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4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40화(140/373)
유난히 날씨가 좋은 요즘이었다. 볕이 찬란하게 떨어지는 정원은 사람의 키보다도 높게 자란 관목으로 이루어진 미로가 제법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한쪽엔 둥근 돔 형태의 유리온실과 더불어 한쪽에는 기도하는 천사상으로 장식된 분수에서 뿜어지는 물줄기가 빛을 화려하게 반사했다.
거기에 곳곳에 놓인 조각상과 공예품으로 온실과 분수로 크게 잡은 화려함을 과하지 않게 메꾸듯 꾸며져 있어 보는 이마다 감탄을 자아냈으나.
정작 이 정원의 주인인 12황자 샤하드는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진하게 낀 상태로 연신 엄지손톱을 질근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보안은 어때?”
“확실합니다.”
자신의 삶 전체가 언제부터인지, 누구 때문인지도 모른 채로 일그러져 있었다.
송두리째 파괴당한 그대로 샤하드는 자기 자신을 박탈당한 그대로.
멍청하고 저열한 삶을 연기하며 어떻게든 한 줌의 빛이라도 긁어모으려 아등바등거렸던 과거를 떠올렸다.
누군가는 삶을 달걀에 비유하기도 했던가.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그 벽을 깨고 나면 좁디좁은 세상이 부서지고 새로운 곳에서 눈을 뜰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자신을 가두고 있던 것이 다시 태어나게 해줄 껍질이 아니라 누군가가 덮어버린 감옥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로 부리와 발톱을 깨트려가며 그것을 열고 나오기 위해 노력하던 자신을 그는 비웃고 있었겠지.
그러니 상대가 악마라 해도 상관없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장에 통증이 번지는지 샤하드가 숨을 헐떡거림에 그의 보좌관이 익숙하게 물과 약을 건넸다.
그것을 억지로 입에 털어 넣고선 떨리는 손으로 물을 마시던 샤하드가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가라앉은 적금색 눈동자를 음울하게 빛냈다.
그만한 자격이 된다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로의 중심은… 어떻게 만들었지.”
“절대 우연으로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겁니다.”
길이 나 있지 않은 공간. 마법적 결계로 가두어진 공간.
준비는 끝났고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삶을 대가로 저울질할 차례.
“초대장을 뿌려.”
“제한 없이 말입니까.”
심장의 통증이 사그라들자 이번엔 두통이 오는 듯 한쪽 눈가를 찡그리던 샤하드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저번 시음회 때 우리가 확보한 명단. 그들에게 뿌려.”
얼음으로 만든 송곳으로 머리를 찍어 비트는 것 같다.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이 망가트리는 빛줄기 하나하나가 눈엣가시처럼 박히는 고통을 느끼며 샤하드가 웃었다.
* * *
“참나. 하. 진짜. 허.”
나는 피실피실 웃었다.
“내일 밤이 야간 가든파티라던데요, 도련님.”
“나도 알아.”
진짜 어이가 없네.
분명 내가 들은 정보로는 당시 와인 시음회에 참석했던 이들에게 전부 초대장이 갔다고 하던데.
왜 나는?
왜 난?
소거법을 쓸 거면 좀 여러 명을 지우든가, 그 많은 사람 중 망나니 아델리안만큼은 진짜 절대 아니다 하는 마음으로 나만 지운 거 아니겠는가.
나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감추지 않은 채로 다리를 덜덜 흔들며 이를 갈았다.
아델리안 패싱이 말이 되냐, 이거.
거기에 케인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게 내 기분을 긁어댄다.
혹시나 싶어 한 번 정도는 죽어도 어찌 살릴 수 있을 게 거의 확실한 제로를 슬쩍 황도 외곽으로 파견 보내봤지만 훨씬 더 멀리 간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케인의 마나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니까.
‘설마 주인공인데…….’
떠올리기 심란한 짓을 당한 건 아닐 테고.
생각이 극한으로 치닫기 전에 부유감이 먼저 나를 잠식하는 듯 불안감이 사그라든다.
애초에 이곳은 케인이 많은 것을 희생해 가며 지켜낸 세계이니 이 세계도 염치가 있다면 갑자기 케인을 개복치처럼 만들진 않을 것이다.
설사 이곳이 완벽하디 완벽한 현실이라 아무리 그가 주인공 같아도 실상은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내가 생각하는 보정 이런 게 없어서 정말로 허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들.
‘케인인데.’
케인이니까.
