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5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56화(156/373)
“어때 유모?”
세리아가 기대되는 얼굴로 웃으며 바라보자 그녀의 유모가 마법으로 봉인된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황태녀님. 이걸 정말 그 망나니 아델리안이 줬단 말씀이세요?”
“맞아. 은근슬쩍 나에게 줄을 대고 싶다며 몰래 주었지.”
아쉽게도 아델리안을 손에 넣어 크루거 가문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건 당장엔 멀어진 일이지만, 하며 투덜거리는 세리아의 모습에 유모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작 용혈이 짙은 드레이크의 어금니라고 말하면서요?”
세리아는 어쩐지 굳어진 유모의 얼굴에 느리게 눈동자를 움직여 상자를 바라보았다.
보안 마법이 잔뜩 걸린 상자.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이 물건에 저주 같은 건 없는지 확인해 보라며 손에 쥐여 줬던 성녀상을 저렇게 철저히 보호하여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세리아가 조금 차가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야. 역시 저주나 함정 마법이라도 걸려 있던 거야? 이렇게 마법을 둘둘 감은 상자에 넣어올 정도면 아주 악독했나 봐?”
그 카이만 대공을 거역하고 은근슬쩍 세리아 자신에게 연줄을 대려고 한 것이 갸륵해서라도 한번 은혜를 베풀어줄까 했던 것도 잠시.
감히 자신을 농락하려 들었단 생각에 세리아가 눈꼬리를 치켜들던 그 순간.
“호호. 아니에요, 황태녀님. 그 반대랍니다. 이 아티팩트.”
그 망나니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물건이에요.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인 그 말에 세리아가 놀란 눈으로 유모와 상자를 번갈아 보았다.
“이 성녀상이?”
“망나니 아델리안이 나중에 알게 되면 피눈물을 흘릴 겁니다.”
얼마나 즐거운지 반달 모양으로 휘는 유모의 눈을 바라보며 덩달아 세리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 피어나는 꽃잎처럼 웃었다.
“세상에. 뭐길래 그래, 유모? 나 너무너무 궁금해.”
아직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소맷단을 부여잡고 흔들거리며 조르듯 말하는 세리아를 보여 유모가 온화한 눈길로 응시하곤 살며시 세리아를 끌어안았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황태녀님.”
소중하게 끌어안아 한번 힘주어 품에 눌렀다 떼어 낸 손으로 유모는 조심스레 상자 겉면의 보안 마법을 해제하는 순서대로 매만진 뒤 뚜껑을 열었다.
붉고 윤기 나는 천에 올려진 상앗빛의 성녀상.
반쯤 눈을 감고 손으로는 기도하고 있는 그 조각품을 바라보며 품 안의 어린 새를 위한 노래처럼, 유모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귓가에 말을 꿀처럼 바르기 시작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녀상이에요. 황태녀님.”
그것도 대륙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마법의 성녀상.
“비밀리에 찾아낸 감정사를 통해 알아냈답니다. 누군가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전쟁이 있었다면 그 승패를 가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물건이에요. 그 어떤 소원이라도 너무 허황되지만 않는다면.”
황태녀님이 바라는 모든 것이 가능할 거예요.
그렇게 귀에 달게 들어온 말에 세리아의 눈이 가득 커졌다.
그리고 순간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소원.
“…만약 트레잇을 달라고 한다면?”
봉인이란 트레잇은 아주 강력하고 희귀하며 어찌 쓰느냐에 따라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
다만 황제의 트레잇이 아닐 뿐.
그건 황제가 부리는 말에게나 어울리는 트레잇이지.
그래서 세리아는 늘 노력했다. 하다못해 그 흔한 검술이나 마력, 친화력이라도 생기길 바라며.
‘하지만 지금까지도 생기지 않았었어.’
누구는 그렇게 말하지.
트레잇은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그 사람의 가치며 증명이고 그 사람 자체라고.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트레잇이 봉인인 세리아 자신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다음이 교만과 잔인함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결국은 나도 트레잇을 갈망하는 것일 뿐이야.’
잔인하게 남을 망쳐도 좋으니. 내가 가장 빛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걸 실행할 힘이 있다면 어느 누가 하지 않겠어?
“물론. 그것도 가능할 거랍니다. 축하드려요, 나의 황태녀님. 나의 작은 폐하.”
누구보다 다정하고 온화하게. 어느 것보다도 사랑스럽고 예쁜 것을 보는 눈으로 유모가 세리아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하자 세리아가 만개한 장미처럼, 가장 높이 떠오른 달처럼 아름답게 웃었다.
“그 머저리 아델리안이 알면 죽고 싶겠는걸?”
