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6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61화(161/373)
“그쪽은 어찌 되어 가나.”
“아이고, 말도 마십쇼. 그 조그마한 게 얼마나 힘이 좋던지 원.”
진땀을 다 뺐다는 듯, 한 여인이 손사래를 치며 계단에 털푸덕 걸터앉았다.
그 모습에 깎은 지 며칠은 지난 듯 제법 덥수룩하게 올라온 수염을 거슬거슬하게 손바닥으로 매만지던 사내가 품에서 촛농을 먹인 천 뭉치를 꺼내 풀더니 두툼한 생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아니, 이거. 대장님께서 아끼시는 담배 아닙니까?”
“맞아, 인마. 특별히 너니까 주는 거지, 다른 단원이었으면 어림도 없다.”
보풀이 일 정도로 까슬하게 잘 말린 담배가 아닌 약촛물에 절였다 그늘에서 느리게 말려 살짝 눅눅할 정도로 습기를 머금은 생담배.
그 비싼 것을 하사하는 대장의 은혜로움에 여인이 감탄하며 한 대 받아 코 밑에 대고는 킁킁거렸다.
“크, 향이 좋네요. 그거 아십니까. 후각이 맛이 간 수인 놈들도 피 냄새랑 담배 냄새는 구분한다덥니다.”
“개소리는. 후각이 망가졌는데 그게 되냐.”
“아, 진짜라니까요. 달고 짠 내는 잘 못 맡으면서 피 냄새랑 담배 냄새는 진짜 기똥차게 맡는다니까요.”
클클 웃으며 여인이 작은 단검을 품에서 꺼내 생담배의 한쪽을 조금 잘랐다.
그 단검에 묻은 옅은 핏자국에 사내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제대로 안 닦아주면 나중에 다 녹슬고 끈적거리는 거 알아, 몰라?”
“참 나, 대장님도.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이 일을 한 지 어언… 몇 년째지? 하여간 그래서 늘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마법이 걸린 단검 하나 장만했지 말입니다.”
이건 상부에는 비밀이라는 듯 웃으며 담배를 물기 위해 입술을 내미는 여인을 보며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정성과 기원이 중요하거늘. 의식을 치른 후 정성껏 피를 닦고 검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다 마음가짐에 들어가는 거다.”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싫어합니다, 대장님.”
지지 않고 대답하는 여인의 모습을 한두 해 본 게 아니라는 듯 더 이상 타박하지 않고 사내가 길게 입은 로브를 열었다.
옷의 안감에는 뿔처럼 보이는, 양 갈래로 나누어진 그림 위로 검 두 개가 교차해 찔러 내리며 그 교차한 검의 손잡이 사이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 위를 살짝 뜯어 만든 안주머니에서 마법 라이터를 꺼내 여인이 입에 문 생담배의 끝에 불을 붙여 준 뒤 자신도 입에 물며 마저 말을 던졌다.
“그래서 오늘은 몇이나?”
“글쎄요. 얼추 너댓 명 정도? 이제 이 마을도 다 빨았지 말입니다.”
“그럴 거 같아서 다음 마을 알아봐 뒀다. 대신 거긴 비교적 찾기 쉬운 곳이라 하루 안에 끝내야 할 거 같던데.”
의식이 끝난 뒤 남은 자리가 아닌, 하던 와중에 누가 와서 보면 또 귀찮아지니까 하는 사내의 말에 여인이 킥킥거렸다.
“아쉽습니다. 사실 한 자리에 머물러서 공들여 의식을 치르는 게 꿀인데. 그게 효과도 더 좋다고 하고.”
“보통은 그렇지. 얼마나 간절하게 찾아대는지. 혹은 얼마나 공들여 바치는지가 다 저울 위에 올라가는 법.”
하지만 한 명 한 명을 알뜰하게 쥐어짜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역시 양으로 채우는 수밖에.
“그럼 다음 마을은 정식 제단 없이 약식으로 처리하고 바로 불 지릅니까?”
“그렇지. 적당히 부모나 자식이 보는 앞에서 몇 갈라 주고 불로 태우고. 그게 고통과 두려움을 뽑아내기에 편하기도 하고.”
광신과 맹신만큼은 아니라도 충분히 강렬한 감정이니 적절히 유도만 하면 자신들의 신에게로 쉬이 전달될 터.
거기에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신은 필요 없다 여겨지는 사람들을 죽여 지우는 것을 만족스러워하니 더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쪽에서는 그 전염병인가로 한 번에 대량으로 죽이려는 모양이던데, 우리가 밀리지 않겠습니까?”
