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5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50화(150/373)
“언제 제 가르침을 따라올 건지 원…….”
“죄, 죄송합니다…….”
양면의 신 바사하의 성녀. 에리엘이 오늘도 붉게 번지는 양팔을 소맷자락으로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아델리안 크루거를 끌어들이기 위해 움직일 때는 잠시 쉬던 체벌이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어느 순간부터 도박장에 나오지 않는 아델리안 덕에 다시 시작된 가르침.
“무능력함으로 소문난 자이니 곧 연락이 올 겁니다. 그러나 그동안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는 법입니다. 매일 정진하세요.”
그에 기죽은 얼굴로 에리엘이 쓰라린 팔을 매만지다 마른 천으로 회초리를 닦는 대신관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질문이 하나 있사온데…….”
에리엘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중년의 대신관이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말 잘 듣는 아이일 뿐인 성녀의 입에서 제대로 된 질문이 튀어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성녀께서요? 한번 말해 보세요.”
에리엘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였다.
“아델리안 공자에게… 새벽까지 보여주신 건 조금 과했던 거 아닐까요……?”
신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어려워 배우고 또 배워도 에리엘의 작은 머리로는 다 이해하지 못했으나 한 가지는 알았다.
신은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만큼 강대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것 외에도 수많은 방법이 있으나 그게 가장 보편적이라는 것을.
신념과 믿음. 제물과 희생.
그것들은 신을 강하게 만들고 강해진 신은 자신들의 신관을 통해 권능을 세상에 나눈다.
그렇기에 새벽은 특별한 곳이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은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이가 없었고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하지만 소위 말하는 기적을 거래한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만신전에서 어떻게 나올지……. 심하면 세력이 작은 양면의 신 바사하는 이단으로 몰릴지도 모르는 법인데.
“망나니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혹시 그가 입을 함부로 열면…….”
에리엘의 말에 대신관이 코웃음을 쳤다. 마른 천으로 닦아 목함에 넣었던 회초리를 다시 꺼내며 고상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제가 한번 말한 것들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셔야 성녀라고 할 수 있을진데.”
쯔쯔쯧.
그 혀 차는 소리.
한 번 쯧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가 기어들어 가고 어깨가 좁아지고 등을 웅크리던 에리엘이 대신관이 허공에 휘익 하고 회초리로 가르는 소리에 이제는 슬슬 보라색으로 번지는 팔을 걷어 내밀었다.
“괜히 성녀께 그를 연달아 이기게 하며 도박장에 몇 번을 들락날락거리게 한 후에나 새벽을 보여 주었는지 아십니까.”
도박장에 언제나 피워둔 은은한 미향.
일반 귀족들의 파티에서도 맡을 수 있는 흔한 미향이지만 그 배합법이 조금 달랐으므로.
아주, 아주 연하게 섞인 한 가지 약초는 몇 가지 암시와 조합되면 암시장 ‘새벽’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그것을 입 밖에 올리려 할 때 느껴지는 위화감과 불안감. 죄를 짓는 것 같은 죄책감.
정신을 뒤흔드는 그 금제에 아델리안이란 사내는 스며들어 있을 터.
“그는 새벽에 대해 언급할 수 없을 겁니다. 하려고 시도하면 더 좋죠.”
그 위화감을 느끼고 당장이라도 당신을 찾아 헤멜 테니.
하며 중년의 대신관이 입꼬리를 올린 후 회초리를 휘둘렀다.
* * *
“그 새벽이라는 곳 말이야.”
“네. 아델리안 님.”
“간단하게 설명은 모두에게 했지만. 어때, 다들 의견 좀 말해 봐.”
소울이라는, 새벽에서만 통화는 화폐를 모아 서로 원하는 것을 거래 가능한 암시장.
거기까진 좀 수상쩍어도 대륙 어디에나 있는 그런 암시장이긴 했다. 게임에서도 새벽 말고 다른 암시장 스테이지가 나온 적 있고.
그런데 막상 와보니 게임에서 보던 특수한 무기나 재료 말고, 그 거래 가능한 것에 기적이란 게 포함되어 있으면 또 말이 다르지.
“꼭, 어? 밥 먹을 때.”
레이첼이 투덜거리는 것에 나도 K-가부장 느낌이 좀 들어서 머쓱했지만 나름대로 변명은 있었다.
“내가 회의 좀 하자면 늘상 도망치는 게 누구?”