대륙에서 그 누구보다도 무능한 망나니. 가진 것이라곤 핏줄뿐이면서 타고난 혈통의 힘조차 없는 사내.
그런데 트레잇을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를 본인 손으로 넘기다니.
그 얼마나 우스운 일이던가.
세리아가 참지 못하고 크게 깔깔 웃었다.
“당장이라도 불러 말하고 싶어. 어떤 얼굴을 할까? 절망할까, 분노할까.”
트레잇에 대한 갈망은 아마 세리아 자신보다 그 아델리안이 더 간절했을 텐데.
엉망으로 구겨질 그 얼굴을 떠올리며 세리아가 더욱 크게 웃었다.
* * *
“음료수는 확실히 제국 수도가 낫다. 나 아직도 케인이 사다 준 앙큼 달달 러블리한 츄 체리 소다를 잊지 못하잖아.”
내가 농어 스테이크를 썰며 하는 말에 케인이 잠시 날 노려보다 아무 말 없이 뿔고래 스테이크를 한입 입에 넣는다.
“푸흡… 큭! 푸하하!”
하지만 레이첼은 참지 않지.
케인이 보인 그 찰나의 반응마저 레이첼은 웃겼던 듯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치며 바들바들 떨어대다 크게 웃었다.
그나마 은근슬쩍 마나 장막을 쳐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이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 전부 우릴 쳐다봤겠어.
“레이첼. 너무 웃구 그러지 마.”
그치만 그 체리 소다, 맛있긴 했구, 하는 루나의 말이 더 뼈아플 것 같은데 난.
“뭐 이것도 맛있어. 진주 거품을 낸 바다라는 이름의 음료였나?”
“네. 맞습니다, 아델리안 님. 근방에서 제일 유명하기도 하고 향을 맡아보니 신선한 재료들을 사용하는 거 같아 말씀드렸는데 괜찮네요.”
나는 제로의 말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테이블 위에는 살짝 불로 그슬려 맛을 낸 소라와 완벽한 타이밍으로 쪄낸 게는 먹기 좋게 전부 손질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리프의 손이 아슬하게 게에 닿지 않는 게 보여 직접 잡아 접시에 옮겨준 뒤 루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숙소도 근처라며?”
―아무래도 이 근방이 중심 거리인 것 같습니다.
“이곳 주위로 숙소나 레스토랑이 전체적으로 질이 높아요. 그중 가장 큰 숙소를 구했구요.”
하긴, 우리는 각자 따로 방을 잡는 게 아니라 층 하나를 전부 쓰는 편이니까.
‘그 이유야 뭐, 나 때문이고.’
하여간 저 과보호들. 그냥 케인이나 제로랑 같은 방만 써도 될 텐데.
내가 한 번 어깨를 으쓱거린 뒤 느리게 웃었다.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숙소 보는 눈은 좋아졌으니 믿음직스럽지, 뭐.”
―관리자께서도 성과가 있다 들었습니다.
리프가 게 다리를 하나를 전부 먹은 뒤 이번엔 매운 새우볶음을 조금 들어 입에 넣는다.
저거 새우가 탱글하고 씹으면 비린 맛 하나 없이 소스도 매콤 달달해서 맛있던데.
“맞아.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뭐 자세히 설명해야겠지? 내 예지안으로 본 건데.”
예지안을 입에 올리자마자 모두가 날 보던 시선을 거두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이 녀석들. 날 도대체 애지중지하는 건지 맥이는 건지 모르겠구만, 이거?
“캬! 술맛 장난 아니네!”
“지방방송… 아니, 지방세이렌 끄고. 내 말 들어봐.”
나는 와인을 한 모금 삼키며 입을 열었다.
“우린 이곳에서 정비 후 인어족의 세력권으로 들어갈 거야.”
내 말에 레이첼만 엥? 하며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아… 하긴 우리 파티 중에 상식인이 거의 없지?
‘파이얀이 급 보고 싶네.’
파이얀이 있었으면 그 특유의 호들갑도 좀 떨어주면서 정보를 좔좔 읊어줬을 텐데.
“인어족은 인간 별로 안 좋아하잖아. 굳이?”
“애초에 솔직히 인간 좋아하는 아인족 있어?”
내 말에 레이첼이 진지한 얼굴로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하여간 어? 어딜 가든 나쁜 사람이 문제야, 문제.
누굴 등쳐 먹고 부려 먹고 괴롭히고 하니까 이렇게 사회에 인간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그득하고 말이지.
“그곳엔 우리의 도움을 간절하게 바라는 누군가가 있거든.”
