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5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57화(157/373)
모든 피조물은 자신을 창조한 이를 넘어서려 하는 본능이 있는 법.
아니라고?
그럴 리가.
그렇다면 아직 넘어설 힘이 모자란단 소리일 뿐이겠지.
나의 창조주가 나보다 약하다면 당연히 잡아먹으려 드는 것이 포식의 법칙.
“나의 종주가 느껴져.”
“무슨 말씀이세요, 선장님?”
바다 위에 떠 있는 그 큰 배를 마치 땅 위를 달리는 말처럼 부린다는 해적 여왕.
엘리스가 곱슬거리는 자주색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럼주를 병 채로 입에 들이부었다.
“후후. 랑카.”
“네. 선장님.”
짧은 크림색 머리칼과 갈색의 피부. 한쪽 눈에 보석 안대를 찬 여인이 유독 도톰한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삐지긴. 네 말을 무시한 게 아니야.”
“그럼 설명을 해주셔야죠. 종주가 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
입가에 흐르는 럼주를 나풀대는 소매로 슥 닦은 엘리스가 날카로운 눈매로 짙게 웃었다.
“내가 언젠가 말한 적 있지?”
나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고.
그 자그마한 속삭임에 랑카라 불린 여자가 손을 들어 자신의 도톰한 입술을 매만졌다.
“아…하?”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엘리스는 그랬다. 아니, 지금은 엘리스였으나 과거엔 키쉬라 불렸던 도플갱어는 그리 생각했다.
어차피 하루에서 몇 명씩 죽어 나가고 들어오는 해적선에서 시체 처리는 결국 바다에 내던져 고기밥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
‘그렇다면 내가 먹어도 되는 것 아닌가.’
모든 도플갱어의 종주이자 근본이며 이제는 제로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주인은 그 어떤 기억의 오염 없이 순수한 상태지만, 나머지 도플갱어들은 달랐다.
미궁에서는 키쉬라 불렸고 이제 이 바다 위에서는 엘리스라 불리는 지금,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집어삼킬수록 강해지는 생물이 도플갱어라는 것.
‘원래도 가늠은 하였지만 확실하게 깨달았지. 우리들은 괴물이고 포식할수록 강해진다는 걸.’
그래서 먹었다. 수십 명의 사람과 아인족을. 몬스터를.
제로처럼 강한 교감은 할 수 없으나 희미하게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임무를 완수한 것이 바로 자신이란 것을.
해적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견제나 의심을 적게 받으며 넘치는 양분까지 흡수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노예부터 같은 해적단의 죽은 단원과 포로. 혹은 다른 해적단의 해적까지 수십 수백 명을 집어삼킨 지금, 바다 위에서 해적질을 하며 꽃피운 엘리스는 얼마나 강할 것인가.
‘종주를 삼킨다면… 내가 종주가 될 수도 있는 걸까?’
이런 반역심을 제로는 과연 교감으로 얼마나 알아차렸을까.
“어떻게 생각해?”
“해볼 만하지 않겠어요?”
중간에 한 번, 누군가를 잡아먹는 것을 랑카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그녀까지 잡아먹으려 공격했으나 랑카는 생각보다 강했기에 반대로 자신이 죽을 뻔했지만.
오히려 잡아먹히기 전의 해적 여왕 엘리스에게 원한이 있었던 그녀와 손을 잡은 덕에 진짜 엘리스로 거듭날 수 있었기에.
자신이 진짜 엘리스가 아닌 도플갱어임을 아는 유일한 단짝, 랑카와 손을 탁 맞잡은 엘리스가 시원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 바다를 한번 지배해 보죠, 같이.”
손에 든 럼주병을 잔처럼 캉 소리를 내어 한 번 부딪친 뒤 둘이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럼 랑카. 사람을 풀어. 종주가, 제로가 남해 군도에 왔다.”
“그럼 게이트가 설치된 곳 위주로 사람을 보낼게요.”
“인상착의는 아주 평범해. 아마 갈색 머리에 갈색 눈… 순해 빠지고… 독하지도 않지.”
늘 상냥하고 다정했던 종주. 차라리 그 짐을 내가 받고 종주는 새롭게 태어나 좋은 것만 누리게 해줄게.
엘리스가 단단히 각오한 얼굴로 럼주병을 칼집이 잔뜩 난 테이블 위에 탕! 올렸다.
“곁에는 아마 금발 머리의 사내가 있을 거야. 하지만 키쉬가 뵙자고 했다 전하면 몰래라도 나올 분이지. 그러니.”
정중하게 모셔와.
엘리스의 말에 랑카가 고개를 끄덕이니 보석 안대가 일렁이는 촛불 덕에 빛을 뿌렸다.