“아, 일단 말 계속해 봐.”
갈색의 윤기 나는 소스에 달고 짭짜름하게 졸인 고기 조림을 빵에 얹어 먹던 레이첼이 얼른 말하라며 재촉했다.
“사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적당히 있을 법한 암시장인데 거래되는 항목에 문제가 있어.”
이것도 지금 양면의 신 바사하의 교단 쪽에서 먼저 접근한 덕에 알 수 있었던 거지, 일반적인 루트로 새벽에 들어갔다면 그 기적이라는 것이 거래되는지 몰랐을 거다.
“그런데 도련님. 그게 정말 가능한 건가요? 그게 가능하다면 다른 신의 신전에서는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 부분이 맹점이긴 해.”
게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원작에서도 만신전의 신들은 크게 대두되지 않는다.
악신교단이 그리 설쳐도 그 흔한 용사 하나 내려주지 않고 타파할 계시 하나 제대로 내려오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고 아주 쓸모없냐면 그것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하나.
아주 간접적으로만 움직임을 보이는 그런 느낌.
그런데 바사하는 대놓고 기적을, 아예 판매 물품처럼 올려놨단 말이야. 새벽이란 곳에서.
아무리 바사하의 교단이 관여된 곳이라고 그 기적이란 게 행해지는 메커니즘이 영 상상되지 않았다.
“거기에 그 소울이란 걸 많이 모을수록 강력한 기적을 살 수 있던 모양인데.”
“그게 어디까지 가능하지.”
케인이 느리게 눈동자를 움직여 날 바라보다 던지는 말에 나도 잠시 눈을 굴리며 적당히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꽤 자신만만한 태가 났으니. 글쎄… 못해도 죽은 사람 정도는 살릴 수 있지 않겠어?”
대신 그건… 원작을 뒤집어봐도 그리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한 곳만 제외하면.
“근데, 그거 소울이란 거… 모을수록 강력한 기적이 가능하다며?”
레이첼이 잔에 담긴 술을 한 방에 삼키고는 기름이 덕지덕지 묻은 입술을 소매로 쓱 닦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진짜 엄청나게 모으면 그래도 명색이 신인데, 사람 하나 살리는 게 끝일까?”
리저렉션이 드래곤도 쉽게 남발할 수 없는 마법이라고는 하나 일단 가능한 수준에 있고 보통 사람의 몸으로 반동 없이는 쓸 수 없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반동을 받아서 쓸 수는 있다는 소리.
“그렇다면 상상할 만한 강력한 기적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로가 셀러드를 뒤지며 하는 말에 리프가 칠판에 적기 시작했다.
[천 년 전의 과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라든가.]어쩐지 글자인데도 약간의 투덜거림이 섞인 거 같은 건 내 기분일까?
그 글자를 보더니 제로가 슬쩍 눈을 돌린다.
“아니면 반대로 대륙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달라거나.”
“인마.”
나는 케인 쪽으로 포크를 들어 허공을 쿡쿡 찔렀고 케인은 당당하게 뭐 어쩔 거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 조만간 정신 교육 다시 들어가야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소원두 가능할까요?”
루나의 말에 내가 흐음, 하고 숨을 흘렸다.
“글쎄, 그것에 드는 소울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저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지구에서 서브 컬처나 파댄 나로서는 영 안 좋은 것만 생각난단 말이지.
실제로 내가 가진 아티팩트 중에 대륙판 원숭이 손이 있지 않은가.
소원을 이루어 주는 대신 그 방향이 절대 제대로 되지 않는.
루나가 말한 모든 이들이 행복해진다는 소원을 예로 들자면 통속의 뇌처럼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거지.
“궁금은 하네. 뭐든 될지.”
레이첼이 어쩐지 기분 나쁜 것 같은 얼굴로 한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올린 뒤 투덜거린다.
“뭐든 그 소울이란 게 도대체 어떤 식으로 얻는 것이며, 왜 다른 신들은 그런 걸 안 하는지. 다른 신들 중에서도 그런 걸 하는 신이 있다면 왜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지 의문은 드네.”
수상해도 좀 수상쩍은 게 아니란 말이지. 하며 내가 스푼으로 잘 삶긴 옥수수 알갱이를 잔뜩 퍼 입에 넣는데 리프가 입을 열었다.
―원하신다면 파티를 나눠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라 사료됩니다.
