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4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45화(145/373)
“끝이야.”
“…고작 이런 것으로?”
샤하드는 나무 막대 같은 것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한번 쿡 찌른 로브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목이 상했는지 탁한 음색을 흐리는 그 사내는 마법이라도 쓰고 있는 건지 로브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도 다 가리지 못한 하관이 눈만 감으면 흐려진다.
저번처럼, 이번에도 떠나면 그의 모습은커녕 목소리도 흐려지겠지.
저 정도 인식 저하 마법을 사용할 만한 존재는, 글쎄. 엘프 장로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각과 더불어 기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고난도의 마법.
단순하게 인간 마법사들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섰으니까.
‘그렇다 해도.’
지난 세월 그 어떤 마법사도 신관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봉인을 고작…….
‘나무 막대 하나로?’
솔직히 말해서 저 로브의 사내 능력이 제법 괜찮다는 건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이건 다르지.
“정 의심된다면 누구라도 불러 확인해 보지 그래. 봉인을 알았던 그때처럼.”
탁하면서도 유들유들하게 웃는 목소리.
로브 안으로 막대를 쑥 집어넣으며 한발 물러서는 그 꼴마저 오만함의 극치라 잠시 노려보다가 샤하드가 허공을 쥐듯 손을 움직였다.
“…당장은 아무 느낌도 없다만.”
“당연하지. 봉인을 깨트렸다고는 하나 그건 트레잇을 풀어준 거니 당장 근육질이 된다는 식의 변신이 아니야.”
너 하기에 달렸지.
그 따라붙은 뒷말에 샤하드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나 하기에 달렸다?”
“그래.”
그렇다면 황족 중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겠지.
“오늘 당장은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일주일, 한 달, 일 년 후 당신은 나에게 감사의 표시를 다시 한번 더 하게 될 거야.”
“…얼마든지 해주지. 정말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된다면.”
악마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저 오만하디오만한 생명체에게 고개라도 숙일 수 있으므로.
“그래? 좋아. 다음에 봤을 때 날 놀라게 한다면 선물이라도 하나 해주지.”
샤하드는 로브의 사내가 하는 말에 비틀어 웃었다. 그는 자신이 지닌 갈망이 얼마나 거대하고 깊은지 모르고 있기에.
“기대할게.”
* * *
[샤하드 폰 테이트리아―제12황자]대표 Traits : [허약(B)] [예민(B)]
히든 Traits : [천재(B)] [무골(B)] [신성(C)]
샤하드를 믿고 나중에 폭탄을 심는 원숭이의 손 대신 일반 해봉 아티팩트를 썼으니 무럭무럭 자라서 세리아를 견제해 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래서 한번 의욕에 불도 당길 겸 선물 운운했는데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재능은 확실한데 말이야.’
봉인 트레잇으로 분류되어 있던 천재와 무골, 신성이 히든으로 올라섰다.
아직 샤하드는 체감하지 못했겠지만 며칠 안으로 실마리는 잡을 터.
천재가 붙은 이상 봉인이 풀린 후 두뇌 회전에도 가속도가 붙을 테고, 무골이 붙었으니 단련하던 것도 예전과 다를 것이다.
‘신성은 깨닫기 좀 애매하긴 한데.’
뭐 황족 정도 되면 자신이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이것저것 다 시도해볼 테니 상관없겠지.
깨달은 뒤 어떤 쪽으로 스킬 트리, 아니지. 트레잇 특화를 잡을지도 궁금하긴 하다.
천재를 중점으로 잡으면 아무래도 지략 쪽으로 높아질 테고 무골을 중점으로 잡으면 신체적으로 강점이 도드라질 것이며 신성을 잡으면, 글쎄 성기사나 신관이라도 될 수 있겠지만.
‘뭐든 나쁘지 않아.’
나는 제로의 도움으로 슬쩍 빠져나와 로브를 갈아입으며 입을 열었다.
“시간은?”
“늦지 않았습니다, 아델리안 님.”
“좋아.”
케인이 오기 전 즐기기로 했으니까.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 제국 테이트리아.
그리고 그곳의 황도인 이곳에는 얼마나 볼거리가 많겠는가.
어지간한 중소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트레잇을 활용한 연극을 예약해 뒀는데 하필 샤하드가 이때 부르는 바람에 나와 제로만 좀 뒤처졌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연극을 시작하지 않고 대기시킬 수도 있으나 이후에 저녁도 먹고 하려면 시간 조율을 해야 했기에 그냥 먼저 보라 해뒀으니 보고 있겠지.
“루나는?”
“연극장 하나를 통째로 대여한다 했더니 넘어가는 눈치였습니다.”
