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16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163화(163/373)
“자지?”
“주무셔.”
―체온, 맥박. 모두 안정적입니다.
루나는 정보 입수를 위해 다른 섬으로 넘어간 제로 외, 나머지 일행을 확인한 뒤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아주 가끔, 처음엔 아델리안에 대한 걱정 등으로 모였던 이 정기 회담도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조금 달라져 서로에 대한 불만이나 제안, 혹은 단순한 잡담의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이제는 빠질 수 없는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왜 아델리안 몰래 하냐면 처음엔 아델리안의 걱정으로 시작된 모임이었다가 나중엔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 등을 하다 보니 아델리안에게 걱정시키기도 싫었던 것.
‘지금 와서는 그냥… 전통?’
루나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 레이첼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델리안에 대해서 말이나 할까?”
이런 모임은 역시 간식이 있어야 제격인 법. 레이첼이 쿠키 하나를 들며 입을 열자 케인이 자연스레 마나 장막을 펼쳤다.
“솔직히 이번에 뭔가 느낀 사람, 손?”
레이첼이 아작아작 쿠키를 씹으며 하는 말에 모두가 손을 들었다.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얼굴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
―이번엔 특히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동감. 솔직히 케인, 네가 가출만 안 했어도 저번에 아델리안을 구석에 몰 수 있었잖아.”
“솔직히 지금만큼은 레이첼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구.”
아니, 그럼 평소엔 내가 틀린 말을 한다는 거야? 하고 투덜거리는 레이첼에게 루나가 방실 웃으며 애플 타르트를 한 조각 내밀었고 레이첼은 그걸 보더니 화사하게 웃었다.
“하긴 나를 제외하면 아델리안에게 강하게 말할 사람이 없긴 하지.”
케인이 홍차를 한 모금 삼켰다. 원래 메이드 출신인 데다 아델리안을 아끼는 루나야 아델리안이 조금 무모한 짓을 해도 화내기보다는 더 큰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했을 터.
레이첼은 본인이 애초에 사고뭉치니 남이 사고 쳤다고 뭐라 할 입장은 아닌 것이고.
리프는 아델리안을 관리자로 인식하는 데다 죽으라면 죽을 것이고 불로 뛰어들라 하면 뛰어들, 애초에 골렘이니 아델리안에게 험한 말은 당초에 가능하지 않다.
제로야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데다 황실에 혼자 들어가 감금 당할 뻔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모를 게 뻔했다. 오히려 눈앞에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델리안에게 더욱 위협으로 느낀다면 느끼겠지.
결국 혼자 들어가 1황녀 세리아에게 감금당할 뻔한 것에 대한 잔소리는 케인이 했어야 할 일이었지만, 그 케인이 한동안 실종되었으니 다들 다음엔 조심하자며 넘어갔던 게지.
“그때 제대로 말 안 해서 그런가. 오늘 봤지?”
―확실히 뭔가 엉뚱한 일을 잠시라도 생각하신 얼굴이었습니다.
“도련님은 저희와 관련된 일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 같으면서두 정작 본인에게는 둔하시니까.”
괜히 케인이 감옥 운운한 게 아닌 것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다른 곳도 아닌 바다 위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사실 배가 파괴되어 모두 바다로 떨어지는 순간 케인 외 다른 사람은 제 한 몸 가누기도 벅찰 게 뻔했다.
마나가 안정된 땅 위와는 달리 바다는 지반이라는 것이 없는 데다 바닷물은 끊임없이 움직이니 당연히 그것이 품은 마나도 불안정하다.
그것에 맞춰 몸의 마나를 조율해 바닷물 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
그나마 널빤지 하나라도 밟고 있으면 낫다고는 하지만 단순 조난이 아닌 전투 상황에 돌입한다면?
‘케인 외 어느 누구도 도련님을 챙길 수 없어.’
차라리 정말 감옥에라도 넣어두면 일이 생긴 순간 케인이 찾기라도 쉽지. 같이 전투하다가 폭발 등으로 튕겨 나간 순간 위험해지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감옥 찬성.”
―감옥이라고 하면 너무 차갑게 느껴지니 관리자님을 위한 관리실이라든가 다른 명칭은 어떻습니까.
루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케인의 의견에 동의하는 레이첼과 리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감옥은 단순한 임시방편에 불가하다구 생각해. 도련님께서 급하시면 코덱스를 이용해 파괴해서 나올 수도 있구.”
“그럼 마법으로 파괴 불가한 감옥을 만들자고 할까?”
“레이첼, 도련님은 몬스터가 아니셔.”
