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5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55화(155/373)
까아악―
패밀리어 8호가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비록 보는 이 하나 없는 나뭇가지 위였지만 한껏 깃털을 부풀린 가슴을 앞으로 위풍당당하게 내밀고 그 좁은 가지 위로 쭉쭉 뻗은 새다리를 자랑하며 걸어댔다.
까아아악―
역시 나야!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정보를 주인에게 넘기겠어?
울며불며 산맥을 넘어 수도까지 날아왔던 과거도 잠시.
패밀리어 8호는 나뭇가지에 달린 작고 달콤한 열매를 한번 쪼아 먹으며 칵칵 웃었다.
미궁 도시 라비린부터 챠비드를 지나 아리나이드에 있는 정령의 숲은 물론이고 접경지 가비오렌까지.
그 머나먼 길을 쫓아다녔던 덕분일까.
패밀리어 8호는 아델리안 일행의 마나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마나라기보다는 그 흔적들.
처음엔 패밀리어 8호의 주인이 쥐새끼라 부르던 그 검은 머리의 사내조차도 미숙하여 종종 마나를 흘리고 다녔다.
그땐 주인의 시선으로 고작 흑마나나 뽑아먹을 쭉정이와 쥐새끼. 그리고 제물로 쓸 만한 토끼족이었는데.
까악―
어느 순간 하나둘씩 사람이 늘더니 이젠 마나의 잔향을 추적하기도 힘들 정도로 강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밀리어 8호가 그들의 뒤를 계속해서 쫓을 수 있는 이유.
칵칵칵―
패밀리어 8호가 웃으며 열매를 하나 더 부리로 쪼아댔다.
단 하나의 인간을 제외하면 너무 완벽하게 지우는 마나의 잔향. 그리고 그 한 명의 인간.
금발의 사내.
고작 흑마나나 쥐어짜고 버릴 쭉정이는 미묘한 잔향을 종종 흩뿌리곤 했다.
평소에는 비 온 뒤 숲 같은, 돌 틈의 소담한 들꽃이 짓이겨진, 그런 자연에 가까운 잔향.
그러나 한 번씩 아주 가끔.
요즘 같이 다니는 붉은 머리의 여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잔향을 흩뿌렸으니까.
그것은 꾸준히 그들을 따라다니며 가끔 있던, 전투 후의 남은 잔향을 기억하고 쫓은 패밀리어 8호만이.
울고불고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온 도시를 날아다니면서 눈으로 한 땀 한 땀 뒤져 찾아대던 패밀리어 8호만이 가능한 업적.
그리고 그 덕에 그 검은 머리 사내가 갑자기 외곽으로 튀어나온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금살금 쫓아가 결국 그를 목격하지 않았던가.
까악― 칵칵칵―
가낙스.
대륙 최강의 인간이라 여겨지는 노인.
그가 검은 머리 괴물과 조우하는 순간을 목도한 덕에 비록 한참을 패밀리어로 돌고 돌아 결국 주인의 칭찬을 받지 않았나.
게다가 받은 흑마나 자체가 패밀리어 1호보다 월등하게 적고 단 한 번도 흉심을 품지 않아서 그 검은 머리 괴물이 패밀리어 8호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도 8호만의 장점!
달콤하게 잘 익은 과일을 한 번씩만 쪼아 먹다 보니 지나가던 아이가 그게 얄미운 듯 돌을 탁 던진다.
그게 크게 홰를 치며 날아오른 패밀리어 8호가 소화도 시킬 겸 미리 봐둔 검은 머리 인간의 숙소 위를 한 바퀴 도는데 순간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니까. 나가자. 이제 잠시 수도는 안녕해야지.”
“아, 놀지도 못했는데!”
“다시 올 거구. 걱정 말아.”
깍?
얼른 여관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아니, 제국의 수도에 올 정도면 적어도 3개월은 기본 아니야?
저 파티의 일정을 주도하는 저 금발 머리 인간은 3.3.3법칙도 모른단 말인가!
챠비드에서는 길어도 3일, 라베스에서는 짧아도 3주 그리고 대륙 최고의 도시라는 제국의 수도에서는 못해도 3개월!
까마귀인 자신도 아는 이 유명한 상식을 저 금발 머리 인간 놈은 단박에 무시하고 또 어딜 가려고!
패밀리어 8호는 날개를 들어 눈가를 슥슥 훑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한동안 있을 것 같아서 이곳으로 다른 패밀리어들도 모여 지하 수로에서 주인님을 위한 작업도 같이하고.
하하호호 패밀리어들만의 사교 생활을 누리려 했더니…….
까아악…….
패밀리어 8호는 더 볼 것 없다는 듯 날아올랐다.