아인족 차별이 이렇게나 심할 줄이야.
단순하게 인간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연극장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다니.
그나마 돈과 권력으로 입 다물게 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아델리안이라 가능했던 거고.
‘유독 황도가 심하단 말이지…….’
아무리 내가 부유감 덕에 소소한 것까지는 캐치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나, 지금까지 돌아다닌 다른 도시에 비해 유독 제국의 황도는 차별이 심하다.
“도착했습니다.”
“그래.”
원작에서야 악신교단 덕에 교단 대 전 대륙이라는 구도가 형성되어 인간이고 아인족이고 상관없이 전우애가 형성되지만.
‘이번엔 어떨지.’
깊어지는 생각을 잘라내며 일단은 눈앞의 것에 집중한다.
오만하게,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는 그리해도 되므로.
그들의 말대로라면 유서 깊은 이 대연극장에, 단 한 번도 들인 적 없는 아인족을 데리고 들어가 귀족의 얼굴에, 인간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망나니라도.
감히 크루거의 적장자라 반발할 수 없도록.
나는 시선을 내리깔아 버러지라도 보는 것 같은 눈을 한 채, 내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극장주를 지나쳤다.
뒤에서 내 욕을 할수록 루나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테니.
그냥 망나니 하나가 제멋대로 한다 생각하겠지.
“도련님, 여기 앉으세요.”
“얼른 와 얼른! 이제 막 시작했어.”
―관리자님, 레이첼이 연극 시작 전에 군것질거리를 다 먹었습니다.
“의자 좋네. 그러게, 이제 시작이라 늦진 않았어. 쿠키나 과일은 더 달라면 더 줄 거야.”
어차피 이 극장엔 지금 관객은 우리뿐이니.
나를 반기는 아이들의 말에 대답한 뒤 조개가 입을 벌린 것같이 푹신한 소파 위에 몸을 던졌다.
가장 좋은 자리에 누워서 내 일행 외엔 다른 사람도 없이 이렇게 연극 관람이라니. 제법 괜찮네. 중간에 자도 되고…….
나는 소파에 기대 누워선 초롱초롱 눈망울로 별 무리를 뿌리는 루나와 제로, 리프와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반성하자.’
확실히 문화생활도 중요한데 내가 너무 간과한 부분이 있지.
“우린 안 돼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사랑!”
이곳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투랑 연극용 말투는 좀 다른가.
내용은 무난한 사랑 이야기였다. 결국 사랑은 신분도 나라도 넘어선다는 그런 메시지.
흔하디흔한 주제였기에 사실 지구에서 영화를 비롯해 온갖 매체에 찌들어 살던 나로서는 지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트레잇을 적절히 사용하니 불로 이루어진 새가 실제로 날아다니고 스턴트맨을 써야 할 몸동작을 무대 위에서 하니 이것도 꽤 재미있다.
처음엔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나중에는 일어나 제대로 앉아서 봤다니까.
“그래두 결국 사랑이 이루어져서 다행이에요.”
“맞아.”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건가 봅니다.”
―감정이란 신비하군요. 관리자님.
원래도 핑크색이던 눈이 울어서인지 좀 더 짙어진 채로 말하는 루나의 귀를 말랑하게 당기며 모두 여운에 잠겨있는 걸 바라보는데 레이첼이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올린다.
“하여간 인간들은 사랑을 너무 좋아한다니까. 그나저나 다 좋은데 배우는 그렇게 미인만 골라 써놓고 설정은 평범한 사람인 거 좀 웃기지 않았어?”
하긴, 그렇게 말하면 좀 그런가. 하지만 안경 벗으면 굉장하다. 이런 건 지구에서도 많았지.
내가 적당히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 레이첼이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어쩐지 못된 얼굴로 씩 웃는다.
“그런 의미로 아델리안은 이렇게나 미인이 많은 파티를 꾸린 것에 사심이 하나도 없었다고 할 수 있어?”
갑자기 웬 시비지.
연극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레이첼이 어깨동무하며 하는 말에 내가 어깨를 툭툭 퉁기듯 그 팔 떨어지게 하며 입 열었다.
“맛있는 밥 먹고 헛소리 금지.”
“아, 왜. 말해 봐. 여기서 누가 제일 취향이야? 어? 어? 어? 다 외모로는 어디 빠지지 않는 이들만 모아놓고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다고? 거짓말!”
레이첼이 징글징글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루나가 진한 분홍색의 눈동자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관리자님. 데이터 수집을 위해 답변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아니, 무슨 데이터?
거기에 리프도 노란색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이상한 소리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 어?”
“어딜 도망가려고?”
