와 리프가 동시에 끄덕였다.
루나는 안으로 진입하는 자신과 제로의 뒤를 막겠다는 리프의 말을 귀가 아닌 느낌으로 깨달았다.
귀로 듣는 것보다도 더 확실한 확신.
볕이 지기 시작해 석양으로 붉게 불타는 복도를 루나는 제로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가장 큰 방의 가장 안쪽, 또 다른 좁은 방입니다.”
제로는 아까 잠시 바하디로 변했을 때 알아둔 정보를 외운 듯 말했고 그에 둘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두 명의 검은 로브가 마치 날개처럼 뒤로 펄럭이며 펼쳐지던 그 순간, 올백 머리에 긴 메이드 복을 입은 여인이 양손에 세검을 들고 복도 끝에 나타났다.
“거기까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 작지 않은 복도인데도 양손의 세검 덕에 앞이 완전히 가로막힌 것 같은 기세.
루나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이런 곳에서 오래 잡혀 있으면 안 돼.’
케인이 없는 한, 황성이란 특수성 아래 언제건 파티 전체와 맞먹는 전력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도 케인이 읽은 수 안에 들어 있으니까.’
루나는 상대의 실력을 가늠했다. 케인이 빠진 상태에서 10분 이상 지체될 정도의 실력자인가?
‘전혀.’
“제로, 부탁해.”
“네. 선배님.”
제로가 활을 집어넣고 검을 꺼냈다. 좀 더 묵직하게 가라앉는 마나.
순간 제로가 루나를 스쳐 앞으로 쇄도했다.
챙! 하고 금속끼리 맞닿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깨끗하게 사선으로 갈라진 화병의 반쪽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양옆으로 넓게 벌리면 복도 전부를 차지하는 두 개의 세검.
양손 전부 다른 사람이 쥐고 움직이는 것처럼 제로의 검을 밀치고 얽었다.
제로의 공격 일변도를 메이드는 변칙을 섞은 방어로 시간을 끄는 게 보였고 그에 제로가 낮게 휘파람을 분 순간.
챙캉!
“무슨!”
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급강하해 그대로 창을 깨며 들어와 메이드를 덮쳤다.
두 개의 세검으로 방어하고 있던 그 영역을 제로가 잠시 깨트린 순간, 그 틈으로 루나가 뛰어들어 빠져나갔다.
“어딜!”
뒤늦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새 한 마리를 베어낸 메이드가 제 뒤로 달려나간 루나를 붙잡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제로의 장검이 그녀의 어깨 쪽으로 찔러 들어감에 급하게 세검을 들어 밀쳐냈다.
“한눈파실 여유는 없지 않습니까?”
“…네놈부터 처리하고 가도 늦지 않아.”
두 개의 세검에 오러가 더욱 짙게 맺히자 제로 또한 자신에게 연결된 도플갱어, 드루이드 아도닐의 능력을 끌어내며 더욱 검에 짙은 오러를 밀어 넣었다.
* * *
‘도련님, 도련님.’
제로가 알려준 방향 그대로. 루나가 달려나갔다. 아델리안이 안된다 했어도 누구든 따라붙었어야 했다.
아이기스는 살기를 띤 공격이나 사용자의 신체가 확실하게 망가질 공격이 아닌 이상 생활에 지장되지 않을 만큼 느슨한 판정을 하기도 하니까.
길을 지나다 누군가와 어깨를 세게 부딪혔다고 아이기스가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위험하다면 사용자가 직접 경계 모드의 단계를 올리도록 되어 있다고 들었기에.
‘그런데 그런 걸 할 시간도 없었단 거잖아.’
독, 혹은 약.
실내에서 쓸 수 있는 강한 마법은 아이기스가 어떻게든 한 번은 방어했을 테니 그 찰나에 아델리안이 어떻게든 세이렌으로 연락할 수 있었을 거니까.
루나가 가장 안쪽의 작은 문을 발로 파괴하며 들어섰다.
“어머나… 생각보다 작은 습격자네요.”
루나의 눈에는 의식을 잃은 듯 고개를 떨군 아델리안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더불어 그런 아델리안을 의자 뒤에서 느슨하게 끌어안아 방패로 삼고 있는 누군가도.
아름답게 물결치며 흘러내리는 금발과 깊은 자수정 색의 눈동자.
어린 시절에 듣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야말로 공주님.
평소의 루나가 보았다면, 역시 공주님은 정말 공주님처럼 생겼다고 감탄했을 테지만.
지금은 짙은 분홍색 눈동자가 짙어져 흡사 핏기가 도는 것 같은 붉은 색이 오르기 시작했다.
“놓아줘.”
“후후, 귀여운 목소리. 아델리안 공자를 구출하러 온 거야?”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잠들어 있는걸? 하듯 세리아 황녀가 양손을 아델리안의 머리 위에 포개 그 위로 제 뺨을 올렸다.
“…더러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작은 방 안에서 루나가 입은 로브의 아랫단이 느리게 흔들렸다.
‘충성심이 대단한데?’
세리아가 감탄했다. 크루거 가문에서는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하기에 그 가문의 적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강한 이들이 충성하는 거지?
들리는 소음으로 비롯해 생각하자면 습격한 인원은 다섯 이내의 소수.
비록 세리아 자신이 일부러 근위대를 다 물린 데다 필요에 의해 알람까지 꺼버린 상태였으나 단기간에 여기까지 침범할 정도면 모두 오러 유저 이상.
그런데 고작 이런 망나니를 위해?
통제에서 조금씩 벗어난 오러의 흔적을 확인한 세리아가 루나의 평정을 완전히 깨부수기 위해 아델리안의 머리 위에 포갰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의 뺨을 쓰다듬고 어깨를 매만지며 살짝 목깃을 당기니 루나의 발치에서만 잔잔하게 흔들리던 로브 자락이 순간 파라락 하며 휘몰아쳤다.
“…죽어.”
“어?”
쾅!
세리아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한 번 눈을 깜빡한 순간 제 앞에 서 있던 그 작은 몸이 흐릿해지더니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옆의 벽을 한번 디뎌 방향 전환해 자신의 몸을 발로 가격한 루나를 세리아가 반대쪽으로 날아가며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황족이니만큼 방어 아티팩트를 착용 중이라 단순하게 반탄력만으로 날아간 것이니 고통도 상처도 없지만.
‘이렇게나 강하다고?’
목소리도 체구도 분명 제 또래. 그런데 오러 유저 중급 이상?
가벼운 공격은 반탄 없이 막아내는 실드 아티팩트의 실드가 소리도 없이 부서지고 위험한 전장에서 순간 이탈을 위한 반탄 실드 아티팩트가 발동되었을 정도라니.
일부러 자신이 목을 조른 흔적을 보여 도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대가는 아델리안의 탈취!
아티팩트의 힘으로 사뿐하게 바닥을 디딘 세리아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는 이미 의자에 앉아 있던 아델리안이 사라진 후였다.
“…뭐 괜찮아. 습격은 받았으니까.”
이제 증거를 모아 압박하기만 하면 되거든.
세리아가 꿀같이 짙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옅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