―그럼 강력한 방어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를 경매장에서 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중간한 아티팩트는 이미 아델리안에게 많다. 유의미한 것을 구하려면 경매장엔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고 무엇보다 아이기스가 있지.”
어지간한 물리적 공격은 물론이고 마법 공격에 저주와 같이 정형화된 마법이 아닌 것도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한 아이기스.
그것 덕에 아델리안이 더 방심하는 느낌도 들어 케인이 느리게 생각에 잠겼다.
“아마 아델리안의 계획에 자신의 능력을 보강하는 것도 들어는 있을 터.”
종종 이동에 관련된 아티팩트를 운운하며 케인 자신이나 루나, 제로 등에게 업히거나 안겨 가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던가.
다만 언제나 아델리안 본인이 쓸 아티팩트 보다 다른 것을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아직 손에 넣지 못할 것일 뿐.
하다못해 지금도 그 힐러라는 존재를 위해 온 것이 아닌가.
“그나저나, 아델리안은 아직도 트레잇 같은 거 안 생긴 거 같은데. 맞아?”
레이첼이 입가에 묻은 슈가파우더를 할짝거리며 하는 말에 루나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러신 거 같아.”
“도대체 뭘까. 진짜 예지안은 아닌 거 같고.”
―신체나 정신, 혹은 마나 계열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델리안이야 예지안 트레잇이 있다고 몇 번을 말했으나 일행 중 그걸 믿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아델리안의 성격상 그게 정말이면 입에 올리지도 않을 게 뻔한 데다 그렇게 강력한 트레잇을 지니고 있는데.
‘그렇게 무시 받으며 사셨을 리 없으니까. 일부러 숨기신 거라 하셨다기엔…….’
루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제국의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평판이 안 좋은 사람을 손꼽으라면 아델리안이 꼭 들어갔다.
사실 정말 입에 올리기에도 더럽고 지독한 짓을 하는 귀족도 없는 것은 아니지.
그런데도 아델리안이 그렇게도 유명했던 건 이 넓고 강대한 제국에서 단 셋밖에 없는 대공가의 후계자이면서도 신전에서 새어나간 말이 컸다.
평민도 아닌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형편없는 트레잇의 소유자였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보여주는 모습은 트레잇 따위 아무 상관없다는 듯 누구보다 완벽하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비록 아델리안이 말하는 예지안이 없더라도, 남들에게 내세울 트레잇 따윈 존재하지 않아도 루나는 아델리안을 따를 생각이니까.
“인간은 맞는데 말이야.”
레이첼이 중얼거리는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던 케인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 뒤 입을 열었다.
“아델리안이 누구든지 간에 상관없다. 내가 믿는 건 눈앞에 존재하는 그 녀석이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떼를 써서라두 도련님께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가기루 해.”
“그리고 허튼짓 못 하게 잘 챙겨 보는 것으로.”
가끔 저쪽이 아닌 우리들에게도 기발한 짓을 하는 것 같으니까.
케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지간한 건 골드로 안 되는 게 없지.”
철없는 귀족가 도련님. 어찌 보면 그만큼 남에게 얕보이기 쉬우면서 원하는 걸 얻기도 쉬운 포지션이 없다.
아직 제국의 순찰대나 흑마법사의 소행인지, 이단의 소행인지 판가름할 만신전의 심문관에게도 신고가 들어가기 전인, 말 그대로 인신 공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곳을 가로챘으니.
그 덕에 평민이라면 가늠하기조차 힘든 골드가 날아갔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10년 안에 골드가 크게 의미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는데.
‘역시 한 곳에서만 하고 도망갔을 거란 생각은 안 했지.’
주위에 작은 섬도 많은 데다 유동 인구 또한 무역 덕분에 넘쳐난다.
간헐적으로 사람을 납치해 인적 드문 무인도에라도 모아뒀다가 한 번에 공양하거나 혹은 저 멀리 본토에서 조금 떨어진 낙도에 조그맣게 모여 사는 가족 단위의 집단을 노릴 수도 있지.
여러 번 하여 결국 꼬리가 잡히고 본토에서 대대적으로 수색 및 토벌단이 꾸려지기 전에 지금 미친 듯이 활동 중일 것이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지?”
그리고 나는 배가 준비되는 대로 움직였고 지금은 동이 틀 무렵.
그리 크지 않은 배다 보니 파도가 강하게 칠 때마다 한 번씩 몸이 기우뚱했다.
날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도련님 정도로 생각하는 선장은 그때마다 내 눈치를 보는 게 어지간히 내가 까탈스러워 보이는 모양.