나는 사그라든 불안감을 더 이상 되씹지 않으며 금세 시큰둥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초대장 없이 황자의 개인 저택에 들어가 미로 정원의 중앙까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까?”
초대장은 열쇠다. 무려 황족의 핏줄과 여러 귀족의 혈통이 모이는 곳에 누가 테러라도 하면 어쩔까.
수많은 경계와 실드 마법을 뚫고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열쇠.
이미 들어간 상태에서 미로로 진입하는 것과 밖에서 처음부터 비틀어 들어가는 것은 천지 차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혼자는 가능해도 아델리안 님과 함께 들어가는 것은 힘듭니다. 케인 선배님이 계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죄송합니다.”
내 질문에 제로가 눈꼬리를 조금 내리며 말했다. 커다란 개가 쪼글쪼글해진 것 같은 모습에 루나나 리프가 귀여운 듯 의자에 앉은 제로를 양쪽에서 쓰다듬는다.
하기야 제로가 아무리 마력 지체를 달고 있다고는 해도 그 등급이 아주 높지는 않은 데다 마력 지체 자체의 기능도 모든 마법적 현상을 일부 순응, 혹은 역전 및 무시가 가능한 정도라.
나까지 데리고 아무 흔적 없이 들어가긴 힘들 것이다.
케인이야 뭐 마력이고 디스펠이고 다 합쳐진 완벽이란 트레잇까지 가졌으니 나 하나 정도 데리고 들어가는 게 큰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럼 역시 초대장을 얻어야겠네.”
“예. 아마 저택 안에서는 제가 아델리안 님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저랑 리프는 계속 케인에 대해 알아볼게요.”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입을 꾹 다물고 뚱하게 앉아 있는 레이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리 뚱하게 앉아 있어?”
“또 나만 재미없게 집 지켜야 하잖아.”
주먹이 심심해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았구나. 우리 뇌없첼.
나는 조만간 파이얀의 조직에 레이첼을 파견 보내야겠다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케인 걱정은 안 되니?”
“걔 걱정을 왜 해. 넌 걱정해? 별 걱정을 다 하네.”
넌지시 묻는 말에 레이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하긴 다들 케인 걱정을 대놓고 하진 않는구나.
“어차피 걔가 진짜 위험하면 어떤 식으로 건 너에게 연락했겠지.”
세이렌 들고 갔잖아 하며 레이첼이 기지개를 켜자 루나도 입을 열었다.
“저두 케인두 도련님을 믿으니까 분명히 그럴 거예요. 연락 안 한 걸 보면 뭐…….”
“아직 자존심 세울 만하단 거지 뭐.”
―레이첼의 분석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관리자님.
내 이미지도 내 이미지인데 케인 이미지도 만만찮게 재구축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원점으로 생각이 되돌아간다.
“초대장 얻어야겠네.”
당장 내일 밤이 샤하드의 가든파티니 마음이 제법 급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파이얀을 통해 구했을 테지만.
파이얀도 지금 밖이 아닌 아카데미 안에 파견 보낸 상태니 내일 밤까지는 조금 무리가 있지.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이럴 때 쓰라고 인맥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느긋하게 고개를 뒤로 넘긴 채 아공간에서 대외적으로 쓸 양산형 세이렌을 하나 꺼냈다.
“안녕, 베르뷔트.”
바쁘니?
* * *
아무리 대륙에서 손꼽힐 만큼 돈이 많은 가문이라지만 이런 걸 개발할 수 있는 건가?
마탑이나 연금탑과 대규모 제휴라도 했는지 뒤늦게 알아봤지만 그것도 아니고.
베르뷔트가 아랫입술을 질근거렸다.
직접 고용한 이들로 베르뷔트 자신을 위협해 아델리안이 도움을 준다는 계획은 왜 그리 타이밍이 안 맞는지.
이상하리만큼 잘 빠져나가는 아델리안 덕에 몇 가지 계획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자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던 상태.
교단에서는 아델리안이 베르뷔트에게 준 세이렌의 존재 자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내부에서는 큰 공적처럼 굴러가던 터라 더욱 화가 났다.
‘그 망나니가 중간에 훼방만 놓지 않았다면 가디아와 더불어 이것까지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훨씬 가능성이 클지도 모른다. 가디아만 잘 구슬렸다면 황도로 세이렌을 들고 온 아델리안 따위 걷어낼 수 있었을 텐데.
황도에서 아직 황족과 제대로 이권 정리가 덜 된 탓인지 당장은 구하려 해도 구하기 힘든 물건.