“제법 기발했지. 더불어 그 전염병이 퍼진 지역에 소문을 퍼트려 수인족과 대전쟁을 일으킬 준비도 한다니.”
“성과가 크겠지 말입니다. 뭐 그렇다 해도 결국 우리 모두의 목표는 그분을 위한 것이니 잘되면 좋겠습니다.”
“그럼 담배 마저 피우고 집결하자고.”
저번에 피우다 말고 앞만 잘라 둔 생담배를 물었던 사내가 먼저 다 피운 듯 자리를 털며 일어남에 여인이 몸을 굽혀 인사했다.
“예. 다른 녀석이 교단의 문양을 제대로 그려뒀는지 한 번 더 확인 후 가겠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살아 있는 신을 위해.”
“살아 있는 신을 위해.”
* * *
“약이 풀린 후 얼추 시간이 지났는데. 어때, 반응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도련님이 지니신 예지안의 등급이라도 여쭙고 싶을 정도입니다.>
나는 알카이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왜, 반동이 적을 낮은 등급이면 뭐 좀 더 알아보게?”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습니다. 이번에 전염병 치료제를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 중이라 평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전 쪽에서도 평판이 좋아지는 중입니다.>
뭐 그렇기야 하겠지. 이 전염병은 꽤 예전부터 야금야금 돌았을 테니까.
하다못해 미궁 도시 라비린에서도 내 다리가 잘려나갔던 그 날, 고위 사제가 다 파견 나갔지 않았던가.
접경지에서 사람이 많이 죽는다. 특히 수원을 따라서.
그렇게 루나가 말해 준 게 기억났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아직 루나가 소심함 트레잇이 달려 있던 때네.’
잠시 기억을 끄집어내다 피식 웃었다. 이제는 뭐, 우리 루나 당당하지.
“하긴 내가 챠비드에 풀려고 매점 중인 식량도 그렇고 이번 약도 그렇고 악질적으로 굴었으면 악명과 비례한 만큼 골드를 쌓을 수야 있었겠지.”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앞다투어 동전 한 푼이라도 긁어모아 왔을 겁니다.>
“그 동전 몇 푼 긁어먹자고 비싸게 팔 필요는 없지. 악명은 지금도 많이 쌓여 있고.”
<사실 지금은 안쪽 내륙까지 완전히 퍼지기 전이라 평민들 위주로 병자들이 생겼지만 좀 더 방치했다면 귀족들도 무사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이게 1차 전염병이고 훗날 있을 2차 전염병까지 더해졌다간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대륙 어디를 가도 검은 연기가 보였을 테지.
쉴 새 없이 누군가를 태워야 했을 테니까.
그러면서 아마도 악신교단에서 퍼트렸을, 수인족이 원인이란 말에 인간들은 수인족에게 증오심을 품는다.
더불어 수인족은 노예사냥과 핍박, 가축의 의미 없는 몰살 등으로 인간 등에게 증오심을 품고, 더불어 나눠진 부족을 하나로 합치는 대족장이 나타나 버리니 결국은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챠비드의 수인족과 인간이 시작한 종족 전쟁에 점차 엘프나 인어족 같이 다른 지역의 아인족도 참전하고, 그렇게 대륙이 전쟁의 겁화로 물든 순간.
‘악신교단이 대놓고 활동을 시작하며 교세를 늘려나가고 몬스터를 이용해 아인족과 인간 세력 둘 다 공격하며 아주 난장판이 일어나지.’
“하여튼 신전에도 평판이 좋아졌다니. 그 기회에 야금야금 성수나 신의 계약서 이런 거 좀 사두라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수는 무슨 연유로 필요하십니까.>
“글쎄. 필요 없으면 제일 좋기야 하겠지만.”
나는 내가 예지안의 ‘예’ 자만 꺼내도 시선을 돌리는 우리 파티와는 달리 굳게 믿어주는 알카이도 덕에 신이 나서는 흑막스럽게 한번 실실 웃는 소리를 흘렸다.
“혹시 또 모르지. 성수가 아주 많이 필요한 순간이 올지.”
<알겠습니다. 창고 하나를 새로 만들어야겠군요.>
“그럼 이만 들어가 봐.”
난 세이렌을 종료하며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이노센트에서 100% 확률로 나오는 악신교단을 제외하고 일어났던 랜덤 인카운터 메인 스트림은 총 5가지.
수인족과의 전쟁, 전염병, 몬스터 웨이브, 제국의 황위 찬탈 내전, 그리고 언데드의 준동.