저 검은 머리와 금색 머리의 인간들이 어디 가는지 더 듣고 있을 필요도 없지.
보나 마나 워프 게이트겠지!
돈이 많으니까!
뒤따를 필요도 없이 크게 날갯짓하여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가 미리 대기했다.
유능한 패밀리어는 늘 적보다 한발 앞서는 법!
미리 게이트 소에서 잠복하고 있던 패밀리어 8호는 검은 머리 괴물의 파티가 들어가는 워프 게이트의 입구를 확인한 뒤 그 뒤에 이어 들어가는 귀부인의 큰 모자 위에 납작 엎드렸다.
* * *
“혹시 아시는 새인가요?”
“에구머니! 이 까마귀는 뭐야?”
뒤에서 일어난 소란에 고개를 돌려보니 웬 까마귀 한 마리가 높이 날아 간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도 모자 위에 새를 올리는 게 유행했던 거 같은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 보지?
“으아, 짠 내.”
“공기가 새롭지?”
나는 코를 문지르며 낯선 표정을 짓는 레이첼을 보며 웃었다.
“이제 도련님. 무엇부터 할까요?”
“숙소를 정한 뒤 밥부터 먹고 정보를 조금 모아보자. 그러고 난 뒤 배를 하나 빌리면 될 거 같거든.”
루나의 질문에 내가 주위를 훑어보며 말하는데 옆에서 레이첼이 화색을 띤다.
“배?”
“배.”
“배! 큰 배!”
양손을 번쩍 들고 좋아하는 게 꼭 어린애 같네.
그러고 보니 레이첼은 접경지 가비오렌에 줄곧 있었고.
천천히 케인과 루나, 제로와 리프의 얼굴까지 확인하니 한 놈 제외하곤 전부 무언가 기대하는 눈치.
“참 나. 그래 아주 큰 배로 대여하지 뭐.”
원래는 아르만의 도움을 받아 작은 군선으로 은밀하게 돌아다니려 했는데…….
저렇게나 기대하는 얼굴을 저버릴 수가 없지, 내가.
“그런데 후배님은 살면서 배 타본 적 없습니까?”
제로가 순둥한 얼굴로 레이첼에게 웃으며 묻는다. 드래곤이니 그 오랜 시간 동안 설마 배 한 번 타본 적 없냐는 그런 도발인가.
저 순한 얼굴로?
물론 제로 성격에 진짜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것일 테니 레이첼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는 책으로 100번 배 타는 거 읽으면 배 탄 거냐? 연극으로 배 타는 거 보면 탄 거야?”
하긴, 드래곤에게 유희는 한낮의 꿈 같은 것.
레이첼로 유희 중일 때는 다른 유희의 기억은 자기의 것이 아닌 다른 경로로 얻은 지식이나 다름없는 거겠지.
제로도 알겠다는 듯 끄덕이고는 그 큰 덩치를 웅크리듯 루나에게 무언가 속삭인다.
“그럼 숙소 정찰조 다녀올게요, 도련님.”
“어?”
내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루나가 기분 좋게 웃으며 리프와 함께 간다.
“여긴 수도가 아니니까 루나 선배님께 실컷 둘러보고 오시라 전했습니다. 전 레스토랑 괜찮은 곳 알아보겠습니다.”
그에 제로가 꾸벅 인사하곤 간다.
나는 덜렁 케인과 레이첼이랑만 남아 서 있었다.
“햐. 우리 임무가 막중하다. 그치?”
그리고 잠시 멍한 내 어깨에 레이첼이 슬쩍 팔을 올려 어깨동무한 뒤 하는 말에 내가 으쓱이듯 어깨를 퉁겨 팔을 밀며 대답했다.
“뭐가.”
내 말에 아이쿠 하며 가증스러운 소리를 내던 레이첼이 팔이 빠진 거 같다며 휘적휘적대다가 이내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루나랑 리프는 숙소. 제로는 식당. 그럼 우린?”
“정보 길드?”
“…어이가 없네.”
내가 태연하게 대답하니 레이첼이 입술을 삐죽인다.
“케인. 네가 말해 봐.”
“해양 몬스터의 확인.”
“와. 나도 나지만, 너도 너야!”
둘이 똑같으면서 뭘.
사실 레이첼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곱게 대답해 주기 싫어서 그렇지.
“놀기 괜찮은 곳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캬. 내 말이 바로 그거지.”
내 말에 레이첼이 싱글벙글 웃는다. 그리고 케인은 무언가 알아챈 거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에 내가 입 모양으로 ‘쉿’ 하니 그 녀석이 피식 웃는다.
역시 케인, 눈치도 빠르지.
레이첼이야 술집이나 도박장, 혹은 내기 결투 클럽 이런 걸 생각할 확률 100%지만.