말랑말랑한 세이렌을 계속 쪼물딱거리며 베르뷔트가 입술을 삐죽이는데 순간 세이렌이 몸을 부들 떨며 애앵 울었다.
그에 깜짝 놀란 베르뷔트가 저글링이라도 하듯이 허공에 슬라임을 던졌다 받으며 보니 슬라임의 이마에 몇 가지 기호가 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 써보긴 했으나 이 통신용 아티팩트는 쓸 때마다 긴장이 된다니까.
베르뷔트가 큼큼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선 슬라임을 쥐었다.
<안녕, 베르뷔트.>
“아, 안녕하세요.”
곱게 곱게.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처럼.
베르뷔트가 살짝 찡그린 눈가와는 달리 목소리는 부드럽게 흘렸다.
그날 이후 한 번씩 이어진 대화. 베르뷔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세이렌을 통한 대화만 보자면 아델리안은 지극히 정상적인.
아니지. 오히려 꽤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종종 유머러스한 데다 깊이는 모르겠으나 아는 것도 제법 있었으며 베르뷔트 자신이 대충 흘려 말한 것도 기억해 내 되묻는 센스까지.
정말 망나니인 걸 미리 알지 못한 채로, 거기에 베르뷔트 자신이 보통의 소녀였다면 홀랑 넘어갔을지도 모르지.
외모만큼은 멀쩡했으니까 더더욱.
“어머… 그래서 아델리안 공자께서는 내일 파티에 못 오신다는 거예요?”
<그런 거지. 좀 아쉽긴 해. 그런 곳이라면 내가 너에게… 크흠, 아니다.>
베르뷔트는 침대에 엎드려 건성으로 듣다가 묘하게 이어진 말에 고개를 들어 일어났다.
‘내가 너에게, 내가 너에게?’
이거 설마, 드디어 제 손아귀에 넣을 상황이 도래한 것인가?
하긴 아델리안 같은 망나니가 어디 가서 자신 같이 완벽한 데다 아델리안을 망나니가 아니라고 여겨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러니 제 앞에서는 기를 쓰고 좋은 사람인 척 구는 거 아니겠어?
베르뷔트가 샐쭉하게 웃었다. 저 멍청이는 나에게 빠진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이제 뼛속까지 교단과 자신에게 바치게 해야지.
아델리안이 가진 돈과 그 아름다운 콜렉션들까지도.
그동안 역겨움을 참으며 아델리안에게 청순가련한 소녀인 척 군 대가를 드디어 갈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베르뷔트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아델리안 공자가 참석하지 않는다니, 내일 가든파티가 기대되지 않네요.”
<그래도 무려 12황자께서 주최하는 파티니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테니까.>
원래도 인기가 많은 게 샤하드 황자의 파티였는데 내일은 대대적으로 공사까지 한 정원의 첫 공개가 있는 파티라 초대장 한 장 한 장이 가치가 높은 상황일 테지만.
‘아델리안이 데리고 있는 그들을 내 손에 넣는다면야.’
베르뷔트의 머릿속이 팽팽하게 돌아가다 계산이 끝난 듯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실례만 아니라면… 공자님께 제가 초대장을 보내드려도 될까요?”
<베르뷔트가? 그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찾으면 아마 한둘 정도는 양도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냥 그 정도만 알아보는 거니 무리하고 할 건 없어요.”
물론 피치 못할 일이 생기기야 하겠지. 갑자기 다리가 부러져 거동이 불편하여 양도를 해야 한다거나.
포션이나 신관의 힘으로도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나을 정도로 곱게 부러지지만 않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
<혹시 생긴다면, 그럼 뭐 나야 좋지.>
약간 멋쩍은 듯 말하는 아델리안이 잠시 세이렌을 멀리 떨어트린 듯 작은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당장 꽃가게를 알아봐! 보석가게도! 멍청한 놈들아, 빨리 움직이라고! 쓸모도 없는 것들.>
보통사람이라면 못 들었을지 모르지만. 아주 희미하게 들린 그 날카롭고 짜증 섞인 목소리에 베르뷔트가 입꼬리를 비틀어 조소했다.
‘역시 쓰레기야.’
<그럼 내일 봐, 베르뷔트… 내일 꼭 할 말도 있으니까. 알았지?>
“너무 기대돼요.”
여러모로.
베르뷔트가 눈은 차갑게 가라앉은 채 입만 둥글게 호선을 그리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