‘아니, 로브 써서 코끝이랑 입만 나올 텐데?’
오만 트레잇의 힘인가.
“아이고, 도련님. 이제 정말 다 와 갑니다요.”
“분명 그 말을 30분 전에도 한 거 같은데.”
케인이 나지막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내가 부츠의 끝으로 케인이 앉은 의자를 툭 찼다.
평정심 인마.
물론 케인 입장에선 자신의 마을을 불태우고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죽였으며 동생마저 데려간 괴집단의, 그날의 흔적을 떠올리게 된 순간이겠지만.
‘벌써부터 동요하면 곤란해. 나중엔 수습할 사람이 부족해 발걸음 닿는 곳곳에 펼쳐질 수도 있으니.’
원작에서는 그랬다. 처음에는 그 참혹한 흔적을 지우고 묻어주고 신관을 불러 기도를 올리고, 슬프고 노여워하고 분노하며 누가 그랬는지 그 죗값을 받길 모두가 바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악신교단의 힘이 커지고 나중엔 공공연하게 공양을 올렸으며 살아있는 신이 제대로 활동하던 막바지엔 수습은커녕 눈 닿는 곳곳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거나 혹은 악취로 진동했으니까.
‘그러니 벌써부터 조바심도 다급함도 느껴선 곤란하지.’
내가 부츠로 의자를 툭 찬 덕인지 케인이 선장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린다.
“섬이 보여!”
갑판에 나가 있던 레이첼이 선장실로 우당탕 들어오며 분위기를 전환해 준다.
나는 기특하단 눈으로 레이첼을 바라보다가 뒤따라오는 루나에게 입을 열었다.
“어때?”
“5분 정도면 해안가에 닿을 거 같아요.”
―그리고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습니다. 무인도로 보입니다.
원래 살던 이들은 전부 제물로 공양 당했을 테고… 혹시나 하고 숨어 있던 교단원도 역시나 없는 모양.
“그나저나 레이첼, 쌩쌩한데?”
“캬, 나는 진짜 멀미 포션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잖아.”
나도 드래곤이 뱃멀미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아니, 레드 드래곤이라서 그래? 바다 위는 좀 안 맞아?
그 먹성 좋은 레이첼이 먹지도 못하고 뻗는 걸 보고는 얼마나 놀랐던지.
‘아니, 그 와중에 발부스에게 빼앗은 것 중에 멀미 포션이 있었던 걸 기억한 나도 웃기고.’
촛불이 일렁이는 덕에 오렌지색 빛이 사방을 덮고 있던 선장실과는 달리 갑판으로 나가니 이제는 제법 높게 뜬 해와 보라색이 섞인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하얗고 고운 모래만이 둘러싸인 백사장은 아니었다. 자갈이 섞인 거친 해안가. 빠르게 걸으면 한두 시간 만에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거 같은 크기의 작은 섬.
조금은 가팔라 보이는 비탈길과 한쪽에는 절벽이 보이고 작게 조성된 숲 근처에는 어렴풋하게 집 또한 보인다.
적으면 서너 명, 많아 봐야 십수 명이 살고 있었을 섬.
“저기 도련님… 제대로 된 부둣가가 없어서… 그 줄사다리를 타고 작은 배로 움직여야겠습니다요.”
내가 원하는 만큼 큰 배는 아니었다곤 하나 이 섬 가까이 댈 수 있을 만큼 작은 배도 또 아니었기에.
이 배에서 작은 조각배로 옮겨 얕은 연안까지 노를 저어 간 뒤 무릎 정도까지 잠기는 물속을 걸어야 하는 모양.
“그럼 그러도록…….”
“도련님.”
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냉큼 루나가 다가온다.
어?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얼른 케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기사가 날 저기까지 데려다줄 테니 어딘지 안내할 안내원 한 명을 제외하곤 선장과 나머지 선원들은 배를 지키도록.”
내 말에 루나는 조금 아쉬운 얼굴. 리프 또한 무표정한 가운데 순서를 놓쳤단 기색이고 레이첼은 그냥 신났다.
벌써 갑판의 난간을 밟고 뛰어내려 바닷물 위를 박차 섬으로 뛰어간다.
“공양은 어디서 이루어졌지?”
“섬 뒤편에 이어진 절벽 사이의 동굴입니다.”
나는 안내원의 말에 고개만 한 번 까닥인 뒤 케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쩔 수 없다. 네가 수고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끼리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루나나 리프에게 안겨 가는 건 좀 그렇잖냐.