우리도 이제 남을 도우며 살아야지. 하고 장난스레 말하니 케인이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사람도 너와 계약하게 되는 건가.”
“그 힐러라는 분이시구?”
“후배님이 또 생기겠군요.”
―힐러면 인어족 신관입니까, 관리자님. 데이터가 적어 흥미롭습니다.
“걔 강하냐?”
…참 나. 누가 보면 내가 일단 찍으면 끌고 오는 사람인 줄 알겠다?
물론 틀린 말 하나 없는데, 그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아니. 그쪽에서 싫다고, 나랑 계약 안 한다고 할 수도 있잖아.”
내 질문에 다들 걱정 따윈 없다는 듯 게 다리 하나씩을 쥐더니 내 손에도 들려주고 이내 짠 하며 한 번 부딪친다.
이거 레이첼이 주도했네, 했어.
“너라면 어떻게든 원하는 거 손에 넣을 거잖아.”
엄지를 척 올리며 레이첼이 하는 말에 내가 허 하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 물론 최대한 우리 힐러 잡긴 할 건데.
내가 뭘 도와줄까. 혹은 뭘 어찌하려 하냐, 이렇게 의논할 생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
그냥 내가 알아서 뭐든 척척 할 거라는 믿음이 팽배한 우리 파티를 보라.
너무 안이하다.
‘어느 순간 또 나를 너무 믿는데?’
그러고 보니 미궁에서 충격 요법 쓴 건 케인과 루나뿐이지?
조만간 한번… 그런데 우리 파티 수준이 너무 올라가서 어찌 충격을 준다?
“허튼 생각하지 말고.”
내가 턱 가를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빠졌던 순간 케인이 던진 말에 내가 씩 웃었다.
“무슨 생각?”
“무엇이든.”
혹시 들켰나 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다만 내 행동이 묘하게 거슬린 모양.
“내가 할 게 뭐 있어.”
내가 어? 너네 잘되라고 하는 거 말고 할 게 뭐 있냐.
당당하다 못해 근거도 확실하며 하다못해 레이첼이 진실의 눈으로 봤어도 거짓으로 뜨지 않을 내 발언에 케인이 일단은 넘어가는 듯 다시 음식을 먹는다.
“원래는 이번에 이노센트로 들어온 아르만에게 배를 빌려 몰래 잠입하려 했는데 말이지.”
속전속결로.
원하는 것만 취하고 빠져나가려 했다. 엉엉 울고 있을 우리 힐러만 찾아 달래고 꼬셔서 냉큼.
하지만 애들이 큰 배를 원하니 별수 있나. 원래 계획은 유동적인 거고, 모로 가도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되는 법.
“반대로 아주 화려하게 유람선을 타고 움직일 생각이야.”
재미있겠지? 하며 내가 웃자 루나가 입을 열었다.
“은밀하게 움직이지 않아두 되는 건가요?”
“사실 상관은 없어.”
은밀하게 우리 힐러만 빼 오면 인어족이 손해를 보는 거고.
반대로 요란스레 우리 힐러를 빼 오면 인어족이 이득을 보는 차이 정도.
“그럼 난 유람선 찬성!”
레이첼이 새우를 얼마나 먹었는지 입가에 붉은 소스를 가득 묻히고 크게 외치는 말에 리프가 냅킨을 들어 닦아주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너희 수영은 할 줄 알아?”
다시 입에 세비체를 넣다 말고 문득 던진 질문에 케인과 리프를 제외한 나머지가 슬쩍 시선을 돌린다.
“루나?”
“저… 저는 고향이 사막 국가구요…….”
하긴 오아시스에 목욕 정도는 해도 한가롭게 수영을 하진 않았을 거 같네.
“제로?”
“미궁 안에는 그 정도로 많은 물이 없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감옥이나 다름없던 곳이었으니 수분 공급용으로 물이 졸졸 나오는 정도였다 했나.
“레이첼?”
“아. 뭐 왜. 못하는데 뭐.”
이번 유희 설정에 수영 못 한다도 있었냐? 어?
케인은 그나마 화전민 출신이라 산에 살아서 계곡이나 이런 데 어릴 때 놀아봤을 테니 할줄 아는 걸 테고.
리프야 골렘이니 몸으로 하는 기본적인 것들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을 테니.
“숙소에 짐 풀면. 그래도 바닷가까지 왔는데 수영이나 같이하러 가자.”
혹시 모르잖아. 내가 미쳐 가지고 크라켄 둥지 이런 데로 갈지. 혹은 정신력을 시험하는 던전으로 안내한다든가.
혹시 모르니 수영 정도는 할 줄 알면 어디서건 요긴하게, 하다못해 취미 생활로도 즐길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