“선장님의 명을 받듭니다.”
* * *
“남해 군도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 거 같아?”
나는 루나와 리프가 찾아온 숙소에 들어앉아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거금을 주고 구해 온 남해 군도의 지도를 펼쳤다.
“배?”
누군가 대답한 말에 그것도 맞긴 하다며 입을 연 뒤 말을 이었다.
“일단 군도다 보니 섬이 많고 그 섬마다 크고 작은 마을이나 마을 겸 해적 소굴단이 아주 즐비하거든.”
거기에 대륙과 멀어질수록 해양 몬스터의 출몰 증가, 해적선 출몰 증가에 각종 날씨 디버프부터. 어디는 크라켄 구역, 어디는 인어족 구역, 어느 곳은 해적 총본산.
게임에서도 난이도가 지랄 맞기로 소문난 곳이 남해 군도 스테이지였다.
살살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면 아주 낮고, 반대로 괜한 모험심에 대양으로 나가는 순간.
‘괜히 게임이란 게 운발, 템발이 중요한 게 아니야.’
다른 건 다 몰라도 날씨 디버프나 소용돌이 깜짝 출현 이런 건 컨발이 통하지가 않는 부분이니까.
그나마 대비한다면 유닛발인데…….
“그 많은 섬들과 종족의 세력 구도를 전부 파악하는 데다 배를 모는 것에도 일가견 있는 이들을 구하는 게 사실 쉽지 않아.”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네임드 유닛 같은 경우는 워낙 자기 주관이 뚜렷해 힘든 경우가 잦다.
하다못해 아르만만 해도 내가 핍박하고 압박하여 알거지가 된다 해도 그 성격에 납작 엎드릴 리가 없다.
나중에 내 배에 칼찌라도 하려는 속셈이 아닌 한.
‘거절하기엔 너무나 많은 돈이었다…가 안 통하는 이들이 있단 말이지.’
좀 괜찮은 선원 NPC는 꼭 이상한 퀘스트 하나씩 걸린 경우가 많아서.
“배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건 돈을 바르면 얼추 해결이 되거든.”
배가 커서 느리다? 가속 아티팩트를 달면 된다.
크면 암초에 잘 걸려 부서질 확률이 높다?
강화 마법을 걸고 마법 수리 키트를 잔뜩 사면 된다.
그게 비록 보통 사람은 눈알 튀어나올 만큼 비싸다곤 하지만.
‘나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야.’
돈이 내 힘인데 뭐 어때.
“하지만 선원은 달라. 제대로 된 이들을 찾기 힘들거든.”
물길을 잘 알아 우리를 제대로 인도해 주며 동시에 해적과 내통하지 않을.
“그래서 말이지. 한동안은 이곳에 있으면서 괜찮은 선원을 알아볼 생각이야.”
좀 괜찮다 싶으면 사용자의 눈으로 봐야 할 테니… 여기서 아마 부유감이 제법 내려가지 않을까 싶긴 한데.
‘어쩔 수 없지.’
필요한 소모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지도를 보는데 제로가 문득 입을 열었다.
“선원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선원.”
내 말에 제로가 자신의 잿빛 머리를 긁적거리며 무언가 생각하더니 순한 대형견처럼 웃었다.
“소문을 듣거나 정보를 구해 오는 것도 제가 늘 하던 일이니까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좀 멀리 나가도 1주일 안엔 돌아오겠습니다.”
“하긴. 다른 섬까지 다녀오려면 시간 좀 걸리긴 하겠구.”
며칠씩이나 자리를 비우겠다? 루나의 말에 내가 제로를 흘긋 바라보았다.
어쩐지 평소보다 저 녹색의 보석안이 스치는 이채가 서늘한 느낌이긴 한데.
‘바닷가라 채광이 다른가.’
지긋하게 바라보자 제로가 순하게 웃기만 한다.
하긴 뭐 제로가 사고 칠 일은 없고.
“그렇게 해. 혹시 모르니 세이렌은 챙겨 다니고.”
누구누구처럼 말도 없이, 연락도 안 되는 상태로 오래 밖에 있지 말고.
하며 케인을 뚫어져라 바라보니 케인 녀석은 아주 당당하게 내 눈동자를 응시하며 차를 마신다.
“그나저나 선원은 찾기만 하면 바로 투입할 수 있잖아. 배도 얼른 구해야 하는 거 아냐?”
―그렇습니다. 관리자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이르게 사람이 구해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레이첼과 리프의 말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여기 남해 군도야. 어중간한 선원이나 배는 발에 차일 만큼 많아. 그리고 사실 선원보다 배는 더 쉽지.”