그동안 야금야금 노력한 결과 최소한 전염병 이벤트의 하이라이트. 대몰살 시나리오는 거의 파괴한 거나 마찬가지.
수인족과의 전쟁은 일단 훌라를 통해 제어해 보려는 중이고.
황위 찬탈 내전, 이거는 막기에는 너무 거대하니 샤하드를 밀어주어 조금이라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 또한 챠비드 쪽에서 일어난 마룡과 함께 밀려온 웨이브는 레피드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일단 협곡에 봉인해 뒀으니 얼추 안심이다.
접경지 가비오렌 쪽에서 있을 웨이브와 더불어 방벽 덕에 오히려 독 안에 갇힌 쥐 신세가 되는 일도 라인하르트를 온전히 구한 것에서 틀어졌을 테니.
‘꽤 괜찮은데?’
거기에 중반부부터 후반까지 대대적으로 골머리를 썩게 만드는 도플갱어 포션 문제도 지금 제로가 나에게 있는 이상 거의 해결된 거고.
‘열심히 움직인 보람이 있네.’
나는 조금 뿌듯해진 얼굴로 펜을 들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좀 더 방해할 만한 건 불의 정수나 바닷빛 진주, 폭풍우의 구슬같이 이미 갈라 먹기가 된 비보 외, 다른 것들을 먼저 채가는 일이려나.’
불의 정수는 카이만이, 바닷빛 진주는 내가 차지했다.
폭풍우의 구슬은 내 기억상 처음엔 카이만이 차지했다가 악신교단 쪽에서 탈취할 터.
남은 것들은… 당장 기억나는 건 녹음의 고리, 무겁고 깊은 별, 설산의 눈물 정도?
하지만 원래 귀중한 것엔 주인이 있는 법.
바닷빛 진주만 해도 비공정의 핵이었고 폭풍우의 구슬도 인어족의 보물 중 하나.
나머지 셋도 원래 주인이 있는 것을 악신교단이 차지한다.
전부 강한 속성력과 마나의 응집체이니 그들이 말하는 살아 있는 신을 위한 제물이었겠지.
‘그러니 하나라도 더 빼앗아야 하는데.’
사정을 얼추 아는 이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럼 폭풍우의 구슬은 알면서 왜 그냥 뒀는지. 악신교단의 손에 들어갈 것을 뻔히 알면서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힐러를 얻으려면 별수 없지 뭐.
보통 그런 것들은 원주인과 공명하는 법. 내가 중간에 가로챘다간 아무리 아공간에 넣어뒀어도 인어족인 우리 힐러가 알아차렸을 확률이 높다.
그걸 미끼로 세상밖에 끄집어내야 하는데 의미가 없지.
더불어 카이만이 한번 쥐었다가 탈취당해야만 카이만과 악신교단이 협력하지 않을 테고…….
분명 불의 정수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고생 중일 테니 폭풍우의 구슬을 뺏기지 않아 악감정이 없는 상태라면 카이만이 악신교단의 조건에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니.
나는 서툰 그림으로 인어 한 명을 그린 뒤 동그라미를 계속 그었다.
우리 힐러가 인간을 증오하는 데는 카이만의 구슬 탈취와 더불어 몇 가지 더 사건이 있었는데 그걸 막아야 덜 삐뚤어질 터.
“아직 강제로 결혼식에 끌려가기 전이겠지?”
섬으로의 출입을 강한 폭풍으로 막아주던 폭풍우의 구슬이 없는 이상 그 섬은 지금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상태.
처음엔 회유 그다음은 협박. 그 뒤는 강제로 납치.
그러니 지금은 기껏해야 회유의 막바지나 협박의 초반일 거다.
너무 늦어도 안 되겠지만. 너무 일러도 안 된다.
내가 힐러 영입, 힐러 영입 하면서도 배와 선원을 구한다고 시간을 잡아먹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인어족의 왕족이 쉽게 동족과 바다를 버리고 따라오긴 힘드니 적당하게 상황이 무르익길 바라는 수밖에.
‘더불어 교단도 한 번 더 방해하고.’
나는 정보 길드에서 돈을 주고 산 서류를 몇 장 넘겼다.
조금 엉성하게 그려진 데다 군데군데 지워지긴 했지만 서류에 첨부된 이 문양.
이번 인신 공양도 역시 교단 쪽이었나.
두 개의 뿔 같은 것을 교차해 찌르는 검과 그사이 위치한 마름모의 점.
“제로가 정보를 모을 동안 나랑 케인은 이거나 파볼까.”
손끝으로 서류의 그 점을 톡톡 치며 나는 옅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