내가 고개 저으며 이런 질문 자체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가려는데 레이첼이 나를 벽으로 민다.
정면에는 레이첼이, 오른쪽엔 루나가, 왼쪽엔 리프가.
나를 살짝 조여들 듯 서는데 나는 도와달라는 눈으로 레이첼의 어깨너머에 서 있는 제로를 바라보았다.
“뭐야, 제로야? 어딜 봐? 어?”
“아, 무슨 개소리야!”
내 구원의 눈빛 발사에 제로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레이첼이 단칼에 동아줄을 잘라버린다.
제로가 내 눈을 슥 피하는 걸 보니, 저 녀석 날 버렸어?
“솔직히 이런 건 케인 없을 때 물어봐야 된다고. 그렇지?”
“일단 뭔가 급이 다른 건 빼구 해야 하긴 해.”
―동의하는 바입니다.
걔가 있건 없건 뭔 상관이야, 이 사람들아!
사랑에 관련된 연극이 우리 파티에 미치는 영향을 3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정답! 아델리안을 놀려먹을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
나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에 앓는 소리를 흘렸다.
“뭐? 나라고?”
“어떻게 방금 내가 낸 앓는 소리가 레이첼로 들리냐. 네 귀 문제 있는 거 아니냐?”
부담스럽다. 레이첼이 나보다 키가 크기에 지금 정면에 바짝 붙어 선 지금 눈 둘 곳도 애매하다.
앞만 보자니 좀 그렇고 내려 보자니 자존심 상하고 올려보자니 저 히죽거리는 얼굴이 열 받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자니 오른쪽엔 루나가 기대하는 눈으로, 왼쪽엔 리프가 얼른 데이터 내놓으란 표정으로 서 있는데.
이거 누굴 고르는 순간, 다들 초등학생처럼 얼레리 꼴레리 하며 날 놀려먹을 의지로 가득해 보인다.
“아… 그러니까 말이지.”
그래도 대충 말해 주고 끝내자.
사실 강수호일 때 최애는 레이첼이었다. 피폐한 케인의 파티에서 그나마 제일 밝고 에너지가 넘쳤거든.
‘그런데 에너지가 넘쳐도 너무 넘쳐.’
루나는 사실 원작에서건 이노센트 사가에서건 말수가 거의 없었다. 가끔 옆에 있긴 한가 싶을 정도의 대사와 더불어 게임에서도 클릭해 봐야 기본 대사가 ‘…….’ 였으니 말 다 한 거지.
그러다 전투에만 들어가면 광분 트레잇 덕에 제멋대로 행동하고.
‘미안하다, 루나야.’
그렇지만 지금은 얼마나 귀여운지 잘 알고 있으니까 봐주라.
그리고 리프는 원작에서는 망가졌으나 끝까지 곁을 지키던 모습으로, 게임에서는 꼭 사수해야 할 든든한 탱커로 참 애정이 있긴 했는데.
직접 보니 묘하게 허당끼도 있고 호기심도 많고.
나는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내 취향은.”
눈앞의 세 명 말고도 제로까지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씩 웃었다.
“나야.”
내가 내 가슴 위에 손바닥을 얹으며 하는 말에 모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른다.
오랜만의 갈고리 수집이네.
“네?”
“뭐라고?”
―관리자님?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절대 너희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생각이 없어요, 난.
게다가 아델리안은 내 적금을 깨서 펀딩한 대가인걸.
최고 금액의 특전이었으니 그냥 뚝딱 만들어줄 리가.
외형부터 머리 색, 눈 색을 비롯해 사실 설정의 일부분도 내 의견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존재다.
그러니 혹 레이첼이 진실의 눈을 쓴다 해도 절대 거짓이라고 나올 리 없지.
나야 뭐 당시에는 스토리의 큰 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로 등장을 요구했지만 제작사에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초반에 꽤 비중 있는 악역으로 게임에 넣어줬지.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함정 카드 아냐?’
순간 내가 레이첼을 노려보는데 레이첼도 나를 어이가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응, 도련님 이름으루 잡은 레스토랑 여기서 가까워.”
―저 오늘 많이 먹을 겁니다.
나를 가로막고 있던 사람의 벽이 스스스 풀리더니 나를 버리고 먼저 나간다.
“어?”
“아델리안 님. 전 존중해 드립니다.”
“어?”
잠시만, 너네 어떻게 이해했는데. 아니 잠시만?
지금 와서 농담이라고 말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힐 분위기다. 물론 누굴 고를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반응일 거라고도 생각 안 했는데.
일단은 내가 대충 웃음으로 무마하며 같이 나가는데 순간 뇌리로 누군가의 음성이 내리꽂혔다.
<아델리안.>
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