뭐 어느 영화에 나오는 블랙펄 같이 대단한 배 아닌 이상 적당히 크고 잘나가는 배는 언제나 살 수 있는 거다.
전설급 선박을 구할 필요는 없지. 사실 튼튼한 게 최우선이니까.
‘인어족 영역으로 들어가면 공격받을 게 뻔하니까.’
선박 전체에 방어 마법을 두르거나 선수상을 강화 마법이 걸린 것으로 구하는 게 낫겠지?
“간만에 골드 좀 쓰는 거지 뭐.”
“골드가 마력이었으면 드래곤보다 더할 놈이야.”
레이첼이 낄낄대며 하는 말에 나도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너보다 강할걸.”
“뭐야? 붙어볼래?”
레이첼이 주먹을 움켜쥐는 모습에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 대전사로는 케인을 임명하겠다.”
“와. 치사한 거 봐.”
아니, 그럼 먼저 골드를 마력으로 바꿔주든가!
‘사용자의 눈이랑 부유감 말고 나도 더 좋은 것 좀 달아주지 그랬어?’
쥐었던 주먹을 스르륵 푸는 레이첼을 보며 나는 앞에 놓인 쿠키를 하나 집어 들었다.
“뭐 하여간에, 배를 타고 나가면 한동안 바다 위에서 생활해야 하니까 배에 이것만큼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거 있어?”
내가 입에 쿠키를 던져넣고 우물거리며 펜을 쥐니 루나부터 입을 연다.
“침실은 개인실 말구 지금처럼 다 같이 생활 가능한 공간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뭐 그거야 쉽지. 정 안되면 개조하면 되고.”
“나는 술 창고.”
“술 창고… 뭐 좋아. 또.”
내가 종이에 깃펜으로 사각사각 적고 있으니 이번엔 제로가 입을 연다.
“배 자체 주방 말고 침실 쪽에 주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숙소를 배 위에 하나의 집처럼 꾸미는 게 어떻습니까.”
보통 배는 식당 층 따로, 침실 층 따로인데, 아무래도 우리는 파티 특성상 늘 함께 생활하는 형식의 숙소를 쓰거나 노숙해서 그런지 떨어지기 싫은 모양이다.
‘하긴 미궁에서 나온 시간만 따지면 어리다 못해 아기 수준이지.’
생긴 건 덩치가 크고 순박하게 생긴 청년이지만 그건 도플갱어라는 종족 특성상 그런 것이고.
사실 우리 파티는 대부분 몸만 자란 어린애나 다름없다.
그나마 사회에서 제일 많이 굴러본 게 케인인데…….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낫지.’
케인은 인간 혐오증이 생길 만큼 독하게 구르기만 했으니까.
그러니 사실 전부 칸칸이 나눠진 숙소보다는 하나의 집처럼 각자의 방은 따로 있되 이렇게 계속 북적거리며 대화하는 게 모두에게 좋을 테고.
“케인이랑 리프는 뭐 원하는 거 없어?”
―저는 제 침실에 책장을 놓고 싶습니다.
수도에서 비공정에 대한 자료와 역사를 뒤지며 생긴 취미인지, 리프는 어느 순간부터 책 읽는 것에 마음을 붙인 것 같다.
‘그래서 작문 D로 글 썼나.’
나는 아찔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어렵진 않은데. 리프야.”
―예. 관리자님.
“혹… 네가 무언가를 알려야 할 일이 생기면 글보다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훨씬 직관적이고.”
―…글이 가진 매력을 차츰 알아가는 중입니다만. 그림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리프.
물론 지금 와서 내가 이리 말한다고 뭐 달라지겠냐마는.
피식 웃는데 케인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감옥.”
“감옥?”
나 말고 다른 녀석들도 케인의 말에 의아한 얼굴이다.
아니, 갑자기 왜?
“정확하게 말하면 안전지대. 흔들리는 배 위에서 튕겨 나가도 귀환 가능한 사람이 아닌.”
그대로 실종될 사람을 못 나오게 가둘.
하며 날 바라보는데.
어?
이놈이?
“기각.”
어딜 날 가두고 신나게 싸우려고. 내가 정색하며 냉큼 기각이라 말하니 케인이 옅게 웃었다.
저거 저놈, 농담인 척하는데 사실 진담이었을 게 뻔했다.
“그럼 도련님은 뭐 안 필요하세요?”
나는 ‘감옥……?’이라고 적은 글씨 위에 작대기를 두 개 찍찍 긋다가 루나를 보며 씩 웃었다.
“나?”
난 너희가 말한 것 외엔 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