‘분명 군도 어디에 있을 거란 말이지.’
나는 이번 남해 군도행에서 얻을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이제 제국의 수도도 아니니 한번 말해 보지 그래?”
“뭘?”
“그 네가 힐러인가 뭔가 하고 말했잖아. 여기 신관이라도 있는 거야?”
확실히 바닷가라 그런지 해산물이 풍부하다.
나와 케인, 레이첼이 버터를 발라 구운 문어다리꼬치를 하나씩 들고 걷는데, 레이첼이 묻는 말에 내가 질겅질겅 씹어먹으며 대답했다.
“누구와는 다르게 그야말로 모성애 가득한, 마치 어머니 같은 자애로움과 어른스러움. 성숙함으로 빛나는 그런 예비 파티원이지.”
나는 실실 웃으며 케인을 바라보았다.
저 삭막하고 꽉 막힌 데다 전투 외엔 별 관심도 없는 무뚝뚝한 녀석은 역시 포근한 연상 타입도 괜찮지.
이런 게 다 클리셰 아니겠는가.
외로운 한 마리 상처 입은 늑대 같은 남자 주인공을 자애로움과 이해심으로 품는 히로인.
원작에서 우리 힐러는 물빛으로 일렁이는 머리칼과 살짝 처진 눈꼬리. 그리고 눈물점이 매력적인 귀부인 같은 존재였지.
물론 물이 없는 곳에선 힘을 아끼기 위해 어려져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 여왕님이 되시기도 하셨지만.
‘물론 케인 외의 인간은 전부 증오해서 문제였지만…….’
그나마 가디아는 말을 늘 무시하는 정도로만 끝났었나, 이번엔 그렇게 되기 전에 만나는 게 낫겠지.
“노땅이란 소리구만?”
나는 양손을 깍지 껴 뒤통수에 대고 걸으며 입으로는 버터문어다리를 씹어대는 레이첼을 보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 입에서 노땅이란 소리가 나와?”
“내 입에서.”
아니, 나이만 따지면 네가 제일이면서?
“저기 잠시 들려보는 건 어떤가.”
나와 레이첼이 티격거리는 것도 잠시. 케인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모험가 의뢰소가 눈에 보인다.
고급 정보를 구하기는 어려워도 자잘한 정보를 취득하기엔 저만 한 곳이 없지.
‘얼른 파이얀을 더 키워야겠어. 대륙 곳곳에 눈과 귀를 깔려면 말이지.’
잘 키워서 배신 따윈 못하게 좀 더 내 사람으로 만든 뒤 세이렌의 도청 방법까지 공유하면 나중에는 정보에 관해서 아쉬워할 일 없겠지만.
지금은 별수 없지.
“그래. 케인 말대로 잠시 들어가서 의뢰 목록이라도 훑어보고 나올까.”
“하긴, 의뢰 목록만 보아도 얼추 이 근방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긴 해. 아, 그래도 술 마시고 싶은데.”
난 이따 제로가 알아 온 레스토랑에서 고급술을 실컷 사주겠다고 말한 뒤 의뢰소로 들어섰다.
“어디 보자…….”
뭐 특이한 의뢰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둘에게 말한 뒤 나도 게시판을 훑기 시작했다.
붙였다 떼는 걸 깜박한 건지 유독 낡은 의뢰서 한 장이 게시판 맨 아래 귀퉁이에 다른 의뢰서에 가려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천천히 그것을 꺼내 보니 폭풍이 멈추지 않는 섬에 대한 조사 의뢰서.
‘하지만 지금은 이미 의뢰가 취소되었겠지.’
폭풍우의 구슬은 지금쯤 악신교단이 들고 있을 테니.
그래도 확인차 그 낡은 의뢰서를 들고 접수처로 가보니 역시나.
“어? 이런. 죄송합니다. 이미 다 떼다 버린 줄 알았는데. 이거이거 취소된 의뢰입니다. 흐흐.”
악어족으로 보이는 사내가 입을 쩍 벌려 웃는 모습에 나는 최대한 오만함을 누르며 물었다.
“누가 먼저 해결했나 봅니다?”
“아이고, 나으리. 그럴 리가요. 그냥 어느 순간 폭풍이 멈췄다고 합니다요.”
…실패했나.
내 무난한 질문에도 굽신굽신, 비늘 돋은 손을 비벼 저걱저걱 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히는 모습에 그냥 슬쩍 뒤로 물러났다.
대충 내막을 아는 상태이니 굳이 남의 눈에 띄어가며 물을 필요는 없지.
“재미있어 보이는 의뢰서 몇 장 뜯었어.”
“마찬가지.”
그리고 케인과 레이첼도 어느 정도 얻은 게 있는 듯 다가와 속삭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의뢰소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