“안 그래도 잠깐 그 생각 했는데. 그 새벽은 누가 봐도 초대받은 사람 아닌 이상 우연하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종종 말했지만 파티를 나누는 건 어지간해선 시도하지 않는 게 나는 낫다고 보는 편이라.
가면 갈수록 뒤틀린 황천 같던 파워 밸런스를 생각해 본다면… 사실 진짜 운 나쁜 경우 저번에 있었던 레피스 사건처럼 지나가다가 드래곤이나 그와 맞먹는 상대랑 조우할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했다.
적어도 다 같이 있으면 뭐라도 해볼 만하지만.
‘나 자신이 들어간 파티의 전력이 너무 낮아져.’
그렇다고 무조건 케인을 나랑 붙이면 파티를 나누는 의미가 흐려지고.
‘그러니 우리는 한 가족처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는 좀 아닌가?
나야 원래 이곳 사람도 아니고 만약 내던질 필요가 강제되는 순간이 오면 내가 제일 가성비가 좋긴 하겠지.
“도련님. 또 이상한 생각 하시구 계시죠.”
“…무슨 소리야?”
“눈의 움직임이나 어색한 얼굴 근육 사용을 보니 맞는 것 같군.”
케인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뭐 그래 봐야 또 쓰잘머리 없는 망상이겠지. 이런 콩 같은 거 말고 고기를 먹어, 고기.”
내가 잘 퍼먹던 옥수수 그릇을 빼앗아 가고 갑자기 소스 가득한 고기조림을 빵과 함께 레이첼이 내 앞에 놓는다.
―거기에 요즘 수면 시간이 짧습니다, 관리자님.
“아, 그건 요즘 일이 좀 많잖아.”
“분위기를 보니 오늘은 일찍 주무셔야겠습니다, 아델리안 님.”
와, 오랜만에 다굴당하네?
나는 조금 억울한 눈으로 빵에 고기조림을 소스와 함께 가득 올려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솔직히 우리 중에 내가 제일 많이 자지 않나?”
왜 내가 자는 걸 걱정하지? 하듯 입 열자 순간 다들 미묘하게 눈이 가늘어지는 게…….
“억울하면 너도 오러 깨우치든가.”
레이첼이 던진 말에 난 말 없이 씹던 빵을 삼켰다.
* * *
“진짜 가능만 했으면 한번 머리 뚜껑을 열어 보고 싶… 악!”
“그런 말 하면 되구, 안 되구?”
레이첼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하다 옆구리를 문질렀다. 아무리 그래도 손가락에 오러를 실어 찌르는 게 어디 있냐며 루나에게 꽥꽥 되는 레이첼을 보다가 제로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 암시장의 배후로 추정되는 신 말입니다.”
“바사하 말인가.”
케인의 대답에 제로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아무래도 미궁에 있었다 보니 보편적인 상식은 아무래도 모자람이 있는지라.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그에 케인이 안 그래도 적은 바사하의 신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챠비드 출신의 루나와 1천 년간 비공정에 있던 리프.
거기에 세월에 비해 뇌에 기록된 게 없어 보이는 레이첼을 한번 시선으로 훑은 뒤 관자놀이를 매만지곤 입을 열었다.
“나도 아주 자세한 교리나 성격은 알지 못한다만… 아는 것만 말해 주지.”
케인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숨을 고르더니 느리게 입을 열었다.
동전, 그리고 양면의 신. 바사하.
“동전이라는 것은 단순한 골드나 실버가 아닌, 치러야 하는 대가를 보통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양면이라 하면 이중적인 의미로 생각할 텐데.”
“예, 그렇죠. 아무래도 아델리안 님께 들은 것만 따져도 바사하의 신관이면서 다른 신의 대신관을 누군가가 하고 있다거나.”
“그러게? 그거 아냐? 내가 들어도 딱 그거구만.”
이중적이지 않습니까? 하는 제로와 자신의 의견도 얹는 레이첼을 보며 케인이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면서도 말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은 비틀어 접지 않는 한 절대 마주 볼 수 없으므로 아무리 얇디얇은 것의 양면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평행하며 불가침적이고 불가해한 것과 닿아 있지.”
케인의 그 말에 제로가 시선을 내리깔며 무언가 기억을 더듬듯 눈동자로 허공을 가로 그었다.
“그런 것의 신이라면 잠시 잠깐 그 양면을 관통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느리게 울리는 제로의 말에 케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